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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estone override

팔데아에서 디스코드를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BGM / 라그 트레인 - 이나바 쿠모리(vo. 카아이 유키)

모란은 방에서 스타 대작전을 준비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정리하려고 노트북을 펼쳐서 끄적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용 음성 대화방에 멜로코가 들어왔다. 아직 스타 대작전에 대한 구체적인 틀이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서인지 그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할 건지 한번 들어나 보자, 하는 태도였다. 그가 자신과 어울리기를 전혀 귀찮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모란은 새삼 고마웠다.

알고 지낸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모란이 본 멜로코는 늘 해답을 내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모란은 가끔 멜로코와의 대화를 통해 무언가를 깨닫곤 했다. 멜로코와의 대화는 논리도 인과 관계도 없이 흐르는 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끝나고 나면 어째서인지 불안감이 가셨다.

“그렇게 하나하나 다 정리하는 건 뭐 때문이야?”

“어?”

일단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와중 갑자기 멜로코가 먼저 훅 치고 들어왔다.

“뭔가 해결이 안 될까 봐 신경쓰이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야. 솔직히, 안 풀리는 부분이 있을 거란 불안감은 없어. 그냥 너희가 걱정돼서 그럴 뿐이야. 준비하는 과정에서 혹시 너희가 잘못될까 봐….”

“뭐, 걱정할 거 없어. 너도 알겠지만 난 지금 가진 게 내 전부야. 남이 생각하는 학교를 등지느니 뭐니, 별로 깊게 다가오지도 않고.”

“넌 진짜 걱정하는 게 없어?”

“없어.”

“뭔가 안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 애초에 아주 불가능한 일만 아니면 그런가 보다 하니까. 생각해보니 네가 말한 스타 대작전…. 은 확실히 맨땅에 헤딩이긴 하네. 아무튼, 나한텐 별로 안 중요해, 되겠네 안 되겠네 하는 건.”

모란은 자신과 놀라울 정도로 다르면서도 또 닮은 그가 신기했다. 자신은 불안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획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그는 계획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나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아카데미 내 괴롭힘이라는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성격은 이렇게나 다르다. 괴롭힘의 이유 역시 극명하게 다르다. 겉보기와 배경, 가장 앞의 것과 뒤의 것으로부터 모든 괴로움이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넌 아카데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모란은 문득 피어오른 의문을 숨기지 않았다.

“갑자기 이런 말 좀 그렇지만, 학교 애들에게 화나진 않았어?”

“정확히 어느 부분에?”

“그냥, 다들 스타단에 들어온 이유…. 너도 알잖아.”

“아, 그거라면 다 쥐어박고 싶었지.”

“그, 그래?”

“멋대로 나라는 사람이 어쩌니……. 그래놓고 자기들 생각대로 안 움직이면 또 멋대로 실망하고.”

“그랬구나……. 사실 화났는데 우리 때문에 일부러 속으로 삭이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했거든.”

“맞아. 마음을 삭이고 있는 건 맞는데,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뭐 그런 것 때문에 일부러 삭이는 건 아니고 네가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

“나?”

“그래,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런 말 좀 그렇지만, 뻔하니까. 우리 중 누구라도 감정 때문에 먼저 나서서 계획이 틀어지기라도 하면 네가 바로 내 책임이라고 할 게 눈에 선하니까.”

모란은 입을 다물었다. 그런 경우의 수라면 잠깐 생각했다 접고 말았지만, 만에 하나라도 누군가에 의해 계획이 틀어졌대도 그의 말대로 행동하지 않았을 거란 확신은 그에게도 없었다.

“그럼 나 때문에 일부러…….”

“아, 참. 생각 피곤하게도 하네. 우리 상황 걱정해줄 때 너무 심각해보인다고 전에 비파 언니가 그러더라. 그런 생각이라면 그만해. 다른 애들한테 물어봐. 아주 똑같진 않아도 분명 나처럼 얘기할걸.”

“알았어. 근데, 계속 그래도 괜찮아?”

“아니?”

“윽, 정직하네…….”

“마음 같아선 다 불태워버리고 싶은데 참는 거야. 그렇게 되면 난 조사를 받으러 갈 테고 그러면 네가 슬퍼할 테니까.”

“멜리…….”

“농담인데? 웬 감동은.”

“아.”

“내가 안 괜찮아도 인제 와서 뭐 어쩌겠냐, 싶다.”

“…….”

“체념한 거 아니야. 스타 대작전 전까지는, 상황이 길어지는 게 나한텐 배로 피곤해.”

멜로코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그는 상황을 오래 끌고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일단 문제가 있으면 빠르게 나서고 보는 게 그의 스타일이다. 그러나 본인이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감정의 문제라면……. 아니, 오히려 자신이 있으면 더 빠르게 해결 가능한 일이기에 끓어오르는 감정마저 누르고서 일단 발 벗고 뛰어든 게 아닐까. 어느 쪽일지 모란은 알 수 없었다.

“내가 멋대로 행동해서 네가 안 괜찮아지는 게 더 안 괜찮아.”

“지금은 숨어있는 편이 우리에게 더 편안한 건 맞지만, 난 어떻게 되든 괜찮았을 거야.”

“그런 말이 나한텐 진짜 안 괜찮다고.”

“미안.”

“그러니까 그런 말이 나한텐 진짜 안 괜찮다니까?”

“아, 알았어. 그만할게.”

모란은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그가 자신의 움직임을 볼 수 없음에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란은 멜로코가 트러블이 생기면 바로 전면에 나서서 해결하고자 하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스타 대작전을 위해 스타단에 들어왔는지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차차 편해지리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힘이 되고 싶어 하는 티를 내는 것도 안 괜찮아하려나.

“아무튼, 그런 게 궁금해서 물어본 거구나? 무슨 상담하는 거 같네.”

“상담까지는 아닌 것 같지만, 어제도 멜리 네가 어째서인지 별로 괜찮아보이질 않아서….”

“그럼 너는?”

“응?”

“내가 괜찮고 아니고를 떠나서 너는 지금 어떤데?”

“내가 지금 어떻냐니…….”

생각해본 적 없다. 굳이 생각해볼 이유가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스타 대작전에 대해 생각하기도 바쁜데, 그런 것까지 고민한다고 뭔가 달라지는 게 있나?

“너도 우리랑 뭔가 더 얘기하고 싶어서 지금 여기 있는 거 아냐? 우리랑 스타 대작전 말고 다른 이야기도 줄곧 하잖아. …그게 너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어서 그렇지.”

“나에 대한 이야기는…. 너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그럼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릴게.”

“그, 그럼 시간이.”

“누가 계속 기다리겠대? 당장 용기가 안 나도 좋으니까 나중에라도 이야기해달라고. 얼굴은 모르지만, 어쨌든 같이 지내면서도 친구가 뭔 상태인지도 모르는 거 난 싫어.”

강경하게 ‘싫다’라고 말했지만, 콕 집어 '친구'라고 말했다는 데에서 안에는 그 나름의 따뜻한 마음이 녹아있다는 걸 모란은 알 수 있었다. 남이 얼마나 괴로울지 생각하며 아카데미라는 장소가 불안하다면 그게 누구 때문이든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인데, 정작 멜로코에게 자신에 대한 질문을 받으니 모란은 고마우면서도 혼란스러웠다.

모란도 그와 마찬가지로 마음 한구석에서는 분노를 느꼈으나 숨어서 차분하게 스타 대작전을 준비하는 걸 더 우선으로 택했다. 무엇보다도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준비하는 계획이 먼저였다. 그러나 멜로코는 어떤 마음으로 스타 대작전을 준비하는지가 아니라, ‘너는 어떤지’를 물어봤다. 모란이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너한테 뭐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네 이야기는 잘 안 했잖아. 난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어. 공평하지 않다느니 그런 차원이 아니라, 아무 데도 털어놓지 않다가 네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모란은 입을 다물었다. 실제로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별말도 하지 않다가 결국 ‘모르는 새 어떻게 될까 봐’ 불안감을 심어주고 있는 것도 자신이다. 모란은 멜로코의 말을 듣고 그가 왜 굳이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자 하는지 조금 더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면 불안해지니까. 불안한 상황에 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분명 멜로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상담 아닌 상담 같은 이야기를 시작한 건 자신이었으나 어느새 모란은 저도 모르게 멜로코에게 상담을 받는 처지가 되어있었다.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도움을 받기만 하다니. 이러려고 말을 꺼낸 게 아니었는데.

“나에 대해선 뭐라고 길게 말은 못 하겠지만…….”

“아냐, 됐어, 이젠. 어쨌든 지금처럼 있는 게 제일 편안한 거지?”

“…응.”

“그럼 그냥 그렇게 있어도 돼.”

“뭐라고?”

“아니, 뭐 됐고 네가 알아서 해, 그런 소리가 아니라, 내가 봤을 때 넌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신경쓰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불편해 보여."

"그런가."

"가끔은 그냥 누군갈 신경쓰면서 ‘이래야 해.’라는 거창한 태도보다도 그런 거 없어도 좋으니까 친구들이랑 얘기하고 싶으면 그냥 다 내려놓고 말해봐.”

“다 내려놓고, 라…….”

“그래, 보아하니 매번 그래왔던 거 같으니까, 적어도 내일부터라도 한번 해봐.”

“그래도 될까?”

“당연하지. 어떻게 알아? 오히려 그러다가 더 괜찮아질지.”

모란은 고개를 푹 숙였다. 친구들의 상황을 해결해주려고 할수록 오히려 친구들이 더 자신의 상황을 해결해주려고 노력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하루하루 새로운 걸 묻고 새로운 걸 답하다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다. 이대로 간다면 스타 대작전이 끝났을 즈음에는 뭔가 더 나은 곳에 다다를 수 있을까?

아니, 이젠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다.

“멜리, 고마워.”

“별말을,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길래 나도 이때다 싶어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뿐이야.”

“그랬을 뿐이래도 충분히 힘이 됐어.”

모란은 스타 대작전을 위해 할 일을 기록하던 노트북을 내려놓고 마주볼 수도 없는 멜로코를 바라보았다. 평소에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데도 지금 그는 누구보다도 심지가 굳어 보였다. 항상 이런 식으로 제일 먼저 나서서 문제들을 차근차근 하나씩 해결해갔던 걸까. 모란은 ‘해결사’로서의 멜로코를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일에 그런 면모를 보여줄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았기에 오늘 그가 자신에게 보여준 모습이 낯설면서도 실로 그답다고 느꼈다.

멜로코에게 스타단이라는 길을 열어준 건 그였지만 가끔은 다 내려놓고 이야기해보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열어준 건 멜로코였다. 모란은 오늘 이야기한 상대가 멜로코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의지를 굳혔을 때 자칫 무거운 마음에 쓰러지지 않도록 다른 길을 만들어주는 것.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터였다.

“할 얘기는 다 한 거 같은데 그만 나가볼게.”

“아, 응. 나도.”

먼저 나가겠다고는 했지만 멜로코는 모란이 스타 대작전에 관한 정리를 마칠 때까지 선뜻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 그럼 수고하셨스타. 아직은 어색한 인사로 대화가 끝났다. 모란은 언젠가부터 멜로코의 목소리가 울려퍼지지 않는 방이 어딘가 서늘하다고 느꼈다.

모란은 멜로코의 말을 떠올렸다. 넌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신경쓰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불편해 보여. 그 말이 맞다면 자신은 남을 편안해지게 하기 위해 불편해진다는 거나 다름없었다. 단어의 나열만 놓고 보면 역설적이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정말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겠지.'

이래야 한다는 거창한 태도 없이, 남의 말을 신경쓰지 않아도, 정말 그렇게 해도 괜찮다면. 적어도 지금만큼은 함께해도 가끔은 속내를 알 수 없는 카시오페아로 남고 싶은 자신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말이다. 근데 정말 그렇게 해도 되는 걸까? 의문은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간단하게 정리될 것이다.

모란은 멜로코를 믿는다. 그렇기에 그가 하는 말을 믿는다. 그 단순한 마음가짐 하나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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