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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두 갈래 길

“가디안, 너도 돌아와.”

크게 다친 건 아니었으나 연이은 사이코키네시스의 사용으로 체력 소모가 컸기에 잠시라도 쉬게 하고 싶었다. 제노가 다른 몬스터볼을 집어 들고, 세 사람이 동시에 볼을 던졌다.

“부탁한다!”

윤진의 몬스터볼에서 튀어나온 것은 로파파. 덩실덩실, 로파파가 리듬에 맞춰 흥겹게 발을 굴렸다. 물/풀 타입 포켓몬, 거기에 특성까지 더해지면 꽤나 까다로운 상대였다. 왜냐하면-

쿵. 묵직한 것이 필드에 자리 잡는 소리가 들렸다. 한바이트가 답지 않게 조용히 필드 반대편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성호의 포켓몬, 보스로라가 마찬가지로 매서운 눈빛을 쏘아 보냈다.

꽤 차이가 나는 덩치에도 한바이트는 겁먹지 않았다. 두 포켓몬이 조용히 상대를 탐색한다. 침묵 속에 커다란 꼬리가 퉁, 퉁, 바닥을 때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대형 포켓몬을 키우는 트레이너들만이 아는 긴장감. 그리고 배틀의 재개를 알리듯, 성호와 제노가 동시에 외쳤다.

“가라!”

“한바이트, 드래곤클로!”

쿠어어어!! 고막을 찢을 듯한 기합을 내지르며 두 포켓몬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강한 기운이 둘러진 발톱이 맞부딪히며 엄청난 파열음이 났다.

그리고 힘 싸움에서 진 것은 한바이트였다. 한바이트가 뒤로 밀려나며 발톱이 긁은 자리를 따라 먼지가 일었다.

“파도타기!”

“포푸니라, 막아!”

로파파가 일으킨 커다란 파도가 한바이트를 집어삼키기 위해 밀려왔다. 한바이트가 뒤로 빠르게 도약하자, 대신 앞으로 나선 포푸니라가 냉기로 다시 그것을 얼려버렸다.

조금 전도 그렇고, 저만한 물의 움직임을 막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포푸니라의 체력이 걱정되었다. 제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그 얼어붙은 파도를 깨부수고 보스로라가 돌진해 왔다. 포푸니라와 한바이트가 좌우로 갈라지며 그것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콰앙-! 목표를 잃은 보스로라가 벽에 부딪히며 듣기만 해도 섬찟한 굉음이 났다. 그러나 보스로라는 아무런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는 듯 벽에 박힌 뿔을 빼내고 다시 상대를 바라볼 뿐이었다. 후드득, 그 움직임에 따라 벽의 조각이 떨어지며 작은 소리가 났다.

저 보스로라, 특성이 돌머리인가? 제노가 그것을 가늠하던 때, 윤진이 오른손의 검지를 올리며 말했다.

“비바라기.”

체육관의 천장에 먹구름이 뭉치며 순식간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귓가를 채우는 빗줄기가 만들어낸 소음. 필드에 다시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고, 발목을 잠그는 물살을 가르며 로파파가 더욱 빠르게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로파파의 특성은 쓱쓱인가 보군. 한바이트, 침착하게 가자. 제노의 그 말에 한바이트가 제 손톱을 서로 부딪치며 날카롭게 만들었다.

눈짓으로 실버에게 신호를 보낸 제노가 실버와 외쳤다.

“지진!”

“포푸니라!”

한바이트가 발을 크게 구르자 그곳에서부터 시작된 진동이 필드 전체를 뒤흔들었다. 상대의 포켓몬들이 균형이 잃은 틈을 타 높게 뛰어오른 포푸니라가 손톱을 번뜩이며 로파파에게 달려들었다.

풀 타입에겐 효과적인 연속자르기. 그러나 로파파가 빠른 속도로 그것을 가볍게 피해버린다.

포푸니라의 공격과 로파파의 회피가 이어지는 사이, 보스로라가 한바이트에게 달려들었다. 거대한 덩치에 밀려나던 한바이트가 발톱에 힘을 주곤 멈춰 섰다.

버텨냈나 싶던 순간, 보스로라가 빙글 회전하며 꼬리를 휘둘렀다. 꽤나 묵직한 아이언테일. 한바이트가 드래곤클로로 그것을 겨우 맞받아친다.

그와 동시에 로파파의 반격에 밀려난 포푸니라가 한바이트의 곁까지 튕겨져왔다. 숨을 몰아쉬는 게 많이 지쳐 보였다. 그러나 상대의 공격은 쉬지 않고 몰아쳤다.

“스톤에지!”

성호의 지시에 뾰족한 바위들이 허공에 둥실, 떠오른다. 그것들은 곧장 포푸니라에게로 향했다. 마찬가지로 제노가 지시했다.

“드래곤다이브야!”

포푸니라의 앞을 막아선 한바이트가 온몸에 기운을 끌어올렸다. 날아드는 바위들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굉장한 살기를 두르고 그대로 달려 나간다. 마찬가지로 보스로라가 로파파의 앞을 막아서며 한바이트의 공격을 받아낸다.

두 포켓몬이 힘을 겨루며 내뱉는 기합이 공간을 울렸다. 기술의 위력으로 평행을 유지하고 있지만, 한바이트의 체력이 먼저 다할 것이 뻔했다. 제노가 외쳤다.

“몸을 낮추고 다리를 노려!”

그아아아-!! 커다란 울음소리와 함께 보스로라의 손을 뿌리친 한바이트가 허리를 숙여 몸을 바짝 낮췄다. 순간 사라진 목표에 보스로라가 당황한 사이, 한바이트가 보스로라의 하체를 잡고 그대로 몸을 다시 일으켰다. 300kg을 넘는 거대한 포켓몬의 몸체가 일순 허공에 떠오른다.

말도 안 되는 힘이다. 윤진과 성호가 놀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이, 한바이트가 힘을 쥐어짜 내 로파파에게로 달려들었다. 콰앙! 한바이트의 몸체에 부딪힌 로파파가 벽에 꽂혀 들어갔다.

“포푸니라, 마무리를 지어!”

한바이트가 만들어낸 절호의 기회, 놓칠 수는 없었다. 실버의 목소리에 손톱을 번뜩인 포푸니라가 일어나려는 로파파를 같은 곳에 처박았다. 다시 한번 섬뜩한 파열음이 일었다. 잠시 동안 지친 포켓몬들의 숨소리만이 공간을 울리고, 털썩, 결국 로파파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로파파, 넌 최선을 다해줬어.”

“돌아와, 포푸니라.”

“보스로라 너도 수고했어.”

“….”

잔뜩 상처 입은 포켓몬들이 모두 각자의 볼로 돌아갔다.

제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숨을 몰아쉬며, 꺼질 듯 희미한 눈으로 자신을 돌아본 한바이트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따라 환하게 웃어 보인 한바이트의 모습마저 볼 안으로 사라진다.

비바라기의 효과는 끝이 났다. 곳곳에 퍼진 얼음과 박살 난 벽의 조각들, 그리고 지진의 영향으로 필드는 엉망진창이었다. 그 어마어마한 광경을 바라보던 심판이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저, 전원 마지막 포켓몬을 꺼내주십시오…!”

이렇게까지 끌 생각은 없었는데, 생각보다 성호와 윤진의 포켓몬이 강했다.

각자 남은 포켓몬은 한 마리. 아마도 자신의 에이스를 꺼내겠지. 제노가 자신의 몬스터볼을 바라보며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아름다우면서도 첨예한 빛이 눈동자에 깃들었다.

그가 볼을 던졌다.

“부탁한다!”

이상해꽃이 필드에 자리하며 수면이 출렁였다. 실버가 꺼낸 포켓몬은 장크로다일이었다.

성호와 윤진의 포켓몬은 역시 메타그로스와 밀로틱. 그렇다면 우선 맹독이다!

지시도 없이 이상해꽃이 선공을 날렸다. 검보라색의 액체가 곳곳에 뿌려지며 탁한 연기가 올라왔다. 메타그로스는 허공으로, 밀로틱은 물살을 가르며 그것을 피했다. 윤진이 외쳤다.

“하이드로펌프!”

“장크로다일, 맞받아쳐!”

두 포켓몬의 같은 기술이 필드 중앙에서 부딪쳤다. 어느 쪽도 밀리지 않고 평형을 이룬 상태.

그 사이 메타그로스가 이마에 사념의 힘을 모으고 이상해꽃에게 달려들었으나, 이상한 장막으로 인해 막혔다.

윤진이 말했다.

“드디어 물 타입 포켓몬이 나왔구나. 너의 장크로다일, 정말 훌륭하게 키웠는걸! 강하고 아름다워.”

“….”

실버는 답 없이 밀로틱을 노려보았다. 장크로다일과 비슷한 출력의 물줄기를 뿜어내고도 여유가 넘치는 모습. 저쪽도 물 타입 에이스 포켓몬이라 이거군.

하지만 장크로다일에 비하면 물리공방이 떨어진다. 실버가 제노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가까이 붙고 싶은데, 가능하겠어?”

제노가 자신만만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곤 오른손을 뻗으며 외쳤다.

“이상해꽃, 가자!”

이상해꽃이 낮게 목을 울리며 기운을 끌어올리자 땅 아래에서부터 굵은 줄기들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씨뿌리기, 대체 어느 틈에! 놀랄 새도 없이 서로를 단단하게 엮은 그것이 기다란 다리의 형태를 만들었다.

“물어뜯어 버려!”

실버의 외침과 동시에 그 위에 올라타 있던 장크로다일이 밀로틱의 위로 떨어졌다. 철썩! 두 포켓몬이 쓰러지며 굉장한 기세로 물살이 쳤다. 완전히 밀로틱을 덮친 장크로다일이 강한 턱 힘으로 그 목을 물어뜯었다. 밀로틱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메타그로스, 장크로다일을 떨어트려!”

밀로틱을 돕기 위해 메타그로스가 사이코 파워를 끌어올린 순간, 빠르게 날아온 덩굴이 그 몸을 칭칭 감았다. 일순 막힌 움직임에 메타그로스와 성호의 시선이 동시에 상대를 향했다. 찡그리듯 웃은 제노가 말했다.

“한눈팔면 싫어요.”

흥분으로 달아오른 양 뺨, 반짝이는 눈동자. 짓궂은 미소가 여느 때보다 어울렸다. 그 얼굴을 확인한 성호가 따라 웃으며 답했다.

“그렇다면 상대해 드리죠. 메타그로스!”

낮은 기계음을 낸 메타그로스가 제자리에서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덩굴이 칭칭 감기며 길이가 짧아지자, 이상해꽃이 딸려 가지 않기 위해 다리에 잔뜩 힘을 주었다.

순수한 힘의 대결, 먼저 포기한 것은 이상해꽃이었다. 덩굴이 메타그로스를 놓아주자마자 성호가 외쳤다.

“코멧펀치!”

“막아!”

두 포켓몬이 장막을 사이에 두고 다시 부딪쳤다. 타앙! 큰 소리와 함께 이상해꽃과 메타그로스가 각자 반대 방향으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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