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시작이야 (내 꿈을) 내 꿈을 위한 여행 (피카츄)

태초마을의 두 사람

포켓몬 / 레드그린, 레그리 / 2017년 2월 19일에 올렸던 글→비문 수정 및 정발판 이름으로 수정

서고 by 예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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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디찬 공기에 코를 훌쩍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자 속눈썹에 찬 알갱이가 내려앉는다. 앗, 차가. 시려오는 눈을 살며시 깜빡이면 곧 하얀 꽃이 떨어지는 장면이 들어왔다. 익숙해진 풍경. 이번이 몇 번째일까. 처음에 왔을 때와 전혀 변함이 없는 이곳에서 그린은 이제 더 이상 길을 잃는 일은 없었다. 은빛 산의 포켓몬 대부분과 안면도 텄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힘겹게 올랐던 이전과 달리 나름 여유가 있는 모습도 보인다. 푹푹 깊게 발이 빠지는 족족 주위에 우르르 몰려드는 눈 포켓몬들도 이제는 익숙하다. 해도 이 모든 게 익숙해진 손님과 달리 포켓몬들은 여전히 손님이 신기한 모양이다. 저리로 비키라고 해도 말을 안 듣는 이 말썽꾸러기들은 오랜만에 이 산을 찾은 손님과 잔뜩 놀고 싶어, 새로운 놀이를 기대한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즉 놀아달라는 의미― 눈빛 하나도 부담스러운 데 여럿이서 애처로운 초롱초롱 눈동자를 발사해대니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안 돼.”

아쉽게도 효과는 없었다! 단호한 목소리에 작은 어깨가 가엾게도 축 처져 시무룩해지는 것도 잠시, 잦은 고생을 다 하며 등반 중인 그린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포켓몬들은 포기라는 단어를 몰랐다. 묵묵하고 냉정하게 제 갈 길을 가는 그린의 뒤를 몇몇 포켓몬들이 몰래 살금살금 따르는데, 어느샌가 하나둘 그 행렬에 따라붙기 시작한다. 매일 주위의 눈을 던지고 노는 것이 전부였던 만큼 평소 재미난 것을 찾고 있었던 포켓몬들이었다. 해서 무언가에 보이면 금방 호기심을 띄고 모여들었는데, 이번은 그게 그린이었다는 것이니 어느덧 그린의 뒤에는 마치 동화에나 나올 법한 긴 행군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저도 모르게 행군의 대장이 되어버렸으나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그린은 제 뒤에 무엇이 따르고 있는지도 모르고 바삐 발길을 재촉했다. 체육관 관장으로서 나름 바쁜 몸이라고 자부하는 그가 이 산행을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일게 분명했다.

싸라기눈이 흩날리는 산을 오르면 붉은 녀석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강한 포켓몬과 혹한의 추위로 아무도 찾지 않는 설산에서 혼자 수련을 고집하는데, 몇 년동안 트레이너들 사이에 온갖 소문이 무성하여 소년 트레이너의 유령이라는 말까지 들리고 있지만 레드는 엄연한 사람이다. 이제는 소년이 아니라 어른이 되었지만 그린은 그에 대하여 이 변함없는 산처럼 한결같은 녀석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레드는 그린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여, 레드!”

“……그린.”

인사와 동시에 레드가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키자 그제야 뒤를 돌아본 그린은 자신의 뒤의 포켓몬 무리를 발견했다. 언제 이렇게 불어났는지 놀랄 노 자였다.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는지 깜짝 놀라는 만화 같은 리액션에 포켓몬들은 까르르 웃어댄다. 여기 포켓몬들은 왜 이리 장난기가 많은 것인지, 매번 와도 놀라게 되었다. 포켓몬 행군에 앞서 걷고 있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이 무리와 함께 산을 오른 그린은 왠지 부끄러워졌는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애써 붉어진 얼굴을 가리고선 무리를 해산시키곤 멋쩍은지 헛기침은 했다.

“그야 그린이 재밌으니까.”

놀릴 때 반응이 재밌어. 하는 소리에 그린은 냅다 눈을 뭉쳐 그 얼굴을 표적으로 집어 던졌다. 레드는 가볍게 피하곤 주인의 허락 없이 가방 속에서 따뜻한 차가 담긴 보온병을 꺼내 컵에 따르고 여유롭게 홀짝이는 것이다. 아―주 익숙하다. 그 자연스러움이란 마치 가방이 그린의 것이 아니라 레드의 것이라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예전이라면 씩씩거리며 눈 뭉치를 열심히 던졌을 텐데, 이제 그 행동에 딱히 화낼 생각도 없는지 아니면 그것도 익숙해졌는지 그린은 레드의 옆에 앉아 재킷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봉투였다. 관동에서 볼 수 있는 우편이 아니기에, 국제우편으로 짐작했다.

“우리말이야. 알로라 지방 「배틀트리」의 배틀레전드로 초대를 받았어. 너희 집으로도 초대장이 갔는데, 내가 가져왔으니 받아.”

“…….”

국제우편으로 온 편지에는 알로라 행 비행기티켓도 함께 들어있었다. 주로 은빛 산에만 머무는 만큼 누가 알려주지 않는 이상 산 아래 정보와 소식에 둔한 레드도 이름을 알고 있는 ‘알로라 지방’이란 아주 유명한 휴양지로, 칸토와 상당히 떨어져 있어 시차도 많이 난다고 하는데 관동과 같은 포켓몬이나 전혀 다른 모습의 포켓몬이 발견된다고 알려져 있다. 레드는 그것까지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익히 들어왔던 지방의 이름에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익숙한 대화다. 몇 년 전에도 이런 대화가 오고 갔었는데, 하나 지방의 포켓몬월드토너먼트(PWT)에 초대되었던 날이었다. 그때도 그 소식을 전해주려 그는 레드가 있는 이 은빛 산을 올랐었으니, 이 대화가 그때와 비슷하다고 느낀 그린의 얼굴에 왠지 미소를 본 듯했다. 그린은 곧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야 목호 씨나 관동의 체육관 관장들도 같이 갔지만, 이번은 우리 단둘이야. 말하자면 우리가 관동의 대표라 이 말씀.”

‘함께’라는 말은 두 사람에게 당연한 말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같은 태초마을 출신으로 소꿉친구로 함께 자라왔고, 함께 첫 포켓몬과 도감을 받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둘은 서로에게 라이벌이 되어 경쟁하게 되었고, 챔피언 자리를 두고 승부 하기도 했었다. 언제나 함께, 당연했다.

“갈 거지?”

“……그래.”

당연한 듯한 대답이었다. 평소와 같은 쿨한 대답을 들은 그린이 크게 웃자 레드도 입가에 미소를 담았다. ―언젠가는 분하기도 했었다. 항상 이기고 싶었다. 열심히 달려 나갔지만 어느샌가 앞질러 가는 레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이 비참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포켓몬들이 약한 탓이라 돌렸지만, 포켓몬에 대한 애정을 잊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괴롭기도 했었다. 항상 함께했기에 강해져서 그를 이기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겨서 누구보다 함께 했던 친구에게, 레드에게 자신의 강함을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그들의 여행을 끝나 레드는 은빛 산의 정상을 지키는 강자로, 그린은 상록시티의 체육관 관장이 되었다.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둘이 추구하고 있는 것은 같다. ―더욱더 강하게. 지금 두 사람은 서로를 인정하고 있다. 그 때문에 더욱더 강해지려고 하는 것이다. 강함을 인정한 만큼 최강이라는 이름을 지키고 싶었다.

“그럼 가자, 레드!”

이번에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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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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