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
유료

81화

샛길 둘

▶ [ 처음부터 시작한다. ]

[ 설정을 바꾼다. ]

???: … 그렇구나, 당신… 이제 모험을 시작한 거군.

???: 이름. 지어줄게.

???: 제노. 내가 아는 트레이너 중에 가장 강한 사람의 이름이야.

???: 이거, 다시 돌려주길 기다릴 테니까.

*

파삭, 파사삭, 풀숲을 해치는 소리가 났다. 작은 아이 한 명이 허겁지겁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부상을 당한 건지 손에는 손수건이 묶여있다. 품에 안아 든 피츄 한 마리. 뒤에서 독침붕 떼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쫓아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름을 지어줄 여유가 있으면 가까운 마을에 데려다 달라고! 여린 몸에 한계가 다다랐는지 아이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피츄가 불안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때, 탁, 하고 신발코가 돌부리에 걸렸다. 아이는 요란하게 흙바닥을 구른다. 와중에 피츄를 지키겠다는 듯 더욱 품에 꼬옥 안은 채였다.

“아야야….”

“피! 피!”

인상을 한껏 찌푸린 아이가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을 때는 이미 독침붕들이 그를 둘러싼 상태였다. 포위망이 점점 좁혀들고, 날카로운 침이 아이에게로 향하는 순간, 품에서 피츄가 폴짝 튀어나왔다.

“피츄… 피-!!”

피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전격이 독침붕들을 물러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아직 어린 개체. 점점 지쳐가는 피츄가 조금이라도 공격의 위력을 줄이면 독침붕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다.

셀 수도 없이 뿜어낸 전기. 피츄가 숨을 헐떡이며 놀란 눈을 한 아이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지키느라 엉망이 된 몸. 피츄가 다시 몸에 전기를 끌어모았다.

“피, 피, 피!”

그리고 어느덧 한계가 찾아왔다. 피츄가 땀을 흘리며 쓰러지자, 독침붕들이 다시 포위망을 구축했다. 그리고 그들이 아이와 피츄를 공격하려는 순간-

“윈디, 화염방사!”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뿜어져 나온 강한 불꽃이 공중을 갈랐다. 윈디의 위협적인 공격에 독침붕들은 후퇴를 선택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아이가 그 모습을 확인하곤 눈을 감았다.

“얘야 괜찮니?! 젠장, 윈디! 아이를 옮기자꾸나!”

“피이, 피!”

그게 그가 완전히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였다.

*

“그렇군요. 산에서 피츄와 함께 독침붕 떼에게 쫓기고 있었다라….”

“예. 조난당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는지, 이름 말고는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더군요.”

윈디의 주인, 오 박사가 경찰에게 사건의 경위를 설명했다.

늦은 오후, 오 박사는 우연히 창밖을 보았다가 산에서 발생하는 전격을 발견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한 그는 곧장 윈디와 함께 전격의 근원지로 달려갔고, 그곳에서 한 아이와 피츄를 구조했다.

소녀는 온몸이 생채기로 가득했다. 정신을 잃었지만 순간 피로가 몰려와서 그런 것일 뿐, 건강에 이상은 없다고 한다. 한계까지 힘을 쥐어짜 낸 피츄 또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대화의 주인공, 제노는 쟁반을 들고 두 사람에게 다가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잔을 쥐고 탁자에 두었다.

“드세요.”

“아, 고마워.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벌써 움직여도 괜찮은 거니?”

오 박사의 질문에 두 손으로 쟁반을 그러쥔 제노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함부로 전기포트에 손을 댈 수는 없었기에 컵에는 그저 맹물이 담겨있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아이의 이름과 인상착의를 토대로 실종자 명단을 찾아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 만약에 아이를 찾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

“… 알겠습니다.”

경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것만으로 충분한 대답이 되었는지 오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노가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참 예쁜 눈을 가진 아이다. 경찰이 제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릎을 굽혀 그와 시선을 맞췄다.

“제노야, 조금이라도 생각나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경찰 언니한테 얘기해주렴. 알겠지?”

“네.”

“그래. 언니는 이만 가볼게.”

“안녕히 가세요.”

꾸벅. 제노가 허리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했다. 경찰이 떠나가고, 오 박사는 멍하니 서 있는 제노에게 말했다.

“자, 이리 오렴. 네가 지낼 방을 알려주마. 한동안은 내 연구실에서 지내자꾸나.”

“감사합니다.”

*

제노는 얼굴이며 팔다리에 붙은 거즈를 살폈다. 온몸에서 약 냄새가 진동했다. 움직일 때마다 상처 부위가 따끔거렸으나, 괜히 건드리진 않았다. 덧나는 건 싫었으니까.

오 박사가 내어준 방은 연구원들이 잠시 휴식을 위해 사용했던 곳 같았다. 지금은 창고로 쓰는지, 곳곳에 상자며 기재들이 널려있었다. 오 박사는 급하게 짐을 한곳으로 몰아넣고 간이침대의 먼지를 털어내며 머쓱한 듯 웃었다. 미안하다, 여자아이가 쓰기엔 방이 좀… 그렇지? 아니에요, 전 좋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방에는 지금은 전력이 들어오지 않는 작은 냉장고와 테이블도 있었다. 청소하면 유용하게 쓸 수 있을지도 몰랐다. 침대에 걸터앉아 발을 앞뒤로 흔들던 제노가 벌렁, 상체를 뒤로 뉘었다.

경찰과 오 박사가 나누던 말은, 일정 기간이 지나도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자신이 보육원에 가게 될 거란 말이었다. 당연한 사실이었다.

이런 세상의 보육원에서도 횡령이라던가, 아동 학대 같은 사건은 일어날까? 잠시 시설의 모습을 상상한 제노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좋은 조건들을 아무리 떠올려 보아도 지금 이 장소보다 나은 곳은 없을 것 같았다. 그린은 좋겠다, 오 박사님이 혈연이어서.

제노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몬스터볼 하나를 꺼냈다. 처음 이 세계에 ‘생겨났을’ 때부터 함께 있던 물건. 제노는 본능적으로 안에 어떤 포켓몬이 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볼을 세게 그러쥐었다.

신이란 게 있다면, 왜 나를 이런 곳에 버렸을까. 어째서 나는 이 세계에 대한 사실을 알고 있을까. 정말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 맞을까?

…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알아야 할 것은 모르고, 정작 몰라야 할 것을 알고 있으니. 이렇게 비극적일 수가 없었다.

얼굴이 뜨거워지며 눈가가 시큰거렸다. 침대로 완전히 기어 올라가 웅크렸다. 베개가 눈물로 젖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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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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