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레오] 연애재판
고고한 황제를 좋아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여름날이었다. 날이 그냥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무지막지하게 더웠고 이에 차가운 기운이 서리면서 딱 부러지도록 만들어진 시원한 가리가리군이 생각나는 날이었으며 그냥 더 이상은 움직이고 싶지 않다고 다짐했던 날이었다. 그날도 여전히 심심한 마음에 수업을 탈주하고서 오선지와 잉크가 가득 차 있는 볼펜 한 자루를 팔 옆에 단단히 끼우고 에이치가 있을 아름다운 정원으로 목적지를 정했던 참이었는데. 날씨가 이렇게나 더우니까 가면 텐시가 또 시원한 걸 주겠지- 어제도 덥다 덥다 노래를 부르고 텐시에게 땀을 뻘뻘 흘리며 갔더니 언제 또 준비했는지 방금 막 사 온 아이스크림을 제게 내밀며 먹으라고 했었다. 츠키나가 군이 전에 먹는 거 봤거든- 당장에라도 붉게 달궈진 볼에 턱 대고 싶은 물기 서린 파란색 포장지의 가리가리군을 내미는 에이치는 정말 둘도 없는 천사로 보였다. 고마워, 텐시-! 덥다고, 곧 열사병으로 죽을 지도 모른다고 남의 귀청이 터져라 그렇게 외쳐댔으면서 레오는 에이치를 와락, 인형을 끌어안듯 품에 그러안았다. 하하. 츠키나가 군. 간지러워. 꼭 강아지 같네. 에이치는 레오를 조심스럽게 품에서 떼어내어 갸륵한 두 손에 가리가리군을 얹어 주었다. 맛있게 먹어. 내일도 준비해 놓을 테니까. 텐시의 말은, 내일도 놀러 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레오도 어제와 같이 가리가리군을 얻어먹을 생각에 신이 나서 더운 날씨에도 콧노래를 부르면서 에이치에게 가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도 그냥 평온하게 가리가리군만 먹을 생각이었는데. 텐시- 이름을 부르면서 흥겨운 발걸음으로 꽃이 만개한 정원에 들어선 레오는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다른 건 아니고 에이치가 작은 왕좌 같은 고급스러운 의자에 앉아 체크무늬 담요를 덮고서 얕게 잠이 들어있었던 탓이었다. 뭐야, 텐시. 자고 있잖아. 조용한 분위기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탓에 상대가 잠이 깨지 않도록 소리 내지 않고 얌전히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거슬렸다. 뭐, 그래도 텐시니까 그 정도는 봐주지 뭐. 텐시가 잠에서 깨어날 동안 레오는 가지고 온 오선지를 한가득 채우기나 하자고 마음먹었다. 마침 딱 좋은 망상도 떠오른 참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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