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미래의 챔피언!

첫 포켓몬

포켓몬 / 2016년 05월 14일 에 올렸던 글→비문 수정 및 정발판 이름으로 수정

서고 by 예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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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눈초리로 죽일 듯이 째려보고 있으니, 감히 저 얼굴을 고개들어 올려다 볼 자신이 없었다. 자신도 알지 못하지만 별 수 없이 고개를 푹 숙인다. 죄의 이름은 몰라도 어쨌든 죄진 자는 말이 없었다. 자신이 번치코에게 과연 무엇을 잘못했는지 떠올리려고 열심히 있는 머리를 굴렸다. 어떤 잘못을 했을까, 어떤 잘못을 했기 때문에 나를 저리도 싫어하는 걸까. 이제는 만나서 알게 된지도 상당히 오래 되었다고 생각한다. 허나 그 긴 시간에 몇 번을 만나도 전혀 가까워지지도 않았고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친해지지도 않으니 조금 서글퍼졌다.

“성호 씨. 왜 그래요?”

그런 성호의 속을 모르는 것인지 소녀의 얼굴은 그저 해맑기만 하다. ‘봄이’. 이름처럼 화사한 봄을 닮은 여자아이였다. 볕같이 따스한 미소를 보노라면 온기가 가슴속까지 차오르는 것 같다.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 그렇기에 한없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 줄을 아는 아이……. 그저 사랑스럽다고 느껴지는 아이였다. 성호는 말 못할 마음의 고통을 삼키고,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는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음, 봄이의 번치코가 나를 싫어해서. 왜 나를 이렇게 싫어하는 걸까? 이유라도 알면 좋겠는데, 뭔가 내가 번치코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아.”

“하하……. 번치코가 남자아이라서 그런 걸까요?”

“아니,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

일전에 본 휘웅이라는 봄이와 이웃사촌인 남자아이와는 잘만 지내는 것을 목격했으니 남자이기 때문에 싫어한다는 이유는 절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을 싫어해서인 게 분명했다. 그 사실이 허탈하여 성호는 또 고개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봄이가 위로하듯 여린 손으로 어깨를 토닥거려주곤 그의 기분을 풀어주려 얼른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성호 씨는 항상 메타그로스와 함께인데, 혹시 메타그로스가 성호 씨의 첫 포켓몬인가요?”

“응, 메탕 때부터 같이 했지.”

‘메타그로스’는 나성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포켓몬이다. 강철타입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이름난 포켓몬인데, 언제나 성호의 옆에는 메타그로스가 있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메탕’ 때부터라면 언제일까. 봄이가 처음 봤던 성호는 이미 트레이너의 정점인 챔피언 자리에 있었으니 그의 첫 출발이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도 봄이의 나이에 첫 출발을 했을 거야. 아버지에게 받은 메탕을 파트너로 호연을 여행한 그 날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

옆에 착 달라붙어 작고 짧은 다리로 안아달라고 애교를 부리는 가보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는 말을 이어갔다.

“메타그로스가 메탕이었였을 때는 지금 이 가보리처럼 애교도 부리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러기 쑥스러운 모양이야.”

아이에서 어른이 된 성호처럼 메탕도 성장을 하여 메타그로스가 되었다. 사실 메타그로스는 안기기에 이제 덩치도 커졌고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에 가까운 것인데, 그것을 알 리 없는 성호는 이전과 같이 대하지 않는 메타그로스의 모습에 조금 서운한 모양이다. 그래도 옛날 일을 회상하고 떠올리면 즐겁다. 성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니 그를 보며 봄이가 따라 웃었다.

“하루카는 호이 아니라 성도 지방 출신이라고 했지?”

“네. 담청 시티에서 왔어요. 아빠도 그곳에서 태어나셨고요.”

봄이 그녀의 아버지는 등화 도시의 체육관 관장 종길인데, 그가 체육관 관장으로 취임하게 되면서 가족들도 함께 호연으로 이사 온 것으로 그녀는 이 호연 출신이 아니었다. 지금은 이 지방을 여행하고 다니며 배지를 모으고 있으니 호연에서 상당히 유명해진 모양이지만 말이다.

“아사기 시티……. 성도의 아름다운 항구도시지. 예전에 성도와 관동에 갔을 때 가본 적 있어. 들어갈 때는 배를 타고 들어갔거든.”

“아! 성 씨, 두 곳 모두 가보셨군요.”

“달맞이산과 절구산에도 볼 일이 있어서.”

역시 돌을 좋아하는 그답게 돌을 목적으로 갔었던 모양이다. 각 지방마다 유명한 동굴이 있고 그곳마다 캘 수 있는 돌의 종류가 확연하게 다르니, 확실히 돌 마니아라면 꼭 가볼 만한 곳임이 맞겠다. 봄이는 성호 씨 답다며 까르르 웃었다.

“봄이의 첫 포켓몬은 아챠모지. 이 호연의 포켓몬은 여기에 와서 처음 봤을 텐데, 아차모를 고른 거라면 불꽃 타입 포켓몬을 좋아하는 거니?”

“네, 좋아해요.”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는지 번치코는 이제 진화해서 커다래진 덩치로 아이처럼 봄이에게 매달렸다. 이렇게 보면 번치코가 정말 성호를 싫어하는게 맞는 건 같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트레이너에게 계속 붙어있는 남자를 못마땅하게 보고 있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같지만 말이다. 봄이는 아이같은 번치코를 아이처럼 사랑스럽게 안아주며 말을 했다.

“저, 호연의 포켓몬을 호연에 와서 처음 본 게 아니에요. 성도에서 딱 한번 본 적 있어요.”

트림을 하자 불꽃이 튀었다. 뜨겁다고 느끼기도 전에 꺼져버리는 작은 불꽃은 이 작은 병아리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 포켓몬 푸드를 잔뜩 먹어 불룩 튀어나온 배는 아주 빵빵했다. 배부르다고 뒤뚱뒤뚱 걷다가도, 저의 트레이너를 발견하면 아장아장 속도를 내어 달려가는 모양이 너무나도 귀여워선 소녀는 동그란 눈을 반짝였다.

“이 포켓몬은 어떤 포켓몬이야? 성도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소녀의 질문이 들려오자 한참 자신의 포켓몬 블레이범을 돌보고 있던 소년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차모라는 포켓몬이야. 호연의 초보자용 포켓몬이라고 해. 뭔가 돌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받은 포켓몬인데..., 봄이도 언젠가 만날지도 모르겠네. 호연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지?”

이제 봄이가 호연으로 이사를 가기 때문에 소년과는 마지막으로 만나는 것이었다. 이제 다시는 못만난다고, 헤어짐에 그리 울적하여 눈물이 그렁그렁했던 봄이의 얼굴이 아차모를 보곤 다시 꽃같이 피는 것을 보곤 소년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우는 얼굴이 어울리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보는 봄이의 우는 얼굴이라면 가슴아픈 헤어짐이 더 슬펐을 것이라는 생각 뿐이었다.

“정했어! 나, 첫 포켓몬은 아차모로 할거야!”

“응? 벌써 정한 거야?”

벌써부터 들뜬 모양이다. 그녀의 품에 꼬옥 안겨있는 아챠모는 따뜻한 열기를 내뿜으며 좋은 기분대로 발장난을 쳐댔다.

“블레이범도 귀엽고 아차모도 귀여운걸. 그리고 이 아이들의 불꽃은 상냥하고 따뜻해서 좋아해.”

그 말을 듣고는 소년은 소녀가 불꽃과 닮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상냥한, 다정함... 어쩐지 그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제 만나지 못하는 걸까. 성도와 호연은 머니까...”

“그런 소리하지 마. 또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때는 너의 아차모를 볼 수 있겠네.”

블레이범을 데리고 있는 소년은 그렇게 말했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소녀는 기약이 없다고 해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그 말에 너무나도 기뻤다.

“응! 심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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