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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두 갈래 길

제노가 몬스터볼을 던졌다.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루카리오였다. 비행 타입에 유리한 피카츄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격투 타입을 가진 포켓몬이 나왔다. 예상이 빗나간 실버의 미간이 좁혀졌다.

“뭐야, 피카츄는 안 꺼내는 거야?”

“가끔 다른 애들도 나와줘야 하지 않겠어?”

설마 상성 하나만 믿고 이길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제노가 태연하게 답하며 도발했다. 실버가 외쳤다.

“에어슬래시!”

“맞받아쳐.”

주먹에 기운을 모은 루카리오가 피하지 않고 공격에 공격으로 대응했다. 두 기술이 부딪히며 큰 연기가 일었다.

루카리오의 모습이 가려진 순간, 연기 속에서 빠르게 쏘아진 파동이 크로뱃에게 적중했다. 짧게 신음을 흘린 크로뱃이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저 루카리오, 기술의 속도가 빠르다. 먼지가 천천히 가라앉으며 그 가운데 우뚝 자리한 루카리오의 모습이 드러났다. 돌아와, 크로뱃을 볼 안으로 들여보낸 실버가 다음 몬스터볼을 던졌다.

“후딘이라, 이번에도 상성에선 루카리오가 불리하네.”

“어떻게든 이점이란 이점은 다 가져가야 하는 거 아니겠어?”

맞는 말이다. 상성이라는 것은 우위를 가져가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꽤나 압박감을 준다.

몸풀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제노와 달리, 실버는 이 경기를 제법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번엔 세게 나가볼까.

“루카리오!”

제노의 부름에 루카리오가 뒷발에 힘을 주고 땅을 박찼다. 장점인 스피드를 이용해 거리를 좁힐 생각인 것 같은데, 그렇겐 안되지! 양손을 앞으로 내민 후딘의 몸에 에너지가 둘러지더니, 순식간에 그 모습이 사라졌다.

에스퍼 타입 포켓몬 특유의, 사이코 파워를 이용한 움직임. 뒤에서 나타난 후딘을 파동으로 눈치챈 루카리오가 크게 뛰어 공격을 피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외침과 거의 동시에 루카리오의 모습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림자분신술로 늘어난 루카리오들이 빠른 속도로 불규칙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후딘의 눈동자가 주변을 경계하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섣불리 공격했다 분신을 맞추기라도 하면 틈을 내어주게 된다. 루카리오가 공격을 하는 순간이 승부처.

자, 어디 한번 와보시지. 루카리오의 분신들이 공기를 가르며 움직이는 소리만이 살벌하게 공간을 감싸던 그때, 한 마리가 높게 뛰어올라 후딘에게로 달려들었다.

“뒤쪽이야, 막아!”

지시에 따라 후딘이 리플렉터를 펼쳤다. 그러나 루카리오에게서 뻗어진 것은 주먹이 아닌, 악의파동이었다.

판단 미스. 그것을 깨닫기가 무섭게 근거리에서 새카만 파동을 맞은 후딘이 바닥을 굴렀다. 후딘을 볼로 돌려보낸 그가 세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볼을 쥔 왼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 격투 타입이면 격투 타입 기술을 가르치라고…!”

”싫은데.”

실버가 마지막 포켓몬을 꺼내기 전, 제노가 오른팔을 뻗었다. 손에는 몬스터볼을 들고 있었다. 돌아와, 명령과 함께 루카리오의 모습이 볼 안으로 사라지자 실버가 다시 불만스럽게 말했다.

“왜 교체하는 거야?”

“그것도 내 맘이지?”

붐볼 실버가 폭발을 위해 예열되는 과정을 지켜보던 제노가 세 번째 몬스터볼을 손에서 굴리며 말했다.

“실버는 은근히 정석적으로 배틀하는 편이네.”

“뭐?”

“응용력은 좋은데 사고가 유연하지 못하다고 해야 하나, 상대가 계획과 다른 움직임을 보이면 쉽게 당황하잖아.”

“….”

“그린과의 싸움, 쉽지 않았지?”

그 말이 맞았다. 22번도로를 지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체육관이면서 다른 배지 7개를 모두 모으면 오라고 내쫓길래 얼마나 잘난 녀석인가 보자 했더니, 그렇게 큰소리를 칠만한 실력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얻어낸 승리. 관장은 교체 불가능이라는 핸디캡이 없었다면 졌을지도 몰랐다.

“트레이너 간의 배틀을 체육관 전처럼 생각하면 곤란해. 앞으로 더 많은 트레이너들을 만나게 될 만큼 다양한 전략들을 보게 될 거야. 그때의 패배는 오로지 트레이너 본인의 기량 부족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

제노가 레드, 그린 두 사람과 함께 관동지방을 여행하면서 몸소 느낀 것이었다. 셋이서 번갈아 가며 배틀할 땐 어떻게 하면 상대를 이길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전략 생각밖에 안 했었는데.

실버는 말없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과거에 빠져있던 제노가 그 시선에 정신을 차렸다.

“미안, 말이 너무 길었지.”

“….”

멋대로 사과한 그가 조금 부산스러운 동작으로 볼을 던졌다. 펑-,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한바이트였다.

저거 설마…. 실버가 예측함과 동시에 그와 눈이 마주친 한바이트가 해맑게 웃으며 캬오캬오 울기 시작했다.

“그때 그 딥상어동이 진화했나 보네.”

“알아보겠어?”

“어, 너무 확실하게.”

실버가 틈만 나면 뛰어올라 자신의 얼굴에 찰싹 붙었던 딥상어동을 떠올렸다. 아무리 뭐라 해도 항상 새롭게 달려들었지.

저렇게 사람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포켓몬은 많지 않았다. 보통은 진화하면서 사람이 사춘기를 겪듯 성격이 조금 변하기도 하는데, 저 녀석은 그대로군.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방방 뛰는 한바이트를 살핀다. 제노의 포켓몬은 대부분 호전적이고, 공격 하나하나가 위협적이었다. 아무리 천진난만해 보여도 긴장을 풀어선 안 됐다.

어찌 됐든 이번 차례로 경기는 끝난다. 고민하던 실버가 몬스터볼을 집어 들었다.

“마지막은 너다!”

쿠웅- 묵직하게 땅을 딛는 소리와 함께 우렁찬 울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모래바람이 날리기 시작했다. 저건….

“마기라스도 있었어?”

“나도 당신에게 보여주지 않은 포켓몬 한 마리쯤은 있다고.”

실버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그세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은 모양이었다. 따라 미소 지은 제노가 오른팔을 뻗었다.

“선공이야, 한바이트! 지진!”

순간 눈을 번뜩인 한바이트가 한발을 들어 바닥을 내리찍었다. 그로부터 시작된 진동이 땅을 가르며 매섭게 퍼져나갔다.

“피하면서 얼음엄니!”

“막아!”

갈라지는 지면을 피해 높게 뛰어오른 마기라스의 입안이 서늘한 기운을 품고 빛나기 시작했다. 그대로 달려들지만, 한바이트가 드래곤클로로 맞받아쳤다. 파사삭, 한바이트의 날갯죽지에 살얼음이 끼고 두 포켓몬이 동시에 뒤로 튕겨져나간다.

“한바이트, 괜찮아?”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한바이트에게서 짧은 그르렁거림이 돌아왔다. 최종 진화한 포켓몬을 상대로 제법 힘을 쓰는 모습을 보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나저자 이 모래바람, 상당히 거슬리는데.

땅 타입인 한바이트에게 데미지를 주진 않지만, 마기라스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다양한 배틀 환경의 경험이 적은 한바이트에겐 불리한 조건.

그때 모래를 뚫고 커다란 바위들이 세차게 날아들었다.

탕! 타앙! 돌덩이가 한바이트의 몸을 뚫을 듯이 부딪힌다. 낮게 신음한 한바이트가 곧장 다시 손톱에 기운을 모으지만, 마기라스의 위치를 모르는 상태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막기에 급급했다. 제노가 한 손으로 제 모자를 누르며 외쳤다.

“진정해! 시야가 가려진 게 아니야, 모래의 움직임을 읽는 거야!”

그 말에 움직임을 멈춘 한바이트가 양 손톱끼리 부딪쳐 갈아 날카롭게 만들었다.

침착하게 기다린다. 조금 더, 조금 더-

“지금!”

파앙- 순간 바람을 뚫고 튀어나오는 마기라스의 몸체를 안정적으로 받아낸다. 서로를 밀어내려는 힘 싸움이 평형을 이루고, 잠시 그대로 멈춰있던 두 포켓몬이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푸릉, 실버의 곁으로 돌아온 마기라스가 고개를 털며 콧김을 내뿜었다. 무언가 불편하단 신호. 실버가 상처가 난 마기라스의 피부를 찬찬히 살폈다. 저 한바이트, 귀찮은 특성을 가졌군. 그가 짧게 혀를 찼다.

그렇다면 빠르게 날려버리겠어!

“이걸로 끝내버려, 기가임팩트!”

“한바이트, 드래곤다이브!”

두 트레이너에게서 동시에 지시가 내려졌다. 두 포켓몬의 몸이 강한 에너지를 담고 달려 나가며 유성처럼 빛나는 궤적을 남긴다. 콰앙! 그 어떤 공격보다 큰 파열음이 나며 그 충격으로 강한 바람이 일었다. 일순 모래바람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제노와 실버가 각자 팔로 제 눈을 보호하며 힘겹게 시야를 확보한다. 어떻게 됐지? 모래와 먼지, 각종 잡다한 것이 섞인 뿌연 공기가 가라앉고, 필드의 중앙에서 부딪힌 채 멈춘 두 포켓몬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마기라스가 천천히 자세를 바로 한다. 충격에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든 모양이었다.

반면에 한바이트는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털썩. 한바이트의 몸이 지면과 부딪히며 소리가 났다. 제노가 서둘러 제 포켓몬에게로 달려갔다. 한바이트는 입을 헤- 벌린 채 바닥에 엎어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제노가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수고했어. 정말 멋졌어, 한바이트.”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자 겨우 짜낸 목 울림이 대답으로 돌아왔다. 애초에 한바이트에게 조금 무리인 시합이긴 했다. 이제 편히 쉬어, 그렇게 말하며 한바이트를 볼로 돌려보낸다. 그의 옆으로 실버가 다가왔다.

“….”

“….”

두 사람이 조용히 필드의 상태를 보았다. 온통 깨지고 파여선, 꼭 악의 조직에게 습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엉망이었다. 배틀을 하는 사이 사람들이 활동할 시간이 되며, 이른 아침부터 벌어진 격한 배틀에 센터로 향하던 사람들 몇몇이 이쪽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제노가 나직이 말했다.

“… 일단 방으로 돌아갈까?”

“… 그래.”

두 사람은 난장판이 된 필드를 나 몰라라 한 채 서둘러 센터 안으로 향했다.

우선 포켓몬들부터 회복시키자, 그리고 방으로 도망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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