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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예보 알 수 없음

그대로인 날도 그럭저럭 살 수 있기를

BGM / 미래경 이노센스 - koyori

바람이 살짝 불어오는지 오야 호수에는 계속 잔잔하게 파동이 일고 있었다. 오야 호수를 바로 앞에 두고 돗자리를 편 다섯 사람은 테이블이나 의자도 두지 않은 채 돗자리만 깔고 앉아있었다. 나름 피크닉의 형식을 갖추겠다고 애썼는지 주변에는 우롱차나 후르츠 펀치, 레모네이드와 커피 등이 놓여 있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양반다리를 한 사람도, 바르게 앉은 사람도, 비스듬히 앉은 사람도, 걸터앉은 사람도, 다리를 쭉 뻗고 앉은 사람도 하나같이 표정이 좋지 않았다. 가만히 오야 호수를 바라보던 오르티가가 말을 꺼냈다.

“진 보스, 언제쯤 돌아올까?”

“고작 그게 묻고 싶어서 오야 호수까지 오라고 한 거야?”

“고작이라니? 그건 아니지!”

“…그래. 다시 생각해보니까 고작은 아니네. 미안.”

“와중에 성질은 급해가지고 제일 먼저 왔으면서, 하여튼 너는…”

“뭐가? 내가 뭐 어쨌다고?”

그만해. 멜리. 비파의 만류에 거의 자리에서 일어날 것 같았던 멜로코가 겨우 진정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옆이 시끄러운데도 불구하고 피나는 헤드폰을 쓴 채로 노트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추명도 부동자세로 앉아서 우롱차를 마시고 있는 것 외에는 별다른 리액션이 없었다. 모여서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건 거의 처음이네. 비파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모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잠시 비파를 바라보다 말 뿐이었다.

오야 호수로 다른 보스들을 모은 당사자인 오르티가의 연락은 간단했다. 오야 호수로 와. ‘시간이 있으면’도, ‘와줘.’도 아니며 ‘오지 않을래?’도 아니고 ‘와줄 수 있어?’도 아닌 와. 였다. 그에게서 오는 대부분의 연락은 그런 식이었지만 다른 보스들은 항상 군말없이 모였다. 물론 누가 연락을 해도 하나도 빠짐없이 모이곤 했지만, 와. 라며 끝내는 말에도 별다른 태클 없이 순순히 오는 사람들은 분명 얼마 없을 터였다.

“…소인은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소.”

“음, 근데 티가의 말은 ‘돌아올까’보다는 ‘언제’가 중심인 거 같은데?”

그렇지 않아? 피나가 헤드폰을 벗으며 모두를 돌아보았다. 모두는 진 보스를 믿고 있다. 그것 하나만큼은 앞으로도 영원불변할 사실이었다.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그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생각을 바꾼다는 선택지는 시간이 얼마나 흐르든 없을 터였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돌아온다고 믿고 있는다고 해서 기약 없는 기다림에서 생기는 피로마저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지치는 시기 없이 하루하루를 나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소중한 사람이 지금 자신 옆에 없다면 더더욱.

분명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였다. 브리무음을 데려다 미래예지를 쓴다고 해도 2턴 안에 일어나는 일은 전혀 예측할 수 없듯, 돌아온단 희망이 있어도 그 전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 수 없다. 우리가 지친다면, 답답한 마음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쉬더라도 전혀 편해지지 않는다면, 가끔 모든 게 버거워져 하지 않던 짓을 하게 된다면… 그렇게 보내는 하루하루가 쌓이고 쌓여 어떻게 될지는 몰랐다. 고고한 도련님인 오르티가가 갑자기 흙과 먼지로 뒤덮인 풀밭 위에 돗자리를 깔고 주저앉으며 물음을 던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비파 언니.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

“글쎄… 나도 알 수 없지만, 가까운 날 안에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어. 그 편이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금방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그때까지 더 열심히 아지트를 지켜야겠다고 마음먹게 되거든.”

“그렇구나… 언니는 대단하네. 나라고 그런 생각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다리가 저려서 부츠를 벗고 싶다 생각할 때도 있어. 그래봤자 순간이고, 금방 잊어버리게 되지만.”

“멜리….”

“약한 소리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누가 뭐라 해도 난 진 보스를 기다릴 거야. 그냥, 우리가 초인은 아니잖아?”

같은 디자인의 교복들 사이 추명의 손을 거쳐 누구보다도 특별해진 옷을 입고 있는 그들이었다. 그렇다고 항상 특별하고 뛰어난 보스일 수는 없었다. 여느 누군가처럼 평범한 사람 같은 부분마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피나는 작곡을 하다가도 풀리지 않아 가끔 오래 노트북을 붙잡았다. 멜로코에게는 다른 단원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한 문제가 분명 존재했다. 보스로서 아지트를 지키고 있던 추명은 가끔 게임을 하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다. 오르티가는 빠르게 지팡이를 돌리다가도 여러 번 놓치곤 했다. 비파는 험난한 경사의 아지트 안을 아무렇지 않게 뛰어다녔지만 가끔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그럴 수도 있는 게 당연했지만, 진 보스가 사라진 지금만큼 그런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마는 시기도 없었다.

물음을 건넨 것은 다시 오르티가였다.

“진 보스는 지금쯤 어떤 생각을 하려나? 우리랑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렇겠지.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몰라도, 분명 진 보스도 무언가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을 테니까. 가끔은 무언가 감당할 수 없어져서 사라져버렸나 싶기도 해. 그래도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믿고 있을 뿐인 거고.”

어느새 노트북마저 덮은 피나가 뻐근해진 몸을 풀어버리려는 듯 하늘 위로 팔을 쭉 뻗으며 대답했다. 아. 전혀 상쾌해지지가 않네. 그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느새 하늘은 노을빛이 가시고 점점 어두운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호숫가는 여전히 고요했다. 잔잔하게 바람이 불고, 시간이 흘렀는데 춥지도 않았다. 주변의 많은 것이 수없이 변해도 어느 날에 멈춰있는 것과 같은 그들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 모양새였다.

‘…소인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하오. 진 보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고 있진 않았나, 같은 생각 말이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괜찮은지 한 번이라도 물어봐 주었다면… 하는.“

“이제 와서 어쩌나 싶지만 나도 그런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야. 진 보스는 분명 힘들었을 텐데, 언니인 내가 조금 더 신경쓰며 지켜봐 줬어야 하는데, 같은 후회를 나도 가끔 하거든.”

“비파 나리….”

“다시 만난다면 그러지 않을 거라 다짐하는 수밖에.”

어쨌든 돌아온다고 믿으니 됐다. 그러니 우리 역시 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 결과론적인 이야기였다. 다시 만나더라도 분명 놓치는 부분은 존재할 것이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라는 말은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꽉 막히는 기분이 들게 했다. 결국 이렇게 되기까지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들 사이에 항상 감돌고 있었다. 그건 아마도 진 보스를 다시 만나더라도 해소되지 않을 감정일 것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하지만 가끔은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 그게 사람이었다.

“뭐랄까, 이야기가 제자리네. 요즘 내 곡 작업처럼.”

“그러네… 무슨 해결법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할 수 있었으면 내가 당장 해결했겠지.”

피나와 멜로코가 잠시 동안 서로 마주보다 쓴웃음을 지었다. 모여서 하는 일이 그저 무언갈 마시며 오야 호수를 바라보는 일이라니. 항상 무언가 나아지기 위해 효율적인 일만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모두가 평소와 같이 살아도 조금은 더 무기력해지는 요즘이었다. 그래도 힘내야지. 딛고 일어나겠지.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가까운 시일 안에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오늘 같은 날이 없지는 않을 테니까. 또다시 그런 날이 찾아온다면 오늘처럼 모여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됐어.”

“오, 오르티가 나리? 갑자기 무슨 말이오?”

“그런 말은 이제 됐다고. 뭔가 답을 내자고 너희 부른 거 아니거든? 그냥 보고 싶어서 부른 것뿐이라고.”

순간 아까보다 강한 바람이 불어와 풀밭이 세게 흔들렸다. 그렇지만 아무도 바람을 피하려 몸을 돌리지도, 추워서 몸을 떨지도 않았다. 그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불어오는 바람을 가만히 맞고 있을 뿐이었다. 오르티가의 말에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는 왜 대답을 안 하냐고 이야기하거나 성질을 내지 않았다. 그 어떤 명쾌한 대답보다도 모두의 시선이 한 곳을 바라본다는 것에서 느낄 수 있었다. 힘들 때 문제를 풀어줄 순 없어도 기꺼이 함께 있어줄 거라고.

“저기, 오늘 와줘서 고…”

무언가 말하려던 오르티가가 헙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멜로코가 끼어들어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고 뭐? 고맙다고? 설마 고맙다고 하려 그랬어? 진짜로? 와, 천하의 오르티가한테서 그런 말도 다 들어보고. 지금 당장 다시 해가 뜰 것 같은데? 쉴새없이 주변을 맴돌며 신경을 긁는 멜로코를 오르티가가 노려보았다. 아니거든? 고생 많았다고 하려 그랬거든? 이제는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그저 누구는 경쾌하게, 누구는 밝게, 누구는 허허실실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새 오야 호수의 하늘에는 별이 떠 있었다. 별은 오늘따라 특별히 반짝이지도, 잘 안 보이지도 않았다. 여느 때와 같은 평범한 밤하늘이었다. 그래도 함께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다면 혼자 올려다보는 아주 아름다운 밤하늘보다 몇만 배는 멋질 것이다. 그야 아주 찬란하게 빛나는 하나의 별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한들 별자리보다 아름답다고는 하기 힘드니까.

서로의 곁에서 반짝이는 것. 그래, 그거면 됐어. 그걸로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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