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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MN/O.C.] 불에서 태어난 요정의 벗

앨빈 케니스에게

* 지인 분의 자캐 앨빈 케니스와 저희집 루벨이 짧게 조우한 이야기

* 가능한 한 인게임 내 정보를 사용하려고 했으나, 일부 멋대로 각색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앨빈 관련 설정은 오너님이 설정오류를 알려주시면 수정될 수 있습니다()

* 시시때때로 수정될 수 있음.


자연을 벗 삼은 호연에서 태어나 트레이너보다는 레인저가 다수인 아르미아에서 청소년 시절을 거쳐 가라르 너클시티의 자경단으로 정착한 이력을 가진 루벨은 제 나름대로 사람이며 포켓몬을 통찰하는 눈이 있는 편이라고 자부한다. 가지각색의 다양한 성격과 배경을 가진 이들을 봐 왔고,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심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켓몬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이들이 많음에 마음이 구해지기를 수 차례. 그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제가 있음을 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분위기가 있기 마련이고 루벨은 때로 그런 직감 하나만으로 거수자를 구분해내기도 했다. 경력이 얼마 없는 신입들은 그런 팀장님이 실은 에스퍼 포켓몬 아니냐고 놀라기도 하는데, 루벨은 그런 때마다 자경단 짬밥 십 년만 먹어도 배우는 기술이라고 우스개를 날려줬다. 단장이나 부단장 몇몇을 가리키면서 말이다. 그 사람들이야말로 가라르 토박이로 커서 오로지 이 일만으로 통찰안을 키운 사람들이라면서.

오늘 로테이션에는 햇병아리들이 없이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녀석들만 들어차 있어(신입들은 연수를 갔다. 돌아오면 빡센 일정이 기다리고 있고) 팀장부터는 단독으로 일하는 날이다. 곁에서 스마트 로토무가 뱅뱅 돌며 오늘 와일드 에리어 날씨 정보가 갱신되었다고 그 내역을 읊어주고 있었다. 제가 담당한 구역은 뇌우거나 쾌청이거나 하며 마구잡이다. 여느 때의 와일드 에리어구나, 하면서 루벨은 순찰 순서에 따라서 볼 홀더의 순번을 조정했다.

“자, 그럼 가보자, 얘들아.”

준비를 마치고 자경단 캠프에서 나서면 몬스터볼 안에서 파트너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렸다.

 


와일드 에리어는 지독하게 광활하다. 북부와 남부는 서식하는 포켓몬에 차이가 있어 주요 업무가 크게 갈리긴 하지만, 어느 쪽이고 넓어서 고생인 점은 똑같다.

‘뭐, 챌린지 기간에는 이런 생각할 틈도 없지만.’

2개월 후면 가라르 지방의 명물, 챌린지 시즌이 돌아온다. 와일드 에리어 관리는 너클시티와 엔진시티에 전임되어 있지만, 그때만큼은 일손이 모자라 포켓몬 협회 가라르 지부의 스태프들도 총출동하기 마련이다. 신입들이 나가 있는 연수와 그 후에 이어질 훈련도 다 그걸 위한 거다. 이러저러한 잡생각을 하면서도 루벨의 시야는 착실히 주변을 살핀다. 야생 포켓몬의 핵심 서식지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개체 수와 상태를 확인하는 게 오늘의 주 업무였다.

그러다가 저기 강 건너, 역린 호수 쪽에서 무언가 눈에 띄었다. 그게 사람이라는 것과 그 사람이 전투 중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루벨은 이미 트레버를 불러내 그 등에 탄 후였다. 무의식과 반사신경의 끝내주는 콜라보는 먼 데의 소리도 잘 잡아내는 음번에게까지 이어져 아무런 지시가 없었음에도 엔트리의 막내는 잽싸게 저 먼 데를 향해 날갯짓을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제 품에서 자란 트레버는 트레이너의 한도를 잘 알았고 루벨이 견딜 수 있는 최대 속력으로 돌진한다. 귓가에 바람 소리가 무섭도록 스치고 풍경은 거의 선이 되는 중에도 소리로 정보가 들어온다. 지금 지나는 거인의 모자는 쾌청이나, 역린 호수 쪽은 뇌우다. 이런 날에는 야생의 액스라이즈가 돌아다니곤 한다. 평소는 온후할지 몰라도 천둥번개가 치는 날 저 애들은 신경질을 부리는 경우가 잦다. 그 와중에 대체로 혈기 넘치는 음번과 마주치거나 하면 백 퍼센트 싸움으로 발전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신경이 날카로운 액스라이즈가 괜히 풀숲에 몸을 누인 할비롱에게 시비라도 거는 날엔 그것도 문제다. 평소 온후한 성질의 드래곤 타입이라도 화가 나면 무섭도록 날뛴다. 거기에 음번이 가세하는 것도 뻔하다. 거기에 트레이너가 낑겼다간, 정말 큰일 나는 거지. 그건 아주 드물지는 않은 사고였다. 연에 한두 번은 일어나는 거라, 루벨은 경험에서 우러나는 도주 루트 몇 개를 머릿속으로만 갈무리했다. 나머지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맞추면 될 일이다. 곧 도착할 거라는 듯, 트레버가 목 안으로 짧게 울었다. 루벨은 막내 녀석의 목덜미를 한 번 쓰다듬었다.

뇌우는 때때로 호수나 섬 위에 내리꽂힌다. 인간보다 월등히 기민한 청력을 가진 트레버는 여유롭게 번개를 피해 가며 역린 호수 위의 섬을 향한다.

그리고 착륙 오 초 전. 루벨은 한 손에는 오웬(대짱이)의 볼을, 다른 손으론 니아(라프라스)의 볼을 든 채 속으로 카운트를 쟀다. 대짱이의 방어로 누구의 것이건 공격을 한 번 무효화하고 라프라스의 냉동빔으로 견제 후 빠져나갈 작정이다. 그렇지만,

“액스라이즈, 와이드 브레이커! 한카리아스는 이 틈에 칼춤!”

액스라이즈 셋과 액스라이즈가 대치하고 있다. 섬 안쪽에 있는 세 마리가 야생 개체고 다른 쪽은 여기 있는 트레이너의 엔트리일 것이다. 저만치서 음번 둘이 바닥에 막 처박힌 듯 고개를 푸르르 떨곤 다시 솟구쳤다. 아마도 저 애를 내리쳤을 한카리아스는 트레이너의 지시에 따라 액스라이즈와 자리를 바꾸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다섯 마리의 드래곤 타입 포켓몬을 상대하는 트레이너는 곁에 등을 맞대고 선 루카리오와 함께 한카리아스가 칼춤으로 잠시 빈틈이 생긴 찰나를 훌륭하게 커버했다. 트레이너가 큰 소리로 음번의 주의를 끌고 덮쳐 들어올 때 루카리오가 코멧 펀치로 기세를 줄이면서 서로가 어그로를 주거니 받거니 한다. 그러면 이제 준비가 된 한카리아스가 그 사이를 가르듯 들어와 음번을 또 날려 보내는 거다. 동시에 트레이너가 뭔가 지시를 내리고, 야생의 액스라이즈와 힘겨루기하던 트레이너의 액스라이즈가 몸을 물린다. 그러면 야생의 액스라이즈가 제 힘을 이기지 못하고 휘청하고, 그 찰나 한카리아스가 액스라이즈의 자리를 대신한다. 넷의 동작은, 특히 그것을 자아내는 트레이너의 모든 몸짓은 춤을 추는 것마냥 자유롭고 화려하다. 캠프파이어에서 피워둔 불길이 장작을 타닥타닥 태워 오르며 하늘거리듯이, 그 주위를 신명나게 돌고 떠들며 환호하는 요정들의 잔치처럼.

루벨의 첫 감상은 “꽤 하잖아, 저 트레이너.”였다. 상황만 아녔으면 휘파람이라도 불며 박수갈채를 날렸을 거다. 야생 포켓몬과의 전투는 일반적인 포켓몬 배틀과는 궤가 다르다. 주고받는 합이랄 게 없고 의외성이 유독 짙기 마련이다. 필드를 과격하게 부숴가며 싸우는 가라르 특유의 호전적인 전투방식 덕에 가라르인이 난전에 익숙하다곤 해도, 야생 포켓몬을 다루는 데에 익숙하지 않으면 금방 머릿속이 하얗게 질린다. 왜, 제 조카도 상당한 실력의 트레이너지만 성난 야생 포켓몬에게 습격당했을 땐 꽤 허둥거려 자기 실력의 반도 채 못 내지 않았나. 그러니 저희 같은 구조 전문 자경단원이 있는 거다(물론 루벨 자신은 레인저로서의 경력이 있어 그렇지만).

그러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침착하게 전략전술을 짜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범상한 사람은 아니다. 어쩌면 험한 일을 했을 수도 있고, 그건 극과 극으로 선택지를 가른다. 밀렵꾼이거나, 경찰 같은 것이거나. 뭐, 어느 쪽이라도 북쪽의 와일드 에리어를 책임지는 자경단 사람으로선 어쨌든 구출하는 게 우선이다. 비록 저 사람이 잘 버티긴 하지만, 드래곤 타입은 드래곤 타입에게 강하면서 약하니까.

트레버가 더는 지체할 수 없다며 삐익 작게 울어서 루벨은 그제서야 지면이 가까움을 깨닫고(드물게 넋을 뺏겼다) 바로 행동강령을 바꾸었다. 니아의 볼은 호수 면으로 던진 그는 오웬을 불러내는 대신 트레버의 날갯죽지를 툭 밀고서 타는 듯한 눈동자를 가진 트레이너에게 손을 내밀며 외쳤다.

“니아, 냉동빔! 트레버는 열풍으로 다 밀어내! 트레이너 씨, 이쪽!”

“어어?―액스라이즈, 돌아와! 한카리아스는 지진!”

“앨빈, 너부터 올라가!”

“악, 형! 때리지 마!”

한참 전부터 준비 중이었던 니아는 호수에 풍덩 들어서기가 무섭게 몸을 크게 휘둘러가며 냉동빔을 날렸다. 야생 액스라이즈와 음번, 그리고 트레이너 쪽 포켓몬들 사이를 얼음조각이 갈라 내고, 그 틈을 멈칫하는 사이 트레버가 크게 날갯짓하며 열풍을 쏘았다. 어차피 반감될 대미지는 오로지 그들을 멀리 밀어낼 목적이라, 트레버는 위력보다는 범위와 세기에 신경을 쓴다. 동시에, 타는 듯한 주홍색 머리칼을 가진 그 트레이너는 제가 뻗은 손의 의미를 정확하게 깨닫고 본인의 액스라이즈를 귀환시키고 한카리아스에겐 지진을 지시했다. 센스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이라, 루벨은 씨익 웃었다.

땅이 뒤흔들리기 직전에 그의 옆에 있던 루카리오가 사람 말을 하며(당장은 놀라지 않는다. 그야, 세상엔 별별 포켓몬이 있기 마련이고) 트레이너 그러니까 앨빈을 걷어차듯 올려보내고 본인도 트레버의 등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인사보다도 먼저 루벨도 앨빈이라는 트레이너도 지상에 남겨진 본인들의 파트너를 회수했다.

정원 초과나 다름이 없어 트레버를 오래 날게 하지는 않았다. 야생 포켓몬은 어쨌거나 영역을 벗어나는 자를 끈질기게 쫓지 않으니, 강만 건너면 됐다. 겨우 땅에 내리고서 루벨은 고생한 막내를 마구 쓰다듬으며 칭찬하고 포록을 건넸다. 삐익, 하고 즐거운 목소리를 낸 트레버가 와작와작 포록을 먹자, 루벨은 등 뒤에서 계속 느꼈던 시선을 향해서 몸을 돌렸다. 제가 포켓몬을 돌보는 걸 기다리고 있었겠지. 좋은 트레이너다. 포켓몬을 정말 아끼는 사람이기에 다른 트레이너의 포켓몬을 위하고 기다려주는 거다.

“많이 기다리셨죠?”

“아뇨, 저 친구가 제일 고생했으니 이 정도는 기다려야죠. 아, 인사가 늦었죠. 저는 앨빈, 앨빈 케니스라고 해요.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는 안 다치고 빠져나올 자신은 없었거든요.”

“앨빈, 너 아까는!―후, 하여튼 이따가 봐. 선생님 아녔으면 동생 녀석이 무리할 뻔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혀엉….”

“이런 때만 어린 척이지.”

아까는 보석처럼 쨍쨍하게 빛나던 붉은 눈이 여기서는 다정한 빛으로 생글생글하다. 붙임성 있게 이어진 말이며 조금 허술해 보일 정도인 미소가 이어졌으나, 루벨은 이 사람은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트레이너라고 다시금 확신했다. 그야, 저런 상황에서 구조된 사람들은 혼비백산해서 감사 인사는커녕 말 한마디 제대로 못 떼기 마련이니까.

와중에 아직도 몬스터볼에 들어가지 않은 루카리오가 앨빈의 허벅지 께를 짝 소리 나게 때렸다가 숨을 들이켜고는 이쪽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 앨빈이라는 트레이너와 호형호제하는 것으로 보아 가족으로 자란 사이겠거니 한다. 허물없이 구는 이종의 형제를 괜히 흐뭇하게 보는데, 그 둘이서 갑자기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허둥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루카리오 쪽이 입을 꾹 닫고 손짓, 발짓으로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까. 이미 볼 거 다 봤는데도.

“후후.”

“아니, 어, 그 안 놀라세요?”

“놀랄 게 뭐 있어요. 포켓몬과 사람 사이는 가지각색인걸요. 그중에 가족이 있을 수 있지 않겠어요? 근데, 두 분 놀랄 때 표정이 진짜 똑같은 거, 아세요? 누가 봐도 형제예요.”

제 말에 앨빈과 그의 형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가 다시금 서로 얼굴을 일별했다. 깜빡깜빡. 눈꺼풀이 감겼다 뜨이는 타이밍까지 똑같다. 사나운 불길처럼 싸우던 둘이서 지금은 화롯불처럼 자그맣고 온화해서 루벨은 기어코 킥킥 웃었다.

“제 소개가 늦었네요. 너클시티 자경단 팀장 중 한 명인 루벨입니다. 혹시 너클 시티에 가는 길이었을까요? 어쩌다가 역린 호수에 잘못 들어서는 사람이 있거든요.”

“아뇨. 지인 하나 만나러 왔는데 시간이 좀 남아서 적당히 돌아다녔던 거라, 그렇구나. 제가 도중에 방향을 틀리게 잡았나 보네요.”

“하긴, 아까 거인의 모자는 모래폭풍이었죠.”

“여기부터는 아는 길이라 괜찮습니다.”

언외에 이제 갈 길 가셔도 된다는 축객령을 감지한 루벨은 이 사람이면 문제없겠다고 판단하고 떠날 채비를 했다. 그렇지만 그 전에,

“직업이 뭐인지 여쭤봐도 되나요, 앨빈 씨?”

“저요? 경찰입니다. …지금은 휴가 중이니까, 일단 민간인이겠지만.”

“아하, 밀렵꾼이 아니어서 다행이네요. 안 그럼 바로 구치소에 넣어야 했는데.”

“하하…. 농담을 살벌하게 하시네요.”

“농담으로 들리셨을까? 후후, 그러면 안전한 여행 되세요.”

“어어, 감사합, 니다?”

어리둥절한 목소리를 뒤로 하고 손만 팔랑팔랑 흔들어준 루벨은 나머지 순찰 구역을 향했다.

 


나중에 루벨은 드라고에게 물어보았더랬다. 앨빈 케니스는 무언가 뜻이 있는 이름이냐고. 하늘의 별보다는 시간의 깊은 지층을 즐기는 조카 아이는 무언가를 잠시 생각하더니 무얼 찾아보고선 답해주었다.

불에서 태어난 요정의 벗.

그걸 들은 루벨은 유쾌하게 웃었다. 과연, 그래서 그 사람은 그토록 불길과 같이 춤추었던 거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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