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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제멋대로인 걸스나잇이 멈추지 않아

이 글은 걸스나잇과 걸스토크를 모르는 사람이 작성했습니다.

BGM / Where shall we go? - 메로쿠루(feat. 카가미네 린 & 렌)

사람은 때때로 주변 환경을 돌아보지 않고 무언가를 저지른다.

그러곤 후회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이미 저질러놓은 일은 한 발짝씩 다가온다.

아주 천천히, 하지만 빠르게, 그리고 냉혹하게…

*

‘내가 왜 그랬지?’

전날 밤 아무 생각 없이 비파와 멜로코에게 내일 주말인데 기숙사에서 같이 놀지 않을래? 라고 메시지를 보낸 모란은 아침이 밝아서도 아닌, 그날 새벽에 몇 시간 전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굳이 따지자면 계획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에 가까운 그였지만 그는 때때로 알 수 없는 충동에 휩싸여 무언가를 저지르고는 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그 중심에는 언제나 스타단이 있었다.

그날 저녁 모란은 기숙사 방에서 밥을 먹으며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 별로 모란의 취향은 아닌 것 같아 보였지만, SNS에서 재미있다는 말이 워낙 많아 1화만 한번 볼까? 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튼 애니메이션은 생각보다는 볼만했다. 그래도 2화가 그렇게까지 궁금하지는 않네… 그가 일상적인 내용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너무 평이하거나 평화로운 전개를 마냥 귀엽고 좋고 힐링된다며 웃으면서 보는 사람 역시 아니었다.

애니메이션의 내용은 평범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셋이 학교에서 이야기를 하고, 같이 놀고, 맛있는 걸 먹고, 가게를 쏘다니며, 서로의 집에 초대해서 파자마 파티를 하고… 너무 아무런 사건이 없어서 어떤 생각도 들지 않고, 급기야는 애니를 보고 있는데도 심심해질 정도였다. 가볍게 보기에 좋긴 한데 이런 건 뭐랄까, 작품성은 잘 모르겠고 그냥 예쁘장한 캐릭터와 수려한 작화로 비주얼 장사하며 캐릭터 굿즈나 왕창 팔아먹는 양산형 모에 애니잖아. 자신만의 오타쿠 철학이 확고했던 모란은 고개를 저었다. 요즘 애니 트렌드 잘 모르겠다. 전에 보다가 만 거나 봐야지…

그러고 끝날 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먹은 걸 정리하려 자리에서 일어난 찰나 침대가 눈에 들어온 순간 모란은 아까 본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셋이서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후식으로 냉장고에서 케이크를 꺼내려다가도 문득 아까전의 그들이 카페에서 애프터눈 티 세트를 먹으며 즐거워하는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굿즈존으로 눈을 돌리면 귀여운 캐릭터 키링을 고르며 서로의 가방에 달아주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내가 드디어 미쳤나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란은 그것이 애니를 인상 깊게 봐서 생긴 현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물론 그 장면을 보지 않았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생각이었겠지만, 막상 눈앞에서 보고 나니 그런 평범하디 평범한 것들을 해보고 싶어졌다. 애니메이션에서 ‘평범한 일상’이라며 그려낸 장면들은 생각해보면 자기 자신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아니었다. 비록 지금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래. 지금이야말로 저렇게 ‘평범한 것들’을 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모란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 길로 모란은 바로 비파와 멜로코에게 연락을 넣었다. 왜 하필 그 둘이냐면, 그냥. 여자들끼리잖아. 애니메이션에서 그랬듯이… 뜬금없는 연락에도 비파는 재미있겠다며 흔쾌히 응했고 멜로코는 갑자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퉁명스레 대답하면서도 마지막 말은 알았어. 갈게. 였다. 한번 하고자 하니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기숙사에서 놀면서 다음에 어디 놀러갈까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자고 해야지. 즐거워하던 모란의 발에 무언가 채였다. 라면 박스였다. 그것도 언제 뜯었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모란은 그제서야 불현듯 무언가 깨달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굿즈 박스, 레토르트 식품 박스, 다른 방보다 현저히 어두운 방 조명, 군데군데 흩날리는 이브이의 털. 이 기숙사 방, 절대 하하호호 웃으면서 대화를 할 장소 같은 게 못 된다.

비파나 멜로코의 방으로 장소를 변경할 수도 있었지만 모란은 남들이 자고 있을 새벽 전례 없는 대청소에 돌입했다. 그래도 내가 보스인데 모양 떨어지게 말을 바꿀 수는 없어… 모란은 항상 스타단 앞에만 있으면 평소보다 더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이고자 했다. 그렇기에 차라리 자기가 좀 고생하고 말지 보스로서 다른 간부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그거고 역시 청소고 정리고 힘들어 죽을 것 같다… 모란은 박스를 밖으로 내놓기 위해 네 번쯤 밖을 왔다갔다 했을 때쯤 깨달았다. 역시 두 번은 안 되겠다고.

*

밤새 열심히 고난과 역경의 길을 걸어 아침을 맞이한 방은 완전히 반짝반짝 말끔해졌다기보단 그냥 딱 사람 사는 방이었다. 청소고 정리고 자주 하지도 않고 소질도 없는 사람이 하루 싹 치웠다고 방이 180도 달라질 리는 없었다. 그냥 공간이 많이 생기고 밝아지고 뭐가 안 날리는 모란의 방일 뿐이었다.

‘망했다. 이런 곳에서 도란도란한 대화가 가능할 리 없잖아…’

급하게 귀여운 이브이 굿즈를 꺼내 밖에 전시해보기도 했지만 그냥 이브이 굿즈가 밖에 있을 뿐인 모란의 방이었다. 뭘 해도 애니메이션의 그 캐릭터 방 같은 느낌이 안 나네. 모란은 절망했지만 어차피 근본부터 뒤집을 수는 없는 일,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도 처음 스타단 친구들이 다같이 기숙사 방에 놀러왔을 때보다는 깔끔해보여 모란은 그래도 발전한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이런저런 간식거리를 챙겼다. 이럴 줄 알면 뭔가 깔끔한 파자마 같은 거라도 준비해놓을걸. 후줄근한 후트티 차림의 자신을 보며 그는 옷장에 후드티가 아닌 다른 옷도 좀 두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밖에서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대체 뭘 입어야 후드티 옷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모란은 누가 가볍게 노크하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비파 뒤에서 멜로코가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같이 왔구나. 모란이 미리 부탁한 대로 둘의 손에는 파자마랑 각종 간식거리가 들려있었다. 슥 바라보니 비파와 멜로코의 옷도 애니메이션에 나왔던 것 같은 아기자기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보다는 깔끔하네… 모란은 멋쩍게 웃으며 둘을 방 안으로 안내했다.

“모란, 솔직히 말해봐.”

방 안에 셋이 대강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멜로코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응, 왜?”

“왜 여자들만 오라고 한 거야?”

“아, 그건…”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거기 나온 여학생들 셋이 이러저런 걸 하는 게 재밌어보여서… 라고 답해도 이상할 건 전혀 없었고 여기 있는 누구라도 이해해주지 못할 건 아니었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물음에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도 그는 무의식중에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조금은 신경쓰고 있었다. 그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멜로코가 말을 이었다.

“역시 남자애들 중에 조…”

“조, 좋, 어?”

“…조금 거슬리는 애라도 있는 거지? 사실대로 말해.”

“응?”

“누구야? 추명? 아니면 역시 오르티가? 의외로 피나? 말만 해. 내가 내일 바로 기숙사에 찾아가서—”

“그, 그런 거 아니야!”

“아니야? 확실해?”

“확실해. 난 그냥, 어제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여자들끼리 이야기하고 그러는 게 재밌어보여서….”

아아. 평범하게 오타쿠 같은 이유였구나. 멜로코는 다행이라는 듯 벽에 몸을 기대며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둘이 그러고 있는 사이 비파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주변을 세팅하고 차분하게 가져온 간식거리들을 접시에 담고 있었다. 그의 손길이 닿자 그냥 조금 치워진 모란의 방이었을 뿐인 방 안에 약간의 색다른 분위기가 감돌았다. 우와, 비파 언니 진짜 대박… 모란이 감탄하고 있는 사이 멜로코는 이미 침대에서 내려와 비파가 펼친 작은 간이 테이블 앞에 앉아있었다. 비좁은 방 안에 세 사람이 앉아있으니 안 그래도 방에서의 좁은 행동반경이 더욱 좁아졌다.

“우리 대체 저번에 여섯 명이 한 방에 모였을 때는 어떻게 움직였던 거지?”

“응? 그때 나랑 피나 빼고 전부 누워있었잖아?”

“아, 맞다. 그래서 언니가 나한테 평소에도 누워있으면서 좀 일어나있으면 안되냐고 했었지.”

“그래.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눕는 거 금지야.”

우리가 누우면 그때 같이 누워야 돼, 알았지? 비파의 말에 모란은 믿을 수 없는 말이라도 들었다는 듯 큰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앉아있어야 한다고? 컴퓨터 앞 말고, 아카데미 안 말고 방 안에서까지? 모란은 허망한 얼굴로 주저앉듯 간이 테이블 앞에 앉았다. 사람도 있고, 간식거리도 있고, 그럴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인 것도 같다. 그런데…

‘무슨 얘기를 하지?’

아무리 봐도 지금 모양새는 애니메이션에 나온 모습은커녕 오늘 내가 너희를 부른 이유는 걸즈 토크(대체 무엇이 걸즈 토크라는 것인지 모란은 잘 몰랐으나 아무튼 애니메이션에서 그렇게 말했으니 그렇게 생각했다.)를 하기 위해서다… 에 훨씬 가까웠다. 막상 불러놓고 자신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말도 안 된다. 일단 무슨 말이든 하자. 모란이 부르르룸이 휠스핀을 쓰듯 갑자기 손을 들며 말했다.

“혹시 어제 맨돌핀맨 시즌 2 본 사람?”

아,

추명이라면 몰라도 이 중에 있겠냐고 진짜…

주변 생각도 안 하고 저지른 일은 역시 항상 이런 식이다!

*

모란의 급발진에도 생각보다 대화는 순조로웠다. 애니메이션 말고 다른 건 뭘 좋아해? 라는 비파의 물음을 시작으로 자연스레 평범한(모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애니메이션에도 나왔을 법한) 대화가 이어졌다. 디저트는 무조건 단 게 좋다는 모란의 설탕 예찬론에 비파와 멜로코는 고개를 저었다. 운동해야 해서 너무 단 건 좀… 이라거나 난 그냥 달기만 한 것보다 덜 달더라도 맛있는 게 좋다는 등 각자의 취향은 생각 이상으로 제각각이었다. 귀여운 옷은 잘 모르겠지만 역시 귀여운 인형 같은 건 좋다는 비파의 말에는 모두가 공감했지만, 그래서 저승갓숭 인형을 하나 살까 봐~ 라는 뒷말에는 그를 제외한 모두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저승갓숭이 귀엽다고? 진심이야?”

“귀여운데?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었어? 멜리 너도 저번에 카르본 귀엽다 그랬잖아.”

“아니, 카르본은 당연히 귀엽지. 카디나르마도 귀엽고. 근데 내 기준에선 저승갓숭은 귀여운 쪽은 아니야.”

“나, 나는 저승갓숭이나 카디나르마는 귀엽다기보단 멋있다고 생각해… 귀여운 건 역시 브이브이들이지!”

호불호 없이 귀여운 브이브이 여섯 마리를 데리고 있는 모란은 슬쩍 끼어들어 취향 토크에 편승했다. 맞아, 이브이도 귀엽지! 그건 당연한 거잖아… 같은 말에도 날아오는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주제가 바뀔 때마다 셋은 미리 짜기라도 한 듯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진지하게 앞으로의 STC에 대한 운영 방향성을 이야기하기도 하다 다음 주에 학생식당에서 무슨 샌드위치를 먹을지에 대한 말이 나오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에 나온 것 같이 마냥 웃고 떠들며 맞아맞아~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전혀 생각했던 느낌이 아닌데도 재밌어.’

걸스 나잇(모란은 걸스 나잇이 뭔지 아직도 정확히 몰랐지만 애니메이션에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그랬다.) 이란 거 생각보다 더 재밌는 거였네! 아까의 긴장되어 아무 말이나 던지던 자신은 어디 가고 모란은 어느새 그들 사이에 끼어 자연스레 태클을 걸기도 하고 또 웃기도 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루종일 친구들 사이에 껴서 웃고 떠든 게 얼마만이더라. 자신의 말에 조금이라도 태클이 걸리면 움츠러들었던 전과는 달리, 모란은 옷장에 너무 후드티만 가득한 것 같다는 멜로코의 말에도 나만 그런 거 아니야! 비파 언니 옷장에도 운동복밖에 없거든? 이라는 반응이 자연스레 튀어나왔다.

비파와 멜로코가 자신의 말에 무조건 응해줄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아무리 다른 말을 하더라도 나를 상처주지는 않을 거란 믿음에서 나오는 편안함. 편안함이란 이를테면 같이 디저트를 먹으러 가도 너무 단 게 아니냐고 말할지언정 그걸 왜 먹느냐고 말하지는 않는 것. 저승갓숭이나 카디나르마는 귀엽지 않다고 해도 막상 앞에 인형을 가져오면 웃으면서 잘 샀다고 말해주는 것, 전부 다른 느낌의 옷을 사도 또 그거냐고 말할지언정 그만 사라고 말하지는 않는 것… 우리는 우리가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데 거리낌이 없지만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모란은 그렇게 그들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편안함 위로 자연스레 몸을 기댔다.

“나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

“뭐?”

“놀러온 김에 자고 가지 않을래? 어차피 내일도 쉬는 날이고, 이대로는 뭔가 아까워서…”

“이렇게 좁은 방에서 셋이? 비파 언니랑 나만 있어도 움직이기 힘든데?”

“여, 여차하면 나는 컴퓨터 앞에서 자면 되니까!”

“모란아,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그건 아닌 것 같으니 차라리 자신이 바닥에서 자겠다는 비파의 말을 시작으로 자신은 절대 침대에서 자지 않겠다는 말다툼 아닌 말다툼이 이어졌다. 난 컴퓨터 앞에서 잠든 적도 많으니까 괜찮아! 자랑이다… 나야말로 바닥에서 자도 아무 상관없거든? 아무리 그래도 동생들을 바닥에서 재울 수는 없어. 한 사람의 말이 끝나면 바로 두 사람의 반박이 이어졌다. 아무튼 내가. 너희가 그러도록 냅둘 수 없으니 차라리 내가. 결론이 나지 않는 제자리돌기에 비파가 그만! 이라고 외치자 일순간 조용해졌다.

“모두 알겠어! 이럴 거면 차라리 침대는 이브이들 주고 셋이 같이 바닥에서 자자.”

“나는 상관없는데… 움직이기는 불편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

“난 괜찮아. 그리고 모란 너는 한번 누우면 잘 움직이지도 않으니까 상관없을지도?”

“멜리…! 난 진짜 매번 그러지는…!”

본인이 반박하려다가도 아니다 싶었는지 모란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에 다른 두 사람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지금부터 이불이나 펴놓고 있을까? 모란이 굿즈박스와 레토르트 식품 박스를 치워 겨우 생긴 공간을 비파가 가리키며 말했다. 근데 우리 이불이 없잖아. 기숙사에서 챙겨오면 되지! 아, 맞다. 오밤중에 이불과 베개를 개서 들고 기숙사 복도를 걸어다니는 모양새는 상상만 해도 우스웠지만 그런 점마저 재미있었다. 무슨 우스운 짓이라도 함께한다면 그냥 즐겁기만 했다.

“그럼 난 기숙사 다녀오는 동안 미리 누워있어야겠다!”

“…모란아?”

“미안, 언니. 제대로 앉아있을게.”

“똑바로 앉아있어, 나중에 또 비파 언니한테 혼나지 말고.”

멜로코는 고개를 저으며 갔다 올게. 라는 말도 하기 전에 미리 기숙사 방문을 열었다. 비파가 그 뒤를 따라가며 손짓했다. 금방 다녀올게! 응. 잠시 동안 방에 혼자 남은 모란은 각종 간식들로 너저분해진 간이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도 결국 평소대로 돌아가는구나. 그렇다면 다음에는 아예 장소를 바꿔서 기숙사 말고 말고 아예 카페에 가는 건 어떨까. 맛있는 디저트도 먹고, 쇼핑도 하고, 평소랑 다른 옷도 입어보고… 그래봤자 결국 사는 건 무늬만 조금 다른 후드티겠지만.

어떻게 해도 결국 평소대로라는 말은 평소라면 안 할 무얼 하더라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과 같았다. 그건 자칫 생각하면 참신하고 새로운 일 끝에는 단조롭고 반복되는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남들이 말하는 “단조로운 일상”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조차 소중했다. 모여서 같이 이야기하고, 디저트를 먹자고 하고, 옷을 사러 가자고 하는 말하는 일. 비록 소녀들끼리의 무언가라는 비슷한 겉포장지에 막상 까보면 내용물은 전혀 다른 전개더라도… 그 역시 그런대로 좋았다.

‘누워서는 또 무슨 얘기를 하지? 쇼핑하자고 말이라도 해볼까….’

분명 내가 먼저 나가자고 하면 놀라겠지. 그 쇼핑이 혹시 인터넷 쇼핑이나 굿즈 쇼핑이냐고 한 마디 들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다들 같이 가줄 거잖아. 모란은 언제일지도 모를 셋이 학교 밖에서 만나게 될 날을 생각하며 웃었다. 미래를 생각하며 공포에 떨거나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해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미소부터 지어지는 것 역시 얼마 되지도 않은 일이었다.

모란은 자리에서 일어나 간이 테이블을 정리했다. 비파 언니랑 멜리 때문에 팔자에도 없던 청소랑 정리를 여러 번 하네. 물론 앞으로 팔자에도 없던 외출 역시 여러 번 하게 될 터였다. 그렇지만 평소에 절대 안 했을 짓이라도 함께한다면 힘들지 않았다. 아니, 설령 힘들더라도 끝은 즐거웠다.

단을 해산하고자 했지만 끝내는 다시 만난 것처럼 모든 게 의도하던 대로 안 되더라도 항상 마지막의 자신은 기쁜 얼굴이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지금의 그는 오히려 의도한 대로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게 더욱 행복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저것 준비한 대로 되진 않았지만 결국 어떻게든 웃고 떠들게 된 지금처럼.

손을 쓰기 어려운지 희미한 노크 소리에 모란이 달려가 방문을 열었다. 우리 왔어! 힘들어 보이지만 표정만큼은 환한 두 사람이 모란을 마주본다.

응. 새삼스럽지만… 어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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