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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리×치아키

미도치아 짝사랑 앤솔로지 낮달 수록

소설 / 19962자 / 190217 발행

전연령 / 2000P

“좋은 아침입니다! 타카미네와 시험 공부를 하러 왔습니다!”

토요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모리사와 선배가 찾아왔다. 부끄러울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가 아래층에서부터 들려와 당황하며 눈을 떴다. 가게를 보고 있던 부모님은 그의 방문을 환영하며 바로 내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모리사와 선배가 주말에 우리집으로 놀러 오는 일이야 비일비재했지만, 그 목적이 공부가 되면 또 다르다. 내 방으로 들어온 선배는 완전히 공부할 요량인 건지 딱히 꾸민 기색 없는 복장에 안경을 쓴 상태였다. 조금 질린다.

“하아……. 안녕하세여.”

“그래! 얼른 씻고 와라! 바로 공부를 시작하자!”

책이 가득 든 것이 육안으로도 대충 파악이 될 정도로 묵직한 백팩을 멨다. 그런 모리사와 선배를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 대충 자리로 안내하고 욕실로 향했다.

내가 대충 씻고 나오면, 완전히 공부할 준비를 마친 선배가 뻔뻔한 얼굴로 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펼쳐놓은 상 위에는 과자와 과일 같은 간단한 간식거리가 놓여있었다. 엄마가 내어 준 모양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선배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러면 선배가 몸을 일으켜가며 내 쪽에 있는 컵을 들어 주스를 따라주었다. 후배에게 하는 것으로는 지나치게 예의바른 행동에 어쩔 줄 몰라하던 나는 결국 고개만 꾸벅 숙이고 주스가 가득 찬 컵을 받아들었다.

주스를 마시며 보니 선배의 앞에 놓인 문제집이며 참고서는 눈에 익은 표지는 아니지만 전부 1학년의 것이다. 아이돌 특성화 고등학교이기도 하고 실제 필기시험의 성적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하지만 그 참고서들에서 느껴지는 생활감은 그것들을 선배가 이전 학년에 사용하던 것이리라고 유추할 수 있게 한다. 그럼 선배의 몫은? 늘어놓은 문제집 중 3학년 진도의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마침 예쁘게 잘린 사과를 집어 통째로 입에 넣은 선배가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타카미네는 내 소중한 후배이자 동료니까! 낙제는 있을 수 없다!”

평일 중에는 유성대 1학년 멤버들을 모아 공부를 했다. 지난 시험에서 우리 1학년 멤버들의 성적이 말이 아니었던 탓이다.

우리들은 공부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하는 게 말이 안 되는 간단한 문장을 물어보기도 했고 간단한 연산에서 막히기도 했다. 모리사와 선배도 우리들도 전부 진이 빠졌기 때문에 주말에는 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설마 집으로 찾아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도 혼자서. 내 성적이 셋 중 특히 못한 것은 아니었는데, 1대1 개인교습이라니 무슨 의도로 하는 행동인지 알 수가 없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선배의 시선을 피해 턱을 괴었다.

“……침 튀겨요.”

“미안하다!”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면 그는 곧바로 사과하고 입에 넣은 음식물을 씹어 삼키는 데에 집중했다. 그런 선배를 바라보며 내가 물었다.

“선배 공부에나 신경쓰는 게 어때요? 당신도 시험기간인 건 마찬가지잖아.”

사과를 삼킨 선배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하하하! 시험은 원래 평소 실력으로 치는 거지!”

그 말에 모리사와 선배와는 반대로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 사람이 하려는 일이라곤 전부, 인간이 할 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 슈퍼히어로라도 될 셈인 걸까. 나는 투덜대듯 대답했다.

“……선배는 못하는 게 없네요.”

내 말에 모리사와 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콧노래를 부르며 필통을 여는 것이, 아무래도 내 말을 무시할 셈으로 보였다. 그게 마음에 차지 않아 그 사람이라면 지나치지 못할 투정을 부린다.

“전 어차피 해도 안 돼여. 지금까지 안 했던 것도 아니구…….”

모리사와 선배는 곧잘 그랬다. 저를 향하는 비난보다 나 자신을 향하는 자책에 더 민감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선배는 반응할 것이다. 나를 달래줄 것이다.

“흠, 그런가.”

역시나. 샤프를 꺼내던 모리사와 선배는 팔짱을 끼고 잠시 고민했다. 그러고는 이내 웃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타카미네 나름대로 열심히 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만 공부란 건 방법적인 부분도 중요하니 말이다.”

그 말에 묘한 위화감을 느꼈고 어떤 부분에서 위화감을 느꼈는지는 금방 깨달았다. 나는 정해진 대답을 고민한다. 그 말의 의도가 무엇인지 내가 짚는 것까지가 모리사와 치아키의 의도일 것이라고 짐작한 탓이었다. 그의 기대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거, 내가 열심히 했을 거라는 전제네여.”

하지만 결국은 그의 의도대로 대답한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선배는 기다렸다는 것처럼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타카미네가 지금껏 대충 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거든.”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는데도 그가 얼마나 환하게 웃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흘끗 선배를 바라보았다가, 바로 시선을 피하며 손바닥에 뺨을 꾹 눌러 괴었다. 그 곧은 눈동자를 견딜 수가 없다. 이래서였다. 그의 기대대로 행동하고 싶지 않았던 건. 그의 믿음은 내게는 너무 무거웠다. 나는 목소리를 죽여 작은 목소리로 투덜대었다.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알아.”

“그럼, 알고 말고. 그것도 아주 많이.”

말도 안 되는 투정에 모리사와 선배가 즉답했다.

“자, 그러면 한 번 방법을 바꿔볼까?”

그리고는 그렇게 말하며 1학년 참고서를 펼치는 것이다. 어째 즐거워보이는 얼굴에 달리 할 말도 없어져 나도 얌전히 책을 펼쳤다.

선배는 노력파였지만 요령이 있는 사람이었고 공부의 영역이 배제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요령과 노력은 동전의 양면이 아니다. 그 요령 역시 어쩌면 습관이 된 노력의 잔재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납득이 갔다.

선배는 여러 공부 방법을 알려줬다. 필기는 따로 정리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설명한 것을 토대로 하라든지 단어 암기를 할 때는 예문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든지 하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한 번도 한 적 없는 방법들이었고 나는 그 익숙하지 않은 공부법을 꾸역꾸역 수행했다.

물론, 방법을 바꾼다고 바로 이해력이 좋아지고 능률이 오른다면 세상에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테다. 나는 여전히 낙제 직전의 열등생이다. 조금 암기가 빨라진 것도 같지만 그건 모리사와 선배가 나를 그렇게 세뇌하고 있는 탓에 그렇게 느끼는 것 뿐이다.

모리사와 선배라고 아주 우등생인 것은 아니었다. 선배의 성적대에 큰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잘은 몰랐지만 아주 상위권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나와는 아무래도 상황이 다르다. 수많은 일을 책임지고 있고 그만큼 하는 일도 많다. 그의 일은 단순히 학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미 제가 앞으로 나아갈 업계와 관련된 아르바이트까지도 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제대로 공부할 시간이 있을 리가 없다. 그 즈음 속이 타 음료수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그런 사람이, 나를 위해 제 시간을 살랐다. 잘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게 무척 속상했다. 수많은 생각들에 과부하가 걸려, 손이 잠깐 멈춘 순간이었다.

“타카미네.”

“네, 네?”

갑작스러운 부름에 화들짝 놀란 나는 멍청하게 대꾸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지만 그건 어떻게 봐도 딴 생각을 하고 있던 사람의 대답이었다. 선배에게 시선을 향하면 선배는 여전히 노트 위로 펜 끝을 놀리며 물었다. 딱히 내가 딴 생각을 하고 있던 걸 지적하려던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내일은 다른 일이 있나?”

선배가 쓴 것은 수업 중에도 여러 번 본 탓에 익숙하지만 결코 외운 적은 없는 복잡한 공식의 유도과정이었다.

“없는데여…….”

우물거리며 대답하면 선배는 씩 웃으며 내게 노트를 돌려주었다. 내 눈 앞에 펼쳐진 복잡한 식을 바라보았다가, 이내 선배를 바라보았다. 선배가 말했다.

“그럼 내일도 함께 공부할까!”

솔직히 말하면 그런 제안을 기대한 게 맞다. 하지만 차마 흔쾌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 나는 시선을 떨어트렸다. 기운 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함께라니…….”

테이블 위에 놓인 수많은 참고서는 전부 선배의 것이며, 동시에 선배의 것이 아니었다. 선배는 오늘 전혀 공부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걱정되어 다른 일정까지 취소하고 낙제 직전의 내게 온 것일지도 몰랐다.

이런 건 공평하지 않다. 함께라는 말은 서로에게 공평할 때나 쓰는 것이다. 그 다음 말을 겨우 삼켰다. 차마 토해내지 못한 언어의 덩어리에 그만 목이 메는 듯 했다.

선배는 기어코 일요일에도 찾아왔다. 그의 커다란 백팩 안에는 여전히 3학년의 참고서가 없었다.

시험이 2주 쯤 남았을 때부터 농구부는 아예 휴식기를 갖기로 했다. 부활동이 필수인 학교지만 아이돌 활동과 학업이 겹치면 아무래도 부활동에 시간과 체력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드물게도 유성대의 연습 또한 횟수를 줄였다. 지난 주의 공부는 완전히 에피타이저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제야 눈치 챘다. 그야, 유성대의 1학년 세명이 모조리 낙제 직전이니 유닛의 리더로서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을 테다.

모리사와 선배는 우리의 성적을 올리는 데에 혈안이 되어있었고 덕분에 우리는 꽤 오랜 시간 공부를 했다. 테토라 군도 센고쿠 군도 아마 이렇게 공부해 본 적이 없겠지 싶었다. 연습을 위해 빌렸던 연습실도 연습을 뺀 날에는 학습실이 되었다. 우리의 공간에서 늘어진 채 공부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는 재미있는 일이었다. 공부라는 것도 결국은 친구들과 함께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저녁 식사 즈음이 되자 모리사와 선배가 나서서 패스트푸드를 사러 간다고 했다. 내가 짐꾼을 자처할 요량으로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키면 바로 선배가 만류했다. 공부나 하라는 뜻이냐고 짓궂은 투정을 부렸다. 그러면 바로 당황해서는 그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는 것이다. 그 필사적인 모습에 어째 기분이 산뜻해졌다. 모리사와 선배는 별 수 없이 나를 대동하고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했다.

모리사와 선배는 햄버거 세트 몇 개에 감자튀김을 추가로 주문하고 당연한 일을 하듯이 제 지갑을 열어 값을 치뤘다. 그게 선배로서의 책임감이라는 정도는 알았다. 이 사람이 대체 어디까지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를 만류하지 않았다. 그저 말 없이 그의 계산을 기다렸을 뿐이다. 주문을 마치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 모리사와 선배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할 만 한가?”

“아직은요.”

“그렇군. 다행이구나.”

대화가 끊어졌다. 딱히 할 이야기가 없었다. 그건 선배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우리는 짧은 기간 동안 너무 긴 시간을 함께 했다. 이야기거리가 바닥나는 것도 별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패스트푸드는 이름 그대로 빠르게 나왔다. 포장된 음료수와 햄버거가 든 쇼핑백을 내가 먼저 집어들었다. 선배는 남은 감자튀김이 든 쇼핑백을 든 채 어쩔 줄 몰라했다.

“내가 들겠다!”

“이거 그렇게 무겁지도 않구…….”

평소 들던 야채상자에 비하면 깃털 수준이다. 나는 그 무게를 확인시키듯 가볍게 들어보이고 선배를 향해 툭 던지듯 말했다.

“선배는 계속 도와주고 있잖아요.”

그 순간만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이 사람에게는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짐을 대신 드는 간단한 작업에 대한 변명으로 삼기에는 무엇도 전부 무거울 뿐이라 나는 말을 잠시 멈췄다, 이내 짤막하게 덧붙였다.

“시험 공부.”

“오, 오오……!”

선배는 묘하게 감동받은 표정을 했다. 그 얼굴이 부담스러워 나는 그의 열렬한 시선을 피했다. 모리사와 선배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이번 주말에도 가겠다! 교과서를 전부 집으로 가져가도록!”

“모리사와 선배…….”

모리사와 선배의 그 말에는 대답을 잠시 고민했다.

“아르바이트 없어요?”

“하하하, 신경써줘서 고맙구나! 시험 기간은 피해서 아르바이트를 잡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굳이 시험 기간을 피해서 아르바이트를 잡은 이유가 내 공부를 도와주기 위함은 아니었을 테다. 나는 모리사와 선배의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럼 선배 시험 준비나 하는 게 어때요?”

그런 소리를 했다. 나는 그렇게 살가운 편은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이 날이 선 말을 했다. 물론 입을 연 뒤에는 후회했다. 그렇다고 그보다 좀 더 사근사근하고 솔직하게 말을 고쳤느냐 하면 그러지도 못했다. 모리사와 선배는 커다란 눈을 더욱 크게 떴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나의 날선 말들도 모리사와 선배에게는 익숙한 일이었을 테다. 역시나 선배는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타카미네 이 녀석, 내 성적에도 신경을 써주고 있는 거구나! 하하하!”

또 그렇게 허울좋은 오해를 한다. 그런 게 아니다. 나는 그저 선배가 나 같은 걸 위해 당신의 시간을 쓰지 않길 바랐을 뿐이다.

나의 삶을 대신하려 하지 말아요. 좀 더 건설적인 일을 하라구요. 쓸데없는 일에 힘을 빼지 말아요. 어차피 나는 해도 안 될 테니까.

무엇도 새로울 것은 없었다. 매번 하던 생각들이 수면 위로 새삼스레 떠올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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