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10. 호열대만 온리전 'LOVE PUNCH' 후기 및 변명

별 내용 없습니다

수랭's space by 수랭
195
2
0

아마 제 처음이자 마지막 부스 참가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후기라는 것을 씁니다. 행사 전 준비 이야기도 있어서 좀 구질구질합니다.

호댐온은 저에게 정말 특별한 행사였습니다. 전 작년부터 씨피 덕질이라는 것을 호댐으로 거의 처음 해봤고 온리전 류의 행사도 슬램덩크 때문에 처음 가보았기 때문에, 이 씨피의 국내 온리전이 생긴다면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호댐온이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지만, 그렇다고 부스로 참가하거나 책을 내거나 할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습니다. 다만 작년에 갔던 모 행사에서 책을 너무 많이 사고 지친 나머지 자리에 앉아 있는 부스러들이 약간 부러웠기에 내게도 보습…아니 엉덩이 대일 의자가 하나만 있었다면…이라는 마음 정도는 갖고 있었죠.

그런 안이한 자세로 살고 있었는데 풍뎅이 님이 갑자기 부스를 잡은 리콜라 님과 정략부스결혼을 시켜주시면서, 여기가 너의 부스다, 라고 말씀셨습니다. 마치 안선생님처럼…저의 무대를 갑자기 ‘지정’해주신 것이죠. 저는 그만 노예녀의 기질이 발동해서 잘 이해하지 못한 채로 넵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얼마 후 제 부스의 마스터 리콜라 님과 상견례도 하며 풍뎅 왕국이 안배한 운명에 순응했습니다. 그렇게 정략결혼으로 만난 주인님은 정말 훌륭하신 분이었기에 풍뎅이 님의 혜안과 마스터플랜에 대한 저의 신뢰는 강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풍뎅이 님이 연합작품집을 만들 거니까 참여하라고 하시기에 또 복종했죠. 이렇게 좀 돔섭버스적으로 행사 준비의 전반부가 진행되었습니다.

아무튼 그 뒤로 연합작품집 수록작을 쓰느라 영겁의 시간을 보내고…탈고한 뒤엔 아아, 이제 됐어, 더 이상 아무것도 쓸 기력이 없어, 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제 부스에도 제 책이 있으면 좋지 않겠어요? 그리고 수요가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에 재록본을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이미 너무 늦었기 때문에 최후의 마감일을 확인한 뒤 표지를 수배하고 편집과 조판은 직접 하기로 했습니다. 한 번도 해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자신감이지…그런 와중 또 주제에 재록본을 2권으로 나눠 만드려는 야심을 가진 끝에 풍뎅이 님께 아주 큰 폐를 끼쳤습니다. 다른 신간도 1권 썼습니다. 사실 마지막 책을 쓸 무렵에는 모든 걸 너무 바쁘게 해서 뭘 했는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거의 전문 출판편집인처럼 교정지를 만들어서 보시는 분도 많이 있던데 저는 그런 거 없고 막판에는 거의 그냥 조판을 올린 채로 뭘 계속 쓰고 고치고 교정했습니다. 샘플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그냥 하루 동안 다 썼기 때문에…행사가 끝난 후 정신을 차리고 좀 읽어보니 세세한 설정 미스나 호칭 실수도 눈에 띄더라고요. 죄송합니다. 이제 와서…. 그리고 아무래도 처음 해 보는 것들이라 최소한 ‘진짜 책’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여백은 많이 주고 폰트를 다소 작은 사이즈로 뽑았는데요, 결과적으로 노안이나 약시를 가진 독자들에게 그리 친화적이지 못한 책이 된 점도 죄송스럽습니다.

아, 그리고 마침 저의 다른 오랜 트친 둘둘 님이 축전을 그려주시고 싶다고, 원하는 구도가 있으면 말씀을 달라고 하셨는데 왠지 그분의 화풍이 라노베 풍 이야기에 어울릴 것 같아 옳다구나 하고 그러면 후경에 히로인의 거대한 프로필이 있고 앞에 남주 전신이 있는 그런 뻔한 오타쿠 포스터 구도로 호댐을 그려주세요, 하고 요청을 드렸는데요, 제가 대충 구글에서 주워서 제시한 예시가 어쩌다 보니…

그런데 둘둘 님이 촉박한 일정 속에서 고생하신 끝에 축전으로 주신 그림이 너무 좋.느.였기에 그걸 그냥 표지로 쓰고 싶어지더라구요. 그래서 허락을 받고 표지로 쓰고 흑백으로 주신 축전은 내지에 넣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완료된 시점에도 정작 본편 소설은 전혀 쓰고 있지 않았기에 거의 약속한 대로 이 그림을 표지로 쓰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이 소설을 썼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 축전이 저의 배수진 씨인 셈인데요, 아무튼 이 과정에서도 풍뎅이 님이 아주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풍뎅이 님이 만들어 주신 재록본의 표지도 아주 예뻐서 정말 마음에 듭니다. 풍뎅이 님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지금쯤….(당연히 살아 있겠죠. 제게도 천부인권이란 게 있으니까….)

책을 세 개나 말았으니 이제 다 끝났다! 하고 안심하고 여행 준비나 하고 있는데 분위기를 보니 다들 뭔가 말랑이? 무료나눔? 그런 것도 준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제겐 아무것도 없었기에 갑자기 트위터에서 예전에 입을 털었던 하이스미스를 베낀 이야기로 중철본 특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여행지로 떠나서 잠시 모든 것을 잊었지만 그래도 풍뎅이 님에게 가끔 메시지를 보내서 은행을 들르지 못해 잔돈이 모자라다고 칭얼대는 등 준비에 대한 근심을 표했더니 풍뎅이 님은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인접부스니까 뭐든 도와주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습니다. 마치 불운의 복선처럼…(다행히 제 불운은 아니었음)

그렇게 행사 당일이 도래했습니다. 아침에 부스입장을 한 뒤에는 도착해 있는 제 책 박스들을 뜯은 뒤에 대충 진열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만든 동인지이니 만큼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바빠서 파본이 없는지 정도만 확인했습니다. 테이블보는 리콜라 님이 가져와 주셨고, 가격표와 책 스탠드는 풍뎅이 님이 준비해 주셨습니다. 저는 뭘 준비했냐면…사탕 상자를 준비했네요(뭐지, 이자식은? 위그든씨라도 되나?). 이렇게 준비하는 동안 농구맘님이 아주 빠르게 약과와 죽마개만이를 모두에게 돌리고 가셨습니다. 신속성마저 갖춘 마음씀과 연륜이 느껴졌고 새삼 존경의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 뒤에는 리콜라님의 성인본 opp 포장을 돕고, 옆에 있는 풍뎅이 님과 시야마 님 부스를 도와 연합작품집과 엽서 특전을 에코백에 넣었습니다. 잠시 반복 작업을 하니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더군요. 그 다음에 어떤 카오스가 찾아올지도 모르고…

참고로 그 때가 풍뎅이 님과 맨정신으로 대화를 나눈 마지막이었습니다. 판매전이 시작된 이후로는 풍뎅이 님의 얼굴조차도 거의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부스는 정말 미친 것처럼 바빴기 때문에…판매전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는 어떤 것도 감히 물어보거나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크나큰 시련이 닥친다고 해도 부스 풋내기인 리콜라 님과 제가 헤쳐나가야 했죠(물론 제 정신머리와 너갱이가 없어진 것 외에 큰 시련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저의 도우미 친구가 와서 조금 도와주었는데, 저보다 훨씬 부스 베테랑이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당한 격무에 시달렸는지 돌아가는 길에 ‘놀러 오는 기분으로 왔는데 생각보다 일을 너무 많이 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건 그녀 나름대로의 ㅈㅃㅇ친다. 너는 친구도 아니다. 라는 의미였을까요.

우정을 위해 뭐 깊이 캐묻진 않았습니다.

여하튼 도우미 친구와 리콜라 님의 도움을 얻어 선입금 목록을 찾거나 현판을 사냥하러 가끔 바깥을 돌았지만 정신머리가 너무 나가 있어서 반고리관이 고장난 도마뱀처럼 같은 곳을 뱅뱅 돌거나 같은 부스를 두세 번 가거나 했습니다(뭘 자꾸 까먹어서). 자기 소개도 잘 못하는 병이 있어서 그냥 조용히 모든 걸 찾았는데 ㅎㅍ 님께서는 저를 티셔츠로 알아보시더라구요. 사실 선입도 놓쳐서 현판으로 사러 온 것이 너무 쪽팔렸기에 은밀히 진행하려 했지만…안나 윈투어처럼 풍뎅 제작 쇼난 보이즈 리미티드 에디션을 알아보는 그녀의 눈썰미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행사 사진은 물론 제 부스 사진도 안 찍은 채 몇 시간이 지난 뒤 약간 정신이 돌아왔는데 이때 사바 님 부스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것을 찍었습니다.

부스에 앉아 있을 때도 많은 분들이 오셨는데 제가 제대로 인사를 드렸는지 모르겠어요. 소설에 대해 좋은 말씀을 해 주신 분들도 있었고 닉네임을 말씀해주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먹을 것을 주신 분도 많이 계셨고 특히 제가 선입금한 회지나 나눔 회지, 돌발본, 직접 만드신 굿즈를 들고 누추한 부스까지 직접 찾아와 주신 트친분들도 계셨는데 보답으로 드릴 것도 별로 없어서 더욱 제가 보잘것없이 느껴졌음. 제 심장을 보여드릴 수 있다면…(그런 끈적끈적하고 더러운 것 보여주지 마시오) 말랑바삭 님, 짜긍이 님, 사바 님, 핑구 님, 진 님, 하루 님, 캐뇨 님, 비토 님, 라온 님 그리고 제가 기억을 못하거나 닉네임을 미처 말씀해주시지 않으신 많은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옆 부스에서 선입금한 엽서를 수령하려고 무슨 옆에 앉은 처자에게 지분대는 늙은이처럼 은근히 말을 걸었는데 너무 반갑게 맞이해 주시며 혹시 다꾸를 하시는지 물어보시더라구요. 이 상냥함에 갑자기 저의 뚝딱인의 본능이 살아나서 다꾸…저도 다꾸라는 걸 늘 하고 싶었습니다만 능력이 일천하여 몹시 수치스런 삶을 살아 왔고…어쩌고 하며 안물안궁 다자이 오사무st 자기고백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저의 tmi를 끊으며 아주 예쁜 호댐 스티커를! 주셨습니다(지금 생각해보니 춘키?님이셨던 듯함).

이벤트는 펀치게임과 포스터 응모밖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럭드도 해보고 싶었지만 그 쪽을 볼 때마다 줄이 너무 길어 보여서 포기했어요. 캐뇨님이 주고 가신 키링이 핑크색이라 이걸로 드레스 코드 이벤트에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 또한 상상 속에서만 참여했네요. 게다가 행사장 디피조차도 제대로 못봤습니다. 그래도 이따금 뒤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저 멀리 아름다운 등신대가 보여서 그것만은 마음의 등대처럼 여기고 많이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이 위안이 되네요. 사실 저는 다른 온리전 행사에서 이벤트에 참여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또 정신없이 귀가택배를 싸서 부치고 부스를 정리하고 나니 금세 이벤트 진행 시간이 되더라고요. 옆에서 시야마 님이 언어의 차이를 극복하며 너무 열심히 모든 이벤트에 참여하고 계셨기 때문에 시야마님의 빙고와 ox퀴즈를 도와드렸습니다. 결국 빙고 경품을 받으셨는데 제 일처럼 기쁘더군요….

이벤트 게임을 하면서 흥분하는 사람들을 보니 왠지 즐거웠습니다. 좋아하는 작가가 그린, 좋아하는 cp 굿즈를 받는다는 것에 정말 기뻐하는 모습들도요. 행사 자체에 제 예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오셨는데 이 모두가 호열대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 새삼 감동이 있더군요. 해외 참가자 분들도 꽤 계셔서 같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어를 초월해서 공감하고 소통해왔다는 걸 새삼 실감했습니다. 트위터에서는 많이 본 모습이지만, 실제가 되면 느낌이 다르지요. 아무래도 저는 무엇을 좋아하든 안방팬질맨에 가까워서 온라인 바깥의 ‘규모’를 확인하는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이렇게 행사를 갈 때면 모두가 실재하는 얼굴과 몸을 가지고 애정을 표시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는 것에 조금 압도되고 감동을 받게 됩니다.

많은 동인 행사를 가보진 않았지만 호댐온은 객관적으로도 순조롭게 진행된, 많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행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 참여하지 못해 아쉽지만 이벤트들도 다 사려깊게 준비해 주신 티가 나고, 부스에 줄이 생길 때도 스탭 분들이 굉장히 빠르게 다가와 안내와 정리를 해주시더라구요. 참관객들도 모두 협조적으로 행사에 참여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물론 다들 좀 하이해져서 정신이 약간 없는 상태로 보이시긴 했는데, 아마 다들 저와 비슷하신 상태였을 테니 어쩔 수 없겠죠(내 씨피의 행사에 내가 와 있다니…!). 법치국가의 그레이존이 허락한 마약의 맛…. 사실상 락페라고 봐야죠.

정말 즐거웠습니다. 이 행사의 깊숙한 일부가 되었다고 느낄 수 있어서 기쁩니다.

그러면 다음에 또!

(중간에 겨우 생각나서 찍었더니 약간 비뚤어지고 지쳐 보이는 부스 사진을 첨부합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