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
유료

70화

두 갈래 길

노부부가 준 정보를 토대로 아쿠아단을 쫓아 잿빛도시로 향하려던 계획은 성호에게 도착한 연락에 의해 막히게 되었다.

아쿠아단이 날씨연구소를 점령했다는 소식. 곤란해하고 있는 성호에게 두 팀으로 나뉘자는 제안을 한 건 윤진이었다.

그 말에 당연하다는 듯 제노의 옆에 붙은 실버를 윤진이 떼어냈다. 호연의 지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팀에 한 명씩 들어가야 하지 않겠니? 제법 납득이 가는 이유였기에 실버는 혀를 찰 뿐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제노는 성호와 함께 다니게 되었다.

“조심하렴. 너무 무리하지 말고, 여차하면 챔피언 뭐시기를 미끼로 던지고 도망치도록 해.”

“실버 군도 위험한 일은 윤진에게 맡겨도 좋아.”

하하하, 호호호. 두 사람이 웃으며 서로를 향해 아무렇지 않게 살벌한 말을 내뱉었다.

잿빛도시를 향해 떠나기 전, 실버가 크로뱃의 등에 올라타다 말고 제노에게로 다가왔다.

“내가 말한 거 잊지 않았지?”

… 그가 한 잔소리가 한두 개가 아니라 모르겠다. 하지만 제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실버가 언급했던 ‘불순한 눈빛’과 함께 아까 전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왠지 비장한 제노에 실버의 낯빛이 묘해진다. 그가 뒤이어 말했다.

“뭐, 저 녀석이랑 너무 떨어지진 말라고. 혼자 길이라도 잃으면 큰일이니까.”

그리곤 대답을 듣지 않고 훌쩍 크로뱃의 위에 타버린다. 주인의 무게가 느껴지자 크로뱃이 곧장 날갯짓을 시작했다. 제노가 멀어지는 인영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성호가 그에게 손을 뻗었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비행 타입을 사용할 일이 없는 데다 한바이트를 타기에도 무리였기에 제노는 그의 도움을 받아 무장조의 등에 올라탔다. 딱히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매너 있게 내밀어준 손을 거절해 무안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제노가 완전히 착석한 것을 확인한 성호가 긴 다리로 한 번에 자리를 잡았다.

“출발할 테니 꽉 잡으세요.”

어정쩡하게 내려둔 손을 잡아 제 허리를 잡게 한 성호가 무장조에게 신호를 보냈다. 금속의 날개를 넓게 펼친 무장조가 두 사람을 태우고 허공을 부유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둘이나 태운 경험은 없는 것인지, 무장조의 비행은 꽤나 아슬아슬했다. 뼛속이 비어 있어 가볍다고 하니, 어쩌면 두 사람분의 무게를 지탱하는 게 무리였을 지도 모른다. 덕분에 제노는 성호의 제안에 따라 그의 셔츠 자락만 잡고 있던 것에서 완전히 허리를 끌어안는 것으로 자세를 바꿔야만 했다.

죄송해요, 작게 사과하자 그에게선 곧장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씀씀이만큼 마음도 넓은가보다. 성호가 무장조를 진정시키듯 쓰다듬자 비행의 궤도가 안정적으로 접어들었다. 그가 조금씩 자세를 바꿀 때마다 얇은 셔츠 아래로 느껴지는 근육의 움직임이 적나라했다.

그냥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하면 될 것을, 그에게선 끝끝내 괜찮다는 답만이 돌아왔다. 제노는 비행하는 내내 속으로 이 총각이 그만 꼼지락거리길 바라야만 했다.

*

119번도로, 날씨 연구소 근처의 풀숲. 요란했던 비행과는 달리 두 사람은 조용히 착지하는 데에 성공했다. 나무 사이로 연구소 옆의 길목을 막고 있는 아쿠아단의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이 나란히 풀숲에 숨어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바깥에 있는 인원은 하나, 둘, 총 세 명. 저 정도면 피카츄랑 둘이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볼 안에서 포켓몬 한 마리가 멋대로 튀어나왔다. 님피아였다.

“… 네가 하려고?”

님피아가 자신만 믿으라는 듯 작게 답했다. 아쿠아단은 그 이름답게 물 타입을 주로 사용하니 피카츄로 상대하려 했건만, 님피아는 진화하고 싸운 적이 얼마 없으니 맘껏 뛰놀게 해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럼 부탁할게. 그렇게 속삭이며 제노가 쓰다듬자, 님피아가 그의 손바닥을 밀어내듯 힘을 주어 머리를 부벼왔다. 귀여워.

따라나서려는 성호에게 손을 들어 괜찮다는 신호를 보낸다. 바스락, 풀숲이 스치는 소리가 나고, 님피아를 안아 든 제노가 당당하게 아쿠아단을 향해 걸어갔다.

저들끼리 수다를 떨던 조무래기들의 시선이 다가오는 사람에게로 향했다. 덩치 큰 남자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그를 막았다. 상대는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 품에는 이브이의 진화체로 보이는 포켓몬이 안겨있었다.

“이봐. 여기는 너 같은 꼬맹이가 오는 곳이 아니야, 돌아가.”

“저, 숲속에서 습격을 당해 제 포켓몬이 다쳤어요. 도움을 구할 수 있을까요?”

“어엉?”

제 머리를 긁적인 남자가 뒤쪽의 동료를 향해 물었다. 너희 중에 상처약 같은 거 있는 사람 있냐? 곧장 어리둥절한 대답이 돌아왔다.

“글쎄. 연구소 안이라면 있을지도 모르는데….”

“바보야, 아무도 들이지 말란 거 잊었어?”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뱉은 시점에서 너무 수상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니. 속으로 생각한 제노가 눈썹을 한껏 모으고 최대한 가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 상처만이라도 봐주실 수 없을까요?”

끼잉, 그의 품 안에서 포켓몬의 가녀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여자, 데리고 있는 포켓몬도 그렇고 무척 연약한 이임이 틀림없었다. 분명 배틀 같은 것도 못 하겠지. 덩치 큰 조무래기가 침을 꿀꺽 삼키며 상대를 자세히 살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수줍은 듯 뽀얀 뺨에 홍조가 올라왔다.

도움이 필요한 신참 트레이너에게 자비의 손길을 건네며 이루어지는 운명적인 만남…! 왠지 멀리서 들려오는 것만 같은 웨딩마치를 배경음 삼아 그가 말했다.

“크흠, 그, 그럼 어디, 내가 한번 볼까….”

그리고 그가 마주한 것은 한 마리의 야차였다.

뭘 봐, 이 자식아. 님피아의 얼굴에 그렇게 쓰여있었다.

어, 어…? 그가 당황하여 얼빠진 소리를 내는 사이 님피아가 강하게 몸통을 부딪쳐왔다. 빠악- 쿠당탕. 덩치 큰 조무래기가 그대로 녹다운되었다.

그 틈을 타 제노가 단원 한 명에게 빠르게 다가가 명치를 쳐올렸다. 깔끔하고 정확한 일격에 당한 녀석이 털썩,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 이게 무슨- 어억.”

그리고 마무리. 님피아가 휘두른 더듬이에 뺨따귀를 거하게 얻어맞은 마지막 한 녀석이 벌게진 얼굴을 하고 의식을 잃었다. 휴, 오늘도 평화롭게 한 건 해결! 님피아의 도움을 받아 그들을 모두 건물의 뒤편으로 옮긴 제노가 다시 성호의 곁으로 돌아왔다.

“이제 들어가죠.”

“… 네!”

내부 역시 허술했던 바깥의 경비와 마찬가지인지, 입구의 자동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보이는 안내데스크에는 정복을 차려입은 여성이 있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던 그는 성호와 마주하자마자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저쪽이 용기를 쥐어짜 내 정보를 흘린 사람 같았다.

성호가 안내 데스크로 다가가자 그가 잘게 떨리는 입술을 움직였다.

“여기는 날씨 연구소, 입니다. 용무는, 2층에서 보실 수 있으세요.”

그렇게 말한 그가 안쪽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가리켰다. 숫제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소리 없이 입 모양만으로 의사를 전한다. ‘조심하세요’. 아무래도 안쪽에 녀석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짧은 목례로 감사를 표한 성호가 제노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곧장 내부에 가득 들어찬 아쿠아단 단원들이 보였다.

“뭐야, 너희들은!”

“누구냐!”

사무용 의자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있던 놈들이 한마디씩 외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에 제노의 품에 안겨있던 님피아가 폴짝 뛰어내려 바닥을 딛더니, 곧장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님피아의 위로 떠오른 환한 달빛이 줄기가 되어 쏘아졌다.

님피아와 메타그로스의 도움으로 깔끔하게 정리한 1층. 두 사람은 곧장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았다. 아래에서 소란을 눈치챘을 테니 이제 더 이상 발소리를 죽일 필요는 없었다.

최상층에 도착하자마자 보인 것은 아쿠아단 여럿이 연구원들을 제압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조무래기들과는 확연히 다른 복장의 여자가 한 명. 어둠 속, 그가 자료들이 띄워진 밝은 화면을 바라보며 충격에 빠져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게 그 사람이… 아강이 바라던 세계…?”

“제길, 소중한 연구 성과를 돌려줘!”

잠깐 생겨난 틈을 통해 통제에서 벗어난 연구원 한 명이 여자에게로 달려들었다. 순간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입 다물어!”

여자에게 얻어맞은 연구원이 요란하게 뒤로 나자빠졌다. 조무래기 둘 정도가 서둘러 달려와 연구원을 다시 제압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그가 다시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초고대 포켓몬이 각성함으로써 발생하는 이상기상… 이런 게 지금 이 세계에 일어나면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포켓몬들조차…!”

“그만 그들을 풀어주지 그래.”

그런 그를 깨운 것은 성호의 목소리였다. 화들짝 놀라 뒤를 바라보자, 호연의 챔피언이 화면에서 나온 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옆은… 누구야, 저 꼬맹이는.

“네가 아쿠아단의 리더인가?”

아무튼, 상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든 이 처참한 기분을 풀어줄 상대가 필요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그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아쉽네. 아강 님을 찾아온 거라면, 번지수를 잘못 짚었어. 나는 아쿠아단의 서브 리더, 이연!”

기다란 머리를 한번 넘긴 이연이 매혹적이지만 어딘가 불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개인적으로 움직일 때 챔피언과 만나게 되다니, 영광이야.”

“너희들의 리더는 어디에 있지?”

“… 나 말이야, 지금 정말 허무하고 쓸쓸해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야.”

성호의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인 이연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소리쳤다.

“누구라도 상관없어. 이 기분을 달래줘 봐!”

그와 동시에 볼이 두 개 던져졌다.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악 타입을 가진 샤크니아와 독 타입의 질퍽이. 님피아와 메타그로스에게는 유리하다고 말할 수도, 불리하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이걸로 성호와는 세 번째 태그배틀. 님피아가 당당한 울음소리와 함께 자세를 잡고, 그 뒤에서 메타그로스가 사이코 파워를 끌어올리며 몸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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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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