暗雲低迷
구곡간장 커뮤니티 러닝 중 자작 캐릭터 전투 로그
해가 뜨면 달이 지고. 달이 뜨면 해가 지고.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보아 온 지 어언 600년이 다 되었던가. 변화무쌍한 하늘의 운행을 제하고는 단조로운 일상이라 생각하였다. 그런 그의 생에서도 기억에 남을, 이례적인 하나가 될 오늘. 싸늘한 바람이 방울을 흩트려 놓는 오후.
상해를 입히지 않는 대련, 홀로 하는 수련, 임무를 위한 견제, 가벼운 몇 초의 공방, 보호를 위한 방어. 일상에서도 일어나는 이런 행위들이 아니라 정말 누군가와 살기를 뿜어내며 진심으로 겨뤄본 것은 언제인가. 주군께 칼을 겨눴던 이가 찾아와 건넨 도전장은, 까마득한 기억 속에서 실전을 겸해 스승과 겨뤘던 경험까지 상기시키는, 그런 매개체였다.
물론, 귀문 앞을 바위처럼 지키고 서 있는 의건의 앞으로 이러한 도전장이 온 건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요괴들의 터전에 다시금 전쟁을 방불케 하는 혈흔이 튀고 이토록 선명한 적의가 와 닿은 적은, 처음이라 칭하기 부족함이 없었다. 이 자리에 선 대부분의 이가 그렇지 않은가. 그리하여 의건은 으레 취해 왔던 ‘무시’라는 방법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저 이와는 이미 일 초를 겨뤘다. 뻗어 나온 시퍼런 칼날을 언월도의 몸체로 막아냈었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심히 감정적인 한 수라고 길의건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결코 얕볼 수준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러웠을 행동이나 균형이 흔들리지 않았고, 전해져 오는 힘이 컸으며, 날랜 몸짓이었다. 도약해 온 걸음으로 알 수 있었고, 병장기의 격돌음이 그 증거였으며, 바람을 갈랐던 파공음이 짧고 선명했다. 주군을 공격한 이지만, 오만과 허명을 믿고 덤벼드는 시정잡배 무리보다야 몇 곱절은 낫다고 생각했다.
당연하지만 상대가 이러한 의건의 의중을 알 리 없다. 무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시 제 앞에 선 태양을 닮은 머리칼을, 의건은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이젠 아예 본격적으로 싸움의 대상이 저로 바뀌었는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무기도 챙기지 않고 자세를 잡는 상대는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잔뜩 의지를 다진 모습이다. 한숨을 쉬는 법도, 헛웃음을 짓는 법도 배운 적 없는 의건은, 그저 천변만화하는 하늘보다 사람의 감정이 더하다고 결론짓곤 언월도를 문설주에 기대어 놓았다.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가 상대에게 닿았다.
“나는 그대를 공격할 이유가 없다. 이생에 주어진 나의 역할은 오로지 방어다. 그러나,”
분석에 미숙한 의건이 이런 상황에서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대가 정녕 사생결단을 원한다면…”
저리 타오르는 눈빛을 가진 이들은 대개,
“기꺼이 전력을 다해주지.”
끝을 보기 전엔 결단코 물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건을 둘러싼 기운이 일변했다. 눈동자가 담기지 않은 희끄무레한 안구에서 서서히 무형의 기운이 피어오른다. 형형해진 시선을 상대에게 고정한 채, 묵직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 눈을 채 깜박이지도 못할 찰나, 강건한 몸이 태양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바위 같은 주먹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어 상대의 얼굴로 곧장 쇄도했다.
태산의 준동이었으며, 설산의 눈사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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