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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 STAR T 3A.M.

오타쿠들에게 소통은 어려워

BGM/ 온라인 게임 폐인 슈프레히코어 - cover by MABODOFU(원곡: 사츠키가 텐코모리)

개굴닌자의물수리검 님이 접속하였습니다.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추명?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소인은 가끔 밤늦게 게임을 하오

개굴닌자의물수리검: 그러는 카시오페아 나리도

개굴닌자의물수리검: 꽤나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잖소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새벽 세시면 늦은 시간은 아닌데

개굴닌자의물수리검: 그렇소…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뭔데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아무것도 아니오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그래…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그나저나 닉네임 처음 제대로 봤는데 되게 재밌다

개굴닌자의물수리검: 고맙소만

개굴닌자의물수리검: 그걸 카시오페아 나리가 말하니 뭔가…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뭐가?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아무것도 아니오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수상한데… 알겠어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아무튼 이렇게 만났는데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대전이라도 한판 하자 어때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좋소

*

모란은 얼마 전 이야기를 하다 우연히 추명과 자신이 같은 게임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연스레 추명 쪽에서 친구 신청이 들어왔고 모란은 메시지를 받자마자 닉네임도 제대로 보지 않고 수락하였다. 그야 실제 친구랑 같은 게임을 한다는 거 대체 언제적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는걸. 비록 사소한 일이지만, 낯선 이름이 주는 의심마저도 한번에 거둬질 정도로 모란에게는 기쁜 일이었다. 이제 게임 메신저가 아니라 그냥 문자로 게임하자고 말할 사람이 있어! 앞으로도 시간 날 때마다 쭉 같이 할 수 있겠지? …절교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지만.

‘그러고 보니 인터넷 친구나 나나 추명에게는 별 차이 없으려나.’

물론 자신도 그의 얼굴을 제대로 아는 건 아니었지만 형태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과 그조차도 모른다는 것에는 그림자분신과 고스트다이브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당장은 형체를 알 수 없는 듯 보여도 엄연히 필드에 나와 있는 사람과 아예 필드 밑에 있는 것은 다르다. 그러니까 나는 너무나도 긴 1턴을 보내고 있는 거다. 2턴은… 스타 대작전을 시작할 때일까? 아니면 언젠가 친구들 앞에 제대로 나설 수 있을 때? 잘 모르겠다.

모란은 메신저에 있는 추명의 닉네임에 커서를 대고 오른쪽 마우스를 눌러 [프로필]을 클릭했다. 한치의 예상도 빗나가지 않고 직업은 닌자, 스탯은 딱 봐도 고인물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수치였다. 그가 낀 장비는 모두 현질해서 살 수 있거나 거래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순수하게 게임 플레이만 많이 했다는 거겠지. 귀여운 아바타를 사려고 현질했지만 정신 차리고 보면 결국 장비 강화에 돈을 전부 써버리고 마는 자신과 다르지만 어딘가 같다고 모란은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둘의 아바타는 직업에 맞게 정직했다. 추명은 닌자. 모란은 전사. 보이는 그대로였다.

개굴닌자의물수리검: 그러고 보니 카시오페아 나리는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왜 전사를 선택했소?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별 이유 없는데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그냥 난 전사가 제일 멋있더라고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보통 앞에 적 있으면 냅다 부딪히는 편이라서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아무래도 근접이나 딜탱이 적성에 맞는 듯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카시오페아 나리의 플레이스타일을 알 수 있었소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알려주셔서 감사하오^^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아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잠시만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이건아니지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못들은걸로해

개굴닌자의물수리검: 그럴 수는 없소

추명이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대전도 하기 전에 플레이스타일을 알려주다니 너 제정신이냐고… 한 수 지고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이기면 상관없는 일이었다. 모란은 마지막으로 스킬셋 점검을 끝내고 추명에게 1:1 대전을 신청했다. 포켓몬 배틀이 아니라 진짜 배틀을 먼저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언젠가는 스타단의 모두와 얼굴을 마주보면서 포켓몬 배틀도 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모란은 대전방으로 이동했다.

*

‘역시 쉬운 상대가 아니야…’

가볍게 시작한 추명과의 1:1 대전 플레이는 20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어라, 이거 원래 빠르면 5분 안에도 끝나는 건데? 물론 프로필의 승패 전적에 1승 1패가 기록되는 거라지만 나름 친선전임에도 불구하고 둘은 진심전력이었다. 적이 있으면 냅다 부딪힌다는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도 추명은 모란의 움직임을 알고 있다는 마냥 행동했다. 모란 역시 게임에 들어가고 얼마 안 되자마자 바로 추명이 어떤 식으로 플레이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일단 방어부터 하고 나서 공격에 신경쓰면서도 틈이 보일 때마다 놓치지 않고 조금씩 상대의 체력을 깎아나갔다. 공격을 먼저 하고 방어에 들어가는 자신과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상대가 어떤 상태이든 일단 부딪히는 자신과 상대의 상태를 관찰하다 공격이 정확하게 들어갈 타이밍에만 움직이는 추명. 그야말로 선택한 직업뿐만이 아니라 이 대전 자체가 닌자와 전사의 싸움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수리검과 표창은 방패로 막고, 날아오는 칼은 은신술로 피한다. 서로가 너무 정직한 나머지 오히려 끝을 가늠하기 힘들다.

‘현실에서도 이랬다면 좀 더 괜찮았을까?’

모란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추명의 속내를 잘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자신 역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서로가 서로를 너무 모르기에 닮아있는 거라고 봐도 될지도 몰랐다. 현실은 게임이 아니기에 전략 유출은 단순히 실수했다고 끝날 무게가 아니며, 만난 지 1분 만에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가명으로 내 진짜 이름을 가리고 있고 너는 두건으로 네 진짜 얼굴을 가리고 있다. 그야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한 겹씩 숨겨졌기에 공평하다. 그런데 게임에서는 서로가 이렇게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자신을 전면에 내놓은 채로 싸우고 있다니, 어쩌면 누구든 아바타를 한 번씩 걸치고 나서야 비로소 서로에게 완전히 솔직해질 수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도 너도 언젠가는 가명이고 두건이고 다 벗어던지고 만날지도 모르지. 근데 일단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니잖아. 그래서 모란은 딱히 더 가까워지려고 애쓰지 않으면서도 멀어지지는 않도록 의식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일수록 더 천천히 알아가는 편이 좋았다. 아까도 말했듯 현실은 게임이 아니기에 아무한테나 냅다 부딪히지는 않는다.

“아!”

모란의 탄식과 함께 추명의 표창에 쓰러진 캐릭터의 얼굴이 클로즈업. LOSE라는 글자가 모란의 컴퓨터 화면 안을 가득 채웠다.

맞다. 보통 애니에서 적이 독백하고 있을 때 주인공이 그 사이를 노리고 공격했지.

깜빡 잊고 있었다. 나는 적이니까 함부로 틈을 주어서는 안 됐는데….

뭐…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나?

*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카시오페아 나리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아무래도 소인을 이기려면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조금 더 수련이 필요할 것 같소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아니거든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잠시 딴생각하다가 방어할 타이밍을 놓친 거라고 ㅡㅡ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그전까지 완전 내가 우세였거든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의심스럽지만 그냥 그런 걸로 하겠소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소인과 맞먹는 실력이었다는 것만큼은 인정하오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나도 인정할게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오랜만에 실력 맞는 사람이랑 해서 재밌었어

친선전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지고 나서도 바로 개운해지는 대전은 오랜만이네. 모란은 꽤나 상쾌해진 마음으로 기지개를 켰다. 목을 쭉 빼서 화면을 보고 손으로는 키보드를 정신없이 연타한 나머지 단시간에 몸이 뻐근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게임을 그만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하지. 게임은 원래 몸이 조금 피곤해졌을 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이거 나중에 비파 언니나 피나가 들으면 그 자리에서 쓰러질지도.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카시오페아 나리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응?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소인은 정말 감격이오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카시오페아 나리랑 같이 게임을 할 수 있어서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갑자기?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원래 닌자란 갑자기의 직업 아니겠소?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너는 가끔 보면 진짜로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통 알 수 없는 소리만 한단 말이지

개굴닌자의물수리검: 남의 이해를 바라고 하는 말이나 행동은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아쉽게도 소인의 주 스탯이 아니어서 말이오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그렇구나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나도 남을 이해하려 드는 게 내 스탯은 아니지만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노력하고 있어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나한테는 이제 보스라는 특별 칭호가 있으니까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예전처럼은 할 수 없어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소인이 보았을 땐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 같소

개굴닌자의물수리검: 남을 이해하기까지는 어려워도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이해하고 나면 누구보다 따뜻해지는 사람이라고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소인은 생각하고 있소

모란은 잠시 채팅창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물론 길게 알고 지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추명하고 이런 대화를 해본 적이 있었던가… 아니, 애초에 게임이 아니면 추명한테 별로 비슷한 느낌으로 말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지금 이 대화도 게임 메신저를 한번 거쳤기에 자연스러운 거겠지? 새벽이라 그런 건지 게임이라 그런 건진 몰라도 모란의 텐션은 평소보다도 더 차분했다. 뜬금없이 전화나 문자도 아니고 게임에서 채팅으로 진지한 이야기를 하게 되다니. 어색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카시오페아 나리?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아 아냐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잠시 무슨 생각 좀 하느라고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소인은 사실을 말했을 뿐이오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그래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그러고 보니 게임 몇시까지 할 거야?

개굴닌자의물수리검: 그게 사실은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원래 잠시 들어와서 아이템 정리만 하고 가려고 했소만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카시오페아 나리가 대전을 하자고 해서…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소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헉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그냥 가도 됐는데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아무튼 알았어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카시오페아 나리는 언제까지 할 생각이오?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딱 4시까지면 적당할 거 같아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너무 늦지도 않고

개굴닌자의물수리검: …?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뭐?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아무것도 아니오

모란은 어느 부분에서 추명이 물음표를 채팅창에 띄웠는지 잘 알았지만 그냥 모르는 척했다. 어쩔 수 없잖아. 누군가한테는 새벽 4시가 오후 4시라고. 늦게 자는 시비꼬나 일찍 일어나는 시비꼬나 같은 시간에 먹이를 먹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원래대로라면 지금 시간대가 제일 고요했는데, 지금은 방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활기를 띄고 있었다. 추명이랑 같이 게임을 해서일까…

모란은 새삼 추명이 금방 게임을 끄려고 접속했다가 게임까지 같이 해줬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어쨌든 개인적인 일에는 철저하게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근데 돌이켜보면 자신도 마찬가지인 것 같기도 했다. 그가 하는 사고의 중심에는 언젠가부터 자신이 아닌 다른 친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결론은 또 빙글빙글 돌아 하나에 수렴한다. 나는 스타단을 만나서 달라졌다. 정확히는, 이제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보스라는 칭호는 아무 유저한테나 주어지는 게 아니잖아.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생각해봤는데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지금 시간이 애매하게 남는단 말이지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그래서 말인데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아예 너도 나랑 대전 한 판 더 하고 자는 게 어때?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일단 난 좋은 생각인듯

개굴닌자의물수리검: ?

개굴닌자의물수리검: 그렇지만 아까 한 걸로 봐선

개굴닌자의물수리검: 한 판 더 하면 4시가 넘어버릴 것 같소만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뭐 어때 시작한 시간이 3시대면 됐지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원래 시간은 게임 한 판 끝나고 나서 다시 세기 시작하는 거라고

개굴닌자의물수리검: 뭐 소인도 기왕 게임을 켰으니 말이오

개굴닌자의물수리검: 좋소

개굴닌자의물수리검: 2패 적립할 준비는 되었소?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아니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이번엔내가이길거임

이브이의브이브이브레이크: 두고봐나지금스킬셋재정비한다

모란의 손이 다시 빨라졌다. 아직 3시야. 끝내기는 너무 일러. 게임도, 추명과의 대화도… 더 해야 한다고.

이번에는 반드시…

꼭…

싸우다가 딴생각 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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