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엘리베이터 안에 붙은 경고문 때문에 꽤나 곤란한 상황에 놓여버린 것 같습니다
스타단 현대 한국 AU... 근데 이제 라노벨인
BGM/ 뉴턴 댄스 - 나유탄 성인xChinozo(하츠네 미쿠&v flower)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이브이 털이 자꾸 날립니다.
누군지 모르겠는데 주의 좀 해주세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사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던 모란은 별 생각 없이 쳐다본 엘리베이터 벽면에 붙은 글귀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푹 뒤집어쓴 후드티를 벗고 얼굴을 가까이해서 다시 또박또박 읽어봐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문장이었다. 난 브이브이들을 집 안과 아파트 밖에서만 볼에서 꺼내놓고 있는데? 아무리 다른 기억들을 되짚어봐도 자신 외의 누군가가 이브이를 데리고 돌아다니는 건 본 적이 없었다. 그럼 역시 나인가? 그렇다고 단정짓기에는 자신의 행적을 돌아봤을 때 역시 무리가 있었다.
‘대체 뭐지… 이거?’
모란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컵라면이고 삼각김밥이고 다 내팽겨치고 급하게 데스크탑을 켜면서 자리에 앉았다. 디스코드를 열자 온라인 - 4명이라는 표시가 뜬 변하지 않는 화면이 그의 눈앞에 들어왔다.
카시오페아: 아니 얘들아 나 오늘 엘베 타고 올라가는데 이브이 털 날리지 않게 조심하라는 글이 붙어있더라
카시오페아: 이거 혹시 내 얘기인가? 근데 나 브이브이들을 아파트 안에서 꺼내놓고 돌아다녔던 적이 없는데….
동시에 접속해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바로 답이 날아왔다.
메로: 이브이 트레이너가 너 하나겠냐?
메로: 너 말고도 다른 누가 있겠지 뭐
메로: 신경 꺼 그냥 아니면 아닌 거지
메로: 세상에 걱정할 게 얼마나 많은데 그런 걸 걱정하고 다닐 필요 있냐?
Pi: 저번에 너네 집 놀러갔을 땐 계단이고 복도고 뭐고 사람밖에 안 돌아다녔는데
Pi: 그 사람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카시오페아: 역시 그런가?
카시오페아: 하… 근데 계속 신경이 쓰이네….
모란은 키보드 자판에서 손을 탁 하고 내려놓았다. 멜로코의 말이 맞았다. 자신이 확실하게 아니란 걸 아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도 될 일이었다. 그런데도 왜인지 모르게 계속 눈 앞에서 엘리베이터 벽면이 아른거렸다.
비파: 내 생각엔 모란이 지금 이브이 이야기라서 더 신경쓰고 있는 거 같은데? 맞지?
비파: 그 사람이 내가 아닐까라는 생각보다도 이브이에 대한 글이 붙었다는 게 걸리는 거 아냐?
아. 그런가. 비파의 메시지를 받고 나서야 저도 몰랐던 자신의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냥 포켓몬의 털이라고 해도 됐을 걸 굳이 집어서 이브이의 털이라고 표현한 게 신경쓰였던 거다. 포켓몬이 어떤지, 혹은 이브이가 어떤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 글만 보고 이브이자체가 특별히 털이 많이 날리는 포켓몬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잘 모르면서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가지는 건 역시 싫었다.
카시오페아: 거슬리는데 뭐 할 수 있는 게 없네….
오르: 그렇게 거슬리면 차라리
오르: 그냥 찢어버리고 모른 체 해
메로: 겠냐?
메로: 뭘 굳이 찢어 찢기는
메로: 걍 떼어서 분리수거장에 갖다 버려
추명: 아니 잠시만 지금 대화의 흐름이 이상하오
추명: 거슬린다고 그 자체를 없애는 건 너무 나간 것 같소
카시오페아: 나도 추명이 말이 맞다고 생각해
카시오페아: 차피 무시한다고 그게 갑자기 내가 한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
카시오페아: 지금은 어쩔 수 없네 그냥 없어질 때까지 기다려야지 뭐
비파: 내가 봐도 여기서 뭘 더 하기는 힘들 거 같아
비파: 붙인 사람을 알 수 있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잖아?
Pi: 붙인 사람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나?
메로: 그걸 어떻게 알겠냐고 무슨 명탐정 피카츄도 아닌데
오르: 아님 그 사람이 쓴 글 밑에 답글을 붙이든가
오르: 누구인데 이브이에 대한 오해를 사게 썼냐고
오르: 네 집 앞으로 오라고 해 깔끔하게 얼굴 보고 대화하자고
추명: 정 걱정되면 소인이 집 문 앞에 붙어 적의 동태를 살피겠소!
카시오페아: 얘들아… 고맙기는 한데 그렇게까지 안 해줘도 괜찮아….
카시오페아: 여차하면 내가 아파트 관리 서버를 해킹하면 되니까!
추명: 모란 나리
추명: 그건 좀 아닌 거 같소
메로: 에반데
오르: 진심으로 하는 말 아니지?
Pi: 뭔 일 나기 전에 이 서버 나가야겠다
카시오페아: 농담이야 얘들아
카시오페아: 갑자기 왜 그렇게 심각해지는데
비파: 모란아
비파: 사이버보안 전공이 그렇게 말하면 보통은 농담처럼 안 들려….
카시오페아: 미안
카시오페아: 미안해 내가
이제부터는 농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생각하면서 해야겠다. 모란은 그렇게 생각하며 콜라 캔을 땄다. 언짢던 기분이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졌다. 친구들이랑 짧게나마 이야기한 것 때문일까. 언제 어느 때 들어가도, 사소하든 아니든 자신의 말을 귀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에겐 항상 큰 위안이었다.
‘기술의 발전에 무한한 감사를….’
*
다음날, 모란은 콜라가 떨어져 편의점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다 아무것도 붙어있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당사자랑 해결이 된 걸까. 아니면 자기가 생각해도 아니다 싶어 떼버린 걸까.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별로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다음에 비슷한 일이 있어도 그는 어제와 같은 기분일 것이다. 그래도 결국 오늘처럼 되겠지. 또다시 친구들하고 얘기할 테니까. 어제 그는 새삼 기술의 발전에 감사를 표했지만, 생각해보니 감사할 건 따로 있었다.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함께하는 친구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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