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샛길 하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 일컬어지는 포켓몬, 밀로틱이 높고 청아한 소리로 울었다.
물론 난천의 밀로틱은 강한 포켓몬이지만 풀 타입인 이상해꽃을 상대로 물 타입 포켓몬이라니, 꿍꿍이를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일단 난천씨가 어떻게 나오는지 볼까.
“이상해꽃, 부탁해!”
“피하면서 냉동빔!”
역시 얼음 타입 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이상해꽃의 맹독을 피한 밀로틱이 냉기를 뿜어냈다. 일직선으로 날아드는 빛줄기를 이상해꽃이 피한다. 무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끄러지는 거리가 길다. 멈추려 힘을 준 네 발을 따라 갈려 나간 얼음이 잘게 튀었다.
“계속해서 밀어붙여!”
난천의 지시에 따라 공격이 연이어 들어왔다. 유연한 밀로틱에 비해 이상해꽃의 움직임은 체력 소모가 크다. 계속해서 피하기만 하다간 꼼짝없이 당하고 말 것이었다.
“잎날가르기야!”
“얼려서 막아!”
날카로운 잎사귀들이 밀로틱에게로 날아가다가, 냉기에 막혔다. 하지만 잎날가르기는 시야를 가리는 용도. 얼어붙은 잎사귀들을 헤치고 재빠르게 접근한 덩굴이 밀로틱을 강하게 후려쳤다. 밀로틱의 몸체가 밀려나며 얼음 위를 굴렀다.
제법 묵직하게 들어간 공격에 제노가 밀로틱을 살폈다. 조금 비틀거리던 밀로틱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전투태세에 임했다. 저건…
“… 아쿠아링이군요.”
“맞아.”
물로 만들어진 얇은 베일이 밀로틱의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대체 언제 사용한 거지? 냉동빔을 경계하는 데 급급해서 눈치채지도 못했다. 아쿠아링으로 지속적으로 회복하는 이상, 단숨에 끝내는 수밖에 없다.
자신의 실책을 곱씹은 제노가 지시했다.
“이상해꽃, 붙잡아!”
난천이 설핏 웃음을 흘렸다. 그가 말했다.
“밀로틱-”
헤롱헤롱.
제노는 처음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다음으론 눈을 의심했다. 잘만 가던 이상해꽃의 덩굴이, 밀로틱을 붙잡기 직전에 멈춘 것이었다.
난천의 밀로틱은 암컷, 그리고 제노의 이상해꽃은 수컷. 무뚝뚝한 녀석인 줄만 알았더니 이런 구석이 있을 줄이야…. 제노가 자신도 모르게 제 이마를 짚었다.
제노가 어이없어하는 와중에도 시합은 계속되었다.
“묶어버려!”
“피해!”
제노의 지시에도 결국 이상해꽃은 밀로틱에게 붙잡혔다. 밀로틱의 기다란 몸이 이상해꽃을 칭칭 감았다.
… 헤롱헤롱을 쓴 상태면 이거 포상 아닌가. 그런 제노의 생각이 맞았는지 이상해꽃이 영 밀로틱을 떨쳐내지 못했다.
“이걸로 끝이야, 밀로틱! 근거리에서 냉동빔!”
“이상해꽃!”
밀로틱의 입에서 매서운 한기가 쏘아졌다. 이상해꽃의 피부에 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젠장, 생각하자, 생각해. 인상을 찡그린 제노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이상해꽃이 밀로틱을 떼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래서 선단체육관에서 이상해꽃을 꺼내지 않은 거였는데. 위에는 얼음이 꽁꽁 얼어있지, 아래에는-
… 그 아래에는? 순간 머릿속에 섬광이 스쳐 지나간 기분이 들었다. 제노가 외쳤다.
“이상해꽃, 지진!”
힘겹게 굳은 몸을 움직인 이상해꽃이 그대로 앞발을 구르자, 쩌저적, 두꺼운 얼음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난천이 당황하여 눈을 크게 떴다. 여기서 지진을 쓰면-
첨벙! 큰 소리와 함께 밀로틱과 이상해꽃이 호수 아래로 가라앉았다.
“밀로틱, 괜찮아?”
수면 위로 고개를 들어 올린 밀로틱이 난천을 향해 끄덕여 보였다. 지진으로 인해 호수의 얼음이 갈라지면 물로 가득 찬 필드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
물 타입인 밀로틱은 상관없지만 이상해꽃이 이렇게 추운 물에서 견딜 수 있을 리 없었다. 난천이 불안한 표정으로 호수를 바라보던 그때, 수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래서부터 솟아오른 것은 굵은 식물의 줄기였다. 촤아악! 물을 가르며 줄기를 타고 이상해꽃이 높게 솟아올랐다. 반대로 밀로틱은 줄기에 밀쳐져 물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대로 내려찍어!”
“밀로틱!”
밀로틱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지고, 쿠웅, 이내 두 포켓몬이 충돌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약 0.1톤의 무게를 받아낸 밀로틱이 비틀거리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이상해꽃 또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더블 다운. 두 사람이 동시에 포켓몬을 볼로 돌려놓았다. 난천도 제노도 포켓몬 한 마리만을 남겨놓은 상황. 짧게 고민한 제노가 볼 하나를 던졌다. 마지막은 역시-
“부탁할게, 피카츄!”
“피카피카!”
“한카리아스!”
난천의 몬스터볼에서 나온 한카리아스가 우렁찬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그에 비하면 피카츄의 깜찍한 대답은 너무나도 작았다. 하지만 역시 그런 것에 굴하지 않는지, 꼬리를 바짝 세우고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기 타입이라, 기대되는데.”
제노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실 난천의 마지막 포켓몬이 한카리아스일 것을 예상하고 샤미드를 내보내려 했으나, 바뀐 필드의 모습에 생각이 바뀌었다.
두 포켓몬 사이를 가르는, 필드 정중앙에 솟아난 줄기를 바라보던 제노가 말했다.
“아이언테일!”
“맞받아쳐!”
피카츄에게로 한카리아스가 날아든다. 줄기 사이를 넘나들며 가볍게 그 공격을 피한 피카츄가 한카리아스의 사각에서 튀어나왔다. 단단한 꼬리에 얻어맞은 한카리아스가 바깥쪽으로 튕겨 나왔다.
“과연, 피카츄를 내보낸 이유가 있었구나.”
피카츄가 줄기 위에 매달려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쓰러진 몸을 일으킨 한카리아스가 얼음 위로 날카로운 발톱을 디뎠다. 피카츄를 바라보는 그 눈길이 한층 사나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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