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샛길 하나
다음 날 오전, 제노는 어제와 같은 호수에 난천과 마주 보고 섰다.
“사용할 수 있는 포켓몬은 세 마리! 어느 쪽의 포켓몬이 모두 행동 불능이 되면 끝이야!”
체육관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교체는 양쪽 모두 자유롭다는 것. 룰을 받아들인 제노가 고개를 끄덕이고 몬스터볼 하나를 손에 쥐었다.
어젯밤, 제노는 잠들기 전까지 몇 번이고 난천에게 물었다.
유적의 조사는요. 오늘 대강 큰 그림은 완성했어. 여긴 센터도 없는데요. 괜찮아, 보급품에 기력의 조각이랑 치료약 많이 들어있어. 그래도 애들 체력이 떨어지면 힘들 텐데요…. 그럼 각자 세 마리만 사용하자.
죄송한데 애초부터 저한테 거부권은 아예 없는 거였죠? 그걸 이제 알았니?
시합이 끝나면 엄청난 보상이 기다린다며 제노를 달랜 난천은 눈을 뜨자마자 그와 호수로 향했다. 미적미적 움직이는 제노를 가장 적극적으로 이끈 것은 루카리오였다. 이 자식, 아무래도 어제의 일로 단단히 삐진 것 같았다.
“처음은 너야, 부탁해!”
난천의 몬스터볼에서 루카리오가 튀어나왔다. 상성을 생각하면 가장 무난한 건 역시 가디안인가. 제노가 그렇게 생각하며 볼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옆에 서 있던 제노의 루카리오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 싸우려고?”
루카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노는 잠시 고민했다. 루카리오를 내보낸다고 해도 물가체육관에서처럼 원수갚기를 사용하게 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루카리오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제노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루카리오는 언제나 이랬다. 겁은 많으면서 마음만 앞서선, 가끔 이렇게 멋대로 나서곤 했다. 루카리오 대 루카리오인가. 잠시 고민하던 제노는 루카리오의 눈빛을 마주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미러전이구나, 싫지 않아!”
아무래도 루카리오의 그 의지가 난천까지 불태운 것 같았다. 두 포켓몬이 조용히 서로를 바라본다. 심판은 존재하지 않는 시합. 하지만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외쳤다.
“루카리오, 발경!”
“잡아!”
난천의 루카리오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들었다. 자세를 유지한 채로 침착하게 기다리던 제노의 루카리오가 상대의 주먹을 붙잡았다. 양쪽 모두 손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 그대로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잔뜩 세운 루카리오의 발톱이 밀려나며 얼음 위로 선을 긋는 것을 확인한 제노가 외쳤다.
“그대로 용의파동!”
“이런, 피해!”
제노의 루카리오가 입에 심상치 않은 기운을 모으자 난천이 빠르게 회피를 지시했다. 근거리에서 쏘아진 파동이 루카리오를 스치고, 난천의 루카리오가 뒤로 멀리 밀려났다.
“대단하구나, 너의 루카리오. 거리를 좁히기 위해 일부러 피해를 감수할 줄이야.”
“난천 씨의 루카리오야말로, 그 상태에서 공격을 피할 줄은 몰랐어요.”
순간 손을 뿌리쳐내고 정통으로 맞는 것을 피했다. 역시 힘에서는 이기지 못하는 건가. 속으로 판단을 내린 제노가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지 않아, 너도 그렇지?
“루카리오!”
제노의 부름에 루카리오가 몸을 움직이며 기세를 끌어올렸다. 공격을 크게 올리는 칼춤. 난천이 팔을 뻗으며 외쳤다.
“그렇게 둘 순 없지! 파동탄!”
“부숴버려!”
난천의 루카리오가 양손 사이에 모은 파동을 구의 형태로 날렸다. 순간 검은 그림자로 날카로운 발톱을 만들어낸 제노의 루카리오가 그것을 갈라 파쇄해 버린다.
그대로 달려간 루카리오가 섀도클로로 상대를 쳐올렸다.
“놓치지 마!”
공중에 뜬 난천의 루카리오를 향해 빠른 속도로 제노의 루카리오가 달려든다. 하지만 일순 몸을 비틀어 그것을 피한다. 공격을 빗맞힌 루카리오가 크게 뛰어 제노의 곁으로 돌아왔다.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허공에서의 회피, 판별을 사용한 것이었다.
“다시 한번 용의파동!”
“루카리오, 인파이트!”
위로 뛰어올라 용의파동을 피한 난천의 루카리오가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쏟아지는 주먹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얻어맞던 제노의 루카리오가 힘을 쥐어짜 내 입에서 큰 충격파를 일으켰다.
콰앙! 큰 파열음이 일고 두 포켓몬이 반대 방향으로 밀려난다. 날카로운 발톱에 얼음이 긁히는 소리가 나고, 이내 한쪽 무릎을 꿇은 것은 제노의 루카리오였다.
“수고했어.”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끝내고 싶었기에 제노는 루카리오를 볼로 돌려보냈다. 아직 건재해 보이는 난천의 루카리오, 하지만 인파이트의 영향은 남아있었다. 고민하던 제노가 다음 포켓몬을 꺼냈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얼음 위에 자리한 것은 이상해꽃이었다.
“이상해꽃이라. 상당히 불리할 텐데 말이지.”
난천의 말이 맞았다. 미끄러운 데다 춥기까지 한 얼음 필드, 같은 이유로 선단체육관에서는 이상해꽃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상해꽃으로 싸우고 싶어요.”
“그렇구나, 어떤 전략을 보여줄지 궁금한걸!”
루카리오! 난천의 부름에 크게 으르렁거린 루카리오가 곧장 달려들었다.
“받아쳐 줘!”
이상해꽃 또한 루카리오에게 돌진했다. 쿠웅- 두 포켓몬이 부딪히고, 밀려난 쪽은 루카리오였다.
힘이 비등비등하다면 체급 차이를 쉽게 극복할 수는 없는 법. 날려버려! 제노의 말에 휘둘러진 굵은 덩굴이 루카리오의 옆구리에 부딪히고, 힘으로 그것을 버텨내려던 루카리오는 결국 유연하게 움직인 덩굴에 붙잡혀 멀리 던져졌다.
쿵, 나무에 부딪힌 루카리오의 위로 눈뭉치가 쏟아졌다.
푸르르, 고개를 흔들어 그것을 털어낸다. 눈더미 사이로 머리만 내민 모양새를 살피던 난천이 루카리오를 몬스터볼로 돌려보냈다.
수고했어, 루카리오. 루카리오의 볼에 대고 그렇게 속삭인 난천이 다음 몬스터볼을 던졌다.
“자, 다음은 너야!”
볼이 열리며 빛이 튀어나온다. 이윽고 이상해꽃의 상대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단일 물 타입 포켓몬, 밀로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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