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샛길 하나
“—.”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 제노는 기묘한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포켓몬들도 마찬가지로 달라진 기운을 느꼈는지 이미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아직 진화하지 않은 이브이만이 몬스터볼에 들어있었다. 나가자. 옷을 갖춰 입은 제노가 그렇게 말하며 나서자 포켓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서늘한 새벽. 호수 주변은 물안개로 사위가 가려져 있었다. 허나 커다란 기운만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제노가 호수로 다가서자, 공기가 묘하게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 있다. 집중하여 보자 투명한 그것은 생명체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 엠라이트.”
제 이름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그것이 빙글빙글 돌며 제노에게로 다가왔다. 굳이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이렇게 제 발로 나타나 주다니, 수고를 덜었다.
“잡아.”
우웅- 가디안이 사이코 파워를 사용하자 공기가 진동했다. 허공을 유영하던 빛이 강제적으로 멈췄다.
“피카츄.”
제노의 지시에 피카츄가 끌어모은 전격을 날린다. 강한 빛과 동시에 공간이 일렁이더니, 웅크려있던 포켓몬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엠라이트였다.
“가디안, 놓치지 마!”
가디안이 사이코 파워를 높여 엠라이트의 움직임을 막아냈다. 엠라이트가 몸을 뒤틀며 저항하는 사이 제노가 볼을 던졌다. 그 어떤 포켓몬이든 반드시 포획할 수 있는, 실프주식회사에서 만들어낸 과학기술의 정수- 마스터볼.
빙그르르 날아간 그것이 엠라이트에게 정확히 부딪히고, 잠시 흔들리더니 달칵, 하고 완전히 닫힌다. 가디안이 염동력으로 엠라이트가 든 마스터볼을 제노에게 건넸다. 포획 성공이었다.
제노가 그것을 받아들자마자 호수의 물결이 불길하게 일렁이더니, 또 다른 빛 두 갈래가 나타났다. 제노가 긴장도를 높이자 포켓몬들이 따라 날을 세웠다.
유크시, 엠라이트, 아그놈은 신오지방을 보호하는 세 개의 기둥.
하나라도 사라지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즉, 나머지 두 마리가 한 마리가 붙잡힌 상황을 파악하고 분노한 채로 나타난다는 얘기. 태홍에게 받은 마스터볼은 오직 하나. 진짜 전투는 지금부터였다.
빛이 걷히고, 유크시와 아그놈이 나타났다. 제노가 소리쳤다.
“피카츄, 일렉트릭볼! 루카리오는 용의파동!”
두 전설의 포켓몬이 쏘아낸 사이코 에너지가 피카츄와 루카리오의 기술과 부딪히며 폭발이 일었다. 그 사이를 가르고 사이코 에너지가 다시 쏟아졌다.
“막아!”
제노의 외침에 가디안이 마찬가지로 사이코 에너지를 쏟아내지만, 힘이 부족했는지 뒤로 조금 밀려났다. 가디안, 다시 사이코키네시스로 붙잡아! 제노의 말에 가디안이 몸에 사이코 에너지를 모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술이 나가지 않았다.
“… 봉인이군.”
강력한 공격 기술 중 하나를 더 이상 쓸 수 없게되자 가디안의 얼굴이 노골적으로 찌푸려졌다. 제노가 침착하게 다음 지시를 내렸다.
“최면술로 재워버려!”
졸음을 유도하는 묘한 진동이 전설의 포켓몬을 향해 퍼졌다. 허나 통하지 않은 모양인지 다시 한번 사이코 에너지가 날아들었다. 쿠웅- 세찬 바람과 함께 큰 소리가 울리고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온몸으로 그것을 막아낸 이상해꽃이었다.
“너 정말 공격 기술 말고는 명중을 못 시키는구나.”
그 말에 가디안이 제노를 노려보았다. 지금 그런 소리나 할 때냐는 표정. 제노가 전투를 이어갔다.
“이상해꽃, 호수에 씨뿌리기로 발판을 만들어! 피카츄, 전력으로 부딪히는 거야!”
“피카피카피카-!”
이상해꽃이 심은 씨앗에서 솟아난 나무줄기가 허공에 길을 만들고, 온몸에 전기를 두른 피카츄가 그 위를 달렸다. 파앙! 피카츄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아그놈에게 부딪힌다. 아그놈이 몸에 남은 전기에 고통스러워하는 사이, 피카츄의 뒤를 따라 달려 나간 루카리오가 그림자로 만든 발톱으로 아그놈을 베어 갈랐다.
아그놈이 허공을 가르고 떨어지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강한 파도가 일고, 공격을 맡았던 포켓몬들이 제노의 곁으로 돌아왔다.
급소에 제대로 들어간 공격. 아그놈이 다시 일어날지 지켜보던 그때, 루카리오와 피카츄가 갑자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루카리오는 한쪽 무릎을 꿇었고, 피카츄는 완전히 쓰러졌다. 제노가 당황하여 사태를 파악했다.
하암- 유크시가 작은 입을 귀엽게 벌렸다 닫았다. 하품을 사용한 것이었다.
가디안은 사이코에너지의 사용이 막힌 상태. 거기에 페어리 타입 기술은 완성되지 않았다. 피카츄와 루카리오는 잠들었고, 아직 진화시키지 않은 이브이는 전투용이 아니었다.
그때 물살을 가르고 아그놈이 다시 허공으로 올라왔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에 제노가 저도 모르게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샤미드, 이상해꽃, 버틸 수 있겠어?”
공격력이 높은 피카츄나 기술 상성이 좋은 루카리오가 깨어날 때까지만 시간을 끌면 된다. 두 마리 포켓몬이 사납게 으르렁거리고, 가디안 또한 보조를 위해 몸에 기운을 끌어올렸다.
“이상해꽃, 덩굴로 붙잡아! 샤미드, 소금물!”
굵은 덩굴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두 포켓몬에게 휘둘러졌다. 유크시는 잽싸게 피했지만, 애초에 목표는 데미지를 입은 아그놈. 마비에 걸려 둔해진 아그놈이 덩굴에 휩싸이자 샤미드의 입에서 매서운 물줄기가 쏟아졌다. 유크시가 날아와 온몸으로 그것을 막아내었다.
“그대로 얼려버려!”
연이은 냉동빔. 유크시의 몸에 묻은 물기가 얼어붙으며 몸을 둔하게 만들었다. 샤미드의 냉동빔이 그치자마자 틈을 주지 않고 이상해꽃이 아그놈을 쥔 덩굴을 유크시에게로 휘둘렀다. 두 전설의 포켓몬이 부딪히고, 함께 아래로 떨어지며 큰 파도가 일었다.
이번 건 제법 아팠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제노가 이상해꽃을 살폈다. 냉동빔의 영향으로 덩굴의 끝이 조금 얼어있었다. 아무래도 포켓몬 센터에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샤미드 또한 같은 생각을 했는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이상해꽃을 올려다보았다. 이상해꽃은 무덤덤하게 호수를 바라볼 뿐이었다. 역시 든든하다니까.
“… 최면술로 완전히 재워서 잡자.”
아니면 이상해꽃의 독을 사용해도 되고. 제노의 말에 가디안이 먼저 앞으로 나섰다. 이번에야말로 성공하겠다는 의지에 제노가 작게 웃은 그때, 호수 아래서부터 거대한 사이코 에너지가 그에게로 곧장 날아들었다.
“가디안!!!”
순간 제노의 앞을 막아선 가디안이 버티지 못하고 뒤로 날아갔다. 가디안을 받아든 제노 또한 그대로 밀려나, 나무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추었다. 등이 화끈하게 아파 왔다. 하지만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가디안, 괜찮아?”
가디안이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퍼 타입 공격을 맞고 이렇게 되다니, 대체 얼마나 강한 힘인 거야. 제노가 호수를 바라보았다.
아그놈과 유크시가 나선을 그리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사이코 에너지로 눈이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포켓몬에게서 느끼는 살기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파워업해서 2페이즈에 돌입하는 건 좀 다른 회사 게임 아니야? 제노가 대응을 결정하지 못한 사이 두 마리 포켓몬이 사이코 에너지를 하나로 모았다. 그 어떤 때보다 커다란 기운이 모였다.
“막아!”
제노가 소리쳤다. 강한 빛줄기가 쏘아지고,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뜬 제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정면으로 공격을 맞고 날아간 이상해꽃과 샤미드였다.
순간 이상해꽃이 샤미드의 앞을 가로막고 쓰러진 것인지 커다란 몸체의 뒤에서 샤미드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뭔가 이상했다. 공격을 받아쳐 내지 못한 건 둘째 치고, 샤미드가 피하는 것보다 이상해꽃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니…. 파악을 마친 제노가 이를 악물었다. 범위 내 포켓몬의 속도를 완전히 뒤바꾸는 기술, 트릭룸이었다.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최후의 수단을 꺼내게 되는구나.
“수고했어, 다들.”
다섯 마리를 모두 볼로 돌려보낸 제노가 품에서 무언갈 꺼냈다.
일곱 번째 몬스터볼.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포켓몬. 갤럭시단의 감시를 떨쳐낸 이유.
제노의 의지에 응하듯 몬스터볼이 웅웅 울렸다. 제노가 볼을 던지고, 빛이 하늘 위로 쏘아졌다.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제하시면 보관함에 소장 가능합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