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
유료

38화

샛길 하나

회상을 마친 대엽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전진은 끝까지 제노를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게 도우려 했으나, 끈질기게 달라붙는 대엽에 어쩔 수 없이 그의 마지막 행적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천관산이라니, 그런 데에 뭐 재밌는 게 있다고.

“하아, 우리 아가씨, 어째서 안 오는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당신이 싫어서입니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배틀을 신청한 걸까?”

“아니, 그냥 당신이 싫어서예요.”

대엽과 오엽이 번갈아 가며 말했다. 사천왕끼리 서로를 무시하고 각자 할 말만 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난천 또한 자신의 생각에 빠져있었다.

“애초에 여잡니까, 그 사람?”

“그럼! 게다가 엄청난 미인이라고?”

아직 얼굴은 못 봤지만. 대엽이 흐하하 웃으며 하는 말에 오엽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다물었다.

“… 천관산이란 말이지.”

난천이 제 턱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신오신화 속 전설의 장소.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표정에 오엽의 얼굴이 애매한 빛을 띠었다.

“설마 직접 가볼 생각은 아니죠?”

“후후, 마침 조사도 끝났겠다, 시간도 남는데 괜찮지 않겠어?”

그 말을 끝으로 난천은 다시 자리를 떠났다. 방을 나서는 난천의 뒤에 대고 국화가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젊음이란 건 좋구나.”

*

다시 현재, 천관산. 흐린 하늘에선 조금씩 싸라기눈이 내리고 있었다. 고요를 가르고 난천이 외쳤다.

“나 역시 당신과 같은 트레이너야. 당신에게 도전하고 싶어!”

난천이 몬스터볼을 하나 꺼내 들었다. 후드를 뒤집어쓴 이가 그제야 난천을 완전히 돌아보았다.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그 또한 품에서 몬스터볼을 꺼내는 모습에 난천이 설핏 웃었다. 역시,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구나. 난천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상대, 제노는 난천의 외침에 속으로 당황했다. 이 사람이 뭐라는 거야. 애초에 당신은 그냥 트레이너도 아니고 챔피언이잖아.

하지만 마침 난천과 어떻게 접점을 만들면 좋을지 고민 중이던 참이었다. 리그에 도전해서 챔피언인 그와 마주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차라리 잘됐다. 지금의 엔트리를 생각하면 승부는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었으나, 지더라도 일단 그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기로 했다.

이놈의 세상은 뭔, 눈이 마주치면 배틀이라니. 눈을 감고 다니든가 해야지.

*

어느덧 배틀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난천이 마지막 몬스터볼을 꺼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밀리다니, 얼마 만일까!”

볼에서 나온 것은 그의 에이스 포켓몬, 한카리아스. 듣는 것만으로도 오금을 저리게 하는 용맹한 울음소리가 창기둥에 울려 퍼졌다.

반면 상대의 남은 포켓몬은 두 마리. 자, 너는 어떤 포켓몬을 보여줄 거지? 고민하던 상대가 볼 하나를 집어 든다. 안에서 나온 것은…

높고 청아한 울음소리, 꼬리와 귀에 크게 돋아난 지느러미. 샤미드였다.

단일 물 타입 포켓몬인 샤미드는 드래곤/땅 타입인 한카리아스에겐 상성에서 우위. 하지만 난천은 그것만으로 질 트레이너가 아니었다. 그가 오른팔을 뻗으며 외쳤다.

“한카리아스, 깨트리기!”

한카리아스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 접근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샤미드가 높게 울자 순식간에 솟아난 탁한 물이 회오리처럼 주위를 감쌌다. 한카리아스가 거센 물살에 휩쓸렸다.

“높게 뛰어올라서 드래곤다이브!”

촤악, 물살을 가르고 허공에 높이 뜬 한카리아스의 몸이 굉장한 살기를 두르고 샤미드에게 내려꽂혔다. 콰앙! 굉장한 파열음과 함께 샤미드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밀려났다. 동시에 탁류 또한 멈췄다. 허나 샤미드는 금세 원래의 페이스를 되찾았다.

“녹기를 사용했구나. 그렇지?”

“….”

역시나 챔피언, 분석이 빨랐다. 샤미드의 높은 체력에 비해 약한 방어력을 보강하기 위해 지시한 녹기. 다른 기술로 시간을 번 사이 사용하게 가르쳤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틈을 줄 수야 없지, 한카리아스, 밀어붙여!”

한카리아스가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탁류를 맞은 상태에서 명중률 75%인 드래곤다이브를 성공시키다니,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마침 내리는 싸라기눈. 그렇다면 이쪽도 필중인 기술을 사용해 주마.

“샤미드, 눈보라.”

샤미드가 몸에 기운을 모았다. 바람이 한층 거세어지며 기온이 삽시간에 내려가더니, 칼날과도 같은 얼음이 한카리아스에게 내려꽂혔다. 단단한 발톱으로 그것을 쳐내던 한카리아스가 결국 방어에 실패하고 뒤로 밀려났다. 날갯죽지에 살얼음이 일기 시작했다.

“아직 멀었어!”

난천의 외침에 응하듯 한카리아스가 크게 포효하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차가운 얼음을 녹여낼 듯 온몸에 열기가 끓어올랐다. 난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슴이 벅차는 이 기분,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기 전의 어린 시절 강자를 마주했을 때 느꼈던 이 고양감! 난천은 이렇게나 즐거운 승부를 간단하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그래, 적어도 그의 마지막 포켓몬을 끌어내고 싶었다. 네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껴둔 에이스 포켓몬은 누굴까.

“한카리아스, 드래곤클로!”

“다시 한번 눈보라.”

한카리아스의 발톱이 불꽃 같은 기운을 두르고 빛났다. 강한 바람마저 베어가른 한카리아스가 매서운 속도로 샤미드에게 달려들었다.

“전력을 다해서 기가임팩트!”

한카리아스가 난천의 지시에 따라 덤벼든다. 기술이 눈보라를 뚫고 다가오는데도 샤미드는 움직이지 않았다. 제노의 지시 때문이었다. 기다려. 조금만, 조금만 더-

“지금이야.”

한카리아스의 몸이 코앞으로 다가온 순간, 샤미드가 모아두었던 기운을 근거리에서 쏘아냈다.

이미 데미지를 입은 한카리아스에겐 치명적인 기술, 소금물이었다.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제하시면 보관함에 소장 가능합니다.

카테고리
#2차창작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