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PRIL FULL'S DAYS
만우절이지만 우정만큼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BGM / 종말이 아니야 - 누유리(vo. v flower&신화)
STAPRIL FULL‘S DAYS
(스타단 만우절 AU)
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전부 사라지게 하고 싶어.
그걸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겠어. 너흰 어떻게 생각해?
나랑 함께하지 않을래?
한밤중에 모두를 학교 운동장으로 불러모은 정체불명의 여자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어둠 속에서 후드를 푹 뒤집어쓴 채 누구에게도 눈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분명 웃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모르는 사람이 기기를 강제로 해킹해서 함께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 어두워지면 운동장으로 나오라는 연락 따위 받지도 듣지도 않는 게 나았다. 그러나, 나도 너랑 똑같은 일을 당했거든.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그 한마디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두의 발걸음이 움직였다.
“난 지금부터 나를 괴롭혔던 애들을 하나씩 자퇴시킬 거야. 아무도 모르게.”
내 계획에 동참해줬으면 해. 고요한 한밤중의 운동장에 사소한 파문이 일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초면인 사람이 내뱉은 말도 안 되는 말에 그 누구도 그를 제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의문의 여자는 후드를 벗고 자신을 1학년 D반의 모란이라고 소개했다. 그중에는 그 이름을 들어본 사람도, 아닌 사람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면식 없는 사람 여섯 명이 운동장에 가만히 서서 이야기하려니 낯설었는지, 모란이 자기소개를 하자마자 얼떨결에 한 명씩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모두가 알고 있는 이름과 직책을 가진 사람도, 아닌 사람도 있었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 이렇게 우릴 불러모았을 거라곤 생각해. 근데, 그랬다가 들키면 어쩌려고?”
“응. 확실히 갑자기 단체로 자퇴한다고 하면 이상하겠지… 그래도 상관없어.”
의심의 화살이 우리한테로 돌아가지만 않게 하면 되니까. 모란의 어딘지 모르게 무미건조한 대답에 물어본 사람도 입을 다물었다. 멜로코가 기가 찬다는 듯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따지듯 말했다.
“그걸 어떻게 돌릴 건데? 뭐 마땅한 방법이라도 있어?”
“되게 어려운데 간단해. 의심받지 않을 만한 사람이 되면 돼.”
의심받지 않을 만한, 다시 말해 모두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이란 무엇일까. 적어도 지키지도 못할 정도로 빡빡한 규칙을 세우는 사람, 특이한 취향에 잘 들어보지도 못한 말투를 쓰는 사람, 오만하며 자기중심적이고 제멋대로인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분명 그중에서도 별다른 미움을 살 만한 구석 없이 괴롭힘의 대상이 된 사람 또한 존재했다. 모란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너는? 너는 뭐 잘못한 게 있어서 이래? 계속 쏘아붙이는 멜로코를 보며 모란은 고개를 저었다.
“별다른 이유 없어. 그런데도 당한 거야. 사실 그런 케이스가 제일 편해. 이유 없이 행동했다면 나도 이유 없이 되갚아주면 되니까.”
모란은 그렇게 말하며 흐트러진 교복을 정리했다. 그의 옷차림에는 특별히 눈에 띌 만한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평범해 그가 하는 말의 무게조차 평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가 원하고 있는 것이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는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날 괴롭힌 사람들, 우릴 괴롭힌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 그 말이 뜻하는 것은 계획이 보기 좋게 성공하여 모든 가해자가 눈앞에서 사라져도, 한발 더 나아가 아예 그들이 학교를 졸업해버려도 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난 사실 얼마 전까지 학교에서 준 가방 말고 이브이 가방을 메고 다녔어. 근데 이젠 매지 않을 거야. 눈에 띌 만한 짓은 더 이상 하지 않아. …앞으로를 위해서라면.”
그건 누구에게도 거슬릴 만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바꾸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오로지 타인을 괴롭게 하는 사람을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게 하고 싶다는 그의 목표, 그 하나만을 위해서. 그게 결국 모두의 근본을 부정하는 일이라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겪은 일의 원인마저도 무시할 수 있었다. 이상한 신념에 사로잡힌 것 같기도, 얄팍한 구세주 행세를 하고 싶은 것 같기도, 단순히 자신과 뜻을 계속 함께할 사람들을 찾고 싶은 거 같기도 했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지조차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지금 그가 말하고자 하는 건 딱 하나.
나와 같이 나를 포기하면서 내 목표를 이루자.
허무맹랑한 말이었다. 더군다나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만큼이나 뜬금없이 나타난 사람의 말을 믿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희미한 가정들 사이에서 그 문장 하나만큼은 다른 무엇보다 명확했다. 그가 주는 이상하리만치 무한한 신뢰와 믿음은 무수하게 신뢰와 믿음에 배신당한 그들의 마음을 파고들기에 충분했다.
모든 것은 어렵지만 간단했다. 따르기 힘든 규칙을 세워 미움받았다면 사과하고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된다. 이해하기 힘든 취향을 가졌다면 전부 내려놓고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면 된다. 언젠가 정을 맞을 거 같을 정도로 제멋대로에 모난 성격이라면 겸손해지려고 노력하면 된다. 그 무엇도 아니라면, 자신을 구해주고자 하는 사람과 뜻을 같이하며 그냥 살던 대로 살면 된다. 그리고 물밑으로 걸어들어가 사람들을 하나씩 빠트린다. 다른 사람의 진로를 방해하는 사람을 가라앉히면 물 위는 평화롭다. 쟤가 그럴 애처럼 보여? 그 말을 구명조끼 삼아 언제까지고 잔잔한 수면 위를 빠질 위험 없이 떠다닐 수 있다.
자신의 결심을 빠짐없이 말한 모란의 눈은 주변의 그 어떤 광원보다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건 마치 하늘의 모든 별을 빼앗아 자신의 눈에만 가득 채우겠다는 선언 같기도 했다. 무한한 어둠 속 가장 밝게 빛나는 빛에 모두가 사로잡혔다. 그즈음 그들의 마음에는 이상한 확신히 싹트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믿고 자신이 올바른 사람이 되기만 한다면 단순한 복수를 넘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오만하고 실체 없는 확신이. 올바른 사람의 기준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냥 가장 보편적인 다수가 납득할 만할 정도면 되었으니까.
사실 나는 별을 되게 좋아해. …그러니까 우리 지금부터 우릴 스타단이라고 하자. 그 어떤 이름 사이에도 끼지 못한 채 단순히 자기 자신으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그렇게 스타단이 만들어졌다.
그 이름을 그들 외의 누구도 알지 못한 채로.
*
모란과 다른 사람들의 능력 아래 모든 것이 전보다 수월해져갔다. 모란은 가해자들의 모든 기기를 한 명씩 해킹하여 자퇴할 테니 그만하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 그 어떤 기기도 작동하지 못하게 했다. 그걸로 안 된다면 SNS를 해킹하여 그들의 신상 정보를 빠짐없이 털어낸 뒤 그걸 인질 삼아 협박했다. 누군가 선생님을 찾아가 그 사실을 이야기했을 때 비정상적인 루트의 접속 기록은 거짓말같이 전부 지워져 있었다. 증거가 없으니 무어라 더 문제 삼을 것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동안 학생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았던 선생님들이 실체 없는 피해를 끝까지 믿을 리 만무했다. 모란은 더 의심받을 만한 일이 생기기 전에 자퇴의 조건에 ‘어디에다도 말하지 말고 조용히, 그렇게 하기 싫으면 학교생활을 조용히’를 추가했다.
스타단의 일상은 점점 예전과 같이, 가해자들의 일상은 점점 예전의 스타단과 같이 변해갔다. 그즈음 피나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자신의 과거 잘못을 전부 인정하고 교칙을 전면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멜로코는 특유의 성질을 죽인 채 어떤 문제에도 나서지 않으며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영위했다. 추명은 다른 학생들의 말투를 모방하며 더 이상 닌자 놀이를 포함한 어떤 오타쿠 같은 행동도 하지 않았다. 오르티가는 그동안 약점이었던 자신의 집안이 가진 힘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비파는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들 중 하나인 다은이 자퇴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도 늘 하던 대로 트레이닝을 나갈 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란은… 늘 살던 대로 살았다. 단지 이브이 가방을 벗어던지고 오타쿠인 티를 조금 덜 낼 뿐이었다. 아는 게 많다고 자만하지 않으면서도 성적은 늘 1등을 유지했다. 누가 곤란해하면 적극 나서서 도와주면서도 자신에게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그 이상 참견하지 않았다. 조용히 살되 누구보다도 착실했다. 자신도, 다른 스타단 친구들에게도 더 이상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고 누구보다 평범해진, 혹은 함부로 별나다 말하기 두려워진 그들의 꼬투리를 잡아 물고 늘어지기에는 쉽지 않았다. 겁과 공포, 힘과 강제성으로 쌓아 올린 일방적인 평화 아래 모란은 누구보다 평온했다. 이제 그에게 아카데미는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일차적인 목적이 달성된 어느 날 모란에게 찾아온 추명이 말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어떻게 할 거야? 모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하던 일을 계속해야지. 사라져야 마땅한 사람들을 계속 사라지게 하는 거 말이야. 평범한 사람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든 사라져야 마땅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은 그저 철저하게 객관적이라고 믿는 그들의 주관일 뿐이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겸손한 동시에 누구보다 자만했다. 그날부터 모란은 자신 외에도 다른 피해자는 없는지, 있다면 가해자가 누구인지 학교 보안 시스템을 뚫어나가면서까지 조사해나갔다.
몇 주 후 피나가 명단을 들고 운동장에서 가만히 바람을 맞고 있던 모란을 찾아왔다. 여기 있는 애들 중 몇은 이번에 자퇴한다고 했어. 다른 애들은 학교에서 잘 안 보이더라. 그는 명단을 모란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알려줘서 고마워. 모란은 명단에 적힌 이름들에 하나씩 줄을 그으며 웃었다. 그런 모란을 가만히 바라보던 피나가 그의 옆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후련하지?”
“응. 후련해.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매번…”
그야 사라질만한 애들이 사라진 거잖아? 모란은 피나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피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금 삐딱하게 자세를 고쳐잡을 뿐이었다. 서늘한 바람이 정면으로 불어오고 있었다. 운동장의 그 어디에도 움츠리거나 쭈뼛거리며 걷는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해맑게 뛰어놀거나, 마주보며 정답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다. 모란은 자신과 스타단이 있었기에 지금의 학교가 있는 커다란 착각에 빠져들어갔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이 허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반듯한 학생회장이 그렇게 흐트러진 자세로 있어도 돼?”
“뭐래, 운동장에서 기계적으로 꼿꼿하게 서 있는 편이 더 눈에 띄거든?”
우리 이제 눈에 띌만한 일은 안 하기로 했잖아. 아, 맞다. 그랬지. 내가 말해놓고도 너무 당연해서. 시리기도 하고 실없기도 한 대화가 이어졌다. 스타단이라는 이름은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그 이름 아래 묶인 여섯은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 좋았다. 누가 정했는지도 모를 틀 안에서만 자유롭게 움직이면 되는 건 편안했다. 그래. 굳이 튀어나가려고 하는 편이 더 고통스러울지도 몰라. 앞으로도 우린 계속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까. 그렇지? 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한동안 어디를 바라보는지도 모르는 채로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들은 학교의 어디에 있든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때로는 한없이 들뜨고 때로는 가라앉는 날이 있더라도 항상 마음만은 편안했다.
그러나 가장 편안한 자리는 가장 정체되기 좋은 자리나 다름없다는 사실은 결국 아무도 깨닫지 못한 채, 시간은 잔인하게도 흘러갔다.
*
“졸업 축하해!”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 그 중심에서 모란이 모두에게 인사하며 웃고 있었다. 모란이 졸업할 때쯤 여섯 명은 함께 다니는 일이 원래부터 알고 지냈던 그 누구보다 자연스러웠다. 너흰 대체 어떻게 친해진 거야? 라는 물음에는 그냥… 서로서로 조금 도와주다가?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어느덧 스타단 모두는 어엿한 아카데미의 일원이었고 그중에서도 모란, 피나, 비파 셋은 졸업식 대표로 나와 졸업장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 되어있었다. 그 사이 스타단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피나는 무사히 후임에게 학생회장 자리를 넘기고 졸업했다. 모두의 신뢰를 받는 피나의 뒤를 이을 사람은 챔피언 랭크에 집안도 좋고 성격까지 반듯한 학생이었다. 이사장님한테 부탁받아 대공도 다녀왔었다는데? 그… 왜 있잖아, 예전에. 박사님 아들이랑 최연소 챔피언이라는 애랑 셋이서. 그에 관한 말들은 하나같이 좋은 내용뿐이었다. 덕분에 피나는 끝까지 크게 신경쓸 일 없이 스타단의 그 누구보다도 안정적이고 탄탄한 커리어를 쌓은 채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사히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멜로코는 졸업 전부터 포켓몬리그 관련 일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다. 아직도 내가 뭐에 관심있고 뭘 잘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포켓몬 키우는 거 하나는 괜찮은 것 같아서. 멜로코는 무덤덤한 말투로 말하며 컴퓨터 스크롤을 위아래로 내렸다. 리그 직원 안 되면 뭐 할 건데? 화면만을 보고 있는 그의 옆에서 굳이 불쑥 끼어들어 묻는 오르티가에게 그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몰라. 어차피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는데, 어디 있든 상관없어. 멜로코는 그렇게 말하며 무신경한 눈으로 계속해서 화면을 바라보았다.
추명은 재봉과 디자인 실력을 인정받아 졸업하자마자 바로 누룩스시티의 한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다. 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의상을 제작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능통했지만, 정확할 정도로 몸에 딱 맞는 옷만 만드는 바람에 조금 끼거나 널널하게 입는 걸 선호하는 사람들하고는 맞지 않았다. 수학 열심히 공부했었는데 가끔은 그 딱 떨어지는 결과조차도 무용지물 같네. 추명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모두는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곁에 있어줄 뿐이었다.
오르티가는 졸업할 때쯤엔 이전과는 주변 평판이 180도로 달라져 있었다. 모두가 그를 단순히 핏줄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어패럴의 후계자에 적격인 인물이라며 입을 모아 말했다. 그는 그럴 때마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졸업할 때까지도 별로 키가 자라지 않아 겉모습만은 아직 도련님 태를 벗지 못한 것 같이 보였지만 어딜 가도 겸손하고 어른스럽다는 말이 뒤따라왔다. 경영 수업이 어떻냐는 물음에는 몰라. 그래도 해야 할 일이니 해야지. 라고만 대답했다.
비파는 졸업식 날까지도 주변 사람들의 무수한 응원을 받았다. 그의 앞날을 기대하거나 축복해주는 사람들은 그가 입학할 때보다 배로 늘어나 있었다. 학생으로서도 체육 특기생으로서도 트레이너로서도 우수했던 그는 격투기 선수로서 계속 우수하기를 선택했다. 이제부터 언니 보기 어렵겠네.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는 멜로코에 그는 너희도 마찬가지잖아. 라 대답하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만나겠다고 약속했다. 허울 좋은 실체 없는 미래를 기약하는 게 아닌 지금에 계속 충실하겠다는 단단한 진심이었다.
그리고 모란은… 평범했다. 천재적인 해킹 능력을 바탕으로 각종 공기업, 대기업을 포함한 여러 회사에서 취직 제안을 받은 그는 모든 요청을 거절하고 프리랜서로 활동할 것이라 말했다. 그 말인즉 어느 이름에도 속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았다. 아깝지 않냐는 비파의 물음에 그는 나는 앞으로도 계속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라 답했다. 난… 스타단이면 됐어. 실로 스타단의 보스다운 말이었다. 그 말에 누군가는 감동하거나 감격하고 누군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으며 누군가는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보스라서가 아니라… 난 앞으로도 스타단을 계속하고 싶어.”
“우리도 그러고 싶으니까 계속하면 되잖아? 걸리는 거라도 있어?”
“멜로코 너도 알잖아. 우린 이제 어른이고… 더 이상 우정이란 이름만으로 한데 묶이기에는 어려워. 얄팍하지 않아도 얄팍하게 취급하고, 예전과 같은 힘을 낼 수 없다고.”
“그럼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뭔가, 무언가가 필요해. 더욱 공적이고 믿을 만하고, 의심받지 않을 만한… 무언가가.”
그게 뭔데. 멜로코의 말을 끝으로 여섯이 서 있는 아카데미 앞이 잠시 조용해졌다. 졸업하고 나서도 스타단을 계속하겠다는 모란의 말은 그들의 무대를 아카데미에서 사회로 넓히겠다는 말과 같았다. 그건 비단 테이블시티뿐만 아니라 팔데아지방 전역으로 범위를 넓힐 것이라는 선언과 다름없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졸업하고 나서도 스타단을 계속하겠다는 말은 부질없게 들리는지도 몰랐다. 그야,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은 팔데아지방 전역에 수없이도 많다! 모란은 그걸 목표로 하고 있었다. 단순히 나쁜 사람을 혼내주자는 정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에 더 이로운 일을 하자는 조금 더 사회인답고, 어른스러워진 명분 아래였다.
“왜냐고 하면 솔직히 할 말은 없어.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나한테 딱히 이득 될 것도 없어. 그냥 난 시작했으니 끝을 보고 싶을 뿐이야.”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사라지게 한다. 그것이 스타단의 존재 이유였다. 처음부터 ‘아카데미 안에서’라거나 ‘우리와 관련된’ 이라는 수식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모두는 모란의 굳건한 신념 앞에서 이성적인 판단력이 흐려졌다. 아마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의 찬란한 빛에 사로잡혀 이성을 빼앗겨버렸는지도 몰랐으리라. 함께하고 싶어. 가 아닌 함께할 거지? 라는 말에도 그들은 당연히 뒤를 따라갔다. 굳이 만들어나가려 하지 않아도 이미 철저하게 예정되어 있던 미래였다.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굳이 손까지 들며 오르티가가 말을 꺼내자 모두가 그를 돌아보았다.
“아. 근데 당연히 우리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어패럴의 이름을 빌릴까 하는데…”
혹시 사업제안서나 계획서 작성해본 적 있는 사람? 오르티가의 말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난 개발 계획서는 작성해 봤는데…. 한 기업 후계자라는 애가 그것도 몰라? 어딜 취직해서 일을 해야 알든 말든 하지. 생각도 못해본 일이라 잘 모르겠네. 내가 알고 있는 분야는 아니어서, 미안해. 등등 오르티가가 원했던 대답을 제외하고는 모든 경우의 수의 대답이 전부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공적으로 엮이자면서 이게 맞는 상황이야? 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여섯이서 결혼을 할 수는 없었기에 사회적으로 스타단이라는 이름을 계속 유지하려면 일을 같이 하는 것이 최고이자 최선이었다.
“얘들아, 그럼 우선 우리가 공통적으로 할 만한 일이 뭐가 있는지부터 찾아보는 게 어떨까?”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질 뻔했던 분위기가 비파의 한마디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순간 모두가 심각한 고민에 잠겼다. 공통적으로 잘하는 거? 아무리 다들 여러 험난했던 시기를 거쳐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왔다고 해도 타고나길 잘하는 분야까지 바꿀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누군가는 이과 쪽에, 누군가는 예체능에, 누군가는 문과 쪽에 재능이 있었다. 어느새 사람들이 많이 떠나 선선한 바람만 불어오는 아카데미 앞에 갑작스레 무거워진 공기가 감돌았다.
“아, 생각났어. 내가 찾아보자고 했는데 결국 내가 말하네.”
배틀 잘하잖아, 우리. 그 말에 무언가 큰 깨달음이라도 얻었다는 듯 다른 사람들의 눈이 비파를 향했다. 그렇네! 역시 언니 천재! 멜로코의 환호를 시작으로 무언가 길이 보이기 시작했는지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스타단으로 있으면서 딱히 배틀을 할만한 일은 없었지만 비파는 가끔 다른 사람들의 배틀 코치가 되어주곤 했다. 나 혼자 배틀 잘한다고 말하면서 가만히 있는 것보단 그 편이 더 믿음직스러우니까. 모두는 그게 1순위가 아닐 뿐 분명 배틀에 소질이 있었다.
스타단의 모두는 포켓몬과 관련된 일에 능숙했지만 기르던 포켓몬이 가끔 스스로 볼을 깨고 나와 야생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오르티가의 브리무음이나 멜로코의 카르본이 그런 케이스였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들은 가끔 공허해진 기분도 들었지만 그 역시 한순간이었다. 그런 사소한 걸 신경쓰기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들 모두는 모란을 만난 후로부터 앞만을, 오로지 그와 함께 나아가야 하는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은 생각이 났어. 우리 트레이닝 센터를 세우자.”
자세한 것까진 해봐야 알겠지만 일단은 우수한 포켓몬 트레이너를 육성하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는 말이면 돼. 아직 형태 없는 무언가인데도 명쾌한 답을 찾았다는 것마냥 모란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는 항상 두루뭉술한 말로 시작하지만 끝내는 누구보다도 명확한 실체로 만들어 눈앞에 보란 듯이 내놓는 사람이었다. 그는 스타단을 만들자고 말한 이후로 어떤 사람의 신용이든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 동시에 행동으로서 다른 스타단 친구들에게 신용을 주었다.
“…뭔가 가닥이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그치? 추명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럼 이제 너희가 사업 제안서 쓰는 법만 알아오면 되겠네!”
왜 너희야? 너도 포함이야. 오르티가. 어차피 그걸 제출할 건 너잖아. 추명이 그를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아무튼! 대강 뭐가 나온 것 같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고! 이제 다들 집에 가! 멜로코가 손바닥을 짝 치며 상황을 정리했다. 각자 가자는 듯 말했지만 그 누구도 나서지도, 뒤쳐지지도 않고 함께 아카데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 말한 건 내가 정리해놓고 좀 더 생각해볼게. 다음에 모일 때 참고할 수 있으면 좋잖아?”
“응, 고마워. 피나. 나도 쓸만한 정보가 있는지 관련 사이트 좀 해킹해봐야겠어.”
뭐? 그냥 평범하게 검색해도 되잖아! 농담이야, 농담. 누가 농담을 그렇게 살벌하게 해! …실없는 말들이 오고갔다. 학교 안을 가득 채우던 별들은 어느새 하나둘 빠져나가 사회로 흩어져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세상을 별로 가득 채우겠다 다짐한 별들만큼은 흩어지지 않고 하나 되어 세상을 향해 걸어나가고 있었다. 그 걸음의 끝이 향하는 곳이 어디일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을 사라지게 한다는 목적이 데려다주는 종착점이 밝을 것이라 믿는 게 아니었다. 그저 밝든 어둡든 지금을 함께하는 서로만을 바라보며 앞을 향해 하염없이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
몇 년 후, 팔데아지방의 다섯 곳에 트레이닝 센터가 세워졌다. 주변의 자연경관을 크게 해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세워진 다섯 개의 건물은 누가 봐도 최신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시공도, 시설도 완벽했다. 허름하거나 어설픈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센터의 이름은 스타 트레이닝 센터. 당연하지만, 스타단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다섯 개의 지부에는 모란의 제안 하에 각각 카시오페아자리의 항성 이름을 하나씩 붙였다. 왜 하필 별자리 중에서도 카시오페아자리야? 그냥. 내가 카시오페아자리를 좋아해서. 길잡이별, 뭔가 멋있잖아? 그럴듯한 명분 아래 그럴듯한 장소에 그럴듯한 이름이 붙은 그럴듯한 센터가 지어졌다.
명목상의 센터장 자리에는 오르티가가 앉았다. 실질적으로 모두를 이끄는 모란은 프리랜서를 그만두고 센터의 보안 담당으로 임명되었다. 피나와 멜로코는 아예 다니던 리그와 대기업을 관두고 센터 직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아깝지 않아? 라는 대답에 둘의 대답은 일관적이었다. 상관없어. 어차피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으니까. 어디 있어도 그대로일 거라면 스타단과 함께하는 편이 나았다. 추명은 센터에서 일할 수는 없었으나 센터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유니폼 디자인을 전담하며 앞으로도 쭉 가능한 형태로 함께할 것을 약속했다. 비파 역시 바쁜 선수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기꺼이 센터의 홍보대사를 자처하며 각종 이벤트에도 되는 대로 얼굴을 비추었다.
센터의 트레이닝 담당에는 우수한 트레이너들이 임명되었다. 그중에는 배틀학을 전공한, 늘상 기운찬 얼굴을 한 여자도 있었다. 그는 아카데미의 배틀학 교사를 오랫동안 지망해 왔지만 자리가 나지 않아 다른 곳에서라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고 싶다 말했다. 모란은 센터 직원들이 지나가듯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차라리 그가 아카데미의 배틀학 교사가 되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당신 같은 매사에 의욕 넘치고 열정적인 사람이라면 분명 아카데미 교사들에게 실망했을 거야. 그래도 그 사람이 그때 학교에 교사로 있었다면 무언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부질없는 가정이었다.
스타 트레이닝 센터 안에서의 스타단은 전보다 더욱 형식에 매여 있으면서도 자유로웠다. 어패럴의 재력마저 완전히 등에 업은 그들은 팔데아지방의 어디든 가지 못할 곳이 없었다. 법의 망을 피해다니는 모든 나쁜 사람을 그들의 방식대로 처벌할 수는 없어도 하나라도 더 찾아내는 것은 가능했다. 뉴스가 결국 잡히지 못한 흉악범에 대해 보도하면 모란의 주도 하에 그들은 그 즉시 인적사항부터 알아내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그의 자수하겠다는 말을 받아냈다. 눈에 띄는 숫자는 아니더라도 잘못을 저지른 누군가, 남에게 피해를 입힌 누군가가 자수했다는 기사가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후련해? 응. 벌받을 만한 사람이 받았잖아. 모란은 언제나와 같은 물음에 언제나와 같이 답하며 웃었다. 그즈음의 그는 완벽하게 자신이 고통받는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모두의 히어로 행세를 하는 사람은 결국 누구의 히어로도 될 수 없다. 그 사실은 영원히 알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이 구해줬다 믿는, 당사자들도 구원받았다 믿는 사람 다섯이 그의 곁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세운 울타리를 부숴 만든 또다른 울타리 속에서 모란은 아무 죄책감 없이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는 더 많은 별로 세상을 가득 채우고자 했다. 영영 닿을 수 없는 계획이란 걸 알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별을 따려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계속, 또 계속.
*
“센터 입구 벽이 너무 허전하지 않아?”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센터 근처 마을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던 사이 불쑥 멜로코가 말했다. 왜, 네가 보기에 미관적으로 별로야? 오르티가의 말에 멜로코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너무 비어 있어. 너무 뭐가 없어. 그는 단어만 바꾼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계속 되뇌었다. 모두가 그 점을 의식하고 있던 건 아니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 그렇게 말하니 내버려 둘 수도 없을 거 같았다.
“커다란 액자를 걸자.”
우리 단체 사진으로. 피나의 제안에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확실히 그럴듯한, 괜찮은 생각이었다. 센터에 정식으로 속한 사람도, 아닌 사람도 있었고 모두가 명목상으로 같은 직위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떻게 센터가 세워졌냐는 물음이 나올 때마다 항상 오르티가가 여섯 명의 이름을 모두 거론한 탓에 직원이 아닌 사람의 사진이 걸려있어도 그게 여섯 명이라면 특출나게 이상할 건 없었다.
“사진은 어떻게 찍고?”
“그냥 바른 자세로? 아, 어떻게 찍냐고 말한 김에 네가 사진 찍을 때 입을 옷을 만들어주면 되겠다. 센터장인 내가 특별히 허락할게!”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추명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면서도 바로 옆에 앉은 피나에게 무슨 옷이 좋냐고 물었다. 공적인 자리면 역시 정장 아닐까? 추명은 그 자리에서 스케치북을 꺼내 바로 펜을 긋기 시작했다. 소름 끼치도록 일정한 디자인의 바지 정장 여섯 벌이 단숨에 그려졌다. 너무 단조로우면 그러니 조금 포인트를 주는 게 어떻냐는 모란의 의견에 겨우 넥타이 색을 달리했을 뿐인 옷 여섯 벌이 빠른 속도로 완성되었다. 모두는 그가 그들의 사이즈에 정확히 맞는 옷을 제작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옷을 입고 나서도 너무 딱 맞는다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굳이 맞추려 하지 않았던 구두마저도 굽의 높이와 색상이 모두 일정했다.
“이렇게 같은 옷을 입고 한데 서서 사진을 찍으려 하고 있으니까, 진짜 뭐랄까… 가족 같네.”
비파가 뜬금없이 내뱉은 가족이라는 단어에 누구는 미소를 띄고 누구는 그게 뭐냐는 표정을 짓고 누구는 고개를 저었지만 아무도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왕 가족이라고 할 거면 어디다 집이라도 짓지 그래? 멜로코의 말에 모두가 웃었다. 그 역시 한 톨의 부정도 담겨있지 않은 순수한 웃음이었다. 모두는 항상 순수하게 한마음이었다. 그들의 마음이 향하는 곳에 대체 무엇이 있는지 모를 뿐이었다.
“이렇게 여섯이면 키가 작은 세 분이 앉고 키가 큰 세 분이 뒤에 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사진관 직원의 말에 모두가 일제히 움직였다. 앞줄에는 멜로코, 모란, 오르티가가 앉았고 뒷줄에는 비파, 추명, 피나가 섰다. 제일 크니 가운데에 섰으면 좋겠다는 직원의 말에 비파는 뒷줄 가운데로 자리를 옮겼다. 누구도 가운데에 앉으라고 하지 앉았지만 모란은 이미 자연스레 앞줄 가운데에 앉아 똑바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모일 때도 그는 항상 무리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누구도 그가 중심임에 불만을 토로하거나 고깝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란을 포함한 모두에게는 그게 당연했다. 굳이 보스라고 부르지 않아도 그는 이미 누구보다 보스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럼 찍습니다.”
“아, 잠시, 잠시만요!”
모란의 다급한 외침에 시선이 일제히 가운데로 향했다.
“가, 갑자기 이런 각 잡힌 자리에서 웃으려고 하니까 어색해서… 자연스러운 웃음이 안 나와.”
우리 웃고 있어야 하잖아. 단체 사진이란 건 원래 그렇게 찍는 거잖아.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 자리에 앉아 고민에 빠진 모란의 옆구리를 멜로코가 슬쩍 건드렸다.
“뭘 고민해? 우리 항상 하는 인사 있잖아. 그거. 그 인사 하면서 활짝 웃어.”
“그, 그러면 사진치고는 너무 환해지지 않을까? 입이 크게 벌어지잖아…”
“뭐 어때? 어색하다면 그렇게라도 웃어야지. 그리고 그 편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일지도 몰라.”
모란은 그렇게 말하는 멜로코에게서 이때까지와는 다른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느꼈으나 싫지 않았다. 웃음이든 다른 표정이든 너무 과해 보이지도, 모자라 보이지도 않게. 적당한 감정을 적당하게 드러내는 것은 사회인의 기본 소양이었고 그들 역시 철저히 지키며 따르는 문장이었다. 그렇지만 왜인지 오늘만큼은…
“그럼 나만 하긴 좀 그러니까 너희 다같이 해주기다?”
당연하지! 모두가 입모아 대답했다. 모란은 그제서야 안심했는지 다시 두 다리를 편안히 두고 똑바로 앞을 보고 앉았다. 똑바로 앞을 보는 것조차 어려웠던 그는 어느새 빛이 정면으로 비춰들어와도 눈을 감지 않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자신을 비추는 어떤 빛이든 전부 빼앗아 반짝이는 눈에 담고 싶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어. 그렇게 온 세상을 별빛으로 가득 채우고 나면 우린 무엇을 할 수 있게 될까. 누구도 답할 수 없는 물음이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우린 지금 이렇게 모여서 사진도 찍고, 웃고, 앞으로도 계속 해야 할 일을 하며 행복할 테니까.’
목적지를 몰라도, 정의감에 취했을 뿐이라 해도, 옳지 않은 일이라 손가락질해도, 나쁘다 말해도 계속 함께할 거야? 그건 스타단을 만난 이후로 어느 때의 모란에게 물었어도 그렇다 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다른 누구에게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고마워. 얘들아.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말하며 모란은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럼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수고하셨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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