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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한 갈래 길

순식간에 시합이 재개되었다.

“장크로다일, 신뇽에게 붙어!”

“그렇게 둘 순 없지! 신뇽, 전기자석파!”

물 타입인 장크로다일에겐 효과가 좋은 전기 공격. 허나 내리장크로다일이 내리꽂히는 전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뇽을 향해 달려들었다.

“폭포오르기!”

훈련의 성과를 보여줄 때였다. 세찬 물살과 함께 장크로다일이 돌진했다. 거센 기세에 밀쳐 올려진 신뇽이 허공에서 고통스러워했다. 5분의 1의 확률로 일어난 현상에 제노가 관중석에서 일어났다. 저건…!

“풀죽음 상태다…!”

“신뇽, 탈피로 벗어나!”

예상대로 신뇽은 특성인 탈피를 사용해 상태 이상을 회복하려 했다. 이 또한 실버의 예측에 있었는지, 실버가 계속해서 지시를 내렸다.

“지금이야, 얼음엄니!”

굉장한 스피드로 신뇽을 따라잡은 장크로다일이 냉기를 품은 이빨로 신뇽의 목을 물었다. 장크로다일의 무시무시한 턱 힘은 도감에도 적혀있는바. 날카로운 이빨에 물린 신뇽이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쳤다.

“신뇽, 그대로 용의 분노야!”

“놓치지 마!”

두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몸을 뒤틀며 괴로워하던 신뇽이 기운을 모으자 목에 있는 수정에서 빛이 났다. 근거리에서 충격파를 맞은 장크로다일이 고통스러워했으나, 실버의 말에 따라 더욱 턱에 힘을 줄 뿐이었다. 뒤엉킨 포켓몬 두 마리가 이리저리 부딪히며 필드에 물살이 거세게 일었다.

엎치락, 뒤치락, 마치 한편의 레슬링 경기를 보는 것 같았다. 보다 못한 이향이 외쳤다.

“아이언테일로 녀석을 떨어트려!”

신뇽의 꼬리가 일순 빛나더니, 거센 파열음과 함께 장크로다일이 떨어져 나갔다. 촤아악, 물살을 가르며 두 마리 포켓몬이 각자 필드의 끝과 끝으로 밀려났다.

장크로다일이 첨벙거리며 두 발로 일어섰다. 목에 상처를 입은 채 힘겹게 버티던 신뇽은 결국 쓰러졌다. 그 모습을 확인한 장크로다일도 다시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실버가 씁쓸함을 숨기지 못한 표정으로 장크로다일을 볼에 돌려보냈다.

“신뇽, 장크로다일, 더블 다운! 이로써 승부는 2대2!”

“킹드라!”

“마지막은 너다.”

두 명 모두 남은 포켓몬은 하나. 이향은 예정된 대로 킹드라를 꺼냈다. 역시 상성에서 유리한 코일이 아닐까, 하고 제노가 생각하던 그때, 실버가 내보낸 것은 포푸니였다.

그러고 보니 포푸니가 있었지. 물/드래곤 타입인 킹드라에게 포푸니의 얼음 타입 공격 또한 상성에서 우위. 하지만 포푸니는 실버의 다른 포켓몬들에 비해 배틀 경험이 부족했다. 과연 상성만으로 그 차이를 메꿀 수 있을까. 제노가 가늠하는 사이 이향이 외쳤다.

“킹드라, 하이드로펌프!”

“포푸니, 피하면서 최대 출력으로 얼어붙은바람!”

차가운 냉기가 필드 전체를 감쌌다. 가까스로 얼어붙은바람을 피한 킹드라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변은 그때 일어났다.

“경기장이…!”

물로 가득 찼던 필드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지느러미 아래로 헤엄칠 공간이 사라지자 킹드라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당황했다.

제노는 그제야 깨달았다. 실버의 왼손에 있던 상처는 찰과상이 아니라 약한 동상이었다. 어제 제노를 보내고 난 뒤, 포푸니와 호수에서 이걸 연습했던 거다.

얼음샛길에서 혼자 신이 났던 녀석답게, 포푸니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미끄러운 필드에서도 멀쩡히 서 있었다. 이향이 소리쳤다.

“킹드라, 공격만이 살길이야! 파괴광선!”

“포푸니!”

실버의 부름에 높은 울음소리로 답한 포푸니가 파괴광선을 피해 그 궤적의 아래로 파고들었다.

얼어붙은바람의 영향으로 확연히 속도가 떨어진 킹드라의 뒤로 순식간에 미끄러져 간 포푸니가 손톱을 번뜩였다. 속여때리기. 제대로 명중한 공격에 킹드라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가 얼음 위로 떨어졌다.

“포푸니, 기세를 몰아서 연속자르기야!”

“킹드라, 용의파동!”

이향이 포푸니와의 거리를 벌리기 위해 공격을 명령했지만, 킹드라는 파괴광선의 영향으로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포푸니의 손톱의 궤적이 빛을 내며 번쩍이고, 마치 검객 영화의 한 장면처럼 포푸니의 모습이 잔상을 남기며 킹드라를 스친다.

모두가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두 포켓몬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킹드라가 쓰러졌다.

“키, 킹드라 시합 불가능! 따라서 승리자는 챌린저 실버 선수!”

심판의 판정이 내려지자 그제야 포푸니가 자세를 풀었다. 얼어붙은바람으로 경기장 전체를 얼린 것이 몸에 부담이 많이 갔는지, 잠시 휘청인 포푸니가 곧장 실버를 향해 달려갔다. 첫 공식 경기에서의 훌륭한 승리였다. 어정쩡하게 그것을 받아낸 실버가 포푸니를 볼로 돌려보냈다.

어느새 제노가 관중석에서 내려와 경기장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후드는 젖힌 채 모자만 쓰고 있는 모습. 그를 발견한 실버의 얼굴이 마지막 배지를 획득한 순수한 기쁨이 담긴 표정에서 순식간에 새초롬하게 변했다. 참 한결같은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제노가 입을 열었다.

“대단한데. 경기장을 얼려버릴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

“당신이 그랬잖아. 똑같이 필드의 조건을 바꾸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노가 잠시 기억을 되짚었다. 그러고 보니 담청시티에서 규리의 시합을 보며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았다.

“그렇다고 자기 손까지 그렇게 만드는 트레이너가 어딨어.”

제노가 가볍게 타박하자, 실버가 별거 아니라며 고개를 돌렸다. 웬일로 두 사람이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을 때, 이향과 눈이 마주쳤다. 제노를 본 이향의 눈이 동그래졌다가, 실버를 번갈아 보았다가, 이내 세모꼴로 변했다. 그의 얼굴이 노기로 가득 찼다.

“난 인정 못 해! 아니, 안 해!!”

큰 소리가 체육관 전체를 울렸다. 이제 배지를 받아 갈 생각을 하고 있던 실버가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이향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소리쳤다.

“너, 그때 그 피카츄를 사용했던 트레이너지?! 그런 놈과 한패라니…! 너에게 배지를 줄 순 없어!”

자칭 세계 제일의 드래곤 조련사로서 배지 하나 없는 트레이너의 피카츄에게 세 마리 모두 당했던 것이 어지간히 분했나 보다.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제노가 당황하는 사이, 이향이 앙칼지게 등을 돌렸다. 움직임에 따라 망토가 펄럭이고, 그가 말했다.

“그렇지. 용의 굴이라고 불리는 장소가 있어. 그곳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는다면 나도 네가 체육관 배지를 받기에 걸맞은 트레이너라고 인정해 주지!”

그리곤 혼자 체육관에서 떠나갔다. 불안해하는 심판과, 떨리는 실버와, 그걸 지켜보는 제노. 그렇게 세 사람만이 덩그러니 체육관에 남게 되었다.

참고로 실버는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제노는 곧 폭발하기 직전의 붐볼을 보는 심정이 되었다. … 제발 나의 특성이 습기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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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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