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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헌은 서른둘에 죽었다. 은퇴를 앞두고 지도자 전향을 준비하던 시점이었다. 충격적이고 허무한 사고였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를 구하다가도 아니었고, 극성팬의 잘못된 애증이 불러온 참극도 아니었다. 교통사고.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할만한 몇 중 추돌 사고 같은 것도 아니었고, 귀갓길에 코너를 돌다 과속하던 차량에 치였다. 과도한 음주로 이미 인사불성이었던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밟을 타이밍을 계산하지 못했고 그 바람에 시신이 처참했다. 물론 직접 보지는 못했고, 그나마 교류하던 명헌의 누나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다. 장례를 치른 후 현철은 오직 한 가지만을 후회했다. 진작에 입적할걸. 그간 둘 다 숨 가쁘게 달려오느라 우리 사이에 그런 서류가 무슨 소용이냐고 눙치고 넘어간 일이 그렇게나 비참했다. 10년이었다. 10년을 살 비비며 살았지만, 신현철은 여전히 이명헌의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죽은 연인의 머리칼은커녕 유해도 만져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시간은 무심히 흘러갔다. 당연히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신현철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몇 가지가 변했다. 예를 들어, 신현철은 더 이상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
애초에 운전을 할 일도 없었다. 옮긴 집은 직장인 농구 협회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2LDK, 이전에 살던 집보다는 좀 좁았다. 작다는 실감은 나지 않았다. 당연한 소리인가. 둘이서 나눠서 쓰던 공간을 혼자 독점하고 있으니까. 처음 발을 들이자마자 눈에 띈 차이점은 베란다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바깥으로 큰 창문이 난 자그마한 다용도실이 있긴 했지만 큼직한 몸을 구겨 넣기엔 벅찬 감이 있었다. 펜트리 렉을 들여놓기에도 각이 애매했는데 그때쯤엔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짐이 너무 없었다. 무엇보다 베란다는 주로 이명헌이 채우던 공간이었다. 그 애는, 아. 어린 시절에 만난 탓에 나이가 차도 꼭 그 애, 하고 부르게 됐다. 아무튼 그 애는 다른 사람들이 익히 넘겨짚는 것처럼 살풍경한 사람이 아니었다. 신현철은 이명헌에 대한 진실을 아는 어쩌면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이명헌이 펜트리 가득 늘어놓았던 작은 화분들, 나잇값 못 하는 유치한 장식품, 쟁여놓고 먹을 만큼 좋아했던 간식까지 모조리 공유한 단 한 사람이었으므로. 그렇다고 그 사실이 새삼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아쉬운 일이다.
“신 주임님.”
“어?”
“...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서요.”
“선수 누구?”
“그, 저.”
“?”
“주임님, 한테요.”
아침 공기가 유독 냉하고 상쾌한 날이었다. 일은 잘 맞지도 그렇다고 싫지도 않았다. 줄곧 코트만 종횡무진 누비다가 앉게 된 책상 앞이 낯설기는 했으나 딱 그 정도였다. PC를 켜고 본체 위에 밤새 쌓인 먼지를 닦는데 옆에서 한참 기웃대던 직원이 결국 비쭉대며 다가와 말을 걸었다. 신현철은 순간 가늘어진 눈을 끔벅이다 한참이 지나서야 아, 단말마를 냈다.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렀다. 곧 이명헌의 2주기였다. 프로가 된 후로는 같은 팀에서 뛴 적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전설과 같던 그 시절, 고등학생 이명헌과 신현철을 기억했다. 음, 난감한 한숨과 함께 뒤통수를 문지른 현철이 짧게 답했다. 안 해요. 다른 안건이었다면 몇 번은 찔러봤을 직원도 이내 머쓱한 얼굴로 뒷걸음질 치며 그런다. 실례했습니다. 그저 웃어주고 말았다. 웃는 건 딱히 어렵지도 않았다. 직원이 사라지고 바로 자리에 앉아 우선 쌓여있던 서류 중 가장 상단의 잡지부터 펼쳐 들었다. 이번 시즌엔 어떤 선수가 어떻게 주목받고 있는지 체크하는 것이 업무의 시작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다. 벌써 2년째, 이달이면 낯선 후배 선수가 아닌 이명헌이 한 꼭지를 차지한다는 것을 빼면 말이다. 무심코 펼친 장의 특집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농구를 위해 태어난. 폰트 아래로 현역 시절 이명헌의 사진이 겹쳐 실려 있었다. 타이틀이 별로였다. 본문은 읽지도 않고 그대로 덮어 저 멀리 밀어두었다. 업무에 집중할 시간이다.
사진 속의 이명헌은 어느 때보다 밝게 웃고 있었다. 10년 가까이 뛴 현역 내내 특유의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을 유지해 돌부처라는 별명까지 붙었었는데 덕분에 이 사진이 뜨고 한참을 시끌벅적했다. 오랫동안 고전하던 팀이 드디어 시즌 우승을 거머쥐었을 때였나. 실은 그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모두가 조금만 더 세심했다면 알았을 텐데. 저날 이후 명헌의 말투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신현철은 아직도 당시에 한참을 고민하던 옆태를 기억한다. 어미라도 붙일 수 있음 좋겠어. 고등학교 때처럼, 베시,뿅,삐뇽. 그러니까, 그 긴 고민의 답을 찾은 순간을 찍은 사진이다. 기뻐하는 모습이 드물게 귀여워 밤에는 아주 오래 입을 맞추었다. 그 찰나의 기쁨이 영원히 꺼지지 않을 성배라도 되는 양. 축축해진 입술을 떼어내고 머쓱함에 엄지로 가뜩이나 두툼한 입술을 쓸면 이명헌은 자연스럽게 신현철의 손바닥에 제 뺨을 대고 웃었다. 그래, 웃었다. 이 역시 아무도 몰랐겠지만, 그 애는 생각보다 자주 웃고 또 자주 울었다. 멍하니 있느라 방치했던 모니터가 깜박이며 점멸한다. 마우스를 움직여 곧장 할 일을 찾았다. 버티는 일에 하잘 것 도움 되지 않는 상념이다.
“...”
일과가 끝나고서는 바로 회식이었다. 웬일로 거창한 한 상이 바글바글하게 모인 같은 부서 직원들 앞에 차려졌다. 그러고 보니 홍보 실적이 좋았다고 했던가. 다 같이 잔을 들 수밖에 없는 건배사 이후 아예 잔을 밀어둔 신현철은 술 대신 담배를 물었다. 담배는 명헌과 함께, 은퇴가 가까워지며 장난처럼 시작했다. 둘 다 유종의 미에 집착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여태 빡세게 굴렀는데 여기까지 와서 이 정도도 못하겠냐는, 소년 같은 반항심이 늘 둘의 기저에 깔려 있었다. 담배를 시작한 후 지루한 일과 중에 주로 담배를 찾는 신현철과 달리, 이명헌은 보통 섹스 후 나른한 기분에 담배 연기를 더했다. 엉망으로 흐트러진 이불 위에 그대로 누워 뭉클한 연기를 뱉는 얼굴은 항시 관능적이었고, 늘 꼭 신호를 들은 개처럼 침까지 흘리며 흥분한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다. 혀를 옭아맨 연기가 쓰고 텁텁했다. 담배를 물던 이명헌의 살아있는 머리통에 주로 어떤 생각이 들었었는지 신현철은 이제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지금, 나는 꼭 그 괴팍한 연기가 너를 닮아 좋다는 말도 전할 수가 없었다. 신현철의 본심을 들은 이명헌이 어떤 표정으로, 어떤 답을 돌려줄지 이제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작 2년 전의 일인데도 벌써 이명헌이 흐릿했다. 사랑만큼 영원할 것 같았던 기억은 세월 앞에 속절없이 문드러진다. 그럴 때마다 신현철은 이명헌을 따라 죽고 싶었다. 이명헌처럼 처참하게 뭉개지고, 으스러지고. 그리하여 최후에는 허망한 가루로 눅눅한 공기 속에 섞이고 싶었다. 그렇게 떠돌다 보면 언젠가는 그 애를 다시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가끔 그런 허황된 기대를 품었다. 허황된 것은 말 그대로 헛헛할 뿐이라 금방 꿈같은 환상에서 깨어났지만, 후유증은 꽤 오래갔다. 이 왁자한 선술집 어디에라도 이명헌이 있을 것만 같았다. 금방이라도 제 눈앞에 나타나 누구에게도 쉬이 보여주지 않던 미소를 짓고, 제 발등 위에 가만히 발바닥을 올리며 손을 잡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런 망상은 해롭다. 그저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임님-”
“...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아아니, 아니에요. 진짜 조금.”
“흠.”
“저요, 진-짜 주임님 팬이었던 거 아세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기 전에, 같은 팀의 동료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데 내용이 탐탁치 않았다. 불콰한 낯이 애처로울 정도로 지쳐있어 한번은 참기로 했다.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가만히 있자 아예 제 몸을 현철 바로 옆에 붙인 동료가 걸쭉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시즌도, 웁. 시즌도 다 챙겨봤어요. 주임님이 진짜, 제 인생 센터였는데. 그 소리를 듣고서는 하,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대신 담뱃재를 털며 목을 꺾었다. 간만에 튼 목덜미에서 뚝, 살벌한 소리가 났고 그래도 아직 정신이 조금은 붙어 있는지 바짝 붙은 직원이 꿀꺽, 침 삼키는 모양이 목울대 위로 그대로 보였다. 그러니 그대로 꺼져줬으면 좋았으련만.
“진짜에요, 진짜... 이, 명헌 선수랑 같이...”
“...”
“그땐 정말, 둘 다 농구를 위해서 태어났다고...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 정도로, 멋있었고... 어어... 딱 봐도 속이 울렁거리는 얼굴이 기어이 앞으로 뒤로 연신 휘청거렸다. 잡아줄 마음은 없었다. 아니다, 여유가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불길한 예감이야 있었지만, 기어이 이 시기의 신현철에게 이명헌의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 근처에서 수런대던 동료들도 기함해서는 은근히 뜯어말리기 시작하는데, 어디 술 취한 사람이 말을 고분히 알아먹던가. 직원의 넋두리는 계속되었다. 전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이명헌 선수를 좋아해서요. 인터하이, 윈터컵마다 보러 다녔거든요. 유명하잖아요, 산왕... 하하, 주임님이 더 잘 아시겠지마안- 근데, 근데 항상 옆에 계셨잖아요. 그러다 보니까아, 둘 다 눈이 가더라고요... 이어지는 말마다 하나같이 개소리들이다. 그런데도 신현철은 그저 듣고만 있었다. 저 멀리 밀어둔 술잔의 잔잔한 수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맑은 술이 어둑한 조명을 반사했다. 진작 그 속에 빠져 영영 가라앉았다면 편안했을까.
“정말, 정말로... 사명을 받고 태어난 것 같았어요... 이명헌, 선,수는...”
“...”
“그게, 부럽기도 하, 읍!”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나발거리는 입을 커다란 손으로 막고, 그대로 테이블 위에 머리통을 짓눌렀다. 그래도 직장 동료라고 힘 조절을 한 덕분에 요란한 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갑자기 뭉개진 게 고통스럽기는 한지 손바닥 아래로 바르작거리는 숨이 불쾌하게 와닿았다. 신현철은 여전히 그처럼 성에 차지 않는 경험에도 쉽사리 이명헌을 떠올린다. 그 애는 제까짓 게 누른다고 해서 숨을 이딴 식으로 쉬지 않았다. 한결같이 덤덤하고, 그런데도 그런 때만큼은 잔뜩 뜨거운 물기를 매단 눈이 저를 올려다보던 순간을 떠올린다. 이렇게 하면 진정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명헌이 없는 이 세상에서도 여전히 명헌의 코트 위에 던져진 소년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 신현철은 이제, 무엇이든 얼마든지 참을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한참 숨을 고르며 가다듬은 문장을 낸다. 명헌이는.
“농구를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닙니다.”
“...윽,읍...”
“그런 적 없어요.”
“...”
“... 그만 가보겠습니다.”
과음을 한 것 같아서. 슬쩍만 봐도 현철이 첫 잔조차 제대로 비우지 않았단 사실을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도 떠나는 신현철을 잡지 않았고, 그게 당연했다. 집은 여전히 가깝고 그래서 운명을 잃고 떠도는 사람에게도 쉽게 곧은 길을 마련해주었다. 바닥을 딛고, 박차고. 어느덧 달리기 시작한 다리가 간만에 뻐근했다. 오랜 시간 혹독한 훈련으로 다져진 몸이 이 정도의 움직임에 지칠 리 없었으나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신현철은 신기하게도 종아리부터 올라오는 묵직함을 느꼈다. 꼭 누군가 살아있음을 체감하라고 준 선물 같았다. 무릎을 접어 한참 제 종아리를 내려다보던 현철이 하, 웃었다. 바지 밑단이 이상한 모양으로 어그러져 있었다. 갑자기 뛰느라 바람에 쓸린 모양은 아니었다. 그건 마치. 마치...
“... 드디어 미쳤나.”
... 누군가 간절히 잡은 손자국처럼 보였다. 벌써 몇 년을 입었어도 그저 설익기만 한 정장 밑단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신현철은 이내 곧게 서며 아무렇지 않게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얇은 새시가 열리고 이사 온 이후 줄곧 쓸데없이 넓다고 생각했던 2LDK로 돌아가는 복도를 걸으며 신현철은 몇 번이나 곱씹는다. 이명헌은.
이명헌은
이명헌은 농구를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신현철을 위해서나 다른 무언가를 원해서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저 태어나 살았고 죽음 역시 그리 극적이지 않았다 그 애는 아침이면 담배를 피우며 쓸데없이 모은 화분에 물을 주고 종종 잔잔한 음악을 들었으며 생각보다 자주 웃고 자주 울었다 특이하고 귀엽고 여전히 특별했다 딱히 무엇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오랫동안 쓸데없는 말버릇을 고민하는데도 그 애와 함께하는 매 순간이 특별했다 그러므로 신현철은 종종 가정한다
어쩌면
어쩌면 제가 이명헌을 위해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그 애를 위해 사는 신현철의 모든 순간이 특별했다. 그래서 한때는 누구보다 특별한 그 애를 따라가고 싶었다. 그러나 신현철은 금방 깨달았다. 특별한 그 애는 이제 없다. 죽어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건 모두 살아서 남겨진 자들의 변명이고 헛된 기대일 뿐이다. 그런데도 저는 여전히 그 애를 위해 존재했다. 그러니 참아야 한다. 신현철은 제가 그 애를 위해 태어났음을 앎과 동시에 이제 이명헌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래서 신현철은 증명이 되기로 했다. 영영 사라진 그 애를 증명하기로 했다. 신현철은 오직 이명헌을 위해서만 쓰이고 싶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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