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닝 리트라이!
운동합시다~
(체조한번씩들 하고가자고요)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건 뭘까?
이를테면 친구들과의 끈끈한 우정, 야심한 밤 몰래 집어먹는 과자와 라면, 접전 끝에 따낸 게임 대전 1승, 피규어와 포스터, 그 외 각종 굿즈들이 전시된 장식장 바라보기, 일하고 나서 바로 하는 밀린 애니 정주행, 심지어는 누가 옆에 있어 주는 것 그 자체로도 삶의 지탱 요소가 될 수 있다. 물론 그 기준은 사람 수만큼 있기에, 정답은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모란의 기준에서는 확실하게 아닌 게 있다.
“미안, 비파 언니. 난 운동은 싫어.”
그리고 누군가의 생활 방식을 이해하지만, 그만큼 걱정하는 사람 역시 존재한다.
“모란아…. 그렇게까지 싫어?”
“난 주말에도 하루 외출하면 하루는 집에만 있어야 돼….”
“저번에 우리가 놀러 가자고 했을 땐 나왔잖아.”
“그건…. 언니랑 다른 친구들이 있어서고.”
모란은 아무리 늘 따르는 언니의 부탁이라 해도 양보 못 하는 게 있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카데미의 레슬링 동아리 부실에서 ‘운동이 싫다.’라는 말이 들리는 건 얼핏 지나가는 사람이 봐도 꽤 진풍경이었다.
“네가 움직이기 싫어한다는 건 알지만, 이대로는 진짜 걱정돼서 그래.”
“많, 많이 심각해 보여?”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보여. 기억나? 저번 주 주말에. 다트 맞추기 이벤트 상품으로 받은 하프 딸기 크림 샌드 30개, 기숙사까지 양손에 들고 가다 거의 쓰러질 뻔했잖아.”
“30개면 그럴만하지 않아?”
“보통 지쳐서 중간에 쉬어가긴 해도 쓰러지기 직전까지는 가지 않아….”
비파의 기준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었으나 모란은 반박할 수 없었다. 실제로 모란의 짐을 아카데미 입구 홀부터 기숙사 건물 전까지는 멜로코가 들어줬는데, 크게 힘든 기색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신과 키나 체구가 그나마 비슷한 멜로코도 저 정도라니, 모란은 운동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하고는 별개로 조금 무력감을 느꼈다.
체력, 특히 근력의 중요성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걸 안다고 운동을 열심히 하지는 않는다. 마치 공부를 열심히 하면 시험을 잘 본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다 그렇게 하지는 않는 것과 비슷하다.
다행스럽게도 모란은 공부에서는 1을 입력하면 10, 혹은 그 이상의 출력을 낼 수 있는 천재였다. 그러나 또한, 불행하게도 모란은 운동에서는 1을 입력하면 –10의 부정적 기운이 출력되는 걸어 다니는 고목, 바람 불면 플라베베보다도 훨훨 날아가는 종잇장 인간이었다.
“…듣고 나서 생각해보니 조금 그럴지도.”
“알았으면, 지금부터 해보자!”
“지, 지금? 여기서? 바로?”
“응! 지금 안 할 거면 굳이 왜 동아리실까지 오라고 했겠어.”
“윽, 비파 언니라면 믿을 수는 있지만….”
“괜찮아! 처음부터 무리해서 어려운 걸 하면 오히려 더 안 좋으니까, 일단 스트레칭부터 하고 오늘은 가벼운 것부터 들어보자고.”
스트레칭? 스트레칭이라니. 그건 모란의 역사서에는 없는 단어였다. 그가 하는 스트레칭이라곤 애니를 보거나 잠을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팔다리를 쭉 뻗는 정도가 다였다. 오로지 그것만 하더라도 피로가 풀렸(다고 착각하곤 했)다. 모란은 비파를 믿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다리가 떨렸다. 하지 않던 짓을 하면 신체적 거부반응이 일어난다고 하는 게 이런 건가?
“우선은 앉아서 다리를 쭉 뻗고….”
“…무릎이 잘 안 펴지는데?”
“아, 그럼 내가 손으로 눌러줄게.”
“그럴 필요까지는 없… 으아악!”
비파는 항상 친절하고 상냥하기에 때로는 그만큼 무서웠다. 물론 모란의 다리를 펴 준 것뿐이었기에 전혀 무서울 일이란 건 없었으나, 모란은 상냥한 사람이 타인을 위하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해줄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실감했다. 어찌 되었든 이런 식으로 실감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다음은 손끝이 발끝에 닿게 허리를 숙여서 팔을 쭉 뻗는 거야!”
“…전혀 닿질 않는데?! 이거, 닿을 수 있는 거 맞아?”
“그럼 내가 등을 천천히 밀어줄게!”
“아, 아니, 그건 진짜 괜찮… 으아아악!”
미루기 좋아하는 인간도 누군가가 도망칠 수 없게 강제성을 부여하면 어떻게든 해내듯, 운동 역시 강제성을 부여하면 어떻게든 해내게 된다. 설령 그게 금전적이나 횟수 제한 같은 이유가 아니라 진짜 물리적일지라도.
“어때? 한번 몸을 풀고 나니까 개운하지?”
“…미안한데 전혀….”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그, 그렇다고 믿어야겠지….”
스트레칭을 끝낸 비파는 한층 생기가 넘쳤지만, 모란은 진짜 죽을상이었다. 좋아하는 애니에서 최애캐가 죽어도, 30분 동안 끝나지 않은 게임 대전을 접점 끝에 아깝게 졌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다들 이런 고통을 견디면서 굳이 운동을 나간단 말인가? 대체 왜? 스스로 아프고 힘든 짓을 때로는 돈을 내가면서까지 하는 것일까…. 모란은 고뇌 아닌 고뇌에 빠졌다.
“스트레칭도 끝냈으니 이젠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정확히 뭘 하면 되는데…?”
“우선은 가벼운 것부터 들어불까? 저~기, 1kg짜리 아령이 있어.”
“가, 가볍다고?”
1kg라는 무게와 가볍다는 단어가 언제부터 자연스럽게 붙을 수 있는 거였지? 문장 구조상 어색해야 맞는 거 아닌가? 모란은 괜히 벌벌 떨면서도 겨우 발걸음을 떼 아령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비파는 웃으며 뒤를 따라왔다. 그는 모란이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운동을 하려고 시도해본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모양이었다.
모란은 침을 꿀꺽 삼키고 눈 앞에 놓인 아령을 바라보았다. 차마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짐을 짊어지지도 않았는데 이미 짊어진 것 같았다. 내가 들려고 하는 무게가 설마 내 마음의 무게?! 같은 실없는 생각을 하며, 모란은 눈을 질끈 감고 아령을 들어 올렸다.
“이렇게 하면 돼?”
“그, 모란아. 아령을 들 때는 그냥 들고 대강 한번 들어 올렸다 내려놓는 게 아니라, 팔을 끝까지 굽히고 끝까지 뻗어야 한번 들어 올렸다고 해.”
“거짓말.”
“모란아…. 믿기지 않겠지만 다들 그렇게 해.”
“1kg 아령을 다들 그렇게 오래 붙잡고 있는단 말이야?!”
“그래.”
“거짓말 같은데?”
“부정해도 그게 현실이야.”
얼핏 들으면 현실 도피를 하는 친구에게 피하지 말고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라는 다른 친구의 진지한 대화 같았다. 그 부분만 떼어서 심각하게 편집하면 나름대로 괜찮은 청춘 성장 드라마의 한 장면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모란은 그만큼 심각했다.
“다 그렇게 한다니까, 알았어. 진짜 딱 한번만 제대로 해볼게.”
“응! 분명 다시 하면 잘할 수 있을 거야.”
이건 또 포기하려는 친구를 어떻게든 붙잡고 희망을 불어주려는 청춘 성장 드라마 대사 같다.
“아령을 들고 완전히 팔을 굽혔다 펴랬지?”
“응, 그리고 지금처럼 구부정하게 있으면 안 되고, 몸이 완전히 정면을 봐야 해. 지금 허리도 너무 굽어있고 시선도 아래쪽으로 향하고 있어.”
“아, 신경쓸 거 진짜 많다.”
“원래 처음엔 다 그래.”
모란은 비파의 말대로 자세를 고쳐잡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로 바르게 아령을 들어 올렸다. 제대로 하니 좀 괜찮은 거 같기도…. 는 무슨, 아까보다 훨씬 힘들다! 모란은 겨우 비파가 시킨 대로 딱 한 번 아령을 들어 올렸다가 급하게 내려놓았다.
“내릴 때도 최대한 천천히 내려놓아야 돼.”
“이거 진짜 여러모로 쉽지 않네….”
“한번 해보니까 어때?”
“힘들어.”
“다시 할 마음은 들어?”
“아니.”
“내가 항상 옆에 같이 있어준다면?”
“으, 응?”
비파가 고개를 숙여 모란을 바라보았다. 질끈 묶은 그의 뒷머리가 동아리방의 에어컨 바람에 흩날렸다. 레슬링 동아리란 게 원래 이런 분위기였나? 비파의 모습은 단순한 트레이닝 담당보다도 코치 같았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코치 말고, 청춘 성장 스포츠물에나 나올 법한 뒤처지는 부원을 챙겨주는 정신적 지주이자 힘이 되는 든든한 선배 같은….
모란은 비파의 배려를 무시할 수 없었다. 늘 말했듯 그는 항상 다정하고 상냥했고, 그렇기에 때로는 누구보다 강하게 타인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비파가 자신에게 애써 1부터 10까지 가르쳐주려고 하면서도 계속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투로 말하는 건, 역시 늘 그랬듯 자신을 지나칠 수 없어서라고 모란은 생각했다.
“언니가 옆에서 항상 지켜봐준다면…. 괜찮을지도?”
“진짜? 진심이야?”
“으, 윽. 당연하지. 언니라면 그래도 바로 힘든 걸 시키지는 않을 거 아냐….”
“당연하지! 차근차근 하면서 2kg까지는 들 수 있게 내가 노력해볼게.”
“2kg?! 그거 사람이 들 수 있는 무게 맞아?”
“당장은 안 돼도 되게 해. 모란이 네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에서 나로 바뀌어 그 말이 모란의 마음에 꽂힌 순간 모란은 어떠한 확신을 했다. 어쩌면 내일도 여기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믿음과 의지에서 비롯된 확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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