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새끼?

데스 _ 첫만남AU 2

B. by 비디/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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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찰리. 경호원으로 성공하고 싶으면 근육을 키우라니까? 근육이 짱이야.”

“힘만 세다고 이상적인 경호원인 줄 아세요?”

“아니지. 그래도 딱 보이는 믿음이라는 게 있잖냐. …너처럼 비실비실한 몸으로는 믿음을 못 준다니까.”

알아요, 안다고요. 찰리는 의자에 앉아 인스턴트 커피를 휘저으며 불평했다. 삐걱대는 낡은 바 테이블에 팔을 기댄 주인이 알면 잘해보라는 눈길로 쏘아봤다. 그리고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프리마 봉지를 뜯어 찰리의 커피에 멋대로 쏟아부었다. 이미 갈색 거품이 일 정도로 휘저은 커피를 꼼짝없이 더 젓게 생겼으나 불평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 끌기에 제격인 심심풀이였으니. 뭉툭한 잔의 커피는 처음보다 부드러운 거품을 잔뜩 머금은 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찰리는 가끔 들어오는 경호 업무를 다니며 근근이 벌어먹는 이른바, 단기 백수였다. 하루 이틀 높은 사람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열심히 일한 뒤 받은 수입을 알뜰하게 나눠 살아가는 식이었다. 그러나 절망적일 정도로 일이 안 들어오는 시기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뒷골목의 낡은 카페에서 온종일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떼웠다. 일이 오랫동안 없으면 어쩌냐는 생각을 하며 신문의 구인 광고를 심드렁하게 보고 있자니, 주인이 서비스라며 도넛 두 개를 접시에 담아주었다. 감사합니다. 냉큼 도넛 접시를 집어 앞으로 가져가는 찰리를 보며 안타까운 듯 그는 고개를 저었다. 도넛도 못 사 먹을 정도로 거지는 아니거든요, 라며 투덜거리고 싶었으나 영수증에 몰래 추가될지도 모를 가격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아낄 수 있을 때 아껴야지. 초콜릿과 딸기시럽으로 코팅된 도넛 중 시뻘건 색의 도넛을 골라 크게 베어 물었다. 나름대로 마음에 드는 싸구려 맛이었다. ……그런데 이거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색소 맞아? 색이 너무 진한데. 찰리는 도넛을 양 볼에 밀어 넣고 우물거리며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주인은 질색하듯 시선을 피하며 뜬금없는 소리를 뱉었다.

“어우, 그렇게 보지 말라니까. 심장 떨어진다…….”

그는 신문을 들어 찰리의 얼굴에 찰싹, 소리가 나게 올렸다.

“남의 눈 가지고 자꾸 그러실래요? 특이한 건 행운이거든요. 연예인들은 일부러 렌즈까지 끼고 나온다잖아요. …TV도 안 보세요? 광고가 아주 판을 치던데. 찾아드립니다. 오로라처럼 반짝이는 눈매의 자신감….”

“그거야! 밤하늘이나 오로라, 적어도 호수 같은 눈을 말하는 거지. 쯧쯧, 찰리. 네 눈은 뒷골목의 마약쟁이나 좋아할 색이야. 못 믿겠으면 가봐라. 네 주머니에 5펜스 동전이 주렁주렁 달릴 거다!”

얼굴에 붙어있던 신문이 테이블 위로 떨어진다. 주르륵, 툭. 찰리는 5펜스로 눈알을 잃을 바에는 저만의 마약을 소중히 끌어안고 살겠다고 중얼거리는 동시에 앞에 놓인 거울을 집어 들었다. 먼지가 눌어붙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거울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사흘 전보다 퀭해진 얼굴이었다. 눈을 살펴보기 전에 딸기시럽이 덕지덕지 붙은 입가가 거슬려 휴지로 거칠게 닦아내자, 먼지가 피어올라 기침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천천히 눈동자를 살핀다. …먹구름 낀 하늘색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아래로 독극물처럼 생생한 녹색, 제일 끝은 뭐라 형용하기도 힘든 쨍한 자홍색. 하나씩 더듬어보니 주인의 말을 새삼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좋게 봐줘도 약국의 알약 통에서나 찾을 법한 기이한 색 조합에 입이 다물어졌다.

찰리는 문득 이 눈 위에 렌즈를 덧씌우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았다. 파랑, 녹색, 마젠타. 위에 별무리처럼 은은하게 반짝이는 남색 렌즈를…… 뭔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약쟁이가 볼법한 환상과 다르지 않아 찰리는 앓는 신음에 가까운 한숨을 뱉었다. 주인은 찰리가 풀이 죽었다고 생각했는지 커다란 손으로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위로는 됐어요.”

찰리는 다시 도넛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먹지 않고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래도 이 눈 덕분에 경호 일을 다시 맡겨주는 사람도 있었어요. 위협이 된다나 뭐라나. 또 얼마 전에는 예쁘다는 말도 들었… …우욱.”

자기가 한 말에 비위라도 상했는지 입을 틀어막고, 소리 없이 구역질하는 몸이 들썩였다. 보통 칭찬이 고픈 이에게 아부일지라도 좋은 말을 해주면 호감도를 반 이상 먹고 들어간다. 그만큼 인간은 한마디 말에 좌우되기 쉬운 감성적인 동물이며 찰리도 평범한 인간이었기에 칭찬에는 웃고 비난에는 욕을 퍼붓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찰리는 일전에 들었던 ‘눈이 참 예쁘시네요.’에 웃어줄 수 없었다. 바로 그를 초췌하게 만든 원인, 데미안 러셀이 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도넛을 접시에 도로 내려놓으며 팔을 뒤로 돌리고 스스로 등을 두드렸다. 그 망할. 미치광이 새끼, 혼잣말을 들었는지 주인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왜 그러냐, 도넛이 상했어?”

“아니요. …저번에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 생각이 나서 속이 안 좋아졌어요.”

주인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더 말해보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미친놈이에요. 혹시라도 만나면 말도 걸지 말고 도망가세요. 요즘도 악몽을 꾼다니까요. 오래 살 팔자도 아니긴 했는데… 그 사람 때문에 수명이 더 줄었어요. 이름이…… 데미안 러셀?”

“러셀이라고?”

“네. 아는 사람이에요?”

그때, 나무문이 바닥과 쓸리는 소름 돋는 소리가 들렸다. 종도 달아두지 않은 카페의 낡고 부서진 문에서는 늘 저런 소리가 났기에 찰리는 익숙한 듯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새로운 손님을 맞이한다는 이유로 대답을 미뤄버린 주인을 원망하기에 바빴다. 아시냐고요, 찰리는 소리 높여 물으려 했지만 말은 더 이어지지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바로 옆자리에 묵직한 인기척이 내려앉았으니까. 찰리는 모르는 사람에게 봉변당하는 경험을 최근에 했기에 필사적으로 무시하고자 몸을 옆으로 기울이고 커피만 홀짝였다. 카페가 아무리 좁아도 손님은 나뿐인데, 좀 떨어진 의자에 앉을 것이지. …어떤 사람이 백수의 달콤한 휴식을 방해하나, 곁눈질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와. 하고 감탄이 흘러나왔다. 머리까지 눌러쓴 후드 사이로 내려온 갈색 머리카락, 높은 콧대와 잘 빚어진 하관,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노란색 눈동자. 반도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이목구비의 존재감은 하나도 가려지지 않았다. 엄청난 미남이었다. 남자는 살짝 눈웃음을 짓더니 “내 옆 사람이랑 같은 거로.” 라며 주인에게 커피를 주문했다. 거칠게 긁힌 낮은 목소리다. 찰리는 그제야 넋 나간 듯 바라보던 시선을 급히 거두었다.

요즘 이 도시… 미남이 좀 많지 않나? 당장 어제만 해도, 아니. 그저께에도…

혹시 자신이 피로에 쩔어 잘못 본 건가 싶어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2번가 거리에서 신문을 보던 청발의 남자, 통유리창으로 된 카페 너머로 눈이 마주쳤던 백발의 남자, 잃어버린 5파운드짜리 지폐를 주워준 햇살도 반사되지 않았던 흑발… 전부 분위기는 달랐지만 ‘잘생겼다’는 말이 아쉬울 정도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잘생긴 사람이야 세상에 많다지만, 같은 마을에서 유달리 미남인 이들을 연속적으로 만나긴 쉽지 않으리라. 찰리는 미친놈을 만나고 나니 운이 좋아진 게 아니겠냐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주인은 인스턴트 커피와 프리마 봉지를 남자의 앞에 내려두다가, 찰리의 커피를 보고 경악했다. 자꾸 나만 보면 놀라지. 애당초 잡담하느라 이렇게 되어버린 커피가 아닌가. 찰리는 거품 98%의 커피를 끝까지 마셨다.

“……그래서 찰리. 러셀이 뭐 하는 사람들인지 궁금하다고?”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뒤늦은 대답을 꺼낸 주인이 다시 테이블에 몸을 기댔다. 러셀, 그 단어를 듣자 후드를 쓴 남자의 어깨가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보통 사람은 이름을 듣자마자 반응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사람인가. …어쩌면 해외로 도망가야 할지도 모르겠어.

“의사잖아. 그런데 자세히는 몰라.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귀신처럼 나타나선 완벽하게 병을 낫게 해주고 사라진다는데? 돈도 안 받는단다. 그 때문에 초반에는 무시무시한 추측도 많았지. 너무 아파서 환각을 보는 거다, 약 부작용이다… 나도 솔직히 이거라고 생각해.”

주인은 검지 손가락을 관자놀이 옆에 대고 빙글빙글 돌렸다. “살고 싶은 나머지 미친 거지.” 혀를 차는 소리가 이어졌다.

“의사. 그래서 그 미친놈도 돈이 많아 보였나 봐요. 이대로 일이 계속 안 들어오면 그냥…….”

“헛된 소리 하지 마라. 소문으로는 돈 안 받는다지만 의사 같은 고상한 것이 네 장기에 관심 있겠냐? 우리 같은 놈들 손톱 하나라도 사주면 아주 감지덕지인 거다.”

“누가 판다고 했어요? 일 좀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소리죠.”

찰리는 다 마신 커피잔을 거칠게 카운터 안쪽으로 밀어 넣으며 소름이 쭈뼛 돋은 팔을 쓸어내렸다. 그 탓에 옆자리 남자와 어깨가 부딪혀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픽 웃더니 찰리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조금 더 붙였다. 왜 이래. 부딪히면 뒤로 물러나야 정상 아닌가. 찰리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가만히 있으면 어깨 사이의 거리는 충분했으며, 커피를 즐기는 사람에게 좀 떨어지라고 성질을 부릴 수도 없어 허리만 곧게 폈다. 불분명한 백의의 천사, 단어는 좋네. 좋은 사람들이겠지. 찰리는 더이상 사건에 휘말리기 싫었다. 잠자코 숨 죽인 채로 사무실과 집만 전전하며 살아가면 인생의 평온은 보장할 수 있다. 어쩌다 다시 미치광이를 만나더라도 말만 걸지 않으면 그만이다. 넘어가다보면 오는 게 행복이었다. …그러나.

“…러셀 말고 이상한 소문 붙은 의사는 없는 거죠? 고마워요. 가르쳐주신 답례로 도넛값 두고 갈게요. 이제부터는 저 혼자 조사해 봐야겠어요. 모르는 미친놈보다는 아는 미친놈 피하는 게 더 쉽잖아요.”

찰리는 동전 세 개를 주인에게 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당황스레 눈동자를 굴리는 찰리를 바라보는 노골적인 눈매가 따갑게 느껴졌다. 인사라도 해주길 바라는 건가. 안녕히 계세요, 또 볼 일은 없겠지만요, 여기 커피 괜찮죠. …머리를 쥐어짜내 생각해보았지만 어색할 뿐이었다. 꺼낼 만한 인사가 없다. 결국, 민망한 시선을 한 몸에 받던 찰리가 남은 초콜릿 도넛을 남자의 앞으로 밀었다. 남은 거니 먹으라며 손을 휘젓자 한참 도넛을 바라보던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짤막하게 웃었다.

“러셀을 조사해서 어디 쓰려고.”

“…….”

오래 담배를 피웠을 법한 탁한 목소리로 남자가 물었다. 그것과 어울리지 않는 달콤한 커피 냄새를 지나쳐 찰리는 문을 열고 밖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남자의 말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문틀을 잡고 돌아선 찰리는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털어서 먼지라도 나오면, 제가 싫어하는 사람이랑 같이 감옥에 넣으려고요. 남자는 그가 나가자마자 후드 모자를 벗어 내리더니 “하하.” 또 소리 내어 웃는 목소리는 전과 달리 부드럽고 나직했으며, 섬뜩함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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