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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토주인] 취기

아쿠네코 라토x주인♀️

Scarlet by 스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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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얼흥얼, 익숙한 멜로디가 들린다. 아마 플루레가 피아노로 종종 연주하던 곡이었던가. 누군가 가사 없이 허밍 하는 소릴 들으며, 주인은 살며시 눈을 뜬다. 눈앞에 가장 보인 것은 마치 차 밖의 풍경처럼 흘러가는 어두운 복도의 풍경이었다. 간헐적으로 흔들리는 몸과 뺨과 가슴에 맞닿아있는 따스한 체온에, 주인은 자신이 누군가의 등에 업혀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난 분명 집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려보려 했으나, 가지 않은 취기 탓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주인은 신음을 흘리며 자신을 업고 있는 사람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자신을 업고 있는 상대의 앙상한 살갗과 적나라한 척추의 감촉이 얼굴 위로 느껴진다. 굉장히 마른 사람이구나. 무심코 그리 생각하던 찰나, 그녀를 업고 있던 이도 이내 그녀가 잠에서 깨어났단 사실을 깨달은 모양인지 허밍을 멈추고 그녀에게 말을 걸어온다.

"주인님, 일어나셨습니까?"

듣는 이를 유혹하는 듯한 달콤한 미성. 아마 망망대해에서 뱃사람들을 유혹하는 세이렌이 실존한다면 이런 목소리겠지. 이토록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목소리를 가진 이는 저택에 한 명뿐이었다.

"라토."

"네, 주인님."

주인에게 이름이 불린 게 기뻤는지, 조금 높아진 그의 목소리에서 고양감이 느껴진다. 그가 살며시 고개를 뒤로 돌려 주인을 확인하려 하자, 어깨 앞으로 늘어뜨렸던 머리카락이 주인의 앞으로 한 움큼 흘러내렸다. 입에 진한 철쭉 색의 머리카락이 들어올까 봐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뒤로 빼던 주인은 그제야 평소대로 라면 꼭꼭 땋아져 있을 라토의 머리가 풀려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라토의 이런 모습은 오랜만에 보는데. 주인은 라토의 머리칼을 빗질하듯 어루만져보았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그의 머릿결이 엉킴 한번 없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여긴 어디지?"

"라므리와 술래잡기하러 3층 집사실을 찾아갔다가, 주인님이 바닥에서 주무시고 계셔서 침대로 옮겨드리는 중이었습니다. 미야지 선생님께서 바닥에서 자면 감기에 걸릴 수 있으니 잠은 꼭 침대에서 자라고 하셨거든요."

결국 마시다 중간에 필름이 끊겼던 거구나. 데블 팔라스에서도 최고의 주당인 루카스가 따라주는 대로 와인을 마셨으니, 어찌 보면 예정된 결말이었다. 자신은 그와 달리 평범한 주량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내려줘, 라토. 혼자 걸을 수 있수니까."

혀가 아직 꼬여있는지 그녀의 말이 우스운 억양으로 뭉개졌다. 이런, 라토 앞에서 술이 깬 어른을 연기하긴 틀렸네. 라토도 주인의 상태가 영 좋지 않다는 건 눈치챘는지, 걱정스럽게 되물어왔다.

"정말 혼자 걸으실 수 있으신가요?"

"으응.. 걸으면서 술 좀 깨고 싶어."

주인의 부탁에 라토는 즉시 무릎을 굽혀 조심스레 주인을 내려주었다. 주인은 앞으로 발을 내디디며 자신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근데 왜 오른쪽의 벽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거지? 분명 난 앞으로 똑바로 걷고 있는데.

주인은 애써 눈을 부릅뜨고 앞을 향해 척척 걸어갔지만, 그럴수록 앞으로 나아가긴커녕 점점 그녀의 몸은 벽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다행히 잠자코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라토의 손이 벽과 주인의 머리 사이로 재빨리 끼어든 덕에, 주인은 벽에 머리를 부딪치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었다. 와, 나 진짜 주책이다. 자신이 비틀거리고 있었단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주인은 푸흐흐,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내려드리지 말 걸 그랬네요."

라토가 주인의 머리를 감싸며 자기 어깨에 주인의 머리를 뉘었다. 깡마른 줄 알았던 그의 어깨는 근육으로 가득 차 있는지 돌처럼 단단했다. 딱딱한 베개에 목이 조금 불편해서 고개를 트니, 달빛의 역광 속에서 취한 자신마저 사랑스럽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는 라토가 보였다. 항상 어딘가 음산하게 웃고 있던 그가 애틋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일까, 그에게선 평소와 달리 묘한 색기가 감돌았다. 귀 너머로 풀어 흐트러진 그의 긴 머리카락 때문에 평소보다 어른스러워 보이는 걸까. 아니면 그냥 자신이 취해서 문득 그런 기분이 든 것일지도 모른다.

달큰한 와인 향을 머금은 주인의 입술이 라토의 것에 포개어졌다가, 쪽.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조금 전까지 그의 눈가에 걸려있던 미소는 어디 갔는지, 라토는 갑작스레 습격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빳빳이 얼어붙었다. 평소의 자신이라면 깜짝 놀란 라토에게 호들갑을 떨며 곧장 사과했을 텐데, 어째서 이토록 마음이 편안할까. 아마 술이라는 편한 핑곗거리가 있어서 그렇겠지. 막연히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도 나중에 이것이 말썽이었구나, 하고 술 탓만 하면 그만이었으니.

"미안. 나 많이 취했나 봐."

주인의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끝내기도 전에, 라토의 입술이 다시 맞부딪쳐왔다. 좀 전의 가벼운 버드키스와 달리, 라토는 자기 아랫입술을 달콤한 과실을 베어먹듯 깨물며 지독히 탐해왔다. 라토를 놀라게 해 주려다 되레 당황한 주인은 뒷걸음치려다, 자신이 아까 부딪칠 뻔한 벽과 라토의 가슴팍 사이에 갇혀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뒤로 물러날 뻔했다는 사실에 마치 소유욕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라토의 손이 그녀의 양 어깨를 단단히 붙잡아왔다. 마치 자신을 피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듯.

 당신이 시작한 게 아닙니까. 당신이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제 마음을 불쏘시개처럼 휘젓지 않으셨습니까. 별것 아니었을지도 모를 당신의 행동에, 걷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커진 이 마음을 당신도 같이 책임을 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치 그리 속삭이는 것 같아서. 주인은 자기 입술을 벌려 파고드는 말캉한 혀가 받아들였다.

숨 쉬는 것도 잊고 키스에 몰두하던 두 사람은 이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창백한 달빛을 받은 그의 피부가 옅은 복숭앗빛으로 은은하게 빛난다. 항상 창백하기만 하던 라토의 얼굴이 드물게 홍조를 띠고 있는 광경은 참으로 절경이었다. 주인은 감탄하며 라토의 뺨을 쓸어올렸다.

"주인님은... 제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마치 먹잇감을 찾아냈을 때처럼, 그의 시리도록 차가운 눈동자에서 은은한 광기가 엿보였다.

"주인님이 저택에 오고 나서부터, 이런저런 공부를 많이 했으니까요."

마치 뱃사람을 깊은 바닷속으로 끌고 가기 위해 유혹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세이렌처럼, 라토가 주인의 귓가에 고혹적인 미성으로 속삭여온다. 주인님의 방에서 이어서 할까요. 2층의 집사들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곤란할테니...

라토의 발칙한 제안에 조금 고민할 법도 하건만. 주인은 거부한다는 선택지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자, 라토는 비틀거리는 주인을 사뿐히 안아 들었다.

"방까진 제가 모시겠습니다. 주인님은 그저 즐겨주세요."

"그래."

주인은 그리 대답하며 라토의 목에 팔을 휘감았다. 마치 세이렌이 자신을 바닷속의 심연까지 끌고 내려가 주길 기다리는 뱃사람처럼. 자신의 최후 따위보단, 당장 눈앞의 매혹적인 이성과 조금이라도 더 맞닿아있고 싶단 욕망을 여실히 드러내면서.

* 밑의 결제선은 채널에 문제가 생기거나 사라지더라도 작품을 영구 소장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결제란입니다. 아래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소장본의 금액은 글자수에 맞춰 책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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