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아르세우스 2화
가지 않은 길
라벤 박사에게서 도망친 포켓몬들에 대한 것과 몬스터볼로 포켓몬을 잡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에 제노는 적당히 맞장구만 쳤다. 죄송한데 제가 이 짓거리만 십 년 넘게 해온 사람이에요.
규토리 열매로 만든 볼로 능숙하게 세 포켓몬을 모두 잡은 제노를 향해 박사가 아낌없는 칭찬을 날렸다. 포켓몬을 두려워하는 지금과 달리, 미래에선 동네 꼬마도 할 수 있는 일. 넘치는 환호에 창피할 지경이었다.
“흐음, 그렇군요, ‘모든 포켓몬을 만난다’라….”
박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덧 축복마을의 입구에 다다랐다. 자신의 지위로 제노가 문지기를 통과할 수 있게 도운 박사는 곧장 은하단의 본부라는 건물로 향했다.
잠시 기다리자 박사가 누군가와 함께 제노에게로 다가왔다. 복장과 성별은 다르지만 저 머리색, 저 얼굴. 제노가 아는 사람과 닮아있었다.
“네가 이도인가?”
“… 네.”
“은하단 조사대 대장, 금경이다.”
익숙지 않은 호칭에 대답이 반 박자 늦어지만 태홍… 아니, 금경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이런 점까지 비슷할 필요는 없는데, 소름이 돋았다.
금경은 라벤 박사에게서 설명을 들었다며 내일 입단 시험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용건을 마치자마자 쿨하게 혼자 떠나갔다.
“엄격한 분이시죠?”
“….”
제노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저런 모습을 하고 살가웠다면 그쪽이 더 무서웠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굿모닝입니다, 이도 양!”
다음 날 아침, 은하단 본부.
금경에게서 조사대 전용 파우치를 대여받은 제노가 입단 시험을 치르기 위해 마을을 떠나기 전, 여전히 어색한 호칭을 외치며 라벤 박사가 다가왔다. 그리고 세 마리 포켓몬을 꺼내 보였다.
“당신을 위해 박사인 제가 서포트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봤습니다. 자, 이도 양. 마음에 드는 포켓몬을 고르시죠!”
순간 오 박사에게서 처음 포켓몬을 받았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는 레드와 그린이 먼저 파트너를 골라 결정권이 없었는데, 이렇게 선택지가 주어지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제노가 세 포켓몬을 찬찬히 살폈다.
셋 다 너무 귀엽다. 하지만 역시 물 타입이 제일 무난하려나. 제노가 입을 열려던 그때 시선이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몰빼미가 맹한 눈을 하고 있었다.
“어느 아이를 파트너로 하겠습니까?”
“수-”
다시 맹… 한 시선이 느껴졌다. 아니, 나 이미 풀 스타팅은 해봤단다,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 줄래?
맹….
“… 나몰빼미로 할게요.”
이참에 새 포켓몬을 키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훌륭한 선택(아마 뭘 골라도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이라며 라벤이 나몰빼미의 몬스터볼을 건넸다. 제노가 차림새와 어울리지 않는 파우치에 그것을 집어넣은 뒤, 건물 밖으로 향했다.
“복장이 참 특이하네요. 당신, 재밌는 사람이군요!”
그리고 마을과 바깥을 나누는 문 앞에서 누군가와 마주쳤다. 익숙한 금발, 밝은 회색의 눈. 하지만 난천보다 키가 크고 무엇보다 목소리가 완전히 달랐다.
제노는 그에 대한 정보를 이미 알고 있다. 이 세계의, 게임의 클리어를 위해 쓰러트려야만 하는 최종 보스.
그가 사람 좋은 미소를 하고 제노에게로 다가왔다.
“제 이름은 월로, 은행상회의 사람입니다.”
하늘에 있는 시공의 균열에서 떨어졌다는 소문이 신경 쓰여 찾아왔다고 말한 그가 포켓몬 배틀을 제안했다. 제노는 거절하지 않았다. 난천의 얼굴을 하고 음침한 속을 가진 그는 싫었지만, 나몰빼미에게 실전 감각을 가르치는 것은 중요했다. 무엇보다 상대는 거절한다고 순순히 받아들일 것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제노가 대답 대신 볼을 손에 쥐었다. 그 모습에 월로가 미소 지었다.
“점점 마음에 드는데요! 그럼, 실력을 겨뤄보죠!”
*
월로가 쓰러진 토게피를 몬스터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눈앞의 상대를 바라본다.
너무나도 능숙하게 포켓몬을 다루는 모습,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배틀 실력. 마치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이….
그는 배틀이 끝나자마자 날카롭게 벼렸던 기세를 누그러트렸다. 다시 속내를 읽을 수 없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 재밌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월로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정말 강하네요, 당신! 이도 님이셨던가요?”
“….”
“포켓몬을 겨루게 하는 건 역시 즐겁네요. 하지만 포켓몬을 데리고 있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 게 아쉽단 말이죠….”
월로가 정말 안타깝다는 듯 눈썹을 늘어트렸다. 제노가 속으로 그것을 고깝게 노려보았다. 여전히 말이 없는 그에게 상처약을 건네준 월로가 눈매를 휘어 보였다.
“자, 이건 감사의 표시로 드리는 상처약입니다!”
시험,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우리 또 겨뤄보죠!
그렇게 말한 그가 먼저 마을을 나섰다. 그 뒷모습이 사라지자 제노 또한 흑요들판을 향해 마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후 월로는 자신이 한 말을 지키기라도 하겠다는 듯 시도 때도 없이 제노의 앞에 나타나 배틀을 요청했다.
제발 좀 가세요, 남은 포켓몬들도 박살 내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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