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샛길 하나
전진의 취향에 맞게 개조된 넓은 체육관 안. 관중석에는 단 한 명, 대엽이 앉아 있었다.
“… 후우. 나는 체육관 관장 전진. 신오 제일의 체육관 관장이라고도 불리지만… 뭐, 딱히 상관없어.”
“제노입니다.”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기계 음성이 울리고, 두 사람이 동시에 포켓몬을 꺼냈다. 전진은 쥬피썬더, 제노는 이상해꽃이었다.
“전기 타입 공격이 반감인 풀 타입인가. 아가씨, 선택이 좋은데?”
“….”
사실 내보낼 애가 없어서 꺼낸 거다. 아직 진화하지 않은 이브이와 물 타입인 샤미드를 제외하면 현재 제노가 사용할 수 있는 포켓몬은 딱 네 마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입장에서 가장 무난한 이상해꽃을 내보냈다.
“쥬피썬더, 빠르게 가자. 차지빔!”
“막아.”
파앙! 쥬피썬더가 내보낸 전격이 방패처럼 이상해꽃을 둘러싼 덩굴에 막혔다. 하지만 애초에 강하게 먹혀들 공격이 아닌 것을 예상했는지, 전진의 지시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전광석화로 다가가! 그리고 아이언테일!”
잔상을 남기며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쥬피썬더. 확실히 이상해꽃은 속도에서 뒤처진다.
“위쪽이야, 잡아!”
하지만 아무리 빠르더라도 공격이 닿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다. 제노의 외침에 따라 머리를 노리고 달려든 쥬피썬더를 이상해꽃의 덩굴이 잡아챘다.
“말도 안 돼, 쥬피썬더의 아이언테일을 이렇게 간단히…?!”
“날려버려.”
콰앙- 덩굴이 쥬피썬더를 필드로 강하게 내던졌다. 쥬피썬더가 구른 궤적을 따라 바닥에서 먼지가 일었다. 쥬피썬더가 다시 일어서기 전, 공격이 이어졌다.
“틈을 주지 마. 씨뿌리기.”
“고속이동으로 피해!”
필드의 곳곳에 퍼진 씨앗이 순식간에 굵은 줄기가 되어 쥬피썬더를 향해 뻗어나갔다. 쥬피썬더가 잽싸게 발을 이리저리 놀렸지만, 집요하게 쫓아오는 공격에 결국 필드의 끝에 몰려 붙잡히고 말았다.
힘은 물론 기술의 컨트롤 또한 엄청나다. 전진과 대엽이 놀라는 사이 쥬피썬더를 단단히 묶은 줄기가 에너지를 흡수해 이상해꽃의 체력을 회복시켰다. 쥬피썬더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쥬피썬더! 방전으로 끊어버려!”
전진의 외침에 쥬피썬더가 커다란 기합과 함께 온몸으로 전기를 방출해 냈다. 투둑, 투둑, 그 엄청난 힘에 굵은 나무줄기가 끊어지기 시작했다. 쥬피썬더가 완전히 해방되었을 때, 제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끝을 내.”
그리고 쏟아지는 빛의 다발. 씨뿌리기에 붙잡혀 시간을 너무 내어준 쥬피썬더가 솔라빔에 정통으로 맞고 필드를 둘러싼 벽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쿵,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쥬피썬더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쥬피썬더 시합 불가능. 이상해꽃의 승리.”
무감정한 기계 심판의 판정이 내려지고, 전진이 쥬피썬더를 볼로 돌려보냈다.
“씨뿌리기에서 솔라빔으로 이어지는 흐름… 굉장한걸.”
“….”
“오랜만의 배틀, 제법 할만해지기 시작했어.”
전진이 웃었다. 그가 다음 몬스터볼을 꺼내 들었다.
“가라, 렌트라!”
포효와 함께 나타난 포켓몬이 늠름한 자세로 필드 위에 섰다.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으르렁거린다. 그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저건 위협- 아니, 투쟁심인가. 제노의 이상해꽃은 수컷. 전진의 렌트라도 마찬가지겠지. 이쪽의 공격을 떨구는 위협보다는 낫지만, 역시 귀찮은 특성이라 생각하며 제노가 팔을 뻗었다.
“잡아.”
“같은 수법에 또 당하진 않는다고! 가라, 렌트라!”
이상해꽃에게 달려드는 렌트라의 모습이 순간 여러 개로 늘어난다. 제노가 침착하게 지시했다.
“덩굴로 분신을 모조리 없애버려.”
후웅- 공기를 매섭게 가르며 횡으로 길게 휘둘러진 덩굴이 분신을 모조리 흐트러트렸다. 하지만 그 가운데 진짜 렌트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렌트라의 모습을 이상해꽃의 사각에서 잡아낸 제노가 외쳤다.
“뒤야, 막아!”
“얼음엄니!”
카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이상해꽃이 조금 밀려난다. 순간 뒤로 돌며 빛의장막을 펼쳤지만 데미지를 경감시켰다 해도 치명적인 기술. 이빨에 스친 이상해꽃의 몸에 살얼음이 끼었다.
“이상해꽃, 괜찮아?”
가볍게 몸을 털어 얼음을 떼어낸 이상해꽃이 이 정돈 별거 아니라는 듯 푸릉, 콧김을 내뿜었다. 다행히 얼음 상태에 걸리진 않은 모양이다. 그 의젓한 모습에 제노가 살짝 웃었다. 역시 우리 파티의 탱커이자 큰어른. 무척이나 든든했다.
“계속해서 지진!”
이상해꽃이 앞발을 구르자 커다란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렸다. 렌트라가 높게 뛰어올라 그 충격을 피했다.
“렌트라, 다시 얼음엄니로 마무리야!”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마!”
다가오는 렌트라의 모습에 제노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자 갈라진 필드의 틈 사이로 나무줄기가 세차게 솟아올랐다.
“이런! 그대로 깨부숴!”
지진을 일으키면서 별다른 지시 없이 사용한 씨뿌리기가 효과를 보였다. 이상해꽃에서 나무줄기로 목표를 바꾼 렌트라가 기술을 쳐내기에 급급했다. 전진이 외쳤다.
“렌트라, 붙잡히기 전에 전력으로 부딪히는 거야!”
“막아!”
그 말에 눈을 번뜩인 렌트라가 울부짖으며 어마어마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콰앙! 충격으로 일어난 먼지 사이로 전격이 조금씩 튀었다.
잠시 기다리자 먼지가 가라앉고 드러난 것은, 쓰러진 레트라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공격했으니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수고했어. 전진이 렌트라를 볼로 돌려보냈다.
푸르르, 고개를 흔들며 남아있는 정전기를 털어낸 이상해꽃이 조금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깨져버린 빛의 장막을 보아하니 제법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이상해꽃의 상태를 확인한 제노가 정면을 바라보자, 이상해꽃 또한 다시 시합에 집중했다.
“괜찮겠어? 도전자의 교체는 자유라고?”
“괜찮아요. 아직 이상해꽃이 해줄 일이 남았으니까요.”
대엽의 질문에 제노가 가볍게 답했다. 차가운 줄만 알았는데 은근히 터프한 구석이 있잖아. 대엽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에레키블!”
“이상해꽃, 부탁할게!”
재개된 시합. 이상해꽃은 곧바로 빛의장막을 펼쳤다. 다음에 효과를 이어받을 포켓몬을 위하겠다는 건가. 제노의 생각을 읽은 전진이 팔을 뻗으며 외쳤다.
“마무리야, 불꽃펀치!”
콰앙- 불꽃이 둘러진 주먹이 명중하고, 비틀거리던 이상해꽃이 쓰러졌다. 정말 고마워. 제노가 볼로 이상해꽃을 돌려보내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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