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한 갈래 길
검은먹시티 외곽의 호수. 실버는 그날 하루를 이향과의 시합에 대비하여 포켓몬들을 훈련시키는 데에 썼다.
“장크로다일, 폭포오르기!”
장크로다일이 굉장한 기세로 폭포를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얼음샛길에서 획득한 비전머신으로 폭포오르기를 배운 뒤, 능숙하게 기술을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맹연습 중이었다. 폭포를 중간쯤 오르던 장크로다일이 아래로 떨어졌다. 물에 빠지며 풍덩, 하는 큰 소리와 함께 큰 파동이 일었다.
실버가 호수로 가까이 다가가자 물속에서 고개를 들어 올린 장크로다일이 푸르르, 고개를 털었다.
“더 할 수 있겠어?”
질문에 답하듯 우렁차게 울어 보인다. 장크로다일이 다시 자세를 잡자, 실버가 외쳤다.
“좋아, 한 번 더 폭포오르기!”
장크로다일의 몸이 폭포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물과 정면으로 부딪치며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다.
떨어지고, 다시 오르고. 몇 번이고 반복되는 과정을 제노는 호수 근처의 바위에 앉아 구경하고 있었다.
내 포켓몬 중에 폭포오르기를 배운 녀석이 있으면 요령을 알려주기 더 쉬울 텐데 말이야. 제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오 박사의 연구소에 있을 자신의 물 포켓몬을 떠올렸다. 걔는 특수공격력이 강해서 그런 거 안 가르쳤지. 결국 제노가 할 수 있는 건 구경뿐이었다.
잠시간의 휴식. 지친 장크로다일이 제노에게서 받은 자뭉 열매를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제노의 피카츄도 열심히 간식을 먹어댔다. 하여간 누가 돼쥐 아니랄까봐, 아무것도 안 했는데 너는 왜 먹냐고. 제노는 피카츄가 제 앞에 끌어다놓은 열매를 모두 장크로다일에게 주었다. 피카츄가 울상을 지었지만 저 표정을 보고 산지도 약 10년. 이제는 넘어가지 않을 때도 되었다.
제노가 실버에게 물었다.
“장크로다일을 누구의 상대로 내보낼 거야?”
“비밀.”
한 단어로 대답한 실버가 복슝 열매를 한입 베어 물었다. 내가 관장도 아니고 나한테 비밀로 할 건 또 뭐야. 제노가 불퉁한 표정을 짓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복슝 열매를 깔끔하게 먹어 치운 실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은 이제 돌아가 봐.”
“뭐? 그럼 너는?”
“여기 더 남아있을 거야.”
실버는 미련 없이 뒤돌아 호수를 향했다. 장크로다일도 마지막 열매를 입에 털어 넣고 실버를 따라갔다. 또 비밀이냐고. 제노는 작게 투덜거렸지만 결국 자리를 비켜주었다. 떠나는 그를 향해 장크로다일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실버의 모습은 다음 날 아침에야 볼 수 있었다.
*
그리고 시합 당일. 물로 채워진 필드의 양 끝에 이향과 실버가 마주 보고 섰다. 실버의 왼손에는 짙푸른 색의 손수건이 묶여있었다.
체육관으로 가는 길, 제노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실버는 계속해서 제 손바닥을 긁어댔다.
제노가 그의 손을 낚아채어 확인해 보자, 왼손 손바닥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찰과상과는 조금 달랐다.
실버는 왼손잡이. 당장 시합을 해야 하는데 손이 이래서야 볼을 잡을 때마다 따가울 것이다. 제노는 가지고 있던 손수건으로 그의 손바닥을 감쌌다. 제법 얌전히 손을 내어준 실버가 제 손등에 생긴 매듭을 빤히 바라보았다.
“시합에 사용할 포켓몬은 세 마리. 어느 한쪽의 포켓몬이 더 이상 시합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면 시합은 끝납니다. 그리고 포켓몬은 도전자만 교체할 수 있습니다.”
제노가 시합할 때도 보았던 조그마한 덩치의 할아버지가 나와 기운찬 목소리로 시합의 룰을 외쳤다. 이윽고 그가 양손에 든 깃발을 들어 올렸다.
“시합 시작!”
“자 갸라도스, 나와라!”
“고우스트.”
물살이 크게 출렁이는 소리와 함께 필드에 나타난 갸라도스가 포효했다. 고우스트가 불길한 기운을 내뿜으며 허공을 부유했다.
“갸라도스, 하이드로펌프!”
“고우스트, 피해!”
세차게 쏘아지는 물줄기를 고우스트가 허공을 유영하며 부드럽게 피했다. 몇 번이고 하이드로펌프를 피하는 고우스트에, 이향이 지시를 바꿨다.
“갸라도스, 용의 숨결!”
꼭 불꽃처럼 빛을 내는 숨결이 고우스트를 향해 내뿜어졌다. 용의숨결의 효과는 마비. 맞았다간 이향에게 1승을 내어준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고우스트는 여전히 회피에 집중했다.
이어지는 공격에 접근할 수 없어서일까? 하지만 실버의 고우스트는 섀도볼이라는 원거리 공격을 사용할 줄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고우스트에게 공격을 지시하지 않았다. 이향이 제노와 마찬가지로 의문을 느끼던 그때, 돌연 갸라도스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갸라도스!”
단 한 번의 공격도 받지 않았을 터인 갸라도스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제노가 그제야 실버의 전략을 눈치챘다.
경기가 시작되었을 때 고우스트에게서 보았던 그 불길한 기운. 자신의 체력을 절반 깎아 상대에게 지속적인 데미지를 주는 기술, 저주였다.
“지금이야, 고우스트, 섀도볼!”
고우스트의 손아귀에서 모인 검은 기운이 구의 형태로 갸라도스에게 발사되었다. 이향이 다급하게 피하라고 소리쳤지만, 저주로 인해 체력이 많이 깎인 갸라도스에겐 무리였다. 결국 갸라도스는 섀도볼을 정통으로 맞고 쓰러졌다.
“갸라도스 시합 불가능! 고우스트 승리!”
심판의 판정이 내려졌다. 이걸로 손쉽게 1승을 따내었지만, 저주는 사용하는 포켓몬에게도 부담이 큰 기술. 이향도 실버도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고우스트를 살피던 이향이 다음 포켓몬을 꺼냈다.
“신뇽, 이번엔 네 차례다!”
실버는 고우스트를 교체하지 않았다. 아마 고우스트가 쓰러질 때까지 계속할 생각인 듯했다.
“고우스트, 섀도볼!”
“신뇽, 피하면서 용의파동!”
신뇽이 유연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하며 모아둔 에너지를 고우스트에게 발사했다. 충격파가 고우스트에게 적중하고, 고우스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애초에 반으로 떨어진 체력으로 계속해서 갸라도스의 공격을 피했으니, 여기가 한계인지도 몰랐다. 실버가 고우스트를 볼로 돌려보냈다.
“자, 이걸로 무승부가 됐구나.”
웃으며 도발하는 이향. 실버는 침착하게 다음 포켓몬을 꺼냈다. 볼에서 튀어나온 장크로다일이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그에 따라 물살이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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