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두 갈래 길
158.
[ 내 포푸니가 포푸니라로 진화했어. ] 오후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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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를 걸면 끊어버리고, 뭐 하자는 거야? ] 오후 01:08
[ 답장 좀 해. ] 오후 01:15
[ 아니면 손가락이 부러지기라도 한 거냐??? ] 오후 01:17
[ ㅇ ] 오후 01:17
[ ㅊㅜ;소 ] 오후 01:17
[ 방금 건 취소. ] 오후 01:17
[ 진짜로 다친 건 아니지? ] 오후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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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지금부터 리그에 도전하는가 보군.”
몬스터볼을 강하게 쥔 손을 바라보던 국제경찰, 핸섬이 말했다. 노을이 지는 시간, 소년의 시선이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 계단 위를 향했다. 석영고원. 저곳으로 향하면 사천왕과 싸울 수 있다. 비주기의 행방을 묻기 위해 그 아들을 찾았으나, 아무래도 그는 아버지와는 관련이 없는 삶을 사는 것 같았다.
“만약 아버지의 소식을 알게 된다면, 연락해 주지 않겠나?”
핸섬의 물음에 실버가 답했다.
“글쎄. 나는 이제 아버지에게 상관하지 않겠다고 정했어. 아버지도 그럴 거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 실버가 핸섬을 살짝 돌아보았다.
“그리고 내가 강해져서 붙잡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거든.”
그렇게 말하며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인다. 대화를 마친 실버가 석영고원을, 위를 향했다. 그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핸섬이 문득 생각했다.
… 따라잡고 싶은 사람을 잘못 말한 거겠지?
004.
은빛산의 최정상.
싸라기눈이 내리는 적막한 공간에, 한 남자가 서 있다. 그의 등을 바라보던 심향이 말했다.
“저기! 당신이 레드 씨인가요?”
그가 심향을 돌아본다. 붉은 모자의 챙 아래로 보이는 어두운 눈동자가 심향에게로 향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 무심한 시선에 절로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숨을 들이켠 심향이 외쳤다.
“저, 트레이너 심향이라고 합니다! 레드 씨께 도전하고 싶어요!”
“… ….”
그는 말이 없다. 하지만 몬스터볼을 꺼내는 모습에서 그의 의사를 알 수 있었다. 두근거림에 심향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순간 추위를 잊어버릴 정도의 열기가 솟아오른다. 배틀이 시작되었다.
005.
“번개!”
“…!”
콰르릉, 하늘에서 굵은 빛줄기가 라프라스에게로 내리꽂혔다. 순간 일어난 충격으로 레드의 모자가 허공으로 날아간다. 고통스러워하던 라프라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날카로운 눈으로 전룡을 바라본다.
“온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몇 번째 하는 대결이지만 레드의 포켓몬은 자신의 포켓몬들과 싸우는 방식도, 그 힘도 달랐다. 심향이 팔을 뻗으며 흥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전룡, 비- 에츄아!!!”
… 그건 대체 무슨 기술이야? 일순 멈춘 전룡이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심향을 돌아보았다. 킁, 코를 훌쩍인 심향이 다시 자세를 잡았으나, 한번 시작한 재채기는 멈출 줄을 몰랐다. 그것을 가만 바라보던 레드가 시합을 멈추고 어디론가 걸어갔다.
“앗, 어, 어디 가시는 거예요!”
“….”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자신의 모자를 주워 든 레드가 약간 묻은 눈을 툭툭 털곤 다시 머리에 썼다. 그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아직 레드의 과묵함에 적응하지 못한 심향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레드가 걸어가던 것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
“… 따라오란 건가요?”
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답을 받은 심향이 레드의 곁으로 달려갔다. 푹, 푹, 그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자국이 눈밭 위로 새겨졌다.
006.
“감사합니다!”
심향이 우렁차게 말하며 레드가 건넨 머그잔을 받아들었다. 안에서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후후 불고 조심스럽게 한 모금 삼키자 온몸으로 온기가 퍼졌다.
레드를 따라 도착한 곳은 외딴곳에 위치한 오두막이었다. 이 사람, 그냥 설산에서 머무는 게 아니었구나!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심향이 레드의 안내에 조심스럽게 실내로 발을 들였다.
오두막의 안은 어쩐지 조금 휑한 느낌이 들었으나, 그것이 오히려 레드답다는 느낌을 주었다. 심향에게 담요를 건넨 레드가 주전자에 물을 담고 끓이기 시작했다. 잠시 기다리자 티백이 담긴 머그컵이 건네졌다.
심향이 양손으로 머그컵을 쥐었다. 몸과 함께 긴장 또한 녹아내렸는지, 그가 조잘조잘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레드 씨, 여기서 지내시는 거예요?”
“….”
“그렇구나~”
레드는 심향의 모든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내젓는 것으로 답했지만, 그럭저럭 대화가 이어졌다. 어느새 거의 다 비어가는 잔 안을 바라보던 심향이 물었다.
“이게 몇 번째 시합이죠? 세 번째? 네 번째?”
“….”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보던 레드가 전체를 쫘악 펼쳐 보였다. 엑, 벌써 한 손을 다 채웠단 말이에요?! 갑자기 침울해진 심향의 모습에 레드는 그저 눈만 굴렸다. 심향이 계속해서 말했다.
“레드 씨는 정말 강하시네요. 들은 것보다 훨씬 더요.”
“….”
그 말에 레드가 심향을 빤히 바라보았다. 누구에게서 자신의 얘기를 들은 건지 궁금한 걸까? 제 머리를 긁적인 심향이 답했다.
“아, 사실은 성도지방을 여행하면서 누나, 아니, 레드 씨의 친구분을 만났거든요. 제노라고-”
순간 레드의 표정이 변했다. 놀란 걸까? 아니, 그보다 더한…. 심향이 그 속에 담긴 복잡한 감정들을 읽어내는 사이, 레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어디 있어?”
“어, 어억, 네?”
마, 말했다. 심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레드가 물었다.
“제노, 지금은 어디에 있어?”
007.
“네가 성도의 체육관을 전부 제패했다고?”
하하하! 큰 소리로 웃은 상록체육관의 관장이 입술을 비틀며 말했다. 성도의 레벨은 그 정도밖에 안 되나?
그 도발에 도전자는 미간을 더욱 깊게 찌푸릴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그래, 이런 말로 흔들릴 녀석은 아니란 말이지. 손아귀에서 몬스터볼을 굴린 그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뭐 좋아. 싸워보면 알게 되겠지, 네 실력을 말이야!”
외침과 동시에 두 사람이 볼을 던졌다. 상대의 포켓몬은 풀/에스퍼 타입의 나시. 포푸니라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곧바로 배틀이 시작되었다.
008.
“수고했어, 피죤투.”
그린의 말에 작게 운 피죤투가 볼 안으로 돌아갔다. 체, 작게 혀를 찬 그린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곤 삐딱한 자세로 도전자를 향해 걸어갔다. 붉은 머리의 도전자 역시 불만을 숨기지 않은 얼굴이었다.
“뭐, 배지를 전부 모을 정도의 실력은 된다 이거네.”
그린의 말에 실버가 지금은 볼 안에 들어간 제 포켓몬들의 상태를 떠올렸다. 대부분이 쓰러지거나 겨우 버티고 있는 상태. 챔피언의 자리에 한 번 오른 자라더니, 역시 그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실버가 인상을 찡그리고 그린을, 정확히는 그의 목에 걸린 펜던트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외투를 벗은 제노에게서 본 것과 같은 디자인. 겉면에 긁힌 흔적들이 가득한 걸 보아 상당히 오래된 물건이다.
마찬가지로 그린 또한 실버의 왼쪽 손목에 묶인 손수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 포켓몬인 장크로다일이 보여준, 방어를 포기하고 달려드는 그 집요함…. 그린은 같은 방법으로 싸우는 트레이너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게 무식한 전략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었다.
“할 수 없지. 자, 그린배지다.”
그린이 배지를 내밀었다. 실버가 그것을 받아 가려던 그때, 타악, 내려놓았던 배지를 그가 다시 낚아챘다. 실버의 표정이 순식간에 험악하게 변했다.
009.
요즘 애들은 무시무시하구만. 콧방귀를 뀐 그린이 말했다.
“그전에- 하나만 묻자.”
“… 뭐지?”
“너, 포켓몬 배틀을 누구에게서 배웠지?”
“….”
그린의 눈이 무언갈 꿰뚫어 보듯 날카로워졌다. 지지 않고 시선을 마주하던 실버가 먼저 시선을 돌렸다.
“흥. 내가 그런 걸 왜 알려줘야 하지?”
배지나 내놔. 그린이 방심한 사이 그가 배지를 채어갔다. 미련 없이 떠나는 그 뒤통수에 대고 그린이 외쳤다.
“인정하지. 넌 강한 트레이너야!”
“….”
“하지만 잊지 마라. 언젠가 내가 너를 다시 쓰러트려 주마.”
“….”
실버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린을 한번 흘겨보곤 상록체육관을 떠날 뿐이었다.
시합 이후, 헤어진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향해 같은 평가를 남겼다.
‘뭐야, 저 재수 없는 녀석은.’
‘싸가지없는 놈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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