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한다는 건(미완)
포켓몬 / 콘테스트를 배우는 성호 / 2016년 5월 4일에 올렸던 글→비문 수정 및 정발판 이름으로 수정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어찌 되었든 시작을 했다면 반은 성공했다는 의미인데, 윤진은 그 말에 동의를 할 수 없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데봉 코퍼레이션의 후계자라는 이미지만을 봤을 때는 뭣하나 부족함 없이 자랐을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하여 성호가 못하는 것이 전혀 없을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대다수다. 부잣집 도련님이라고 해도 사람이다. 이 스물다섯 살의 청년도 사람이긴 사람이었으니 물론 못하는 것이 하나 즈음은 있기 마련이었다. 지금 그가 도전하고 있는 콘테스트가 바로 그것이다. 흔히 재벌들의 교육은 일반인이 생각치도 못할 것을 배우기도 하며 그 중 댄스는 ‘교양’으로서 또 사교계 진출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배우는 것이기도 할 텐데 성호는 해도 너무 서툴렀다. 마치 처음 하는 것처럼 말이다.
“댄스? 물론 배워본 적 있어. 사람과의 춤은 이전에 배워본 적이 있지만 포켓몬과는 처음이야.”
그래도 최대한 열심히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은 다하려는 노력은 보이고 있다. 발밑에서 아장아장 짧은 다리로 열심히 춤추는 가보리에 맞춰 보폭을 최대한 줄이며 스텝을 밟고 있었다. 그런 스물다섯 살 남정네를 보노라면 자신의 포켓몬을 위해 춤추는 모습도 서툰 그 뒷모습이 상당히 사랑스럽고 귀여워 보이기도 하는데, 그는 상당히 눈치를 보고 있는 모양이다. 뒤에서 느껴지는 콘테스트 마스터의 눈초리에 괜히 머쓱한지 멈춰서선 머리를 긁적였다.
“저번에 성호 네가 루네의 우리 집에 데려온 가보리 맞지? 이 아이가 콘테스트에 흥미가 있다니 의외네. 랄지 유적발굴을 도와주던 아이라고 하지 않았어? 이쪽은 전혀 모를 텐데.”
“네 영향이잖아, 윤진.”
그때 네가 연습하는 걸 봤다고. 후우, 한숨을 내쉬며 성호는 음악이 흘러나오던 플레이어의 정지버튼을 꾹 눌렀다. 신나서 춤을 추고 있는 와중이었다. 흥이 올라와서 기분이 좋았다. 헌데 갑자기 반주가 순간 멈추자 발을 움직이던 가보리가 당황하여 두리번거린다. 음악이 흘러나오던 곳의 방향을 찾는 듯했다. 좋아하는 춤을 추지 못하게 되자 업 되었던 기분도 다운이 되고 울상이 되어버린다. 서운한 마음이 얼굴로 표정으로 올라오는 것이다. 그런 아이의 머리를 성호가 상냥한 손길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차가운 강철 몸에 닿는 따뜻한 온기를 느끼자 가보리는 동그란 눈으로 위를 올려다봤다. 한없이 다정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조금은 쉬면서 해야지. 아직 콘테스트까지 시간은 충분하니까 천천히 하자.”
알고는 있다. 성호의 말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쉬운 모양이다. 더 할 수 있다는 듯이 볼멘소리를 내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보이면 강철포켓몬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그는 괜스레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더 이상 무리를 시키면 안 된다고 마음을 굳게 먹고선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의 말에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쩐지 이런 훈훈한 핑크빛 장면 눈앞에 보이고 있었지만 윤진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머리는 다른 생각으로 꽉 차있었다. 친구로서 부탁을 받았기도 했으니 전혀 진전이 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콘테스트는 말이지. 포켓몬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자리야. 트레이너는 자신의 포켓몬의 아름다움이 어필되도록 보조를 해주는 거지. 이렇게…… 나오렴, 밀로틱~!”
윤진이 허리춤의 몬스터 볼을 던져 올리자 그 안에서 눈부신 빛과 함께 그의 밀로틱이 나왔다. 길게 뻗은 유연하고 우아한 몸체는 마치 전설속에 나오는 인어처럼 아름답다. 색색의 비늘이 고운 빛깔로 빛나니 과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포켓몬이라고 불릴만했다.
“밀로틱……. 여전히 아름답구나. 비늘이 마치 빛을 받은 물의 돌처럼 유려한 색으로 빛나고 있어.”
“후후, 벌써 놀라긴 이르지. 나의 밀로틱의 아름다움은 지금부터라고.”
등장부터 흰 안개를 만들어 내며 고상하게 착지한 ‘그녀’는 윤진과 눈빛을 교환하더니, 입가에 호를 그리며 숨을 들이켜고 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호흡이 척척 맞더니만 더럭하게 된 즉흥적인 무대 또한 소화할 수 있는 모양이다. 밀로틱이 고개를 들어 올리면 윤진의 손 또한 밀로틱과 함께 움직인다. 손이 무언가를 가리키듯 하늘을 향했다. 둘이 하나가 된 것 같은 움직임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입안에 기운을 머금은 그녀의 눈동자가 하늘을 바라본 순간,
딱. 핑거스냅으로 인한 소리가 울렸다.
“물의 파동!”
뿜어내는 물이 서서히 얇은 파동을 만들어내어 퍼지자 마치 바람에 천이 흔들리듯 보인다. 마치 오로라처럼 보였다. 세상에 물의 파동이라는 기술로 이렇게까지 섬세한 표현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윤진의 밀로틱 밖에 없을 것이다. 파동의 끝에 물방울이 반짝이며 흩뿌려진다. 밀로틱이 꼬리로 바닥을 강하게 한번 치며 목소리를 높이면 순간 공중에 방울방울이 멈췄다가 후두둑 떨어졌다.
“Glorious~!”
기술을 예술자체로 만든다고 하는, 세간 사람들이 말하는 친구의 평가를 익히 듣긴 했지만 실제로 가까이에서 본 윤진의 모습은 놀랍기도 했다. 그 놀라는 와중에도 가보리에게 물이 맞지 않도록 자켓을 벗어 가리는데 최대한 열중하는 것은 잊지 않았지만 말이다. 성호의 옷 속에 배꼼 고개를 내민 가보리는 그 멋진 쇼를 보곤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아주 감동을 받았는지 연신 물개박수를 쳐대는데 작은 발이 맞닿아 부딪힐 때마다 캉캉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귀여운 팬이 하나 더 생겨버렸네. 아~ 그렇게 좋아하는데 왜 가리는 거야? 내 팬에게 우리의 아름다운 모습이 안보이잖아.”
“가보리는 강철과 바위 타입이야. 데미지를 입으니까 안 돼.”
“하아~…… 성호 너란 녀석은 돌을 위해서라면 폭포도 오르면서.”
“내가 돌을 좋아한다고 해도 바위 타입 인건 아니야, 윤진.”
농담도 못해? 어깨를 으쓱한 윤진은 박수를 쳐대는 작은 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그렇게 부담을 가지고 하지 않아도 괜찮아. 최대한 즐기면서 하라고? 내 말은 릴렉스하란 말이지.”
“......”
말은 들어도 그건 어려운 말이었다. 항상 작게는 아버지와 데봉 코퍼레이션을 위해 크게는 고향인 호연지방을 위해 쉴 틈 없이 일 해왔던 그다. 릴렉스 하라는 말을 들어도 그런 경험이 없이 뛰어다닌 그에게 그 말을 어떻게 이해시킬지가 최대의 난관이다.
‘쉽게 될 것이라고 생각은 안했지만.’
고민하는 듯 턱을 매만지던 윤진이 갑자기 입 꼬리를 스윽 올리며 웃었다. 성호는 그 웃음을 발견하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친구가 저 표정을 지었을 때는 뭔가 있는 것이다.
“내가 그럴 줄 알고 네게 좋은 선생님을 모셔왔어.”
“선생님?”
“누구일 거라고 생각해?”
질문의 답이 나오기 전이었다. 답을 기다리는 시간도 힘들 정도로 기다리기 지쳤는지 모른다. 성호의 질문에 답을 대신하는 통통 튀는 귀여운 목소리가 공간에 울렸다.
“짜잔~~!”
모든 불이 점등되고 두개의 스포트라이트가 그녀들을 비춘다. 화려한 등장이지만 공교롭게도 이곳에는 윤진과 성호 단 둘이 빌린 연습실이라 두 사람밖에 박수를 칠 사람이 없었다. 눈치껏 윤진이 먼저 환성과 함께 박수를 치면 성호가 눈치를 보고 따라서 어색하게 박수를 쳤다. 얼떨떨하여 제대로 상황파악을 하지 못했지만, 소녀들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하자 이내 되었다. 윤진과 같은 머리색을 가진 귀여운 여자아이와 따뜻한 가을을 떠올리게 하는 갈색머리카락의 어여쁜 여자아이는 성호도 잘 아는 사람이다. 그녀들은 윤진 이상의 콘테스트 마스터였다.
“안녕~ 바위오빠!”
“봄이? 루티아? 두 사람이 내 선생님이라고?”
“정답~! 정확히는 봄이가 바위오빠의 일일선생님이야! 루띠는 일일도우미!”
“특별히 성호 널 위해서 불러온 거라고.”
배시시 웃으며 성호에게 다가오는 루티아와 다르게 봄이는 왠지 쭈뼛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전에도 본 콘테스트 드레스기 때문에 의상 때문에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닐 테고, 다른 이유가 있어 보였다. 종종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 봄이였지만, 성호는 그 이유가 짐작 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봄이?”
“서, 성호 씨. 안녕하세요…….”
“봄이도 차암!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봄이가 다가오지도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이유를 루티아는 알고 있는 듯 했다. 루티아가 등을 밀어줘서야 겨우 그의 가까이로 다가온 봄이는 손가락을 붙여 꼼지락거리더니, 눈치를 보는 듯 시선을 올렸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했다.
“?”
“제가 어떻게 성호 씨에게 뭔가를 알려드릴 수 있을 지, 하고. 전 많이 부족한 걸요.”
이유는 그것이었다. 봄이 그녀로서는 아직 어린 나이였으니, 어린 자신이 어른인 성호에게 알려줘야한다는 것이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언제나 눈부신 배틀로 사람들을 열광시켰던 성호는 그녀가 동경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니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겐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 거였어?”
“네에...”
“후후, 난 성호가 부끄러워할 줄 알았는데 부끄러워하는 건 봄이 쪽이였구나.”
슬쩍 말을 하는 윤진을 쏘아보곤 고개를 떨구고 있는 봄이의 손을 꼭 잡아줬다. 작고 여린 손은 한 손에 다 들어갔다. 긴장했는지 조금 차갑고 떨고 있었다.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나이와는 관계없는 일이야. 가르치는 쪽도 마찬가지고. 난 오늘 좋은 스승을 만났어. 좋은 가르침 부탁해, 봄이 선생님?”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들어버렸으니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이곳에 오겠다고 응한 이상 해야만 하는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봄이는 고개를 돌린 채 말은 하지 못하고 긍정의 의미로 조용히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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