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P

망루 위로 떠오른 별에게

아니 카시오페아씨 대체 그딴생각을 왜합니까

* 이번 글의 BGM 가사는 글의 내용이랑은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가볍게 분위기만 생각하면서 들어주세요.

“진 보스! 이번 라이브 같이 볼래?”

“어어?”

당황한 나머지 모란은 얼빠진 대답을 내뱉고 말았다. 라이브? 그에게 낯선 단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같이 보자니. 그 뒷말은 확실히 낯설었다. 방금 나더러 한 말 맞지? 다른 보스들 아니고? 모란은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잠시 고민에 빠졌다. 물론 그 역시 언젠가는 보러 가고 싶었다. 음악에 대해 아는 건 하나도 없지만 함께하면 재밌을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역시 당장은 무리였다.

“저기, 피나, 미안. 같이 보고 싶지만 나는 아직 사람들과 마주할 자신이…”

“음? 직접 보러 오란 말은 아니었는데?”

“그, 그럼?”

“진 보스의 기기랑 내 기기를 연결해서 내가 라이브하는 걸 보여주면 되잖아?”

“참, 그런 방법이 있었지….”

하, 하여튼 정말 편리한 세상이네, 기술의 발전이란. 스타단의 누구보다 기술의 발전이란 단어와 가까이 있는 모란은 실없는 소리를 하며 웃었다. 화면을 통해 보는 라이브도 라이브고, 스피커를 통해 듣는 음악도 음악이다. 간단한 사실이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왜? 모란은 그가 종종 아지트에서 라이브를 연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그가 이번 라이브에 쓸 새 곡을 완성했으니 들어보라고 파일과 함께 보내주는 메시지는 어느덧 모란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상의 일부가 되어있었기에. 그렇지만 깔끔하게 귀에 흐르는 파일 속 음원이 아닌 사방팔방 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게 울려퍼지는 라이브라니. 그로서는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사실은 이번에 다른 보스들도 다같이 라이브를 보러 오기로 했거든. 근데 하나같이 진 보스도 같이 봤으면 좋겠다고 하고, 나도 진 보스가 빠질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아아, 그렇구나. 그럼 나도 봐야지.”

봐야지. 라는 말을 내뱉고 나서 모란은 자신이 한 말에 당황했다. 물론 안 보러 갈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바로 대답하려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오케이~! 그럼 나중에 또 연락할게! 라는 경쾌한 인사와 함께 무언가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다 끊겼다.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가 무언가 메모지에 적어두고 있는 것임을 모란은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스타단 팀 세긴의 보스, 그리고 DJ 악동.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이라는 이름표가 부숴져 없어지고 나서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또 스스로 새로이 여러 이름표를 자기 자신에게 가져다 붙였다. 그렇게 자신에 대한 재정의를 거듭한 끝에 그는 비로소 변할 수 있었고 또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모란 역시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사실상 자신도 그러했기에.

전보다 불규칙한 삶을 사는 피나는 자신도 모르게 노래에 불규칙한 멜로디를 규칙적으로 집어넣었다. 전보다 앞에 나서서 행동하기 시작한 모란은 정작 여전히 방 밖의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힘들었다. 그야말로 진보한 제자리걸음이 아닐 수 없었다. 서로가 예전의 허물을 벗고 DJ 악동과 카시오페아라는 이름을 뒤집어썼지만 새로운 이름을 쓴다고 그 속의 사람마저 완전히 다시 태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야 사람은 결국 사람이지 캐터피는 아니니까. 단데기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들 모두가 버터풀이 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결국 오늘도 모란은 사람을 마주하기 힘들다 말하고 피나는 무언가를 메모지에 적는다.

‘처음이랑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네….’

스스로 말하고도 자신을 향한 말인지 그를 향한 말인지 몰랐다.

봤다고 할 수 있는지조차 모르겠지만, 모란은 그를 처음 봤을 때를 기억하고 있다. 정확히는, 잊고 있다가도 이따금씩 기억이 나곤 했다. 그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야, 서로 얼굴도 마주보지 않았고 모란이 일방적으로 그라는 걸 ‘인식’했을 뿐이니까. 모든 것이 워낙 순식간이었고, 그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은 그들의 삶에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으며, 이제는 그랬다는 기억조차 어렴풋했다. 그를 스타단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모란은 그 일을 영원히 잊어버렸으리라 확신했다.

‘그렇지만 그 때의 감정만큼은 확실히 기억해.’

*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던 순간

아직 피나가 학생회장이고, 모란은 그저 이과반의 학생 중 하나일 뿐이었던 시절. 모란이 아직 사복이 아닌 교복 위에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다니던 때. 모야모가 아카데미를 콘텐츠로 방송을 하러 온다며 입구 홀에 사람이 무지하게 많이 몰려있던 날. 하필 그때 읽고 싶은 책이 입구 홀에 있다는 게 기억난 모란은 사이사이 메모지를 잔뜩 붙여놓은 책을 들고 걸어가던 피나와 부딪혔다. 서로의 책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아. 책이. 뭐라 말하지도 않고 바로 쭈그려 앉아 우물쭈물하며 책을 주우려던 모란의 눈에 메모지에 적힌 ‘피나’ 라는 글자가 들어왔다. 피나라는 이름은… 분명 학생회장이잖아.

모란이 얼어붙은 사이 옆에서 누가 자신의 책을 내밀었다. 괜찮아? 미안. 책이 바뀌었네. 그의 음성이 들린 순간 모란은 그를 돌아보지도 않고 이미 뒤집어쓴 후드티를 최대한 얼굴 아래로 끌어내린 채로 그에게서 책을 낚아채 도망치듯 입구 홀을 빠져나왔다.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은 채였다. 바닥에 떨어진 책과 함께 남겨진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당연하지만 몰랐다. 모란은 겨우 외진 곳에서 한숨 돌리고 나서야 자신이 왜 그랬는지를 명백하게 알 수 있었다.

우습게도, 떨어진 책에서 피나라는 이름을 발견한 순간 그는 그가 무언가 교칙에 위배되는 짓을 하진 않았는지 생각했다.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였다. 웃긴 일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테라스탈오브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바른 학생인 자신이 교칙에 반하는 짓을 했을 리는 없었다. 설령 그렇다 한들 피나는 모든 학생들의 공포의 대상이나 절대자가 아니며 당장 교칙을 어긴 학생을 발견했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리도 없었다. 교칙을 어겼다고 해서 바로 퇴학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피나의 이름과 학생회장이라는 신분 외에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그런데도 왜 그런 짓을 했던 걸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역시도 명백한 이유였다.

‘나는 남에게 어긋난 사람으로 보이는 게 무서웠던 거야.’

그즈음 몇몇 아이들의 입에서 모란의 출신지에 대한 말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팔데아지방의 학생이 되고 싶어했던 모란의 마음을 알지도 못한 채, 순식간에 그는 학생들 사이에서 완전한 이방인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만든 틀 안에서 올바른 생활을 하던 피나는 다른 사람들이 만든 또다른 올바름의 틀 밖으로 밀려났다. 그 후에는 어땠더라. 불행하게도 모란은 그 이후 다른 사람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다. 그러다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마음에 그는 마침내 스타단을 만들고, 자신과 같은 이름들을 찾고…

그러고 나서야 둘은 ‘만났’다.

현실이 아닌, 스마트로토무를 사이에 두고.

*

그렇게 다시 지금

회상 아닌 회상을 끝내고 컴퓨터 의자에 걸터앉은 모란은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다.

라이브를 직접 두 눈으로 보러 가고 싶다.

근데 그 어떤 사람들과도 마주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해놓고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밖으로 움직일 정도의 용기는 있는데 밖에서 직접 누군가를 마주할 용기는 없다. 대담하게 계획을 세울 수는 있지만 그 대담한 계획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는 없다. 그야말로 딱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모습 그 자체였다. 모란은 어중간하고 이중적인 자신의 면을 깨닫자마자 주체할 수 없이 우스워진 기분에 잠시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음침해 보이더라도 역시 그렇게 하고 싶어.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모란은 스마트로토무를 열어 지도 앱을 켰다. 팀 세긴의 아지트 주변을 살펴보던 그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돋보기 위로 떠오른 글자가 그를 사로잡았다.

서부 에리어 1 망루

망루. 확실히 공중날기택시를 타고 한번에 이동하기도 편하고 높은 데서 한눈에 아지트를 볼 수도 있었다.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고 무엇보다 모두가 점처럼 보이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가까이서 소리를 듣고 사람들을 보고 싶다면 그때는 피나가 연결해준 화면 안을 들여다보면 되었다. 무엇보다, 멀더라도 직접 두 눈으로 라이브가 열리는 걸 볼 수 있다는 게 그에게는 제일 중요했다.

하고자 마음먹었으면 한다. 그 외의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없었다.

모란은 망루 위로 뜰 준비를 했다. 약속한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

BGM / 에고 록 - 스리이 feat. 카가미네 렌

그리고 당일

‘힘들어….’

무계획적인 생각으로 꼼꼼하게 계획을 세운 모란이 간과한 점 하나는 망루에 올라가려면 사다리를 타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토마나 부르르룸을 타고 올라갈 수도 있었으나, 그러면 너무 주변 사람들 눈에 띌 것 같았다. 내가 망루에 굳이 올라가본 적이 있었어야 말이지! 속으로 소리를 지르며 모란은 평소에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은 것을 거의 처음으로 후회했다. 조금만 더… 이제 끝이야… 모란은 사다리를 올라가다 문득 자신이 뜬금없이 왜 이 생고생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기가 막혔다. 그냥 집에 앉아서 편하게 즐기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또 여기까지 오니 관두고 싶지도 않아졌다.

망루의 최상층에 올라서자마자 모란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주변 경치를 구경하라고 있는 곳인데 고개가 도저히 들리지 않아 땅바닥밖에 보이지 않았다. 조금 오랫동안 숨을 고르고 난 후에야 그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망루 위는 딱 예상했던 만큼 고요했고, 시야도 자신의 예상에서 한 치 앞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팀 세긴 아지트와, 주변을 둘러싼 험난한 절벽들. 그리고 자신 옆의 상자가 보일 뿐이었다. 저건 분명 상자폼 모으령이겠지. 괜히 건들지 말자… 모으령이 상자 밖으로 나온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높은 망루 위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에 모란은 왜인지 모르게 조금 안심이 되었다.

진 보스! 잘 들려? 잘 보여?

스마트로토무 너머로 피나의 목소리가 넘어왔다. 응. 잘 들려. 그리고 잘 보여. 자세히 들리지도 않고 자세히 보이지도 않는 망루 앞 풍경을 바라보며 그는 대답했다. 라이브 시작 전이지만 무언가 희미하게 소리가 들리고 점과 같은 사람들이 움직였다. 아마 장비를 점검하거나 무대 위를 세팅하고 있는 거겠지. 아지트 안의 단원들이 벌써 전부 모이느라 바쁜 것일 수도 있다.

무대 근처에 다른 사람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색상의 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라이브를 보러 온 다른 보스들이었다. 그들은 각자 다른 색이면서 하나의 점이라도 되는 마냥 라이브를 보기 위한 최적의 자리라도 찾는 건지 같이 이리에서 저리로, 또 저리에서 이리로 움직였다. 그 모습에 모란은 웃음이 나왔다. 잘 지내고 있구나. 이상하게 바로 앞 화면에서 목소리를 듣는 것보다 스마트로토무 없이 보이는 점들이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이윽고 아지트가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형형색색의 조명들로 가득 찼다. 라이브가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그와 동시에 모란의 스마트로토무에서도 무언가 치지직거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기대에 찬 표정으로 스마트로토무를 들여다보던 모란의 낯에 웃음이 가셨다.

‘어? 이건 디제잉 소리가 아니라….’

전파 상태가 안 좋은 건지, 피나의 기기나 자신의 기기 둘 중 하나에 이상이 있는 건지는 몰라도 거짓말같이 라이브가 시작되자마자 화면이 흔들렸다. 화면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소리였다. 기기의 스피커는 알아서 정박을 엇박으로, 엇박을 정박으로 송출하고 있었으며 피나가 디제잉을 하며 무어라 말하는 건 뚝뚝 끊기거나 아예 들리지 않았다. 음악 소리는 심하게 어그러져 모란이 미리 들어본 음원에서의 느낌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듣고 싶었던 건 현장감 있게 울려퍼지는 날것의 소리지 지직거리는 소리가 아니었는데.

‘망했네, 이거. 기껏 올라왔는데… 좀 허무하다.’

모란은 스마트로토무의 볼륨을 1로 줄였다. 차마 아예 무음처리를 해놓을 수는 없었다. 모란은 대신 망루 앞에 몸을 걸쳤다. 있는 힘껏 앞을 바라보며 들려오는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디제잉 소리와 피나의 목소리는 역시나 희미했다. 무대 맨 앞줄 중앙에 고정된 형형색색의 점들도 흐릿하게 보였다. 맨 뒷줄도 아닌 스테이지 펜스 밖의 관객이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분명 그랬는데. 자신의 두 발이 점점 떠오를 정도로 허공을 향해 들어올려져갔다. 모란은 어느새 저도 모르게 조금만 더 뻗으면 스마트로토무를 타고 내려가야 할 정도로 몸을 내밀고 있었다.

‘왜지… 음악 소리가 잘 안 들리는데도 즐거워. 다들 즐거워하고 있어….’

형형색색의 점을 중심으로 비슷한 색들의 점들이 제멋대로 들쑥날쑥 움직였다. 그것들은 가끔 타이밍이 맞으면 파도타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굳이 앞에 나서서, 가까이서 보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라이브를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중심에 피나가 있다. 과거 아카데미 학생회장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를 숨 막히게 했던 피나는 지금 DJ 악동이자 팀 세긴의 보스라는 이름으로 모두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분명 모란이 알던 예전과는 다른, 자유분방하고 보기만 해도 숨이 트이는 모습. 그렇지만….

‘피나답네.’

그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분명 무대 위에 올라서서 디제잉 중인데도, 멀리서 봐도 그의 동작에는 묘하게 각이 잡혀있었다. 그는 달라졌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여전히 예전의 그였다. 그는 분명 변하기도, 변하지 않기도 했다.

모란은 문득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그다운 모습이라면 이대로도 좋다고. 이대로란 영원히 지금 모습만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었다. 그냥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되든, 지금보다 더 변하든 변하지 않든, 그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의 시선으로 보고 싶었다. 예전보다 변했어, 변하지 않았어. 그런 말들하고는 상관없이.

우리가 각자의 새로운 이름을 뒤집어썼다고, 그렇지만 여전히 그대로라고 생각하던 자신은 제대로 생각하고 있던 게 아니었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전에 달던 이름표를 부수고 새로운 이름표를 단 것도, 과거의 허물을 벗었지만 완전히 새로 태어났다고는 할 수 없는 사람들인 것도 아니었다. 이름표니, 허물이니… 그런 것들은 애초부터 상관없었다. 우리는 여러 사건들로 인해 쌓인, 바뀌지 않는 여러 이름 아래 변하고 또 변하지 않는다. 그건 당연했다. 그 과정에 굳이 거창한 수식어를 붙일 필요도, 의문을 가지며 괴로워할 필요도 없었다.

‘무엇이 어떻게 되든 그것도 나겠지….’

모란은 스스로 붙인 이름을 곱씹어본다. 카시오페아. 그 이름을 가진 순간부터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항상 다른 보스들과 이야기를 마치고 난 후 스마토로토무 뒤의 자신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그 간극에 가끔 타격을 받거나 후회하고 자책한 적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냥 둘 다 자신일 뿐이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스타단에 들어온 후 다른 보스들에게 피나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한다고 했다. 예전에 저지른 일에 대해 그마저도 괜찮다고 말해주려는 건 아니었다. 그냥,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이니까. 모란은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그 역시 지금의 자신대로 살았으면 했다. 과거의 후회 가득한 자신에 매여있으려고 하거나 미래의 이상적인 나 자신을 좇는 게 아니라.

눈앞의 환한 빛이 꺼지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모란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깊게 생각에 빠져든 새에 라이브가 끝난 모양이었다. 조명도 내려가고 무수한 점들도 흩어지고 피나는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아마 감사 인사겠지. 관객 무리 가운데의 형형색색의 점들만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그가 무대 아래로 내려올 때까지 기다릴 모양이었다.

진 보스! 어땠어? 즐거웠지!

귓가에 희미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모란은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급하게 스마트로토무의 볼륨을 다시 최대치로 올렸다. 아까의 지직임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화면도 소리도 너무나 깔끔하게 송출되고 있었다. 뭐지. 이거. 스마트로토무 회사가 나를 상대로 벌이는 트루먼쇼인가? 아무래도 좋았다. 모란은 스마트로토무 화면을 똑바로 바라보며 웃었다.

“즐거웠어! 그리고 되게 멋있었어.”

“진짜로?”

“응. 진짜 멋있었어. 스타단으로 치자면… 그거라고. 피나 같은 사람처럼? 아무튼 진심이야.”

뭐야. 방금 내 말버릇 따라한 거야?! 스마트로토무 너머로 평소보다 크게 울리는 목소리에 모란은 주체할 수 없이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까의 복잡하던 머리는 어디 가고 이렇게나 천진하게 웃을 수 있다니, 역시 우리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오늘 라이브는 무엇보다도 진 보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응. 그 마음이 잘 느껴진 것 같아. 고마워.”

“그래서인가? 아까 라이브하는 내내 저기 망루 쪽에 별이 떠 있더라고!”

“어엉?”

모란의 입에서 또 멍청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설마 내 스마트로토무 불빛이 어디에 반사되거나 한 건 아니겠지? 상식적으로 그곳까지 불빛이 비춰질 리는 없었지만, 모란은 괜히 스마트로토무를 자신 가까이로 붙였다. 기막힌 우연이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되게 반짝였어. 그래서 더 진 보스가 생각나더라!”

“그, 그래. 고마워. 아무튼 라이브 잘 봤어. 난 이만. 수고하셨스타….”

수고하셨스타! 자신과 딱 같은 볼륨으로 인사하는 그를 뒤로 하고 모란은 한동안 망루 위에 가만히 서서 조명도 음향도 꺼진 팀 세긴 아지트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는 아지트를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을 때 되는 데까지 오래오래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오늘 같은 날이 아니라면 명분도 없고 굳이 또 밖으로 나가기는 힘들 테니까. 역시 좋다. 아지트를 말하는지 스타단 친구들을 말하는지도 모른 채 그는 계속 그 자리에 떠올라 있었다.

절대 내려가는 게 힘들어서 오래 있는 건 아니야. 그렇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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