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레오]너도 죽었으면 좋겠어
“앗, 미안! 소란피우면 안 돼! 착하게 있겠습니다!”
처음 본 순간부터 자신은 단 한 줌도 손에 쥐지 못한, 남들에게 모두 다 있지만 마치 저 아이에게만 존재하는 것 같은 푸르고 따스한 생기가 가득 담겨있었다. 스스로에게 놀라 스스로가 질문한 것에 대해 요란하게 답을 하고, 당최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을 연이어 쏟아 붓곤 원하는 답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몰라도 제 답에 매우 만족해하면서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던 과일을 세상 그 무엇보다도 맛있게 먹어보이던 모습이. 조금, 이상한 애인가. 같은 학교 교복을 입고 있다는 걸 츠무기와 함께 봤으면서도 좀체 그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아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 특이한 애를, 어떻게 학교에서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걸까. 게다가 예외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거의 항상 차분하고 정적인 케이토와의 궁도 시합에서 우승자 후보라고 할 만한 그 아이를 넘어트리고 당당히 승부를 거머쥔 애가 이렇게나 시끄럽고 정신없는 아이라니. 자신이 지금 다른 사람과 착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과일을 다 먹은 지금 녹안을 가진 장난꾸러기의 아이는 세나 군의 이름을 넣은 다소 잔인한 곡을 부르면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 아이는 대체 뭘까. 에이치는 자신의 병실에 침입하듯이 들어온 이 아이를 차분히 뜯어보면서 생각했다. 봄의 따스한 바람에 피어난 새싹이 돋은 것처럼 물기 있게 반짝이는 신비로운 녹안. 무슨 일을 벌일지 감히 예측할 수 없는 장난기 가득히 올라간 입꼬리. 이 좁고 음침한 소독약 범벅의 병원에서조차 어딘가 재밌는 게 있지는 않을까 이리저리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맑게 굴러가는 눈빛. 짐승의 것과 같이 날렵하면서도 위해감은 느껴지지 않는, 이중적이고도 흥미로운 눈빛이었다.
츠키나가 레오! 그 아이는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르며 제 이름을 불렀다. 츠키나가, 레오. 달빛을 받는 이들은 미쳐있다고들 하는데 이 아이도 그런 걸까. 에이치는 작은 새처럼 재잘거리는 주황빛 머리의 아이를 보며 고전적인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광기 어린 이야기를 떠올린다. 뭐랄까. 일반적으로 활발한 애들과는 다른,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느껴져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아아. 이제 세나군 욕하는 것도 지쳐-”
레오는 노래를 부르다 말고 아무 것도 없는 바닥임에도 아무렇지 않게 뒤로 벌러덩 누워버린다. 자신의 몸이 좋지 않은 만큼 관리가 철저하게 되어 어느 방보다도 청결한 건 사실이겠지만 저렇게 막 누워도 될 정도로 청결하지는, 않을 텐데. 에이치는 잠시 그 모습을 보며 걱정하다가 아무래도 저 아이에게 그런 사소한 것 따위는 아까 먹었던 과일보다도 더 상관없으려니, 하고 치부해버린다. 글쎄. 저 아이는 이런, 자신이 경멸한다고도 할 수 있는 이 ‘청결한 감옥’ 에서조차도 마치 놀이터에 견고한 모래성벽을 쌓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신이 난 얼굴을 하고서 빙긋 웃을 수 있구나. 분명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왔을 텐데 치료는 고사하고 여기서 처음 보는 얼굴의 사람과 이렇게 느긋하고 여유롭게.
“텐시!”
그 아이가 나를, 천사(天使)라고 불렀다. 뼈가 부러진 애처로운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가지고 놀 듯 살인자의 노래를 만들어내면서. 노래랑 너무 어울리지 않는 별명 아닐까. 물론 노래와는 상관없이 제 이름을 가지고 만들어 낸 이름이었지만, 천사라. 살인자의 노래라는 이름과는 전혀 걸맞지 않았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이 피부의 모든 곳에서 피를 흘리면서 웃고 있는 것처럼 현실성 떨어지는, 천재의 손끝에서 자유롭게 놀아나는 붓놀림에서만 만들어질 것 같은 한 폭의 그림 같은 상황. 천사라니. 고등학생에게 너무 사랑스러운 별명 아니야? 당황스러움에 그렇게 말하자 오히려 너의 눈동자는 샐쭉해진 입과 함께 휘둥그레져서 똑 부러지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천사라는 건 말이야, 우리들의 생각처럼 그렇게 착하거나 상냥하기만 한 게 아니라구? 그네들은 말이야, 더 많은 살인을 저질렀는걸.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야- 하지만, 텐시, 그러니까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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