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피컬 히어로 上
역시 카레랑 샌드위치는 맛있다
BGM/ 비터 초코 데코레이션 - syudou(vo. 하츠네 미쿠)
모란아. 일어나!
흔들어 깨우지 않았는데도 자신을 부르는 음성에 모란은 저절로 눈을 떴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힘없이 침대 밖으로 걸어나가는 것 자체가 지치는 게 요즈음의 보통이었지만 겨우 기운을 차리고 적당히 옷을 갖춰입고 방문을 열었다. 언니가 웃으며 문 앞에 서 있었다. 평소의 발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자연스러운 차림이었지만 차마 눈에 담긴 걱정까지 지워버릴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모란은 그 걱정스러운 눈을 마주하고도 애써 아무 일 없다는 듯 후드를 뒤집어썼다. 방 밖으로 나왔지만 집 안에는 오래 있고 싶지 않아 그는 조용하지만 재빠르게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녀오겠습니다. 뒤에서 뭐라고 대답하는지 듣지도 않은 채 모란은 현관문을 열었다. 뒤에서 언니의 다녀올게~! 하는 명랑하지만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모란은 어디로 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먼저 발걸음을 뗀 자신이 문득 우습다고 느껴졌다. 방 안이 아니라면 아예 집 밖. 자신이 생각해도 극단적이었다. 그는 집 안에 있어도 별로 집 안에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가끔은 이곳이 진짜 자신의 집인지도 헷갈렸다. 방 안에 있어도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가족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털어놓은 후에도 후련해지기는커녕 더욱 막막해져 갔다. 충분히 많은 위로와 걱정을 받아 기분이 안정되기는 했지만, 그런 일이 있었는데 뭐? 그래서 지금부터는 어떻게 할 건데? 라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만큼은 꿋꿋하게 버티고 서서 그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미래의 일도, 과거의 일도 지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근데 그러지 않으면 지금을 온전히 살아나갈 수 없다. 그걸 깨닫자 머리가 탁 트이면서도 마음은 괴로워져만 갔다.
자신이 꼬아버린 실밥을 결국 자신이 풀어야 하는 모양새였다. 모란은 책상 앞에서, 컴퓨터 앞에서, 거울을 보면서, 침대에 누워서 멍을 때리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것저것 뒤엉켜 복잡해진 머리가 결국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러고 있는 와중 그의 방문을 두드려준 건 다름 아닌 그의 언니 니아였다. 방에만 있지 말고 내일은 같이 나가서 밥이라도 먹을래? 평소의 들떠 있는 말투와는 달리 굉장히 차분한 목소리였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먹는지 듣지도 않았지만 모란은 열린 문을 사이에 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가 활짝 웃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방 밖으로 걸음을 옮기진 않았다. 그의 방 안에 가득 찬 하루하루의 무게만으로도 그는 이미 충분히 버거웠다.
집 밖으로 나가자 하늘은 이미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종일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느라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몰랐던 자신이 이 시간에 밖에 나와있다는 사실이 신기해 그는 잠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목적지를 말하지도, 묻지도 않은 채 니아와 모란은 자연스레 기차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런 말도 오고가지 않았지만 누구도 굳이 먼저 말을 꺼내려 하지 않았다. 그저 언니가 앞서가면 동생이 뒤따라갈 뿐이었다. 니아가 향하는 대로 모란은 움직였다. 스스로 발을 딛기 싫을 때는 가끔 누군가의 그림자를 딛고 서 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기차역의 목적지는 다름 아닌 바우마을이었다. 밖엔 잘 나가지 않는 모란조차도 바우마을이라면 어디를 갈 것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시푸드 레스토랑 방파정. 자신은 가본 적이 없었지만 워낙 유명한 곳이기도 했고, 친척 중 누군가가 그곳에서 식사를 즐겨했다고 전에 들은 것 같기도 했다. 누구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스마트로토무로 가게 정보를 보며 열심히 메뉴를 고르고 있는 니아를 앞에 두고 모란은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누가 봐도 오랜만에 밖에 나오는 히키코모리 같아 모란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평범한 생활에서 멀어질수록 또 다른 무언가의 스테레오타입이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양극단을 달리는 것 같은 삶은 다르게 보면 너무나도 전형적인 중간지대에서 벗어나질 않았다.
분명 반짝반짝 빛나고 싶어서 집에서 학교까지 열심히 달려갔을 터였다. 근데 지금 이 모습은 뭐란 말인가. 다른 친구들의 빛마저 잃게 하고 싶지 않아 스스로 반짝임을 등지고 다시 학교에서 집까지 돌아왔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인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사람은 결국 빛나지 않는 게 일반적인데 닿을 수 없는 무언가에 손을 뻗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특별히 빛나는 사람인 게 아니라 모두가 있었기에 같이 반짝일 수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다시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덧 바우마을이었다. 모란은 누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기차에서 내렸다. 열차가 떠나자 니아는 가자! 라며 레스토랑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오랜만에 동생이랑 단 둘이 하는 식사에 들뜬 언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모란은 애써 힘을 내어 그의 뒤를 딱 붙어 따라갔다.
해가 졌는데도 레스토랑 안은 여전히 떠들썩했다. 니아 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자신의 말이 묻힐 것이라는 확신에 모란은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애초부터 맛있는 밥을 먹을 걸 기대하고 한 외출은 아니었기에 모란은 니아의 주문에 아, 저도 같은 걸로요. 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무리 특별한 음식을 먹어도 맛을 별로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주문이 끝나자 니아는 자연스럽게 모란의 컵에 물을 따라 그의 앞에 놓았다. 모란은 컵을 받아들고 뒤집어쓴 후드를 벗었다. 그제서야 주변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이런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자신이 아무렇지 않게 잘 앉아있다는 게 신기했다. 들려오는 말 하나하나가 신경쓰여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편안하다는 사실이 그를 안심시켰다.
“몸은 좀 괜찮고?”
“응.”
“아무리 기운이 없대도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큰일난다?!”
“알고 있어.”
집 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을 시간에 어딘가에 와 있다는 건 피곤했지만 그래도 굳이 자신의 손을 붙잡고 방 밖으로 끌고서 나와준 언니가 모란은 고마웠다. 신경쓰이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기보다 말이라도 걸어주는 게, 말이라도 걸어주는 것보다 함께하자고 하는 게 더 어렵다는 건 그 스스로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그 어려운 일조차도 진 보스라는 이름 아래 아무렇지 않게 하던 시기가 있었다. 누군가를 이끌던 자신이 지금은 누군가의 손에 이끌리고 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어쩌면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별이 아니라 그냥 전형적인 한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덤덤해졌지만 어딘가 허한 기분이었다.
“친구들 때문이야?”
“뭐가?”
“계속 기운없이 있는 거, 친구들이 걱정돼서가 아닌가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네.”
제멋대로 떠나가놓고 또 제멋대로 걱정이라니 확실히 누가 보면 조금 우스울지도 몰랐다. 그러나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걱정하는 건 그에겐 스타단 결성 이전까지로 충분했다. 모란은 이미 아카데미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결심했다고 해서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친구들에 대한 걱정마저 사라지는 것 역시 아니었다.
그는 ‘보통’이라는 단어에 짓눌려 숨쉬지 못하는 사람들을 구해주고자 했다. 거창하게 무언갈 이룩하겠다거나 학교에 발자취를 남기겠다는 마음 따위는 없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만 일반적이라고 선을 그어놓고, 아닌 사람들을 밖으로 밀어버리고자 하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그런 건 없다며 소리치고 싶었을 뿐이었다. 스타단이라는 조직은 그런 모란의 마음가짐 아래 점차 밝기를 키워나갔다. 모두가 하나하나의 빛나는 별일 뿐이니 ‘이래야만 하는’ 올바른 모습은 없다. 그렇게 계속 외쳐댈수록 모란은 점점 자신을 되찾아가는 기분이 듦과 동시에 어느새 그의 어깨 위에 수없이 많은 별들이 올라타 있음을 깨달았다.
행복했지만 가끔은 무거웠다. 즐거웠지만 어쩔 땐 잠시 내려놓고 싶었다. 그래도 그렇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시작했으니 어떻게 되더라도 계속 자신이 짊어지고 가는 게 맞았다. 줄곧 그런 생각이었다. 어느 날 누군가가 스타단에 대해 너희 모두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모란은 모두의 책임이 곧 자신의 책임이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모란은 카시오페아에서 다시 모란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을 친구들을 두고 밤하늘 사이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는 스스로에게서 더 이상 아무런 빛도 볼 수 없었다. 교실 전체를 에워싼 채로 자신을, 또 친구들을 압박했던 보통이라는 말이 싫어 가장 먼저 소리치고자 했던 사람은 어느덧 스타단의 그 누구보다 가장 보통이라는 단어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주문하신 꼬리 카레 나왔습니다. 차분한 음성과 함께 니아와 모란의 앞에 접시가 놓였다. 같은 메뉴였지만 접시의 색도, 밥을 쌓아올린 모양새도, 카레를 얹은 방향도 전부 달라 모란은 묘하게 입맛이 도는 걸 느꼈다. 따끈따끈한 밥을 한 숟갈 떠서 먹으니 익숙하지만 그리웠던 향이 입 안에 퍼졌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니아의 얼굴은 조금만 있으면 거의 접시에 파묻혀질 것 같앗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모란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종일 무표정 아니면 괴로운 표정으로 누워있거나 앉아있던 자신이 밖에 나오자 웃었다는 걸 자각하니 모란은 새삼스레 니아가 고마워졌다. 생각해보면, 방 안에만 있는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건 언제나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모두를 이끌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자신도 여러 번 누군가에게 이끌려 지금의 자신이 된 건지도 몰랐다. 아무리 혼자서 밝게 빛나는 별이라도 절대 다함께 반짝이는 별들과는 같을 수 없다. 그 사실을 상기하니 이제는 누구보다 평범해져버린 자신이 그닥 밉지 않을 것도 같았다. 지금 당장 다시 누군가를 구할 수 없대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나로써 이곳에 계속 있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된다. 그것이 지금 모란이 할 수 있는 최고이자 최선이었다.
가라르로 돌아온 직후 모란이 침대에 누워있으면 아주 가끔 꿈 속으로 옛날의 기억이 찾아와 그를 괴롭혔다. 하는 소리들은 전부 달라도 결국 말하는 바는 이러했다. 넌 일반적이지 않아. 그래서 결국 그렇게 된 거야. 그 일반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들이 제시한 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계속 방 밖으로 밀려났다. 밀려나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때로는 피나, 멜리, 추명, 티가, 비파 언니….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누군가 계속 자신을 밀어내는 기분에 눈을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은 멀쩡하게 침대 위에 붙어있었다. 그제서야 그게 꿈임을 자각하고 안도하다가도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에 부딪히며 절망하는 시간의 반복이었다. 의욕 없이 해야만 하기에 아무 감흥 없이 사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랬던 자신이 지금은 아무 역한 느낌 없이 언니랑 제대로 마주보며 밥을 먹고 있다.
“언니.”
“왜?”
“아니, 그냥. 여기 꼬리 카레 맛있다고.”
“뜬금없이? 뭐, 맛있으면 됐어.”
니아의 답은 건조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눈에서는 모란과 같은 안도감이 비쳤다. 모란은 다시 카레를 한숟갈 떠 입에 넣었다. 아까보다 더욱 부드럽게 밥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에 모란은 계속해서 접시 위로 손을 뻗었다. 정말 오랜만에 내일을 살기 위해서가 아닌 진심으로 맛있어서 하는 식사였다. 그릇을 싹 비우고 나서는 눈에 생기마저 돌 정도였다. 그런 모란을 가만히 바라보던 니아가 손뼉을 짝 치며 그에게 물었다.
“다 먹었으면 우리 등대 가자!”
“등대?”
“응. 밥만 먹고 들어가긴 아쉽잖아? 기껏 바우마을까지 나왔는데 바람이라도 쐬게.”
“그래.”
레스토랑을 빠져나오니 어느새 한밤중이었다. 모란과 니아는 바우마을로 향할 때 그랬던 것처럼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등대로 향했다. 체력이 부족한 몸을 이끌고 겨우 오른 등대는 예상했던 풍경 그대로였지만 아름다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를 별빛과 등대의 불빛이 번갈아가며 비추고 있었다. 아까는 잘 보이지 않던 별들도 어느새 모습을 드러내 제각기의 모습으로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하늘에서 빛나지 않는다고 별이 그 자리에 없는 건 아니었다. 언젠가, 누군가의 눈에는 다시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모란은 잠시 동안 입을 다물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방에서 늘 올려다보는 하늘이었지만 낯선 장소에서 마주하니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더 가깝고, 선명하고, …반짝이고 있었다.
“모란아.”
“응?”
“밥 먹기 전에 꽤 심각해 보이던데, 혹시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다 티났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지.”
니아는 모란의 옆에 붙어 장난스럽게 웃었지만 그에게 주는 눈길은 다정했다. 니아는 그가 할 말을 굳이 고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를 수는 있어도 이런 말을 해도 이상해 보이진 않을까, 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모란은 그래서 니아의 존재가 항상 든든했다. 자매라고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과 니아가 친할 수 있는 건 분명 서로가 노력했기 때문이다…. 모란은 항상 그렇게 생각하면서 언니의 일에만큼은 더 관심을 가지려고 했다. 마치 스타단 친구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평범하다는 말이 싫어서 애써왔는데 지금은 다른 그 누구보다 내가 평범한 사람인 거 같아서.”
“흐음? 그랬구나.”
“이래야 보통 사람이니까. 라는 말에서 누구든 구해주고 싶었거든. 근데 어쩌면 내가 가장 그 말에 가깝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야 나는 친구들이랑 제대로 마주보지도 못했고… 창시자로서 항상 앞에서 모두를 이끌어가지도 못했으니까.”
모란은 고개를 푹 숙였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생각을 입으로 내뱉으니 말의 무게가 더 깊이 와닿는 기분이었다. 학교도, 스타단도 항상 노력한다고 생각했는데 끝은 노력한 만큼의 결과는 아니었다. 크게 좌절하지는 않았다 해도 가끔 부정적인 감정이 발목을 붙잡는 것마저 피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겠다 마음먹은 만큼 머뭇거리는 시간도 길어졌다. 그래도 그의 옆에 가족들이 서 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그에게 항상 한 걸음만큼의 힘을 주었다. 지금의 니아와 모란이 같이 서 있는 것처럼.
“근데 그건 그냥 네 생각이잖아?”
“응?”
“누가 너보고 그렇게 말해?”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네가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다른 사람한테는 아닐 수 있잖아? 생각보다 누굴 구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행동하는 사람, 별로 없거든.”
순간 모란은 주춤했다. 니아의 말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잘 곱씹어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남이 보는 내가 전부는 아니듯이 내가 보는 나도 전부는 아니다. 남이 나를 왜곡하는 만큼 나도 나를 왜곡할 수 있다. 당연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살아가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모란은 조금이나마 앞이 탁 트인 기분이었다. 어쩌면 그조차도 결국 뭐가 평범한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평범하다는 하나의 틀에 자기 자신을 멋대로 끼워놓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럴지도 모르겠네.”
“흠? 어떻게 보면 되게 전형적인 거 같기도 하다.”
“뭐라고?”
“누굴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거.”
“그게 무슨 말이야?”
모란은 당황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굳이 무슨 말인지 설명해달라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니아에게서 한 치의 오차 없는 진심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분명 당장은 와닿지 않는, 겉보기에 모순적인 말이었지만 나중에라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아무튼 굳이 그런 생각 하지 않아도 돼. 니아는 그렇게 말하며 모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평소라면 갑갑하다고 바로 쳐냈을 테지만 모란은 굳이 그러지 않았다. 둘은 잠시 아무 말 없이 등대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친구들도, 가족들도 항상 지금 이 순간을 헤쳐나갈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주었지만, 그 순간순간이 모여 결국 매일이 된다는 걸 모란은 알고 있었다. 고마워. 언니. 모란은 굳이 그렇게 말하는 대신 살짝 니아의 어깨에 기댔다.
“언니.”
“왜?”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 카레 먹으니까 갑자기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졌어.”
“그 연관 없는 생각의 흐름 진심이야?”
“음? 어떻게 보면 연관이 있을 수도 있지?”
그건 뭐야? 아까의 복수?! 소리치는 니아를 뒤로 하고 그는 웃으며 등대를 내려갔다. 모란은 니아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다 그의 옆에서 발을 맞춰 걸었다. 샌드위치를 먹고 싶다고 생각하니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지금쯤 뭐 하고 있으려나? 궁금했지만 더 이상 불안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너희도 샌드위치를 먹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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