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한 갈래 길
“맛있었다, 그치?”
“피카!”
흥흥,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 제노를 따라 피카츄도 피피, 하고 리듬에 맞춰 울었다.
쓰러진 실버와 그의 포켓몬을 몽땅 포켓몬 센터에 맡긴 뒤, 제노는 곧장 저녁을 먹기 위해 나왔다.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나는 그의 뒤에 대고 간호순이 ‘깨어나는 걸 보지 않을 거냐’고 물었으나, 제노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일행도 아니고, 지나가는 사람으로서 할 일은 다 했다. 그러므로 그는 쿨하게 식당을 찾아 나섰다. 지금 중요한 건 은동인지 뭔지가 아니라 제 밥이었다, 밥.
사전 조사 없이 대충 눈에 보이는 대로 들어간 튀김 덮밥집은 대성공이었다.
바삭한 튀김은 채소만 들었다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맛을 가진 데다 양도 푸짐했다. 소스는 적당히 짭조름하여 튀김을 물리지 않고 계속해서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
단호박 튀김, 밥, 깻잎 튀김, 밥, 꽈리고추 튀김, 그리고 다시 밥. 기름진 입안을 씻기 위해 상큼한 유자 단무지도 한입. 콰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김 튀김을 해치운 제노가 마무리로 미소된장국을 들이켰다. 따끈한 온기가 몸속을 데우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탑에서 받은 좋은 기운이 지금에서야 효과를 발휘하는 모양이었다. 지금쯤이면 실버도 정신을 차리고 제 할 일 하러 갔을 테고, 나도 내 할 일이나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온 제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포켓몬 센터 앞을 떡하니 지키고 있는 실버의 모습이었다.
… 나 혹시 버프 벌써 끝났니?
*
허억, 그는 숨을 들이켜며 깨어났다. 아릿한 통증과 싸한 소독약 냄새가 느껴졌다. 여긴… 어디지?
“앗, 정신이 드셨어요?”
여성의 높은 목소리. 들려온 곳을 확인하자 간호순이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들고 있는 트레이에는 약과 붕대 같은 것들이 올려져 있었다. 실버가 누워있는 침대로 다가온 간호순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몸은 좀 어떠세요? 쓰러지기 전의 일은 기억나시나요?”
그 질문에 실버의 머리에 어떤 장면들이 스쳤다. 시비를 걸어온 트레이너들. 자신이 포켓몬을 꺼내지 않자, 곧장 저에게로 공격 명령을 내리던 모습.
“비겁한 놈들….”
“몇몇 분들이 경찰에 신고해 주셨어요. 금방 잡힐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한 상투적인 말을 하며 간호순은 실버의 상처를 살폈다. 새로이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으며 그는 실버가 묻지도 않은 얘기를 조잘조잘 늘어놓았다.
“그래도 구해주신 분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분이 침대로 옮기는 것까지 도와주셨어요.”
그 말에 실버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러고 보니, 정신을 잃기 직전 섬광을 본 기억이 있었다. 피카츄를 데리고 다니는 트레이너였던 것 같다.
“이봐, 그… 나를 구해줬다는 사람은?”
“그분이라면 곧장 센터를 나가셨답니다. 아마도 저녁을 드시러 간 것 같은데, 일행이 아니신가요?”
“그렇단 말이지… 아, 내 포켓몬은?”
“포켓몬들도 저희가 맡아뒀어요. 로비에서 언제든 찾아가실 수, 앗, 잠시만요!”
간호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침대에서 빠져나온 실버가 외투를 챙겨서 방을 나섰다. 아직 무리해서 움직이시면 안 돼요! 간호순의 외침이 들려왔으나 실버는 발걸음을 빨리할 뿐이었다.
*
그렇게 현재의 대치 상황. 제노는 센터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실버의 모습에 조금 당황했으나, 이내 아무렇지 않게 다시 걷기 시작했다. 뭐, 나오고 싶으면 나올 수도 있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노려보는 게 꼭 누굴 찾으려고 벼르는 모양새지만 그게 설마 나겠어?
그렇게 자신을 달랬으나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은 것인지, 괜히 옆에 있던 피카츄까지 실버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이제 거의… 제노가 막 실버의 옆을 지나치던 그 순간, 실버의 고개가 제노를 향해 휙 돌아갔다.
“어이.”
“….”
“너지?”
“….”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걷는 이에 실버는 기어이 그의 팔을 잡았다.
“이봐, 너한테 말하고 있는 거야.”
“….”
“피카피…”
붙잡힌 채로 여전히 말이 없는 상대에, 그의 옆에 있던 피카츄가 대신해서 작게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것에 실버는 확신한 듯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얘기 좀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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