안녕! 미래의 챔피언!

동백꽃

포켓몬 / 포켓몬 합작_꽃, 그리고 그 트레이너 / 2016년 7월 17일에 올렸던 글

서고 by 예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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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 링크: http://ymt4321.wixsite.com/flower-trainer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아무리 간절하게 바란다한들 위에 있는 신이란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결코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을 안겨준다. 멈추지 않는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잔인하게도 시간은 아무 일 없듯 흐르고 계절은 또 바뀌어가는 것이다.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기에 이것이 자연의 이치며 당연한 수순임을 모르는 이는 없으리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그 무엇도 누구도 아닌 바로 세상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변화함으로써 굴러가는 세상이다. 어머니인 땅은 새 생명을 품고 낳으며 색을 바꾸고 또 사그라드니 이게 분명 자연스러운 일임이 틀림없지만, 어떠한 것이든 모두 시간이 지나 변화한다함은 한편으로 누군가에게는 쓸쓸한 일이기도 했다. 더 이상 변할 수 없는 존재에겐 말이다.

고요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차가운 얼음 꽃송이는 모든 색을 삼키며 모든 소리마저도 지워버려는 것 같았다. 소년은 더 이상 산타클로스를 믿을 나이도 아니고 동화에서 봤던 것처럼 현실은 하늘의 선녀가 지상에 눈이나 비를 뿌리는 것이 아님도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절경을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 신일 것이라는 생각만이 들었다. 그렇게 밖에 생각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태산을 소복이 뒤덮은 하양이란 순수하고 아름다움의 대표적인 색이니, 보는 눈동자도 자신이 그 순수함에 물들여지는 것만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천천히, 천천히. 모든 색도 소리도 사라지고 사라지는 이 순간, 순간은 자연이 부리는 마법 같은 일이었다. 감상에 빠지며 그저 깜빡이던 속눈썹에 작은 눈송이가 날아와 앉았다. 금방 녹아드는 찬 기운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가, 감은 소년은 다시 홀로 이 자리에 서있다는 것을 직시했다. 소년은- 레드는 스스로 표정을 감추고 있으나 조금 쓸쓸해보였다.

“산 아래는 봄인가봐.”

“삐까아?”

리자몽의 자랑이기도 한 꼬리 불꽃은 보고 있기만 해도 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그 가까이에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붙여 앉고는 작은 두 손을 내밀어 얼었던 몸을 녹이던 피카츄가 레드의 말을 듣곤 쫑긋 두 귀를 세웠다. 활활 타오르는 그 따뜻한 불꽃을 담아 일렁거리던 커다란 흑색 눈동자, 이내 그 시선이 자신의 트레이너에게로 향한다. 아주 예전부터 묵묵했던 그는 지금까지도 말이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행동과 뒷모습으로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했었다. 몇 번을 봤을까, 그를 따라가게 된 이후 몇 십 아니 몇 백번을 봤을 저 뒷모습, 어쩐지 저 뒷모습을 보면 옛날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 떠오르는 옛날이란 최고의 트레이너가 되기 위해 여행을 떠난 그날 어린 소년, 지금은 그때보다 어른에 한발자국 더 다가선 소년이지만 말이다.

벌써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악의 조직 로켓단은 레드의 활약으로 해산되었고 그는 이후 사천왕과 챔피언을 쓰러트려 전당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새로운 챔피언이 되었다. 하루에 챔피언이 두 번 바뀐 사례는 지금껏 없었다. 때문에 이 날의 일은 나중에 칸토우 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에까지 알려져 트레이너들 사이에 태초마을의 레드라고 하면 전설같이 입으로 전해지게 되었더란다. 허나 레드는 챔피언으로서 리그를 지키지 않고 자취를 감췄다. 그가 향한 곳은 고향인 태초마을이 아닌 은빛 산, 바로 이곳이었다.

은빛 산이라 하면, 가장 강한 포켓몬들의 서식지라 불리는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배지를 다 모았다고 하더라도 리그 관계자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그런 곳이니 만큼 챔피언을 뛰어넘은 챔피언인 레드에게는 스스로 정진하기 아주 알맞고 좋은 장소일게 분명했다. 추측일 뿐이지만 말이다. 자취를 감췄다한들 이미 유명인사가 된 레드가 은빛 산에 올랐다는 소문이 알게 모르게 퍼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으니 금방 그에게 도전하기 위해 최강을 목표로 하는 수많은 트레이너들이 은빛 산을 올랐다고 한다. 허나 레드에게 도전하기 이전에 은빛 산이라는 이 장소 자체가 난관이었고 대부분이 이곳의 야생 포켓몬들에게 쓰러져 도중에 돌아갔으며 극히 일부가 정상까지 올라 도전을 할 수 있었으나……. 그를 쓰러트린 사람은 아직까지 단 한명도 없었다.

“피카츄, 산책갈래?”

“피~~까아~…….”

“그렇게 싫은 표정하지 말고. 이제 은빛 산의 추위도 적응되지 않았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지 피카츄는 귀여운 미간을 푹 구겼다. 반팔을 입고서 멀쩡히 이 강추위를 견디는 레드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샛노란 털을 가진 이 작은 쥐 포켓몬, 피카츄의 고향은 언제나 따사로운 햇볕이 나뭇잎 틈 사이로 내리쬐는 상록 숲인데, 이런 설산이라니……. 아무래도 익숙지도 않은 추위란 견디기 힘든 날씨일 것이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매일이니 말이다. 오들오들 웅크리고 가엾게 떨어대며 몸을 녹여주는 불꽃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자신에게 밀착하는 피카츄를 보며 리자몽은 피카츄가 혹여 자신의 꼬리 불꽃에 델라 꼬리를 들어올렸다.

“춥다면 품에 안아줄게, 이리와."

이런 날씨에 산책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못마땅한 마음을 표정으로 말하는 피카츄가 보였다. 싫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싫은 것일까, 가만히 피카츄와 눈을 맞추던 레드는 허리춤의 몬스터 볼을 모두 제 손에 올렸다. 볼에 들어가면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지기 때문에 「포켓몬스터」라고 한다고 했던가. 반투명한 구체안에 움직이는 포켓몬들의 인영은, 모두가 전설이라고 말하는 레드의 포켓몬들이었다.

"리자몽, 피카츄와 잠시 나갔다 올 테니까 모두의 몸을 녹여줘.”

레드가 다른 포켓몬들을 몬스터 볼에서 꺼내자 빛과 함께 나온 포켓몬들이 나왔다. 커다란 포켓몬들이 한두 마리도 아니고 네 마리 씩나 튀어나오니 조용하고 넓다고 생각한 동굴이 금방 꽉 들어찬다. 잠만보, 거북왕, 이상해꽃 그리고 라프라스. 그들은 몬스터 볼에서 나와 땅바닥에 착지하기 무섭게 후다닥 리자몽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이제는 집이랄 수 있는 이 동굴에 언제나 피어놓는 장작불이 눈에 익어있을 텐데도 제일 따뜻한 것은 리자몽이라는 듯 엄마에게 매달리는 아이처럼 그의 몸에 엉겨 붙으니, 이제 모두 최종진화를 하여 덩치가 커졌다고 해도 귀여운 모습이었다.

“다녀올게.”

이렇게 되니 하는 수 없이 피카츄가 트레이너의 고집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작은 발과 손으로 땅을 내딛어 달려가 그의 품에 쏙 들어간다. 다른 포켓몬들에 비해 작긴 했지만 제법 무게가 있는 피카츄를 레드는 가볍게 들어 올리곤 겉옷에 넣고 지퍼를 올렸다. 겉옷은 얇긴 해도 그 안에 서로의 온기와 온기는 닿을 것이라,

“이제 따뜻해?”

“피카피카!”

레드의 체온 덕에 몸이 따뜻해졌는지 피카츄는 아주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살랑살랑 좋은 기분이 흔드는 꼬리가 레드를 간지럽힌다. 그런 피카츄를 레드는 품에 더 끌어 안아주었다.

눈을 밟자 밟히는 소리가 뽀드득하고 났다. 발자국을 만들면 내리는 눈이 다시 그 자취를 덮어가며, 언제나 같은 때 묻지 않은 하양 그 흰색일색인 풍경으로 돌아간다. 달라지지 않았다. 은빛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이 설산은 레드가 처음 이곳에 발을 내딛었던 그날에 멈춰있는 것만 같다. 변하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아.”

“삐?”

“여긴 언제나 겨울이잖아. 정상뿐이지만…….”

레드는 이곳을 좋아했다. 그가 이 장소를 좋아하고 떠나지 않는 것은 마치 자신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흘러가는 시간, 그 시간을 타고 모두가 바뀌어가지만 레드는 자신만은 바뀔 수 없다고 생각을 했다. 가장 강하기 때문에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기에, 그는 챔피언이었다. 누구도 그를 뛰어넘지 못해 좌절을 하고 돌아선다. 이긴다는 것이 썩 기분이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정상에 오르고 나서 알게 된 일이다. 레드에게 있어 이곳은 정상이자 동시에 절벽이었다. 성장하는 즐거움은 더 이상 없다. 막다른 절벽에 몰린 챔피언은 봄이 찾아오지 않는 이 설산의 정상과 닮아있었다. 스스로의 강함에 허무함을 느끼고 있으며, 쓸쓸한 얼굴이란 나아갈 수 있었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표정이었다.

흰색일색인 은빛이라고 해도 꼭 눈만이 있는 것도 어니고 하얀 색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절경에 피는 꽃도 있었는데, 유독 자주 보이는 것은 레드의 이름과 같은 색인 동백이었다. 저 붉은 색은 겨울에 피는 꽃이라, 무참하게 목이 떨어지는 꽃이지만 그 겹겹 고운 꽃잎과 노오란 꽃술이란 고고하여 모양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이곳은 겨울이니 계속 볼 수 있는 꽃이다.

“......이전에 그린이 닮았다고 했던가.”

레드가 떨어진 꽃을 줍자, 그린이 이전에 닮았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린이야 색이나 분위기가 닮아 그리 말을 했겠지만 레드도 자신과 닮은 꽃이라 동의하는 바였다. 어여쁜 꽃이라 향을 맡아보아도 향이 없는 꽃이라 아무런 향기도 나지 않았지만, 이 붉은 색도 이 겨울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인 것도 확실히 비슷했다. 자신과 말이다.

“산 아래는 봄이지.”

손에 움켜쥐자 꽃은 바스러져 붉은 색이 떨어졌다.

‘이곳에 봄은 오지 않아.’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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