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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 첫눈

백업 / 쓰니가 열아홉 감성을 잊어버려서 수정을 못함

Don't be quiet by 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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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때 이른 눈이 펑펑 내렸다. 1교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도저히 첫눈 같지 않게 펑펑 내려 교정을 덮고 소복하게 쌓였다. 시험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은 내리는 눈을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어차피 수능 이후 보는 기말고사 따위에 신경쓰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웃는 것이, 종이 치자마자 밖으로 뛰어나가 눈싸움할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오늘따라 왜 이리 반갑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띵동 소리가 울리자마자 죄다 종례고 뭐고 뛰쳐나갔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나이 열아홉이나 먹어가지고 눈 온다고 방방 뛰는 게 왠지 나이에 안 맞는 짓 같아 미현은 가만히 있었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 역시 종이 치자마자 뛰어왔는지 옆 반에서 쪼르르 달려오는 자그마하고도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으므로.

"미현아!! 눈 구경 하러 가자~"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 자신을 빤히 보는 어린아이 같은 눈빛이 기가 막히면서도 한편으로는 귀여웠다. 하기야 이 아이가 눈을 보고 가만히 있으면 그건 박하영이 아니지. 뭐라 대답할 사이도 없이 졸라대는 통에 미현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 하영이 이렇게 나오는 이상 무조건 그녀가 하자는 대로 따라 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섯 살 어린아이처럼 삐쳐 버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단 미현 자신이 하영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 주고 싶었으니까.

"빨리 와, 미현아~"

좋아서 팔짝팔짝 뛰어가는 게 저러다가 넘어지지나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미현은 피식 웃으면서 천천히 하영을 뒤쫓았다. 그러다가 짓궂은 상상이 들었다. 뒤에서 몰래 눈뭉치 하나 던져 놓고 시치미 떼 볼까. 하지만 미현의 못된 상상은 얼마 되지 않아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왔다.

"누....누구야!"

누군지는 몰라도 솜씨도 좋게 얼굴에 정통으로 맞혔다. 얼굴에 느껴지는 서늘하다 못해 덜덜 떨릴 정도로 찬 기운에 미현은 기겁을 하며 황급히 눈을 털어냈다. 눈에 돌덩이라도 넣었는지 맞은 이마가 꽤 아프다. 안경이 온통 물기로 젖어버려 쓰고 있는 게 의미가 없게 되었다. 제대로 열 받아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눈덩이가 날아온 쪽을 노려보자 반 애들이 기겁을 하며 도망갔다. 미현의 시선은 제일 겁먹고 쏜살같이 도망가는 한 아이에게 꽂혔다. 빙고, 나한테 돌을 던진 2반 이쁜이가 너구나? 어딜 도망가려고.

똑같이 눈덩이를 집어 복수하려고 던지려는데 이번에는 옆에서 한 덩이가 더 날아와서 퍽, 옆 얼굴에 명중. 치사하게 옆을 노려? 하면서 고개를 홱 돌렸는데 이번에는 박하영이다. 아까부터 얼굴에만 정통으로 맞는 게 많이도 우스웠는지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지를 못한다. 어지간히도 웃겼는지 한번 터진 웃음을 멈추지를 못 하는 꼴을 보니 아까 눈 던진 애들은 다 잊어버리고 박하영에게 복수심이 불타올랐다.

"야, 뭐가 그렇게 웃겨?"

"아.... 너 얼굴 완전 웃겨! 으히히....."

이게 내가 맞는 걸 막아주지는 못할 망정 나한테 눈덩이 던지고 재밌다고 웃어? 박하영에게 본때를 보여 줘야겠다는 생각에 아까부터 던지려고 잔뜩 벼르고 있던 큰 눈덩이를 하영에게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던져 버렸다. 퍽. 나이스! 눈덩이가 커다래서 그리 빨리 날아가지도 않았는데 운동신경 둔한 하영은 그걸 또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아, 근데 꽤 아플 것 같다.

“이씨.... 조미현 너 일루 와!”

“싫은데? 싫은데?”

“야!!! 너 가만 안 둔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하영이 아무렇게나 눈을 집어 무차별적으로 내게 뿌려 댔다. 어어, 이게 감히 덤벼? 여유롭게 놀려 주려는 게 원래 계획이었는데 하영이 생각 외로 강하게 공격해오자 같이 약이 올라 버려 나도 같이 눈세례를 퍼부어 댔다. 평소라면 적당히 넘어갔을 텐데, 안경을 벗어 버리니 진짜 내 스스로도 눈에 뵈는 게 없어진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유치하게 무슨 눈싸움이냐고 애들을 비웃었던 것 같은데. 에이 뭐 어때, 재밌으면 되지. 막상 발동 걸리자 재미가 붙어서, 애들이 추워서 하나 둘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하영과 계속 눈을 뿌리고 던지며 놀았다. 둘다 정신을 조금 차릴 무렵에는 옷이고 머리고 쫄딱 젖어 엉망이 되어 있었다. 내가 나를 봐도 물에 빠진 생쥐가 따로 없다.

“미현아!! 일루 와 봐!”

너무 뛰어다녀서 헉헉거리고 있는데 얘는 지치지도 않는지 그새 또 나를 부른다. 아 또 왜. 얘가 원래 이렇게 체력이 좋았나? 아, 원래 방방 뛰어다니는 데는 따라갈 사람이 없었지.

“또 어디 가는데?”

“빨리 와 봐!”

하영이 끌고 간 곳은 눈이 가장 많이 쌓여 있는 곳이었다. 하영은 소복이 쌓인 눈에 몸을 내맡기고 그냥 발라당 누워 버렸다. 어차피 다 젖긴 했지만 눈에 그렇게 정통으로 파묻히면 안 차갑나. 빨리 일어나라고, 말리려고 했는데 하영이 너무 해맑게 웃고 있어서 미현도 그냥 못 말린다는 듯이 웃어 버렸다.

“너도 옆에 누워 봐. 엄청 푹신해.”

“그럴까?”

얌전히 누워 있는 하영을 보자 또 짓궂은 생각이 들어서 미현은 속으로 킥킥 웃었다. 한번 눈 속에 파묻어 볼까.

“하영아, 내가 이불 덮어 줄게.”

그리고 미현은 하영의 다리부터 눈을 마구 뿌려 댔다.

“야, 뭐 해!”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해수욕장 가면 모래찜질 하는 것처럼.”

하영은 뭐야? 하고 쫑알거리면서도 미현이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미현이 눈을 한가득 쌓아서 다리가 눈 속에 완전히 덮이자 하영은 그제야 다리를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쌓인 눈더미에 금만 갈 뿐 빼내기가 쉽지 않았다. 두어 사람만 더 있었으면 아예 못 움직이게 파묻어 버리고 도망가는 건데 아쉽네. 미현이 웃으며 중얼거리자 하영은 그제야 당했다는 걸 알고 눈을 뿌리며 마구 소리를 질러 댔다.

“아, 빨리 빼! 나 나갈 거야!”

“싫은데? 싫은데?”

“빨리 치우라고! 에취...!”

빽빽거리던 하영이 갑자기 추웠는지 재채기를 했다. 아차, 추운 데 너무 오래 있었나 보다. 감기 걸린 거 아냐? 당황한 미현은 얼른 눈을 치워 주었다. 파묻혔던 눈에서 빠져나온 하영은 추운지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아우... 춥다. 이제 가자.”

“미안. 눈 속에 너무 오래 있었나 보다.”

“아냐! 내가 먼저 끌고 온 건데, 니가 왜 미안해.”

정색을 하고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게 또 우스웠다. 보통 정색하면 무서워 보이지 않나.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게 왜 이렇게 귀엽지. 둘은 일단 교실로 다시 들어갔다. 신나서 뛰쳐나온다고 가방도 안 가지고 나왔기도 했고, 따뜻한 데서 몸 좀 녹이고 싶기도 했으니까.

교실에 들어와 보니 모두 집에 갔는지 아무도 없었다. 자기네 반 교실로 들어가는 미현에게 하영은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며 뛰어가서는 바로 옆 자기 반에서 가방만 가지고 후다닥 미현의 반으로 들어왔다. 미현은 가방을 싸다 말고 뛰어온 하영을 보았다.

“너 벌써 가방 다 챙겼어?”

“응! 다 싸 놨었어.”

“그럼 잠깐만 기다려.”

“알았어. 근데 교실도 되게 춥다.”

하영은 아직도 떨고 있었다. 감기가 단단히 든 모양이었다. 미현은 당황해서 괜히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 다 젖었을 텐데 어디 갈아입을 옷이라도 없나...? 맞다, 내 체육복 있었지. 미현은 사물함으로 뛰어가서 고이 접혀 있는 체육복을 꺼내왔다.

“하영아 이거 갈아입어.”

“어? 괜찮은데....”

“엄청 추우면서 뭐가 괜찮아. 얼른 입어.”

“응.... 고마워.”

그러면서 하영은 머뭇거리며 교실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안 갈아입고 뭐 해? 미현이 의아한 눈으로 하영을 빤히 쳐다보았다.

“뭐 해?”

“음.... 나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올게.”

아, 갈아입을 곳이 없어서 그랬던 거구나? 난 또 왜 그러나 했네. 미현은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 능청스럽게 말했다.

“뭘 화장실까지 가? 그냥 여기서 입어.”

“어.... 그래두.”

“여자끼린데 뭐 어때. 너 평소에도 교실에서 안 갈아입고 화장실 가?”

“아니, 보통 때는 그냥 입는데.... 지금은 다 젖어서 속에까지 다 벗어야 될 것 같아서....”

“그래? 잘됐네. 우리 하영이 옷 벗는 거 구경이나 해야지.”

“어.... 뭐?! 야!!”

얼굴을 바싹 들이밀며 짓궂게 웃는 미현에게 하영은 당황해서 빽 소리를 질렀다. 역시 우리 하영이는 순수해서 이런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내공은 아직 없나 보네. 홍당무가 되어 버린 얼굴이 참을 수 없이 귀여웠다. 사실은 완전 농담은 아니고 약간 진심도 섞여 있는데. 흠뻑 젖어서 몸에 달라붙은 셔츠 너머로 살색이 슬쩍슬쩍 드러나는 게 유심히 보고 싶고 막 어떻게 해 버리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 애기 같은 애한테 차마 뭐라도 했다가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일단은 참아야겠다. 아쉽네, 쩝.

“농담이야. 뒤돌아 있을 테니까 얼른 벗어. 그거 게속 입고 있다가 진짜 감기 걸려.”

“응.... 알았어. 계속 그렇게 있어야 된다?”

“그럼.”

그제야 해맑게 웃으며 하영은 옷을 벗었다. 미현은 약속대로 뒤돌아 있었지만 사각거리며 옷 벗는 소리가 나자 자꾸만 장난치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하영이는 진짜 자꾸만 놀려 주고 싶다. 놀라는 반응이 너무 재미있어서 멈출 수가 없다니까. 물론 쫑알대는 게 귀여워서 자꾸 보고 싶기도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하영은 해맑게 교복 치마를 벗고 체육복 바지를 올렸다. 바지를 추켜올리느라 허리를 굽히고 있던 하영은 고개를 들고 다 입었다! 라고 말하려다가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미현이 몰래 뒤돌아서 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눈을 마주치며 놀랐지? 놀랐지? 하면서 깔깔 웃는 미현 때문에 하영은 또 홍당무가 되었다.

“야! 너 언제 뒤돌았어!”

“헤헤, 다 봤다.”

“안 보기로 했잖아! 나빠!”

“에이, 볼 것도 없던데?’

“뭐야?”

빨개진 얼굴에 말까지 더듬으며 하영은 빽 소리를 질렀다. 목청도 커라, 이것 참 학교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지 누구 남아있었으면 놀라서 달려왔겠네. 울상이 되어 처진 눈, 그리고 쫑알거리는 입술, 똑바로 얼굴을 쳐다보자 미현의 눈에 비친 하영의 눈코입 하나하나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어점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지. 나만 느끼는 걸까. 안 되는데, 다른 사람이 알면 채갈텐데. 하영은 뭐라뭐라 계속 잔소리를 했지만 미현은 하영을 뚫어지게 감상하느라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름대로 진짜 화가 났는지 계속해서 뭐라고 말하는 하영에게 미현은 눈 깜짝할 새 바짝 붙어 입을 맞추었다. 쫑알거리던 입이 딱 멈추고 하영의 온몸이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음....어....?”

하여간 뭘 몰라요 애가. 미현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깜짝 놀란 하영의 허리를 한 손으로 감싸 안고 다른 한 손으로 하영의 눈을 감겨 주었다.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던 하영은 따뜻한 미현의 품이 좋았는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자기도 미현에게 팔을 감았다. 더운 숨결이 서로에게 따뜻하게 전해져왔다. 첫눈 오는 날, 아무도 없는 이 좋은 시간과 좋은 장소에서 더한 건 차마 못해도 이 정도는 해야지. 뭐라고 계속 종알거리는 입술이 너무 귀여워서 어쩔 수가 없었으니 이해해 줘. 오케이?

미현은 속으로 사과 아닌 사과를 하며 하영을 더 따뜻하게 품에 안았다. 폭 안겨 오는 하영이 사랑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맞닿은 체온이 따뜻해서 추위도 다 잊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얘 감기 걸리지 않았나? 에이 뭐, 옮으면 어때. 며칠 앓고 말지. 미현은 감고 있던 눈을 잠깐 떠서 창 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눈이 소복소복 내리며 쌓이고 있었다. 배경 좋고, 타이밍 좋고, 하영은 더 좋고. 모든 것이 완벽한 날이었다. 이 순간이 평생 갔으면 좋겠다고 미현은 생각했다. 하영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러기를 바라면서 미현은 하영을 더 따스히 안았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둘은, 더이상 추위가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오래도록 서로를 따뜻이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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