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뾰롱
이명헌은 설거지를 꽤 잘한다. 단체 생활을 오래 했으니 못 하는 게 이상하다지만, 그중에서도 특출난 편이었다. 한때는 농구를 그만두게 되면 식당에서 설거지를 할까, 한갓진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때라면 내내 딱딱하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웅크려 앉아 종일 그릇만 닦아도 문제 될 게 없을 테니까. 그러기엔 제 무릎의 스프링이 여전히 지나치게 성하고, 아직
가끔 모든 게 두려워지는 순간이 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어느 때가 되었든. 기분이나 컨디션 따위를 타는 일이 아니었다. 최근 명헌은 저를 지긋하게 따라다니는 그 고질을 드디어 그저 예민하게 태어난 사람의 노파심이라고 인정했다. 대학 리그에서의 첫 시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성적으로 막을 내렸다. 고등학교 내내 지지부진하던 신장도 조금이지만, 눈
이명헌은 서른둘에 죽었다. 은퇴를 앞두고 지도자 전향을 준비하던 시점이었다. 충격적이고 허무한 사고였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를 구하다가도 아니었고, 극성팬의 잘못된 애증이 불러온 참극도 아니었다. 교통사고.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할만한 몇 중 추돌 사고 같은 것도 아니었고, 귀갓길에 코너를 돌다 과속하던 차량에 치였다. 과도한 음주로 이미 인사불성이었던
이명헌은 유한에서 시작했다.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오직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사실만이 위로가 되었다. 그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운동에 전념하기 쉽지 않은 가정환경.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다는 현실. 그런데도 분수를 모르고 커져만 가는 사랑과, 열정과. 그리
신현철은 이명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수동적인 표현이지만, 사실이 그랬다. 과장 없이 그 시절엔 주변의 누구나 이명헌을 알았다. 농구와 쌀과 눈과, 건조한 공기가 유명한 지방. 그중 농구로 첫 번째 가던 아이. 당시 신현철은 차라리 쌀이나 눈은 좀 알았지, 농구는 그야말로 문외한이었는데도 이명헌 석 자를 알았다. 뭐, 여자애들한테 은근히 인기도 많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