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평화와 혼란 속의 자극
호숫가 청소
요즘들어 자신의 상태가 최악이라는 것 쯤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상상 이상으로 심각한 것 같다고 아멜리아는 생각했다. 원래도 관심이 없는 것을 하는걸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요 근래는 특히 저가 재밌게 느껴지는 것 을 제외하고는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기분이 드는 것 조차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오히려 일상을 유지하며 더 많은걸 해보려 했지만 나아지는건 없었다. 이런 것을 번아웃이라고 하던가?
그 날 이후 아멜리아의 머리속은 두가지 상태가 번갈아가며 안좋아질 뿐 이었다. 온갖생각이 범람하고 뒤엉켜 엉망진창이거나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 텅 비어진채로 무의미한 시간만 보내면서도 티나지 않게 노력하기. 이 순간이 지나면 자신이라면 언젠가 괜찮아질거라고 확신은 하고 있지만 이런 상태가 오래 이어진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째서 인간이란 종족은 아무리 노력해도 거대한 충격이면 쌓아왔던 것 조차 가볍게 무너져버릴 수 있는 걸까.
“어으… 야, 라디오로 뭐라도 틀면서 하자.”
“그럴까? 나 저번에 사연이랑 퀴즈 답 보냈는데 그거 당첨되면 좋겠다.”
자신을 포함해서 호숫가를 청소하러 온 학생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를 평화로운 일상은 지루하게만 느껴지고 자리에 앉아서 배틀이나 친구들을 구경하고 싶어졌다. 지금 여기엔 아멜리아와 배틀할 사람도 같이온 친구도 없지만.
[DMT 음악방송입니다. 클래식과 함께 평화로운 오후 되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음량을 크게 설정한건지 라디오 소리가 쩌렁쩌렁 호숫가에 울려펴졌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두 눈으로 봤던 아멜리아는 평화로운 음악소리가 울려퍼지기 전 꺼내놨던 모두를 빠르게 몬스터볼 안으로 넣고 주변을 훑었다. 봉사를 온 학생들과 파트너 포켓몬도 많고, 호수를 유유자적하게 떠다니는 야생 포켓몬도 있었다.
“아니 미친! 귀 터질뻔 했네!!! 너 음량 왜 이따구로 설정한건데?!”
“아 너랑 같이 봉사하러가는거 깜빡할까봐 알람 맞춘다고 키운거 깜빡했을 수 도 있지 거 더럽게 꼽주네 진짜! 그치 얘.. 얘들아…? 어? 얘들아 왜그래?!”
급하게 소리를 낮췄지만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에 그 주변 포켓몬들은 전날 멜로의 포켓몬들처럼 몸을 비틀거리는 아이도 있고 간지러운지 몸을 긁으며 낑낑거리기도 하며 괴로워했다.
“애들 왜이래!?”
“어… 내가 뭐 잘못했나, 또 간식 까먹었나? 악! 뽀록나 왜그래! 아파, 아!!”
“라디오 탓인가? 야, 꺼 당장!!”
갑작스러운 포켓몬의 행동은 라디오와 관련된 두 학생은 자신들의 포켓몬을 달래보려 했지만 오히려 난동부리며 자신들마저 공격하려는 포켓몬들의 행동에 급하게 라디오를 끄려했지만 잔잔한 노래와 달리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패닉에 빠진 듯 헛손질이나 로토무나 탁탁 때렸고 다른 누군가는 경악하고 상황판단이 빠른 누군가는 선생님이나 도와줄 사람을 부르러 뛰었다.
첨벙-!
그리고 자신은 반응 할 틈도 없이 인간 혹은 포켓몬에게 강하게 부딪히며 호수에 빠졌다. 누군가의 비명소리, 뼛속까지 시릴정도로 차가운 호수물, 출렁거리는 수면과 반짝이는 태양은 눈이 부셔서 다시끔 정신이 멍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신이 멍해진다는건 큰일이었다.
‘아, 이건 진짜 큰일일지도.’
피하진 못했지만 밀쳐지면서 최대한 숨을 들이마시고 코와 입을 막았지만, 자신은 수영을 못했다. 언니도 몇번이나 가르쳐보려 했지만 머리로는 알아들으면서 몸이 결국은 가라앉아버리는 결과에 자신이 먼저 그만뒀었으니까. 그래도 한 때 배웠던걸 잊지 않아 최대한 몸에 힘을 빼고 버티고 있자 숨이 막혀올 때 쯤 누군가의 손이 아멜리아를 붙잡아 수면 밖으로 끌어올려줬다.
“푸하!”
“얘, 괜찮니?! 여기 한명 빠진거 보면 다른 사람도 빠졌을지도 몰라. 확인해봐!”
기침과 함께 물은 뱉고, 폐에 부족한 산소를 채우고 나면 세상이 좀 더 선명해진다. 주변은 아직 혼란스러웠다. 라디오는 꺼졌지만 여전히 날뛰는 포켓몬에게 공격당한 사람도 있었고 수습하러 뛰어온 사람들은 날뛰는 포켓몬들에 비해 수가 적었다. 라디오는 꺼졌으니 여기서 포켓몬을 꺼낸다 해도 혼란에 빠지진 않을거라 판단한 아멜리아는 곧 바로 자신의 포켓몬들을 다시 꺼냈다. 그 모습에 아멜리아를 구조한 어른은 당황한 듯 했으나 아멜리아는 굳이 그런 것 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생각했다.
“자, 모두들 쓰러트리면 진정하는거 저번에 겪어봤죠? 싸워볼까요!”
강제로 돌려보내졌다가 갑자기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된 아멜리아의 모습에 나이트를 비롯한 포켓몬들은 각자 걱정하거나 당황하긴 했지만 한 껏 날뛸 생각에 아까에 비하면 아주 좋은 표정으로 활짝 웃고 있는 아멜리아의 모습에 포켓몬들은 명령을 따라 이 곳 저 곳 뛰어다니며 괴로워 하며 자신의 몸은 신경쓰지 않고 마구잡이로 기술을 난사하는 포켓몬들을 불태우거나, 헤롱헤롱하게 만든다던지 환상빔 갖가지 방법으로 제압하며 다른 인간들을 도왔다.
생각이 많아 혼란스러웠던 머리속이 어떤 명령을 내려야할지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효과적으로 적을 쓰러트리고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만 집중 할 수 있어 이 순간이 또렷하게 보이는 아멜리아는 오히려 아까같은 평화로운 상황이 어지러웠고 혼란스러운 지금에서야 즐거움과 자극에 머리가 상쾌해지는걸 느꼈다.
아, 평소에도 이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은 이런 즐거운 일만 계속해서 생긴다던가. 아멜리아 본인도 알고 있듯이 불가능한 소원이었다. 그래선 안되기도 했고.
***
시간이 지나고, 추가 지원이 도착하며 겨우겨우 상황이 정리되자 눈물범벅의 이름도 모르는 학생 중 한명이 돌아다니면서 몇번이나 사과하며 뭐라고 말했지만 아멜리아의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혼란이 진정되고 굳이 아멜리아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서로를 챙겼고 더 이상 할 게 없자 즐거움은 빠르게 사그라들며 잿더미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고, 그 위를 질척이는 생각들이 다시 쌓여 기분은 다시 호수에 빠진것처럼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아서 몸이 무거웠다.
… 몸이 무거운건 호수에 빠졌는데 아직 옷을 물을 안짜서 그런걸까? 엉망진창이 되버린 호숫가를 둘러봤다. 청소하기 전 보다 더욱 엉망진창이 된 호숫가는 청소하려면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하고 싶지 않다. 그냥… 다시 그 배틀을 한다던가 쉬고 싶었다.
“이거 청소 봉사활동 인정 되려나요…”
“으흑, 억.. 끕.. 너.. 너 그게 중요한 흐엉.. 중요한게 아닌 것 같은데… 미안해애액…”
엉엉 울던 애도 상태를 살피러왔던 상냥했던 어른도 모두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아멜리아를 보고 있었지만 지금의 아멜리아에게는 이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아, 청소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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