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한 갈래 길
“마그케인, 지금이야, 화염자동차!”
“강철톤, 아이언테일로 날려버려!”
돌떨구기를 피해낸 마그케인이 온몸에 불꽃을 둘렀다. 휘둘러지는 커다란 꼬리를 높게 뛰어 피한 마그케인이, 전력을 다해 강철톤에게 달려들었다. 쿵- 엄청난 소리를 내며 강철톤의 거대한 몸이 뒤로 넘어갔다.
“강철톤 시합 불가능! 승자, 심향!”
“됐다! 잘했어, 마그케인!”
온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써 엉망이 된 마그케인이 높게 울며 심향에게 안겨들었다. 한껏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둘에게로 규리가 다가가 스틸배지를 건넸다. 무어라 얘기를 나누는가 싶더니, 규리가 심판에게 눈짓했다. 고개를 끄덕인 심판은 잠시 휴식을 가진 후에 다음 시합을 재개하겠다고 공지했다. 관장이란 정말 힘든 일이구나.
“-교체는 도전자만 가능! 양측, 준비하시고, 시합 시작!”
잠시 후, 규리가 다시 자리에 섰다. 익숙한 심판의 설명 이후 배틀이 시작되었다. 제노는 관중석에서 필드를 내려다보았다. 이번에 아래에 있는 것은 실버.
등록할 때는 제노, 실버, 심향 순서로 등록했는데 처리가 잘못된 것인지 완전히 반대 순서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딱히 누구도 불만을 갖지 않았기에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다. 덕분에 느긋하게 기다리게 된 제노가 안전을 위해 설치된 난간에 기대어 섰다. 그에게로 심향이 다가왔다.
“누나.”
“포켓몬 센터에 바로 간 게 아니었네?”
“네, 마그케인도 아직 팔팔하고, 무엇보다 실버의 경기를 보고 싶었거든요.”
심향은 그렇게 말하며 제노의 바로 옆에 자리 잡았다. 심향을 따라 하듯 마그케인이 손을 높게 뻗어 난간을 잡았다. 그 모습에 제노가 작게 웃었다.
어제저녁, 제노는 심향이 낸 아이디어를 따라 그의 특훈을 도왔다. 가디안의 염동력으로 돌떨구기를 흉내 내고, 틈새를 노려 피카츄의 아이언테일로 마그케인을 공격했다. 심향과 그의 마그케인은 처음엔 고전했지만 금세 요령을 깨달았다. 실버는 합을 맞춰가는 심향과 마그케인의 모습을 지켜만 보다가 먼저 쉬겠다며 방으로 돌아갔다.
뭔가 혼자서 방법을 찾은 것 같긴 했는데, 과연 어떠려나. 제노와 함께 경기를 바라보던 심향이 입을 열었다.
“실버랑은 왜 같이 다니시는 거예요?”
“….”
처음부터 얘길 꺼내자니 실버의 흑역사도 말해야 했다. 게다가 솔직히 스스로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제노가 설명을 망설이는 사이, 심향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니, 대답 안 들을 거면 왜 물어봤는데.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실버는 나쁜 녀석이에요.”
나도 알아. 엘리게이 저거 리아코 시절에 훔친 거잖아.
“첫 만남부터 ‘너처럼 약한 녀석에겐 과분한 포켓몬’이라면서 저한테 배틀을 걸어왔어요. 그때 브케인하고 싸웠던 리아코는… 그, 좀 특이한 방법으로 얻었거든요.”
실버의 범죄사실을 숨겨주는 거구나. 심향아 너는 대체 어디까지 착할 셈인 거니? 제노는 심향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지 기다렸다.
“패배하자마자 쓰러진 리아코를 약하다며 나무랐죠. 실버는 항상 그랬어요, 포켓몬은 강해지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저는 그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심향이 마그케인의 머리를 쓰다듬자 고개를 위로 쭉 뻗은 마그케인이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흘렸다.
“그런데 어제의 시합은… 뭔가 달랐어요. 실버의 엘리게이랑 마주했을 때, 여기가 막, 엄청 두근거리는 거 있죠?”
그렇게 말하며 심향이 주먹으로 제 심장께를 눌러 보였다. 아니, 지금 그 눈빛, 그 미소, 파괴력이 대단하니까 자제해줄래?
“실버가 진화시킨 포켓몬들을 보면 그들이 실버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어요. 신기하죠, 실버가 정말 포켓몬들을 단지 도구로 생각한다면 그럴 리가 없는데.”
로켓단과 싸우는 과정에서 진화한 고오스와 주뱃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 엘리게이도 비슷한 마음이었기에 리아코에서 진화한 거겠지.
시합은 어느덧 마지막. 강철톤과 엘리게이가 필드의 양 끝에서 마주 보고 섰다. 엘리게이는 강철톤이 일으킨 모래바람을 헤치고 용맹하게 달려들었다.
“강철톤, 아이언테일!”
“지금이야!”
후웅, 하고 강철톤의 거대한 꼬리가 공기를 세차게 가르며 휘둘러졌다. 순간 엘리게이가 바닥을 향해 엄청난 기세로 물대포를 뿜어내자, 엘리게이의 몸이 높게 떠올랐다.
“엘리게이, 아쿠아테일로 내려쳐!”
꼬리에 물살을 두른 엘리게이가 아래로 떨어지며 생긴 회전력을 더해 강철톤의 머리를 강하게 내려쳤다. 무시무시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공격에 제대로 맞은 강철톤의 몸이 비틀거렸다. 강철톤의 거대한 몸을 공략하기 위해, 엘리게이에게 부족한 기동력을 기술로 보충했다.
“강철톤, 돌떨구기로 엘리게이를 맞추는 거야!”
“엘리게이, 최대출력으로 물대포!”
실버의 명령에 따라 방어를 포기한 엘리게이가 쏟아지는 돌조각들을 견디며 물대포를 쏘아댔다. 에효, 저거 저거… 누굴 보고 하는 건지 뻔한 방식에 제노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공격을 맞교환한 강철톤이 비틀거리더니, 이내 쓰러졌다.
“강철톤 시합 불가능! 승자, 실버!”
고개를 치켜들고 크게 포효한 엘리게이가 실버를 돌아보았다.
“잘했어 엘리게이.”
돌덩이에 부딪혀 엉망이 된 상태로 받는 칭찬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폴짝거리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한 엘리게이가 몬스터볼로 돌아갔다. 스틸배지를 쥔 실버가 뿌듯한 표정으로 제노쪽을 올려다보았다가, 옆의 심향을 보고 바로 얼굴을 구겼다. 쏘아지는 시선에도 심향은 태연하게 말했다.
“역시 전 실버를 미워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누나도 그렇죠?”
“….”
“그리고 실버가 저렇게 변한 데에는 누나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해요.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
“그러니까 누나,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우리 같이 강해지는 거예요!”
제노는 계속해서 대답하지 않았으나, 심향은 제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지었다.
심판이 다음 도전자를 호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노는 모자를 매만지고 관중석을 내려갔다.
… 그리고 제노가 시합에서 돌아오자마자 마주한 것은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물어뜯을 듯이 노려보는 두 사람이었다. 아니, 안 미워하겠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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