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우유로맨스
커피우유로맨스
미도리×치아키
소설+삽화 / 24948자 / 170625 발행
전연령 / 3000P
“아, 모리사와 군 왔다.”
방과 후, 잠시 교무실에 다녀 온 모리사와가 교실 안으로 들어서자 한창 이야기 중이었던 하카제와 세나가 동시에 모리사와를 바라보았다. 그 열렬한 반응은 그들로서는 아주 드문 일이다. 눈을 동그랗게 뜬 모리사와는 이내 기쁜 표정을 지으며 주먹으로 제 가슴을 세게 두드리고는 말했다.
“으음? 내가 필요한 일이라도 있었나? 하하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나에게 맡겨라!”
“하아…….”
모리사와의 말에 입을 열 기색을 보인 것은 놀랍게도 세나 쪽이었다. 물론 하카제 쪽이 고민상담을 해왔다 하더라도 놀라운 일이었을 테다. 세나도 하카제도 소위 완벽주의자라고 할 만한 이들이다. 저들의 고민 따위를 털어놓을 위인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세나로부터의 고민 상담은 기뻤고 그만큼 모리사와는 세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모리사와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기다렸다.
“요즘 유우 군의 팬이 늘어버려서 말이야……. 유우 군의 무엇도 모르면서 선물을 주고 가는 팬들이 생겼어…….”
팔짱을 낀 채 세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모리사와가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오오! 팬이 늘었다니 좋은 일이 아닌가!”
“아니야! 멍청한 모리사와!”
날카롭게 목소리를 높이는 데에는 그 모리사와 치아키마저도 흠칫 몸을 물렀다. 세나는 흥분한 기색으로 가방에서 커피우유를 꺼내 거의 내리꽂다시피 책상에 내려놓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커피우유 같은 걸 선물로 주다니! 그 아이, 카페인을 입에 대었다간 분명 배탈나버릴 거라고! 아아아, 유우 군은 마음이 약해서 거절하지도 못할 텐데! 그런 걸 빌미로 다들 유우 군에게 이런 거 저런 거 전부 먹이려는 거지? 정말 최악……. 역시 안 되겠어. 내가 유우 군을 지켜주지 않으면……”
마지막은 거의 세나의 혼잣말이 되어있었다. 이해를 한 건지 안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모리사와에게 세나가 문득 커피우유를 건네었다. 물론 정황상 결코 그의 것이 아닐 물건이다.
“그러니까 모리사와. 이건 네가 처리해.”
“음! 고맙다!”
“뭐.”
선뜻 돌아가는 감사 인사에 당황한 건 하카제 뿐이었다. 흔쾌히 커피우유를 받아드는 모리사와의 팔을 붙들며 하카제가 물었다.
“저기 모리사와 군? 세나 군 이야길 듣긴 했어? 그거 결국 세나 군이 산 것도 아니고 휴지통 대신 모리사와 군한테 버리겠다는 건데.”
“버릴 수도 있었지만 내게 주지 않았나! 세나는 역시 상냥하군!”
모리사와의 말에는 세나가 냉큼 대답했다.
“별로 널 생각해서 주는 건 아니거든? 완전 짜증나는데.”
“와, 세나 군 지금 완전 츤데레 발언~”
세나와 하카제가 뭐라고 말하든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모리사와는 커피우유의 뚜껑을 열어 빨대도 꽂지 않고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아침 대용의 흰 우유라도 마시는 듯한 모리사와 치아키의 모습은 그의 손에 들린 고급스러우면서도 깔끔한 디자인의 유리병에 든 커피우유와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우유를 거의 흡입하다시피 마신 탓에 제대로 토해내지 못한 숨을 한 번에 내쉬며 모리사와가 빈 병을 내려놓으면 하카제가 질겁하며 중얼거렸다.
“우와……. 모리사와 군 한 번에 다 마셨어…….”
“맛있었다! 그럼! 후배가 기다리고 있어서 말이다!”
인사를 하려는 요량으로 들어보인 모리사와의 손에 하카제는 마주 인사해주는 대신 턱을 괴며 물었다.
“후배가 기다리고 있다니 어차피 남자애 아냐? 서두르는 이유 모르겠는데.”
“유우 군도 아니고 기다리게 냅두면? 유우 군이면 기다리게 하지 않을 거지만. 그 전에 모리사와 같은 거랑 같이 하교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지만.”
“여자든 남자든 유우 군이든 기다리게 하는 건 나쁘다!”
모리사와의 대답은 세나에 비하면 확실히 정론이다. 하카제는 핀트가 어긋난 대화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그나저나 너무 챙기니까 누가 보면 모리사와 군 연애라도 하는 줄 알겠는걸. 뭐, 모리사와 군이 연애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 없지만.”
“하하하! 하카제도 말이 심하군!”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모리사와의 말투는 아무래도 심각하지 않은 투다. 모리사와 역시 하카제의 말에는 공감하고 있다. 그는 여자친구가 손수 만들어 준 도시락은 원할지 몰라도 연애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타카미네!”
계단을 내려가 복도를 돌면 벽에 기대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타카미네가 보였다. 교무실에 다녀온다는 이야기는 라인으로 해두었지만 교실에 들러서도 꽤 시간이 흘렀다. 아마도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겠지. 모리사와는 제게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는 타카미네를 향해 바로 사과했다.
“미안하구나! 이야기가 길어져서 말이다!”
“상관 없어여. 그렇게 오래 기다린 것도 아니고.”
“그런가! 고맙구나!”
함께 하교하는 것을 약속하고 그 장소로 시간 맞춰 가려는 것만으로 하카제는 이 행위를 연애 같다고 칭했다. 하지만 모리사와가 두 살 어린 후배와 함께 하교를 하는 건 실제로 연애를 하기 때문은 당연히 아니고, 타카미네에게 억지로 떠넘긴 특촬 DVD를 돌려받기 위해서다.
특촬 DVD라니, 연인 사이의 행위로는 아무래도 로망이 없다. 모름지기 연인의 첫걸음이란 수제 도시락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정해져있다. 잘은 몰라도.
모리사와는 문득 타카미네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어쩐지 가슴께가 두근거린다. 영문 모를 심장박동에 모리사와는 숨을 삼킨다.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 온 몸을 사로잡는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모리사와는 방금 전까지 고민하던 것을 타카미네에게 물었다.
“타카미네, 너는 연애가 뭐라고 생각하나?”
“엣…….”
모리사와의 말이 아주 뜬금없기는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타카미네의 반응은 모리사와가 당황스럽게 느낄 정도의 당황이다. 눈을 둘 데를 모르며 고민하던 타카미네는 이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걸까여.”
그렇다면 하카제는 하교를 좋아하는 건가!
그야 그럴 법도 하다. 최근에야 횟수가 줄었지만 수업도 자주 빼먹던 녀석이고. 모리사와는 하카제의 연애관에 제멋대로 납득하고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모리사와 자신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모리사와 치아키가 좋아하는 것은, 역시 특촬이다. 히어로쇼를 보러 가는 것도 좋아하고 누군가와 특촬 DVD를 함께 감상하고 특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였다. 모리사와는 무심코 타카미네를 바라본다. 그래서 빌려주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어째 더욱 격렬해지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견디기가 힘들어 머릿속에 연이어 떠오르는 의문을 서둘러 내뱉었다.
“그럼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게 알 수 있지?”
“우웃…….”
“으, 음! 미안하구나! 너라고 경험이 많을 리 없는데!”
배려랍시고 한 말에선 아무래도 눈치라는 게 느껴지질 않는다. 질린 표정으로 모리사와의 얼굴을 바라본 타카미네가 고개를 홱 돌려 시선을 피하고는 그의 의문에 답했다. 이어지는 것은 모리사와의 예상과는 달리 단정에 가까운 말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심장이 엄청나게 두근거려여. 금방이라도 고장나서 멈춰버릴 것처럼.”
타카미네의 말에 모리사와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무심코 한 걸음 앞서려던 타카미네가 고개를 돌려 모리사와를 살폈다.
“선배……?”
모리사와는 제 가슴께를 손바닥으로 짚었다. 손바닥까지 전해져오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확인한 모리사와는 무얼 결심하기라도 한 것처럼 손을 내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타카미네!”
우렁찬 부름에 타카미네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하지만 모리사와는 개의치 않고 제 할 말만 이어나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속하게 된 유성대라도 특촬에 흥미가 생긴 다음이라면 좀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변명이 맞았다. 모리사와는 그저 특촬이라는 취미를 타카미네와 공유하고 싶었다. 타카미네가 저와 같은 것을 좋아해주길 바랐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타카미네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 감정이, 이 두근거림이, 전부 타카미네 미도리를 향하고 있다면.
결론은 하나 뿐이다.
“타카미네 너를!”
모리사와 치아키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상황에 솔직하다.
“사랑하는 것 같다!”
그러나 모리사와 치아키는 제가 카페인에 약하다는 사실만큼은 알지 못했다.
“에…….”
물론 타카미네의 대답 여하에 따라 그 멍청한 고백은 전혀 문제되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타카미네는 그 고백을 무심히 넘겨버리지 않았다. 타카미네는 다만, 맥없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을 뿐이다.
“그럼 우리, 오늘부터 사귀는 건가여?”
타카미네 미도리는 고백을 받은 적이 있다. 꽤 많다. 남자 중학생에게 있어 고백을 받는 일은 일종의 트로피 같은 사건이었다. 서로 몇 번의 고백을 받았는지 누구에게 고백을 받았는지 그런 것들을 궁금해했고 부러워하며 가십삼았다. 하지만 타카미네 미도리에게 있어 고백을 받는 일은 트로피보다는 사고에 가까웠다.
자신의 어디를 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런 것은 뻔했다. 나이대에 비해 항상 훤칠하던 키도 쉬이 호감을 사는 얼굴도, 타카미네 미도리는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원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타카미네의 껍데기를 저의 악세사리로 삼길 원했다. 그리고 그 표피 아래에 들어찬 것까지 멋대로 상정했다. 나는 네가 원하는 그런 사람은 아닐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매번 고백을 받아 주었다. 개중의 누군가는 저의 한심한 부분까지도 좋아해주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타카미네 미도리는 틀렸다.
타카미네 군은 날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그 말을 들으면 화가 났다. 타카미네 미도리는 항상 최선을 다했다. 솔직해지자면 개중 몇 번은 최선을 다했다 쳐도 진심은 못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몇 번은 진심으로 좋아했던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에게마저 그런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내는 그것도 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한심하고 서투른 타카미네 미도리는 그들의 악세사리로서는 필요하지 않은 부분이었을 테니까.
다만 모리사와 치아키는 그렇지 않았다. 모리사와 선배의 반짝이는 기대는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그러면 아직은 나약한 다리가 그 무게를 버티질 못해 몇 번이나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도 모리사와는 결코 타카미네에게 실망하지 않았다. 타카미네 미도리의 볼품없는 알맹이를 본 다음에도 웃으며 손을 내밀어 주었다.
그게 왜 위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이 사람 앞에선 꼴불견이 되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확신은 아니었다. 그냥 막연히 괜찮을 것 같았다. 안심이 되었다.
타카미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리사와 치아키를 좋아하게 된 다음이었다. 왜? 그렇게 시끄럽고 귀찮고 짜증난다. 매일 아침 찾아오는 탓에 늦잠을 잘 수도 없고 남의 소중한 쿠션을 멋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타카미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는 알 생각도 하지 않고 저 좋을 대로 강요한다.
그런 사람을 좋아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싫어할 이유만으로도 열 손가락은 족히 꼽을 수 있다. 그런데도 좋았다. 그야 그랬다. 사람 마음이 향하는 데에 이유가 있을 수는 없었다.
그 앳된 얼굴을 보면 심장부터 허겁지겁 뛰었다. 어느 순간 뚝 멈춰버릴 것 같은 박동이 힘들었다. 타카미네는 그 심장이 달리는 대로 따라가는 게 고작이었다.
선배를 보면 심장이 엄청나게 두근거려여. 금방이라도 고장나서 멈춰버릴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말할 수는 없었지만 타카미네 미도리가 제 기분만이라도 그대로 말해버린 것은 일종의 분풀이였다. 그리고 그 분풀이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게 바로 영문 모를 사랑고백이다.
정말이지 영문을 모르겠다. 선배도 내게 뭔가를 기대한 걸까요. 그렇다면 선배가 기대한 무엇은 정말 내게 있는 걸까요. 타카미네 미도리는 그에 대한 대답 역시 알고 있다. 나는 선배가 원하는 그런 사람은 아닐 거예요.
지금까지 몇 번이고 익숙하게 해온 생각을 이번에도 반복한다. 타카미네 미도리는 기대와 실망을 점토 삼아 만들어진 인간이다. 제 몸에 덕지덕지 붙은 타인의 시선이 익숙하다.
“그럼 우리, 오늘부터 사귀는 건가여?”
그런데도 타카미네 미도리는 그런 대답을 하고 만다. 선배는 상냥하니까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리면 쉬이 쳐내지 못하게 되리라는 못된 계산은 금세 지웠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타카미네 미도리가 좋아하는 남자는 그렇게 무르고 한심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타카미네는 마지막 기회를 원했다. 노력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선배가 저를 좋아한 일을 후회하지 않아도 되도록, 타카미네 미도리는 노력하고 싶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