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유료

레전드 아르세우스 3화

가지 않은 길

이른 아침. 제노가 단원용 숙소를 나섰다.

조사대의 일로 하도 불려 다니다 보니 박사가 지어준 이름도 귀에 익숙해졌다. 제복을 갖춰 입고 모자를 눌러쓴다. 크게 하품한 꼬링크가 쭉 기지개를 켜곤 폴짝폴짝 옆에 따라붙었다. 아무래도 같이 걷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지도 일주일. 조사단에서 임무가 주어지지 않더라도 제노는 이른 시각 마을을 나가 저녁때까지 포켓몬 도감의 완성에 열중했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는 거의 없었지만, 중요한 건 이곳 사회에 잘 녹아드는 게 아니라 아르세우스가 내어준 숙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나저나 그가 말한 ‘원래의 세계’라는 건 뭘까. 제노가 생각에 잠겨 걷고 있을 때,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덥석 잡아 왔다.

“어흥!”

… 어흥 같은 소리하고 있네. 한두 번이면 몰라도 이제는 놀라지 않았다. 제노가 뒤를 바라보자 그곳에는 월로가 서 있었다. 그의 뚱한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월로가 ‘비기, 배후노리기~’라며 능청을 떨었다. 그리곤 제노의 옆에서 함께 걷기 시작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도 님! 이야, 이른 시간부터 정말 부지런하시네요!”

“….”

너 피하려고 일찍 일어난 거야, 인마.

GPS도 없는 세상인데 월로는 제노가 있는 곳을 기가 막히게 알아냈다. 어떻게 한 것이냐 물으면 유능한 상인은 정보의 중요성을 잘 아는 법이라고 답할 뿐이었다. 제노의 귀에는 스토킹을 잘 포장한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반응이 없는 제노를 내려다보던 월로가 돌연 그를 붙잡고 제 쪽을 돌아보게 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제노의 옷매무새를 다듬기 시작했다. 평생 현대식 옷만 입은 제노에게 단추나 지퍼가 없는 복식을 똑바로 입는 것은 영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외투를 단단히 여민 월로가 허리에 딱 맞게 띠를 조인 다음 매듭을 묶었다.

“이도 님도 참, 칠칠맞지 못한 구석이 있으시네요.”

제노가 월로의 손길이 만들어낸 매듭을 바라보았다. 너무 순식간에 묶어서 어떻게 한 건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제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월로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도 님께서 매듭을 묶는 방식은 꽤 독특했죠.”

현대에선 평범한 리본 매듭인데 말이다.

알려드릴까요? 월로의 물음에 제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그가 처음으로 보인 반응에 월로가 기쁜 티를 숨기지 않으며 제노의 뒤에 섰다.

“자, 잘 보세요. 여기를 이렇게 잡고, 고리를 만들어서 묶은 다음 여기를 당깁니다.”

제노를 뒤에서 끌어안은 형태로 다시 매듭을 풀어낸 그가 이번엔 설명과 함께 천천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키 차이 때문에 허리를 숙인 월로의 머리카락이 아래로 흘러내려 제노의 뺨에 닿았다.

간지러운데 자세가 이래서 긁지도 못하고. 제노는 월로가 설명을 마칠 때까지 어정쩡한 자세로 굳어있었다. 그런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월로는 친절하게도 복습의 시간을 갖겠다며 처음부터 다시 시연해 주기까지 했다.

“이제 확실하게 이해하셨죠?”

“….”

제노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싱긋 웃은 월로가 몬스터볼을 꺼내 보였다.

“자, 그렇다면 가르쳐드린 보답으로 겨루기입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이 자식아.

*

월로와의 배틀에서 유일한 장점이 있다면 그가 배틀이 끝난 뒤 포켓몬들을 건강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심지어 공짜로). 포켓몬 센터도, 프렌들리숍도 없는 세상에서 직접 찾아오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월로는 꽤 중요한 역할이긴 했다. 행상인 점수 +100점, 스토킹 점수 -200점. 총 -100점이라고 할까.

그의 시시콜콜한 얘기를 들으며 도감 채우기에 열중하고 있던 때, 은하단의 조사대원 한 명이 단장실로 오라는 전목의 말을 전했다. 제노를 찾아 꽤 헤맨 것인지 대원은 제법 지쳐 보였다. 급한 일임이 분명했다. 월로는 자신도 이제 유적을 조사하러 가봐야겠다며 떠나갔다.

너 그래서 장사는 대체 언제 하는 건데. 설마 고객이라곤 나 하나밖에 없는 거 아냐…?

은하단 본부 2층에 위치한 단장실. 마을로 돌아온 제노가 건물에 들어섰을 때부터 들려온, 남녀가 다투는 소리의 근원지가 바로 이곳이었다. 열려있는 단장실의 문 앞에 서자 각각 푸른 옷과 붉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전목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말다툼의 원인은 바로 폭주하는 숲의 왕, 사마자르. 제노를 발견했음에도 그를 빼놓고 토의하던 세 사람은 전목의 의견에 따라 그에게 사마자르의 조사를 맡기기로 결정하였다.

제노는 딱히 거부하지 않았다. 이 세계에선 정해진 흐름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자신의 의견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그가 곧장 단장실을 나가려 뒤돌자 전목이 덧붙였다.

“하늘에서 떨어진 자네를 의심하는 이들은 아직 적지 않네. 그들의 신용을 얻기 위해서라도 분골쇄신의 각오로 일하도록.”

일어날 일을 이미 알고 있는 제노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너나 잘해, 속으로 한번 쏘아주곤 방을 나섰다. 세 사람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과묵하구만. 뭐, 괜한 얘기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낫지! 난 마음에 쏙 들어.”

“흥, 듣기로는 드넓은 히스이 땅을 누비며 포켓몬 도감을 채운다던데. 따지자면 우리 진주단과 더 맞아!”

이도는 이미 은하단인데도…. 전목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곧 주혜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래도 정말 괜찮을까, 저런 수상한 신참에게 맡겨도….”

“걱정하는 마음도 이해하지만, 일단은 그에게 맡겨보도록 하지.”

저래 봬도 포켓몬과 소통하며 마음을 하나로 맞추는 능력이 대단한 모양이야. 이어진 전목의 말에 두 사람이 놀란 눈을 하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수상한 신참, 제노는 임무의 자세한 내용을 듣기 위해 조사대실에서 금경의 앞에 서 있었다.

“- 매우 위험한 임무다만, 수행할 수 있겠나?”

“안 한다고 하면 어떻게 되죠?”

“… 정보를 제공하겠다.”

제노의 당돌한 발언에 잠시 침묵하던 금경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설명을 시작했다. 옆에 있던 라벤만이 기겁한 표정을 하였다.

그치만 저 얼굴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놀리는 걸 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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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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