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
유료

18화

한 갈래 길

늦은 시간, 담청시티에서 인주시티로 향하는 38번도로.

체육관 시합에 이어 기싸움까지 마친 실버와 심향은 산길을 좀 걷더니 조용해졌다. 초행길에서도 내내 투닥거리더니, 이제야 좀 지친 모양이었다.

마그케인의 도움을 받아 손쉽게 피운 불로 냄비 밥을 지었다. 밥이 익는 동안 담청시티에서 구한 대쓰여너 고기를 소금과 설탕을 넣은 물에 담가 비린내를 제거한다. 이걸 상하지 않게 챙겨오기 위해 마트 직원에게 아이스팩도 받아왔지. 맛있는 거 먹이기 참 힘들다는 생각을 하며, 고기를 꺼내 물기를 제거했다. 옆에서 심향이 관심을 갖고 기웃거렸다. 실버는 안 그런 척하면서도 흘긋거리며 시선을 보냈다.

포일을 펼치고 얇게 채 썬 양파와 당근을 올렸다. 그 위로 치킨스톡을 조금 뿌리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고기를 올린다. 버섯도 잘게 찢어 곁들인 뒤, 버터를 크게 한 덩어리 얹었다.

이 요리를 하기 위해 가장 작은 사이즈로 하나를 샀다. 고기도 버터도 오늘 다 먹어버리면 문제없을 거야, 응. 성능 좋은 청소기 마냥 음식을 먹어치우는 두 사람을 신뢰가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뭘 봐?”

… 시선을 다시 내렸다. 호일 끝을 말아 잘 감싼 다음, 그대로 프라이팬 위에 올렸다. 불 위에서 냄비를 치우고 대신 프라이팬에 열을 가했다. 중간에 심향이 냄비 뚜껑을 열 뻔했지만, 잘 막아냈다. 냄비 밥은 뚜껑을 덮은 채 뜸을 들이는 게 중요하니까.

고기는 프라이팬의 뚜껑을 덮고, 약한 불에서 15분 정도 찌듯이 익힌다. 불 조절은 마그케인에게 맡겼다. 불꽃 타입 포켓몬이 있으면 편하구나. 열심히 프라이팬을 보고 있는 마그케인을 쓰다듬어준 뒤, 냄비의 뚜껑을 열었다. 하얀 김과 함께 갓 지은 밥 냄새가 올라왔다.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냄새. 꼬르륵, 누구에게서 난 것인지 모를 소리가 났다. … 고개를 돌리는 걸 보니 실버의 배인가 보다.

각자의 그릇에 밥을 덜어주고, 잠시 기다렸다. 이제 다 익었겠지. 포일의 끝을 조심스럽게 잡고 접시 위로 옮긴다, 아뜨뜨. 손가락 끝을 후후 불고 있자 실버에게서 한심하다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먹으면 될 것 같아.”

“잘 먹겠습니다!”

우렁차게 외친 심향이 포일을 조심스럽게 벗겨내자, 고기가 그 맛깔스러운 자태를 드러냈다. 윤기가 흐르는 붉은 살코기. 버터로 인해 더해진 풍미가 절로 입에 침이 고이게 했다.

심향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살을 조금 발라내어 한입 맛보았다. 으음-! 곧장 미소와 함께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비리진 않아?”

“전혀요! 간도 딱 맞고, 너무 맛있어요! 야영을 하면서 이렇게 호화스러운 저녁은 처음이에요!”

제노는 심향이 여태 무엇을 먹으며 지냈을지 가늠하다가, 그만두었다. 자신도 혼자였다면 분명 육포나 나무 열매 정도로 끼니를 때웠을 터였다.

“자, 여기 소스.”

“감사합니다!”

심향이 젓가락으로 소스를 한껏 떠서 살 위에 올린 뒤 입에 집어넣었다. 아, 그렇게 많이 넣으면…

“으으, 코가 찡해요…!”

“고추냉이가 들어갔으니까.”

“그런 건 빨리 말해주세요…!”

제 코를 붙잡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심향을 비웃은 실버가, 자신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듯 소스를 아주 조금 곁들여 한입 먹었다. 말없이 우물거리던 실버의 젓가락질이 점점 빨라졌다. 다행히 입에 맞는 것 같았다.

제노는 다시 나머지 고기를 포일에 싸고 굽는 일을 이어갔다. 두 사람에 포켓몬들까지 더하면 먹일 입이 너무 많았다. 작은 프라이팬으로 계속 요리를 하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안 하던 짓을 하려니 조금 귀찮긴 했지만, 그래도…

제노는 각자의 몫을 즐기는 심향과 실버, 그리고 포켓몬들을 바라보았다. 간만에 누군가에게 요리를 해주고 반응을 보니 기뻤다.

그래, 함께 여행을 다닌다는 건 이런 기분이었지.

… 묘하게 울렁이는 속을 달래기 위해 제노는 입안으로 밥을 욱여넣었다.

*

식사를 마치고 제노는 멍하니 불 가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이 자진해서 각자 설거지와 정리를 맡는 바람에 할 일이 없어진 제노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딥상어동을 품에 안고 토닥이고 있었다. 아니 뭐, 열일곱이면 이 정도 일은 시켜도 되는 나이긴 하지. 잠시 기다리자 두 사람이 다시 모닥불 쪽으로 돌아왔다.

“수고했어.”

“아니에요, 누나. 저녁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특히 마지막에 먹었던 누룽지가 최고였어요!”

국까지 끓이긴 힘들 것 같아서, 대신 냄비 밥을 하면서 생긴 누룽지로 숭늉을 끓여줬다. 소화에 정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따뜻한 요리는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니까.

배가 불러 조금 나른한 상태인 두 사람을 보던 제노는 계속해서 고민하던 것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래서… 텐트에선 누가 잘 거니?”

“….”

“….”

순식간에 싸늘한 침묵이 찾아왔다.

“조금 비좁긴 하겠지만, 너희 둘이 끼여 자면…”

“싫어.”

“절대 싫어요!”

… 그래, 혹시나 해서 꺼내본 말이긴 한데, 이렇게까지 바로 반응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그냥 누나가 쓰세요. 저흰 괜찮아요!”

“… 그게 공평할 것 같은데.”

와, 실버가 심향의 말에 동의를 하다니. 아니, 안에서 같이 자나 밖에서 같이 자나 똑같은 거 아니냐고. 그렇게 물으니 좁은 곳에서 살을 부대끼는 게 싫다는 답이 돌아왔다. 남자애들이란….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번갈아 가며 텐트를 쓰기로 정하고, 오늘은 결국 제노가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완전히 곯아떨어진 딥상어동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옆자리에 누인 제노가 생각했다. 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 대충 그런 걸로 납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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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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