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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상

모든 문제에는 원인이 있다

bgm / 우리들의 마이너리티(僕らのマイノリティ)-DADARAY

오르티가에게서 연락이 온 건 한창 자고 있을 아침이었다. 스마트로토무가 울리는 소리에 번쩍 눈을 떠 다급하게 전화를 받자 누가 봐도 눈물이 나려는 걸 꾹꾹 눌러담고 있는 목소리가 스마트로토무 너머로 들려왔다. 속상함이나 슬픔의 눈물이 아닌 화와 분노를 억누르면서 나오는 눈물이었다. 오르티가는 애써 차분해지려고 노력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가라앉지 않았다. 모란은 그저 가만히 서서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로토무를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아지트 앞에서 누가 시비를 걸었어. 그런데… 라고 시작했던 오르티가의 말은 끝으로 갈수록 내용보다는 감정에 치중해갔지만, 모란은 자신의 이성으로 감정 사이사이에 섞인 객관적 사실을 하나하나 조합해 하나의 큰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팀 루크바의 아지트에 어떤 사람이 찾아왔다. 그로 인해 소란스러워진 입구에 조무래기들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상황이 끝나지 않자 결국 오르티가가 직접 나섰다. 그는 구구절절 어른스러운 척 말을 늘어놓았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러했다. 학교에 가지 않다니 나쁜 학생들이네. 사람이 많아지자 귀찮아진 듯 돌아가려는 그를 오르티가는 굳이 막아세우고 여러 번 소리쳤다. 오르티가는 그때 머리끝까지 화가 난 나머지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고 했지만 모란은 이미 악에 받친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말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일이 커지려는 찰나 조무래기의 연락을 받고 공중날기택시를 타고 온 멜로코가 어떻게든 그를 돌려보내고 나서야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거기까지였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소리치면서 어딘가를 내리치는 소리가 전화 음성 너머로 들렸을 때 모란은 자신이 맞은 것마냥 움찔했다. 티가. 진정해. 모란이 말리고 나서야 그는 겨우 울먹임을 멈췄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이해할 수 없는 듯했다. 있지, 진 보스. 우리가 그렇게 잘못했어? 우리가 무슨 죄라도 지었어? 쏟아지는 오르티가의 말에 모란은 단칼에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켕기는 것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대답을 하면 좋을 지 몰라 말을 고르고 고르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티가. 지금 너무 격양돼 있어. 조금 괜찮아진 후에 천천히 다시 이야기해보자. 였다. 오르티가는 훌쩍거리면서도 수긍했고, 통화는 무사히 끝났지만 모란은 스마트로토무를 내려놓자마자 자괴감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해줄 수 있는 답이 정말 그것뿐이었어? 최악이네. 무의식적으로 형체 없는 누군가가 자신을 타박하는 상상을 하다 모란은 고개를 저었다. 정신 차려야 해. 한번 되뇌이고 나서 그는 다시 잠에 들었다.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처럼 일어날 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모란이 일어난 시각은 한밤중이었다. 불을 켜고 나니 모란은 참을 수 없는 갑갑함이 밀려들어왔다. 방에 있으면 안 되겠다. 탁 트인 곳에 있어야 한다. 방이 탁 트인 곳이라면 정말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모란은 공중날기택시를 불러 누룩스시티로 향했다. 어디든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는, 바다와 가까운 장소가 필요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발밑으로 파도가 부서지고 있었다. 자신이 도시 근방의 길을 냅두고 왜 굳이 여기까지 달려왔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채로 모란은 숨을 헐떡였다. 바로 옆에서 온갖 조명이 섬뜩하게 번쩍이고 있는데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화려한 도시 옆의 작은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가끔 괜찮다가도 견딜 수 없는 순간은 분명히 온다.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모란은 애써 진정하고 차가운 바닷바람으로 차분하게 머리를 식혔다.

나쁜 학생들이네. 죄라도 지었어? 이름 모를 사람과 오르티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교차했다. 나쁘다… 확실히 나쁘게 보일 수밖에 없나. 모란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에게 치가 떨려 모래사장에 발길질을 했다. 모래바람이 휘날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때 오르티가에게 무어라 말해줘야 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나쁘지 않아? 반사적으로 대답하는 것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신경쓰지 마? 상처받았을 아이에게 할 말은 절대 아니었다.

자연이 아름다운 팔데아지방 위에 세워진 다섯 개의 아지트는 확실히 그냥 보면 이상할 만도 했다. 하물며 학생이 학교가 아닌 그런 곳에 있다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는 게 맞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어떤 현상이든 뜬금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에도 그들만의 사연이 있다. 오래된 다른 지방 사람들에게는 갑자기 나타났다고 여겨지는 팔데아지방도 그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모란은 저건 왜 그럴까 생각하지도 않고 무턱대고 말로 사람을 찌르는 건 확실히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스타단을 만들기 전에도, 지금까지도.

이상하다는 건 도대체 뭘까. 모란은 답을 몰랐지만 아마 이상하다 말하는 사람들도 답은 알 수 없을 터였다. 우리는 이상해서 나빴다. 그들이 말하는 이상함과 나쁨을 뭐라 정의하지 못했는데도 우리는 이미 그런 사람이었다. 한번 그렇게 생각한다고 돌이킬 수 없는 건 분명 아니었을 텐데도 모란은 굳이 그들 앞에 나서서 자신을 변명하지 않았다. 말 대신 행동이었다. 방패를 든다고 공격이 들어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기에 결국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무기가 필요했다. 모란은 함께할 ‘우리’들을 찾아나섰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누가 뭐라 해도 내 마음은 변함없는데…. 왜 이렇게 답답할까.’

역시 자신의 마음가짐이 남의 문제에 대한 답까지 내놓을 수는 없기 때문일까. 모란은 아무리 자신의 답을 내놓아봤자 그게 오르티가에게 닿을 거라는 생각까지는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모란은 발마저 차갑게 하면 정신이 바로잡아질까 하는 생각에 파도가 치는 곳으로 조금 더 걸어갔다. 발밑에서 부서지던 파도가 발등을 뒤덮었다. 물밑에 잠긴 부분이 왜곡되어 있었다. 아지트 앞에서 소리치던 사람이 보던 우리도 분명 이런 형태였겠지. 하염없이 물 위만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물 밑이 어떤지를 제대로 알고 있을 리는 없었다. 그들이 아래로 눈을 돌리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 우리는 시야의 격차를 좁힐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란은 잠긴 채로 발을 휘저었다. 찰박거리며 수면에 작은 파동이 일었다. 발이 따가웠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수면 사이사이로 발이 드러났다. 물에 잠겨있을 뿐 자신이 이곳에 발을 딛고 서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우리도 마찬가지겠지. 누가 왜곡시켜서 봐도 우리가 우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모란은 불현듯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생각에 물 밖을 뛰쳐나와 모래사장을 걷다 뒤돌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평소보다 유독 별이 밝은 것도 같았다.

그래. 누가 어떻게 봐도 우리는 우리다. 비춰지는 표면이 다르더라도 그들의 시야가 변하지 않는 만큼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그거면 된 거야. 오래 고민했지만 알고 보면 간단한 진실이다. 자고 있을 시간일지도 몰랐지만 모란은 스마트로토무를 꺼내어 오르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티가. 아까 한 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그냥 우리 누가 나쁘다고 하면 나쁜 사람 하자.

그냥 넘어가라는 말도 아니야. 우린 착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냐.

굳이 우리가 어떻다고 말할 필요 없어. 어차피 어떤 사람들은 보고 싶은 대로만 세상을 보잖아?

그런 거야. 그러니까, 사실도 진실도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아. 말하지 않는다고 변하는 게 아니니까.

아까는 제대로 답도 하지 못하고, 피하듯이 전화를 끊어버려서 미안했어. 잘 자. 내일 일어나면 또 연락해.

구구절절 길게 적어보낸 모양새가 없잖아 있었지만 됐다 싶어 모란은 스마트로토무를 껐다. 이게 오르티가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걸 모란도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다음 날에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짜증 섞인 말을 들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어떤 말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오르티가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나쁘다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 사람이라 믿기에 전할 수 있는 말이었다. 어쩌면 위로보다 더한, 모란의 변하지 않는 진심이었다.

이상한 사람. 모란은 그 말을 곱씹었다. 어쩐지 마음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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