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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day(and they)

그래도 스타단 친구들은 만나죠? 당연하지 너 어디 안좋냐

모란은 어쩐지 몸이 무거운 느낌에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시야도 평소보다 흐릿해 일어나자마자 안경을 찾았다. 그제야 모든 것이 똑바로 보이기 시작했는데도 왜인지 전혀 주변이 정리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모란은 스마트로토무를 보았다. 평소라면 사담이든 스타 대작전에 관한 것이든 친구들의 연락이 와 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알림도 와 있지 않았다. 마치 죽은 사람의 전자기기 중 하나 같았다. 뭐지, 무슨 일 있나… 그러나 이상하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대신 모란은 컴퓨터를 켰다. 스타 대작전에 관해 뭐라도 준비하고 있으면 자연스레 연락이 오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평소처럼 정보를 찾아보려고 포털 사이트의 창을 켠 순간 모란은 그대로 의자에서 미끄러져 내려갈 뻔했다.

‘뭐, 뭐야, 이건….’

아카데미에 관한 기사가 온 신문사 메인을 장식하고 있었다. 어느 페이지로 넘어가도 온통 그 이야기뿐이었다. 모란은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부정이라도 하려는 듯 이 기사, 저 기사를 클릭했다. 소름 끼치도록 똑같은 내용뿐이었다. 분명 똑바로 앞을 보고 있는데도 시야가 어지러워져 모란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불행하게도 자신이 보고 있는 화면 속 어떤 글자도 달라지지 않았다. 모란의 눈에 다시 들어온 기사는 가장 조회수와 댓글이 많은, 최초로 보도된 기사였다.

[단독] ‘창립 805주년’ 오렌지 아카데미, 찬란한 역사 뒤 숨겨진 참극? ‘학교 폭력’ 문제 수면 위로 드러나… 피해자들 고통 호소

‘말도 안 돼, 이건, 이건… 분명 거짓말은 아니지만, 아니야… 근데 누가? 왜? 어째서…’

뇌가 멈춰버린 기분이었다. 아무런 정상적인 사고도 할 수 없었다. 옆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대도 돌아볼 수 없다는 듯 그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멍하니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 다른 스타단 친구들의 향방이었다. 이 기사를 봤을까? 만약 봤다면 왜 아무런 연락도 하고 있지 않은 거지? 모란은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불과 반나절 전까지만 해도 답지 않게 밤늦게까지 웃고 떠들면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어느덧 진지해져 스타 대작전에 대해 열심히 논의하던 친구들.

진짜 얼마 남지 않았어. 우린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때까지 힘내자, 얘들아. 모란은 자신이 어제 한 말이 생각나 혼란스러운 기분에 고개가 자동으로 땅으로 처박혔다. 온몸에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럼 우린 뭐지? 스타단은 뭐지? 이때까지 우리가 했던 일은 뭐지? 피나는, 멜리는, 추명은, 티가는, 비파 언니는…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 차라리 기뻐해야 하는 게 아닌가? 어쨌든 학교의 문제가 드러났으니까… 그렇게 됐으니까 어떻게든 앞으로는 지금보다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 그렇게 모든 일이 막힘없이 순조롭게 흘러간다면…

스타단은 어떻게 되는 거지?

모란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기사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기사에는 몇몇 피해자들의 인터뷰가 같이 실려있었다. 모란은 해킹으로 이미 그들의 인적사항을 알고 있었지만, 스타단 입단 제안에 탐탁찮은 반응을 보여 더 이상의 조사는 하지 않은 상태였다. 모란은 그들의 심정을 이해했다. 당연하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말도 안 되는 제안 같은 거 쉽게 믿을 수 있을 리 없잖아. 물론 그런 자신조차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린 더욱 열심이었는데.

모란은 최초로 보도를 낸 기자의 이름과 신문사를 알아내 포털 사이트에서 인적사항을 닥치는 대로 찾아내기 시작했다. 한 번 찾아낸 정보는 끝도 없이 그에게 꼬리를 내어주었다. 모란은 꼬리에 꼬리를 잡아가며 동아줄을 타고 올라가듯 닥치는 대로 그에 대해 이것저것 캐내기 시작했다. 정보 하나에 세 개의 정보가, 세 개의 정보에 다섯 개의 정보가 계속해서 그의 컴퓨터에 저장되었다. 되는 대로 파고든 끝에 모란은 그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첫째, 그는 평소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인터넷에 떠도는 가십거리를 모아 자극적인 언어로 기사를 내는 사람이라는 점. 둘째, 그런 허술함이 무색하게 하고자 하는 바는 제대로 하기 위해 되는 대로 정보를 수집한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어난 사실을 나열하는 데에 치중했을 뿐 그 이상의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자로서는 올바른 태도였다. 객관적인 감정 따위 실려선 안 되는 게 언론이고, 기사다. 그렇지만 단순히 그 정도를 넘어 인터뷰에서는 요청에 응한 피해자에 대한 배려라고는 하나도 읽을 수 없었다. 질문들은 모두 자극적이었고, 별 생각 없이 말한 몇 개의 단어는 중요한 것처럼 몇 배는 부풀려져 있었다.

‘이런 건 아냐, 이런 건 있을 수가 없어, 아니… 있어서는 안 돼.’

학교가 잘못된 걸 보여주기 위해 피해자들에게 다른 방식의 폭력을 가하고 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어쩌면 그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가 사실은 잘못되었다’라는 사실 자체를 대중들에게 먹이로 던져주려는 듯이… 아니, 그래도 분명 옳은 목적인데, 아. 모란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에 그대로 컴퓨터 앞에서 쓰러지듯 누웠다. 온몸의 맥이 빠졌다. 그저 눈을 뜨고 의자에 앉아 겨우 고개를 들어 앞을 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모란은 힘이 전부 빠진 손을 겨우 움직여 다른 기사를 클릭해보았다. 분명 처음 검색해서 찾아낸 기사들은 몇십 페이지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관련 기사가 검색되는 페이지는 세 자릿수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 몇몇 사실들은 당연하다는 듯 왜곡되고 있지 않은 사실까지 덧붙여져 사실인 양 퍼져나가고 있었다.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들은 온통 부정적인 반응으로 가득했다. 학교폭력에 대해 다룬 기사이니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그중에는 가해자든, 피해자든 상관없이 도를 넘는 인신공격을 하는 댓글도 가끔 보였다. ‘언론에 다뤄졌으니 이 정도 비난은 당연하지.’라고 고작 그 몇 줄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모란은 시점을 바꿔 학교 커뮤니티나 학생들의 SNS,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를 있는 대로 뒤졌다. 감당해야 한다고는 생각했지만 기사 댓글의 몇 배는 되는 수위의 자극적인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모란은 힘들어지려는 정신을 겨우 붙잡고 쉴새없이 갱신되는 정보들을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정말 학교 일에 관심이 없었다는 듯 당황하며 놀라는 학생이나, 곧 아카데미에 자식을 입학시키려고 했는데 다른 지방의 트레이너 스쿨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는 사람,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추정되어 따로 리스트를 만들어놓았던 계정들 중 몇은 그새 사라져 있었다. 온라인에서 사라진다고 네가 남긴 여러 흔적과 존재마저도 사라지는 건 아닐 텐데… 모란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쓴웃음을 지었다.

모란은 피해자로 추정되는 계정도 몇 개 뒤져보았다. 기사에만 실리지 않았을 뿐 자신도 당한 적이 있다며 꽤 구체적인 내용의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몇 가해자들의 신상이 공개되고 녹취록이나 증거를 추가로 첨부하여 전체 공개 게시글로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에는 아는 계정도 있었지만 생판 처음 보는 계정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보는 모든 정보가 사실이라고 믿었다. 아무도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거짓말일 가능성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과 다른 친구들도 의심, 무관심과 완전무결함의 입증, 피해자성의 증명 요구, 그리고 무엇보다도 외면 때문에 결국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렇지만,

‘왜 자꾸 어딘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실 자체는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 한편에서는 이제라도 진실이 알려졌으니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어딘가 이상했다. 단순히 스타 대작전이 무산되었다고, 가해자들에 대한 복수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데서 비롯된 안도감 따위나 허망함이 아니었다. 아니야, 차라리 잘됐어. 아니야. 그래도 이건… 이중적인 감정이 그를 괴롭혔다. 자신이 느끼는 갑갑함과 답답함이 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분명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표면적이든 아니든 이뤄질 테고 정도만 다를 뿐 고통에서 해방될 것도 분명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연락이 없는 걸까. 어느 방면으로든 믿기지 않아서 혹은 기뻐서 아니면 허망해서… 모란은 스마트로토무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거짓말같이 여전히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자신 역시 아무런 연락을 할 힘이 나지 않았다. 스타단의 진 보스가 된 이후로 그는 소심한 모란이 아닌 적극적으로 나서서 먼저 연락을 취하고 사람들을 모으는 카시오페아가 되었다. 그런데, 스타단의 존재 이유가 없어졌다. 그는 기사 하나에, 한순간에 허무하게도 모란으로 돌아왔다.

그는 컴퓨터를 끄고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어째서인지 밖이 묘하게 소란스러웠지만 나가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돌 수도 있으려나… 그럼 다른 친구들은? 모든 걸 숨기고 있는 자신과는 달리 그들은 좋게든 나쁘게든 모두가 알진 못해도 어느 정도는 알려져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규칙을 세운 깐깐한 학생회장, 시기와 질투를 받았던 평범하게 귀여운 아이, 그냥 자기 자신이고 싶었던 오타쿠, 오만하고 자신밖에 모르는 아직 어린 부잣집 도련님, 운동에도 배틀에도 공부도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다재다능했던 사람…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상상을 하니 끔찍했다. 자신의 정체가 알려지는 것보다 몇 배는 고통스러웠다.

모란은 순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사고에 사로잡혀서였다. 스타단이 필요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여전히 카시오페아일 필요가 있었다. 그는 그 길로 교장실로 뛰어갔다. 교복을 내던지고 사복을 입고 전력으로 달려나가는 그를 보고 몇몇은 스쳐지나가듯 뭐야? 라고 말하기도 했다. 뒤에 맨 이브이 가방이 달리는 방향으로 여기저기 흔들렸다. 지금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 필요가 있었다. 정확히는,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지 알아야만 했다. 그걸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부딪힐 필요가 있었다. 어라, 며칠 전까지 이 생각을 스타 대작전을 준비하면서 했던 거 같은데?

모란은 노크도 하지 않고 급하게 교장실 문을 열었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올랐지만 앞을 똑바로 보려고 노력했다. 교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교장의 자리에 한 사람만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모란은 그 사람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가빈이라는 명패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올려 모란을 바라보았다. 정적도 잠시 그는 일어나 모란의 앞에 가 섰다. 누구도 시선을 피하려 들지 않았다. 모란이 먼저 입을 열었다.

“교장 선생님.”

“모란 양.”

“그, 그러니까, 기사… 보셨죠?”

굳은 결심으로 움직인 것과는 달리 그의 입에서는 멍청한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네, 어쩌다 보니 모란 양한테 제일 먼저 알려주게 되었군요.”

“네?”

“오늘부로 이 학교 교사진들은 전원 사임할 예정입니다. 곧 기사도 나갈 겁니다.”

“뭐라고요…”

“물론 저 역시 포함입니다. 교사진 전원이 이 사태에 큰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사임을 의논하는 과정에서 교감 선생님이 어째서인지 피해자들과 관련된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자세한 건 더 물어봐야 알겠지만, 부당한 의도로 사용하려 했다면 따로 처벌을 할 생각입니다.”

“그, 그럼 가해자들은요? 이미 SNS에서 하나둘씩 신상이 공개되고 있던데….”

“아, 그게 말입니다, 이미 전원 퇴학 처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온라인에서의 여론은 거셌고 눈덩이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학교 앞까지 찾아온 사람도 여럿 있었다. 몇몇은 교무실 앞까지 들어와 항의했다고 했다. 학교는 당연히 그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심지어 교사진의 사임을 의논하기도 전에 몇 가해자들은 겁에 질려 먼저 교무실로 찾아와 자퇴를 요청했다고 했다. 모란은 숨이 턱 막혔다. 그 역시 가해자들에 대한 복수를 원하고 있었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괴롭힘을 그만둬줬으면 했다. 그들에게 저항하기 위해, 눈에 띄는 걸 싫어하던 자신의 모습까지 버려가면서. 그리고 지금, 가해자들은 먼저 자퇴를 요청하거나 어떻게든 퇴학 처리가 될 예정이다. 그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갔다 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심지어 이제는 교장의 답을 들었으니 모두를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놓아버려도 된다.

근데… 이게 진정으로 내가 바라던 바였나?

“새 교장 선생님도 금방 부임할 겁니다. 인수인계 역시 철저히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 그럼 피해 학생들은요? 이렇게 찾아온 이상 아시겠지만 저, 저도,”

결과적으로는 원하는 바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손발이 여전히 떨렸다. 심지어 아까보다 훨씬 더 말이 엇나왔다. 목구멍이 울렁거렸다. 눈앞에는 아까보다 훨씬 심각해진 얼굴의 가빈이 보였다. 그 표정을 스타단이 만들어지기 전에 지었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어떻게든 우리는 조금 달라졌을 텐데요. 모란은 눈앞이 흐릿해졌다 말았다 하는 와중에도 괜히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면목 없습니다.”

“…그게 무슨,”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게 끝인가요?”

“이 이상 무슨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모란은 그제서야 이유 모를 막막함이 어디서 오는지 조금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전부 이루어졌다. 재발 방지와 앞으로에 대한 대처도 확실하게 하겠다고 약속받았다. 당분간 학교는 청정 구역이 될 것이다. 외부의 시선을 신경써서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남겨진 피해자들에 대한 보호는? 가해자들이 사라진다고 트라우마가 사라지지는 않을 텐데요… 그건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새로 부임한 교장 선생님과 교사진들은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줄까요? 말하고 싶은 게 무수히 쏟아져나왔으나 목구멍을 거치지는 못했다.

대신 모란은 가빈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부탁할게요….”

“모, 모란 양?”

“제발… 가해자들의 처벌도 좋지만, 아니 당연하지만, 저희도 신경써주겠다고 약속하세요.”

고개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있는 것치고는 그의 자세는 너무나도 올곧았다. 가빈은 잠시 거기서 느껴지는 이유 모를 날카로움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고개를 숙여 푹 뒤집어쓴 것처럼 보이는 후드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저 아래에서 대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어떤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지 알 수 없어 가빈은 주춤했다. 교장실 바닥으로 툭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힘없이 늘어뜨린 팔 때문에 벗겨진 모란의 이브이 가방인지, 아니면 눈물인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많은 친구들이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갈 거예요. 그 친구들이 다시 고통받는 걸 절대 볼 수 없어요.”

“…모란 양은 정말 책임감이 강하군요.”

모란은 그 태도가 퍽 시혜적이라고 생각하며 입에서 스타단이라는 이름이 나올 뻔한 걸 겨우 틀어막았다. 이걸 알려서 좋을 게 없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어딘지 모를 쓴맛이 입에서 배어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교장과 교사진의 태도가 철저히 그들의 안위를 제일 먼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데에 조소하면서도 자신 역시 그렇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였다. 어쩔 수 없나. 당신들은 사태의 가해자고 나는 피해자니까. 라는 말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또 아까와 같은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기분이다. 그는 자신도 사람이며, 피해자여도 모든 면에 완전무결한 인간은 될 수 없다는 걸 잠시 잊어버린 듯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보다도, 저라는 사람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은 게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학교 폭력 피해자분들에 대한 보호를 더 우선적으로 두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학교 측에서다. 학교 밖의 영역은 그들이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미 어떤 친구들은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란은 그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조차 괴로워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가빈은 여전히 자신을 복잡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란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눈가와 뺨은 이미 눈물로 엉망이었다. 가빈이 휴지를 꺼내 가져다주기도 전에 그가 먼저 그의 손에 들린 휴지 한 장을 뽑아 눈물을 닦았다. 그럼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모란은 그 말만을 남기고 가빈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휙 돌아 교장실을 나가버렸다. 가빈은 뭐라 말하려다가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모란은 그 길로 금방이라도 부패할 것 같이 질질 끌리는 발걸음을 이끌고 겨우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는 기계적으로 다시 컴퓨터 화면을 켰다. 이미 아카데미 교사진이 전원 사퇴할 거라는 기사와 학교 폭력의 가해자들은 빠짐없이 자퇴할 거라는 기사 두 개가 보란 듯이 메인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렇게 빨랐나, 이렇게 쉬웠나…. 그럼 왜 그동안은 이렇게 하지 못했지. 모란은 기사에 적힌 기자의 이름을 들여다보았다. 운명의 장난인지 최초로 보도한 그 기자였다. 모란은 순간 울컥해 그에 대한 정보를 조사해둔 자료를 하나의 파일로 취합하려다 그만뒀다. 사적 복수. 이젠 그 단어가 자신을 움직이게 하기는 커녕 가로막고 있었다.

나아지는 게 있을까. 피해자들을 제외한 사건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모란은 의심하고 있었다. 피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안 보이는 게 아니다.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때로는 그게 최선일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다. 그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모든 세상일은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게 제일 진리와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모란은 그 부분을 제일 납득하기 힘들었다. 우린 스타 대작전을 성공시켜야 했는데. 이런 거 말고, 우리의 방식으로…

또다시 눈물이 터져나와 모란은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몇 번이고 세수를 했다. 친구들과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해야 할까? 당연하지. 그런데 어떤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보를 추적할 수는 없어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떨쳐내기는 힘들었다. 일단 만나기는 해야겠지…. 언젠가 그래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 날이 이렇게 빠르게 다가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건 어쩌면 너희들도 마찬가지겠지. 모란은 친구들에 대한 생각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수건으로 얼굴을 박박 문질렀다. 문득 씻고 나서 수건으로 거칠게 문지르면 피부에 좋지 않다는 추명의 말이 떠올랐다.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그렇게나 여러 방면으로 철저했는데, 우리 모두가, 하나도 빠짐없이.

모란은 다시 안경을 쓰고 거울 앞에 비춰진 자신을 바라보았다. 분명 앞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런 것 같지가 않았다. 지금 나는 뭐지? 모란? 카시오페아? 둘 다?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누군가? 나는 어떤 모습으로 친구들 앞에 서야 하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어떻게든 만나야지, 그런 막연한 생각은 모란에게도 카시오페아에게도 어울리지 않았다. 지금의 자신은 어떤 수식어로도 정의할 수 없었다. 스타단이라는 이름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으니 자신의 존재도 그렇게 된 것 같았다.

모란은 어지러워지려는 정신을 겨우 붙들고 화장실 밖으로 나와 다시 침대에 누웠다. 천장이 빙빙 돌았다. 한숨 자면 나아질까? 이러다가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말도 안 되는 생각인데 지금이라면 말이 될 것 같았다. 눈을 감는다고 편안해지지 않는다. 고개를 돌리면 계속 아무것도 마주볼 수 없다. 그러니 일어나야 하는데, 눈을 떠야 하는데. 그는 편안한 곳에 누웠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가라앉아갔다.

‘그래, 이대로 방에 있자.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다고….’

무수한 고민이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혀 하나의 허무로 이어지려는 순간 모란의 스마트로토무가 울렸다. 모란은 급하게 폰을 잡아 화면에 적힌 이름을 들여다보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멜로코였다. 그는 생각도 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멜로코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진 보스? 나야, 멜로코.”

“멜리….”

“긴 말 하지 않을게. 내일 다같이 운동장에서 보려고 해. 힘들다면 어쩔 수 없지만, 괜찮다면 진 보스도 나와줬으면 좋겠어.”

“알았어. 시간은 나중에 이야기하자.”

멜로코의 대답도 듣지 않고 그는 전화를 끊었다.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답이 튀어나왔다. 그래, 사실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속의 갑갑함을 해소하려면 어떻게든 이 친구들을 진짜로 마주봐야 한다.

오늘부로 스타단은 끝이라 해도 우리는 계속되어야 한다. 어떻게든.

BGM / 정말 멋진 6월이었습니다-Eight (vo. 하츠네 미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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