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bossday to Cassiopeia
게임프리크, 모란이 생일 좀 알려줘.
BGM/ 스타더스트 메들리 - 키사라(feat. 하츠네 미쿠)
“오늘 소인이 이렇게 갑작스레 모이자고 한 이유는 내일이 모란 나리의 생일이라는 정보를 방금 입수했기 때문이오.”
“응?”
“뭐?”
“엥?”
“어?”
어떤 인간관계이든 서로간에 마땅히 챙겨야 할 기념일을 까먹고 있다 놓치는 것만큼 미련해보이는 일은 없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미련해보이는 일이 딱 하나 이 세상에 존재한다.
그건 바로 마땅히 챙겨야 할 기념일이 언제인지를 아예 모르는 것이다.
그건 고의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스타단의 경우는 당연하지만 후자였다. 그야 당연하지, 우리 감격의 재회라고 해야 할지 만남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을 겪은 지 일 년도 안 됐다고. 근데… 응, 우리가 생각해도 이건 좀 너무했다.
*
추명은 사람들을 급하게 불러모은 것 치고는 일목요연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모르는 수학문제가 있어 타임 선생님께 물어보러 갔는데, 타임 선생님하고 같이 문제를 풀어보고 나서 그나저나 내일이 모란이 생일인데 다같이 파티 같은 건 하니? 라고 물어봤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버릴 뻔 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 길로 급하게 타임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마하펀치 같은 속도로 자리를 빠져나와 다른 친구들을 불러모았다. …여기까지가 있었던 일. 있었던 일들을 돌이킬 순 없지만 일어날 일들은 우리가 만들어나갈 수 있다. 그래. 몰랐더라도 이제부터라도 최고의 생일파티를 해주면 되지. 그런데…
“모란이 무슨 맛 케이크 좋아하지? 아는 사람 있어?”
“…….”
“선물은 뭐가 좋지? 생각나는 거 있는 사람?”
“…….”
“얘들아?”
비파 말고는 모두가 입에 봉인 기술이라도 걸린 것마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란이는 단 걸 좋아하니까 초콜릿 케이크? 아니면 아예 여러 맛으로 한 판을 만든 케이크? 선물은… 이브이 인형? 돌핀맨 피규어? 뭘 생각해봐도 그럴듯했지만 동시에 너무 막연했다. 단순하게 무난히 좋아하는 걸 주고 끝낼 수도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 하루 전이라면 준비하기도 바빠 다음날 어떻게든 축하나 해주면 그럭저럭 좋은 마무리였다. 어떻게든 깜짝 축하를 받는다면 모란도 틀림없이 좋아할 터였다. 그렇지만 모두의 마음 한구석에는 어딘가 켕기는 부분이 있었다.
“생일을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조차 못 했어.”
“그러게, 모란이는 우리랑 만나기 전부터 우릴 너무 잘 알고 있었는데.”
물론 물어봐서 알게 된 건 아니었지만. 그것도 그래. 멜로코랑 피나가 잠시 눈을 마주치며 실없이 웃었다.
멜로코는 아카데미로 돌아오고 난 어느 날 우연히 입구 홀에서 마주친 푸름에게 스쳐지나가듯 팀 쉐다르 해체 당시의 일을 언급했다. 아무리 모란이랑 함께했다 하더라도 너무 잘 싸우던데? 챔피언 랭크는 다 그래? 푸름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냐, 그게 사실은 모란이가 어떻게 상대하면 좋을지 하나하나 다 알려줬거든. 머쓱한 얼굴로 웃는 푸름 앞에서 멜로코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푸름이 인사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단순히 강한 트레이너를 내세운 게 아니라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를 알려줘가면서 작전을 진행시킨 거라니.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하다못해 그 적이 친구이기도 하다면? …말할 것도 없겠지.
“우리 모란이에 대해 생각보다 너무 많은 걸 모른다.”
“그러네.”
말한 사람은 오르티가 하나였지만 동시에 네 목소리의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뭐야? 이렇게까지 같은 마음일 것까진 없잖아? 당황하는 오르티가를 보며 웃는 것도 잠시였다. 분위기는 다시 순식간에 차분해졌다. 생각해보면, 현실에서 모란을 만난 이후로도 특별히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별로 없었다. 이미 어렴풋이 느끼던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확인받거나. 알던 무언가를 눈앞에서 마주하고 이게 과장이 아니었냐며 신기해했을 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생일조차 안 물어본 건 너무하긴 했어.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여기 앉아서 모르네 아네 할 시간에 뭐라도 해야 하지 않아?”
당장이라도 아카데미를 뛰쳐나가 공중날기택시를 타고 파티시에 사보니에르로 달려나갈 기세의 멜로코는 의자에 앉아있는데도 자연스럽게 바깥쪽 다리가 의자 옆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다른 누구들 중 하나라도 그렇네. 라고 하면 바로 일어날 것 같았다. 확실히 그의 말은 틀린 건 아니었다. 고민하다가 하루가 저무느니 엉망진창이라도 뭐든 준비하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역시 케이크랑 선물 전달식만 하기는 너무 심심하지 않아?
모란이가 필요로 하는 것도, 간절하게 가지고 싶어 하는 것도 뭔지 잘 모르겠다. 받으면 기뻐할만한 것도… 셋 다 모르겠다면 눈을 돌려야 했다. 단순히 자신이 바랐던 게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무언가를 주는 건 어떨까?
“뭔가 다같이 아이템을 맞추는 건? 뭘 원하는지 당장은 잘 모르니까 괜찮을 거 같은데.”
“좋긴 한데 다같이 가지면 생일선물의 의미가 없는 것 같소.”
“그것도 그렇네.”
피나와 추명을 거쳐 대화는 다시 제자리였다. 이벤트고 케이크고 뭐고 생일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선물에서 이렇게 막히다니. 벌써부터 내일 하루가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모란이한테 진짜 선물이 될 만한 걸 주는 건 어때? 너무 모호한가?”
비파의 말에 대답 대신 네 명의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이 날아왔다. 진짜 선물이 될 만한 거? 딱히 생각하지도 않았고 평소에 사고 싶단 생각도 안 했는데 선물이 될 만한 게 무엇이어야 할지 잘 몰랐다. 이럴수록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아닐 때도 있지만 선물은 보통 가지고 있지 않은 걸 주면 좋아한다. 갖고 있지 않은 것… 모란이가 갖고 있지 않은 것? 건강한 식습관? 규칙적인 생활패턴? …아!
“좋은 생각이 났어! 잠시만 이리 와봐.”
“음? 티가. 뭔가 아이디어라도 있어?”
“응. 근데 조금 도움이 필요해. 그리고 조건이 있는데…”
생일파티 무조건 팀 루크바 아지트에서 해야 돼. 그게 무슨 말이야? 물어본 비파도 나머지 세 사람도 잠시 의문스러운 얼굴이었으나 그의 말을 듣고 나서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재밌겠네! 이거야! 근데 거의 밤을 새야겠네… 난 이미 준비됐는데?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누구 하나 빠짐없이 웃고 있었다.
그가 말한 대로라면 최고는 아니더라도 분명 기억에 남을 생일이 될 수 있을 터였다.
그럼 바로 시작해볼까!
*
전날 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팀 루크바 아지트로 오라는 연락을 받은 모란은 일어나자마자 눈이 크게 떠졌다. 뭐지? 내가 언제 스타단 친구들에게 생일을 알려준 적이 있었나? 모란은 평소에 눈치가 아주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상황파악도 못할 정도로 분위기를 못 읽는 사람도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는 그냥 오늘이 생일이라고 말하고 축하 정도만 받을 생각이었다. 물론 말하면 축하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건 알았지만, 굳이 생일 전부터 동네방네 이날이 생일이라고 말하고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새삼스럽잖아.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다 알게 될 텐데 뭐.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몰랐지만 일단 뭐라도 준비해줬다는 사실이 눈물나게 고마워 모란은 바로 공중날기택시를 타고 팀 루크바 아지트로 이동했다.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도달한 아지트는 너무나도 평소대로였다. 꽃이 만발하고 내부에 물이 고인 그냥 루크바 아지트. 그렇지만 모란은 그런 점이 오히려 좋았다. 특별히 신경썼다는 느낌을 내지 않아도 이렇게까지 날 생각하는 마음이 묻어날 수 있다니. 모란은 벅찬 마음을 안고 조심스럽게 팀 루크바 아지트 안으로 들어갔다.
오르티가가 평소 머무는 커다란 천막 앞에 다섯 명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란에게 손짓했다. 빨리 와! 우리가 케이크 다 먹어버린다! 알았어! 모란은 저도 모르게 천막 앞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얼마나 뛰었다고 조금 지쳐 작게 숨을 고르는 모란을 제일 먼저 반긴 건 커다란 케이크였다.
“모란아! 생일 축하해!”
“얘들아…. 정말 고마워.”
형식적인 듯 전혀 그렇지 않은 인사말이 오갔다. 모란은 떨리는 숨으로 초를 불고 나서야 케이크가 눈에 들어왔다. 무난하고 호불호를 별로 안 타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 그러나 자세히 보면 케이크 위 딸기가 스타단 로고 모양으로 빽빽하게 데코레이션되어 있었다. 가운데의 비어있는 S자 부분 중심에 꽂힌 초마저도 보스의 생일에 어울리는 데코레이션처럼 보였다. 드디어 화면 밖으로 나온 친구로, 또 스타단의 보스로 처음 맞이하는 생일에 어울리는 케이크였다. 케이크 전달과 초 불기는 그런대로 정리된 분위기에 피나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따 선물 증정식 끝나면 다같이 나눠먹자고!”
“선, 선물까지 준비했어? 그렇게까진 하지 않아도…”
“그냥 주는 거 아닌데? 조건이 있다고.”
“조건? 무슨 조건?”
모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피나가 옆에 끼고 있던 노트북을 펼쳐 무언가를 틀었다. 경쾌한 기타 소리에서 출발하여 달려나가기 시작하는 노래. 모란의 귀에 무섭도록 익숙한…
이건… 스타단 배틀 음악?
“우리 다섯과 배틀해서 전부 이기면 선물을 줄게!”
“뭐?”
“왜? 선물 받기 싫어?”
“그, 그건 아니야! 알았어. 걸어온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 그게 스타단의 규칙이기도 하니까.”
다같이 모였는데 제일 먼저 규칙을 어기는 건 보스로서의 도리가 아니지! 모든 게 얼레벌레 흘러가는 와중에도 모란은 자세를 고쳐잡고 두 손을 모았다. 이거 근데 나도 스마트로토무로 배틀 음악 틀어야 하는 거 아닌가?
*
어느덧 엄연한 배틀 트레이닝 센터로 거듭난 STC의 수장들답게 승부는 몇 차례가 돌아도 팽팽했다. 모란은 진지하게 배틀에 임하는 와중에도 다른 친구들의 포켓몬을 가까이에서 마주하자 이따금씩 옛 추억이 떠올랐다.
대도각참을 보면 스타단에 들어왔으니 엔트리를 전부 악 타입으로 바꿀 거라고 말하던 피나가, 카디나르마를 보면 스타모빌에 화력을 보태겠다고 카르본들을 열심히 키우던 멜로코가, 부르르룸을 보면 이젠 스타모빌이 있으니 엔트리에 부르르룸이 둘이라고 웃던 추명이, 바우첼을 보면 페어리 타입은 귀엽지 않은 면도 있다고 진지하게 말하던 오르티가가, 저승갓숭을 보면 항상 화면 너머로 트레이닝을 도와주었던 비파가 생각났다.
‘악의 조직’으로서의 스타단은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그 점이 무색하게도 모두의 엔트리에는 모두의 잊지 못할 추억과 즐거웠던 기억이 녹아있었다. 그래. 지금은 STC지만 이렇게 보니 우리 여전히 스타단이구나…
추억에 잠기다 말다 하는 사이 모두의 포켓몬이 다시 볼 안으로 돌아갔다. 음? 진짜? 나 한번에 다섯 명을 이겨버린 거야? 너희 봐준 거 아니지? 얼떨떨해진 모란을 두고 모두가 그의 말에 정색하며 반박했다. 나 진짜 진심이었거든! 아, 알았어. 미안해, 티가. 아무 죄 없는 땅에 발길질하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그를 뒤로 하고 추명이 박수를 짝 치며 말했다.
“그러면 약속대로 선물 증정식을 진행하겠소!”
“우와, 증정식, 거창하네… 어?”
모란의 말을 멈춘 건 어느새 커다란 천막 양옆에서 천막 입구를 걷으려고 하는 조무래기들이었다. 보스들이 모두 쓰러졌어! 진 보스를 불러와! 여느 때와 같지만 꽤나 오랜만인 멘트 앞에서 모란은 잠시 벙쪄있었다. 엥? 진 보스? 진 보스는 난데… 천막이 걷히고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아주 느린 속도로 천천히 천막 밖을 빠져나왔다. 너무 느릿느릿 모습을 드러낸 나머지 모란은 그게 대체 무엇인지 한참을 바라보아도 알 수 없었다. 거대하고, 군데군데 페인트와 별 무늬가 덧칠되어 있고, 무언가 양옆에 달려다 말았는지 옆면에 손본 흔적이 있고, 느리지만 굴러는 가고, 그렇게 엉성함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눈부시게 빛나는 이건…
“스타모빌이잖아….”
다섯 보스들은 미리 연습이라도 한 것마냥 일렬로 스타모빌에 붙어 짠!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몇몇은 굳이 이런 포즈까지 해야 하냐는 얼굴이었지만 동작만큼은 제대로였다. 가운데에 우뚝 선 스타모빌은 분명 차의 형상이었지만 완성품이라기에는 많이 조잡했다. 반절 이상이 색칠도 안 된 채였고, 반쯤 달려다 만 스피커는 떨어질락말락 위태롭게 붙어있었다. 그래도 이건 스타모빌이야! 아직 덜 만들었을 뿐. 멜로코가 우린 최선을 다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얘들아….”
“사실 우리, 어제 오늘이 모란이 생일인 걸 알았어. 타임 선생님이 알고 계시더라고. 그래서 뭘 하면 좋을까 하다가 급하게 준비했어. 언니로서 뭔가 미안하네… 그래도, 항상 고마워. 그리고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하오! 모란 나리!”
“축하해.”
“뭐… 그래. 축하는 해줄게!”
“정말 축하한다고!”
스타모빌은 꼭 완성해서 다시 줄게! 모두가 하나되어 전하는 믿음과 마음에 모란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서 스타모빌과 그 주위를 둘러싼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딱히 그만 모빌이 없는 게 서운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보니… 이제는 완성하지 않는 편이 훨씬 더 서운할 것 같네. 모란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눈에 고인 눈물을 애써 닦아내었다. 내 생일을 축하하겠다고 이렇게까지. 무언가가 계속 울컥하고 치솟아오르는 기분에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모란아, 설마 울어? 너 울어? 너 울어?!”
“아, 아니야, 멜리. 네가 키운 카르본들 화력이 너무 세서 그런 거거든…”
모란은 크게 한번 훌쩍이고 고개를 들어 다시 친구들을 마주보았다. 엉망진창인 스타모빌의 한가운데에는 칠이 덜 된 스타단의 로고가 크게 박혀 있었다. 그야말로 진짜 진 보스에 어울리는 디자인이었다. 고마워. 얘들아. 다 만들면 나 꼭 열심히 타고 다닐게. 아지트에서도 학교 운동장에서도 기숙사에서도… 뭐? 감동에 젖어 아무 말이나 내뱉는 모란을 모두가 둘러싸고 웃었다.
어느덧 하늘의 한가운데에서 내리쬐는 해가 스타모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칠이 덜 돼 광택이 거의 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찬란하게 모두의 곁에서 빛났다. 해가 져도, 어두운 밤의 한가운데서도 분명 그럴 것이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래. 딱 너에게 어울리는 자리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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