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
유료

41화

샛길 하나

태홍이 제노를 연구실로 이끌었다. 뒤로는 마스와 주피터가 따라왔다. 그곳에서 제노를 맞이한 것은 새턴과 플루토, 그리고 붙잡힌 전설의 포켓몬- 유크시, 엠라이트, 아그놈이었다.

제노가 초록색 액체가 담긴 실험관에 죽은 듯이 갇혀있는 세 마리의 포켓몬을 바라보았다. 부글부글, 간간이 올라오는 거품 사이로 자신의 얼굴이 유리에 비쳐 보였다.

문득 갤럭시단과 처음 협력하게 된 사건이 떠올랐다.

*

지금으로부터 약 1년 반 전. 마지막 사천왕인 목호를 쓰러트렸지만 전당 등록을 포기한 제노는 도망치듯 관동을 떠나 신오로 향했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장막시티에 있는 갤럭시단의 본부에 방문하는 일이었다.

물론 초대받은 적은 없었다. 입단할 생각도 아니었다. 보통은 이걸 침입이라고 하겠지만, 아무튼.

“어이, 여기는 꼬맹이가 견학 오는 곳이 아니라고?”

“붙잡아!”

단 한 명의 침입자로 인해 쑥대밭이 된 아지트 안. 갤럭시단 조무래기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그를 둘러쌌다. 겉으로는 대기업 행세를 하고 있다더니 정말 사람이 많구나. 손에 연장을 하나씩 들고 있는 모습에 제노 옆에 서 있던 가디안의 눈에 살벌한 빛이 돌았다.

“몇 번을 말하지만 난 여기 보스를 보러온 거라니까.”

“네놈을 보스께 보낼 수는 없다!”

“여기서 막아!”

체력 낭비에 시간 낭비…. 제노가 한숨을 내쉬자 가디안의 양손에 사이코 에너지가 모여들었다. 웅웅거리며 위협적인 소리를 내던 그것이 조무래기들에게로 날아가기 직전, 누군가 끼어들었다.

“그만.”

묵직하고도 위압적인 목소리. 짧은 명령 한마디에 갤럭시단이 모두 전투태세를 물렸다. 조무래기들이 양옆으로 갈라서며 길을 내고, 목소리의 주인이 천천히 제노에게로 걸어왔다.

제노가 알고 있는 정보와 외관이 일치한다. 갤럭시단의 보스, 태홍이었다.

커다란 덩치를 가진 사내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제노를 내려다보았다. 모자의 챙 아래로 보이는 눈빛, 그리고 그 옆의 가디안….

보통 실력자가 아니군. 태홍이 입을 열었다.

“내가 갤럭시단의 보스다.”

“… 알고 있어. 태홍이지?”

“네놈, 건방지게 보스의 성함을 함부로 부르다니!”

그의 오른쪽 뒤에 선 주피터가 날카롭게 소리치는데도 태홍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가 한 손을 들어 올리자 주피터의 기색이 가라앉는다.

“나를 알고 있다는 건 막무가내로 쳐들어온 건 아니라는 말이군. 어디까지 알고 온 거지?”

“….”

“여기에 온 이유는?”

“당신하고 하고 싶은 얘기가 좀 있는데.”

호오. 작게 감탄사를 흘리며 그의 속내를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노려본 태홍이 뒤돌며 말했다.

“따라와라.”

*

앞선 태홍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최상층의 방이었다. 누가 봐도 보스가 사용할 법한, 원목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책상에 태홍이 자리하고 제노와 가디안은 맞은편의 소파로 안내되었다. 그를 압박하기라도 하듯 소파의 뒤에는 주피터와 마스가 섰다.

제노가 자리에 앉자 다시 문이 열리고, 푸른 머리의 남자가 트레이를 들고 들어왔다. 갤럭시단의 또 다른 간부, 새턴이었다. 그가 태홍의 앞에, 다음으로 제노의 앞에 찻잔을 하나씩 두었다. 그리곤 태홍의 옆에 선다.

“….”

“홍차는 취향이 아닌가?”

고운 빛깔의 액체가 든 찻잔에서 따뜻한 김이 올라왔다. 제노가 탁자에 올려진 잔을 흘긋 쳐다만 볼 뿐 손대지 않자 태홍이 실소를 흘렸다.

“마셔도 괜찮다. 차에 무언갈 타지는 않았으니.”

“알고 있어.”

그래, 알고 있다. 태홍의 성격에 그런 장난을 치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은 따로였다. 태홍이 새턴에게 명령했다.

“내 찻잔과 그의 찻잔을 바꾸도록.”

“태홍 님…!”

“….”

“… 알겠습니다.”

새턴이 분한 표정을 애써 숨기며 두 찻잔을 바꾸었다. 태홍은 아무렇지도 않게 제 앞에 놓인 홍차를 한 모금 삼켰다. 그제야 제노가 따라 손을 움직였다.

“대담하게 단신으로 아지트에 쳐들어온 것치곤 겁이 많군.”

“….”

“그 정도 실력의 가디안이 곁에 있는데도 두렵나?”

그 말에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엔 변화가 없었으나, 속을 읽힌 제노의 심장이 불안한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제노의 요구대로 가디안을 곁에 두게 했지만 상대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포켓몬은 물론 사람의 목숨도 가볍게 앗아가는 범죄 조직. 살면서 한번 볼까 말까 한 커다란 악의와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게 절대 쉽지 않았다.

대체 주인공들은 어떻게 이런 조직을 혼자 힘으로 괴멸시키는 거야. 제노가 조심스레 내려놓은 찻잔에 파문이 일었다. 그것이 가라앉을 때까지 침묵하던 제노가 입을 열었다.

“아까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고 물었지. … 알고 있어, 당신의 진짜 목적.”

“뭣…!”

그 말에 세 간부들이 조금씩 반응을 보였다. 태홍은 조용히 제노의 눈을 바라보았다. 간부들은 제노가 갤럭시단의 목적에 대해 알고 있다고 이해했겠으나, 그에게는 제노의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렸다.

‘나’의 진짜 목적인가. 태홍이 의자에 기대며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래서?”

“미리 말해두겠지만,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아. … 하지만 가는 과정은 같지.”

“과정이 같다?”

“그래. 호수의 세 포켓몬, 아직 붙잡지 못했지?”

간부들 사이에 혼란이 거세졌다. 저 여자,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유일하게 태홍만이 태연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제노가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해결하겠어.”

“호오. 전설의 포켓몬을 세 마리씩이나 상대하시겠다?”

“할 수 있어.”

제노의 눈이 확신을 담고 빛났다. 순간 자신조차 설득해 버리는 그 강한 의지에 태홍이 웃었다.

“그래서, 네 쪽에서 요구하는 것은?”

“원하는 만큼 힘을 빌려줄 테니 마찬가지로 갤럭시단 측의 협력을 얻고 싶어. 정보 측에서든, 물질적인 측에서든 말이야.”

너희처럼 대기업의 형태를 하고 있으면 몰라도 이쪽은 혼자거든. 제노가 덧붙인 말에 태홍의 비틀린 입술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그가 큰소리로 웃는다. 태홍의 웃는 모습을 본 간부들이 놀란 눈을 했다. 그가 말했다.

“좋다, 협력하지. 다시 소개하마. 갤럭시단의 보스, 태홍이다.”

“… 제노. 제노면 충분해.”

오직 이름만을 말한 그가 후드를 젖히며 얼굴을 드러내었다. 앳된 얼굴에 맞지 않는 짐을 짊어진 자의 표정. 태홍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제하시면 보관함에 소장 가능합니다.

카테고리
#2차창작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