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이십일그램의 타카미네 미도리

이십일그램의 우울

미도리×치아키

소설 / 190428 발행

모리사와 선배와 함께 있어봐야 하는 일이라고는 전대물의 DVD를 보는 정도였다. 선배는 유령인 나와 함께 봤던 작품이라며 DVD를 꺼냈다. 유령에게까지 전대물을 보여줬다니 정말 징한 인간이다.

우리는 아주 익숙한 시간을 함께 보냈고, 작별의 시간은 금방 다가왔다. 돌아가던 DVD는 재생을 멈추었다. 암전한 화면에 모리사와 선배의 얼굴이 비쳐 눈이 마주쳤다. 그러면 모리사와 선배가 조금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여기까지다!”

모리사와 선배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화면을 지나지 않고 바로 들어오는 모리사와 선배의 얼굴에 어색한 기색은 없다. 그에 외려 무얼 감추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후후, 이제는 슬슬 널 보내줄 시간이구나. 오랜만에 즐거웠다.”

“아……. 한동안 아팠었으니까 못 봤겠네여, 특촬.”

“음? 그것과는 상관없다.”

모리사와 선배는 덤덤하게 즉답했다. 내가 고개를 갸웃이며 의문을 표하자 모리사와 선배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오랜만이라고 한 건 너와 보내는 시간 쪽이다.”

그 말에 우리의 대화가 멎었다. 나는 잠시 내가 잠들어있던 시간을 셈했다. 그건 제법 짧지 않은 시간이었고 내가 일어난 뒤의 시간은 그에 비하면 짧았다. 그야, 24시간 내내 함께 있었다면 나의 부재가 그에게는 오랜만으로 느껴질 법도 했다. 나와 함께하는 시간도, 그리고.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집에 가도 괜찮겠어요?”

“음? 아아…….”

선배가 가볍게 수긍하고 밝게 미소지었다. 그 얼굴이 묘하게 쓸쓸해보여 무어라도 덧붙이려던 찰나에 선배가 먼저 이어서 말했다.

“돌아가야지. 부모님도 걱정하실 거다.”

“흐응.”

그 말에 마음의 지저부터 무언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나는 입술을 비죽거리고 아무렇지 않은 양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건 처음부터 할 셈이었던 말이었기에 되레 서둘렀다.

“몸이 있으면 이건 좀 불편하네요. 외박을 하나하나 허락 받아야 하는 거.”

내 말에 모리사와 선배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외박이라니! 안 된다, 타카미네! 아직 다 나았는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하아.”

그 말에는 별 수 없이 한숨이 터졌다. 거리낌 없는 태도에 모리사와 선배가 어깨를 흠칫 움츠리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나의 무례에 대해 사과할 셈은 없었다. 그러기엔 나도 제법 화가 나 있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곧장 물었다.

“선배는요?”

모리사와 선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금세 허둥대는 얼굴이 되어 입술을 벙긋대는 것에 속이 쓰리다. 그러고서도 선배는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입술을 꾹 깨물고 변명조차 하지 못하는 모리사와 치아키를 앞에 둔 채,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선배는 괜찮은 거예요?”

모리사와 선배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대답을 하더라도 뻔한 대답을 할 것이다. 알고 있었다. 어떤 대답을 할 것인지 정도는. 그래서 나는 물음의 형태를 빌려 말해놓고도 차마 기다리지를 못하고 말을 이었다. 살면서 말주변 같은 건 가져 본 적도 없는 나였지만 지금만큼은 모든 문장이 술술 나왔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요. 나는 괜찮아요. 계속 검진도 받았고 의사 선생님도 아무 이상 없댔어. 엄마는 나보다 선배를 더 믿는 것 같구요. 같이 있는 사람이 선배라면 부모님도 분명 안심할 거예요.”

거기까지 말하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 나는 선배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목을 울렸다.

“난 이제 괜찮아요. 그래서 당신을 걱정하고 있는 거예요.”

“……타카미네.”

모리사와 선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몸을 일으켰다. 한계였다. 더 이상은 어떤 말도 그에게 전할 것이 없었다. 걸음을 서둘러 선배의 방을 나섰다. 그때까지도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모리사와 선배가 그 순간 허둥대며 몸을 일으켰다.

문 앞에 도착해 현관을 내려다보면, 나와있는 신발이라고는 선배의 것과 내 것 뿐이었다. 단정히 정리된 신발에 발을 꿰고 현관문의 차가운 손잡이를 잡았다. 그것을 열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선배의 부모님이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그제야 눈치챘다.

“갈게요.”

그렇다면. 그렇다면 내게 매달려요. 어떻게든 나를 붙잡아요. 내가 그래도 된다고 말하고 있잖아.

하지만 알고 있다. 모리사와 선배는 결코 나를 붙잡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런 것을 생각했다. 모리사와 선배는 허겁지겁 운동화를 신었다.

아. 짜증이 솟구친다. 홧홧하게 끓어오르는 한숨을 억지로 삼키며 문을 열었다. 이미 시간이 늦었다. 공기는 서늘했고 하늘은 어두웠다. 모리사와 선배가 어째서 신발을 신었는지 나는 알고 있다.

“데, 데려다주마.”

그렇게 말할 것도, 전부 알고 있었다. 나는 문 밖으로 한 걸음 나서며 몸을 홱 돌렸다. 나의 거친 동작에 흠칫 몸을 무르는 모리사와 선배와 시선이 마주쳤다. 내가 대답했다.

“괜찮아요.”

“타카미네.”

선배의 목소리가 애틋했다. 나를 달래는 것처럼 혹은 나를 만류하는 것처럼. 다정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숨통이 막혔다. 밤이 깊었다. 혼자 걷는 밤길은 분명 무서울 것이다.

하지만 모리사와 치아키는 다르다. 그가 지나야 할 밤길을 상상한다. 그걸 떠올린 순간 눈 앞은 내가 앞둔 밤길보다 어두워진다. 나는 모리사와 선배를 잘라내기라도 하듯 날이 선 목소리로 그의 만류를 끊어냈다.

“괜찮다고. 나는.”

나를 데려다주고 우리가 헤어지는 순간에도 모리사와 선배는 혼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어두운 밤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올 모리사와 선배는. 당신은.

“당신이랑은 다르게.”

당신은 전혀 괜찮지 않잖아.

내 말에 선배가 모든 행동을 멈추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모리사와 선배를 현관 안쪽에 내버려둔 채 나는 몸을 돌렸고 어두운 밤길을 걸었다.

밤길을 내딛는 걸음을 재촉했다. 도망이라도 치는 양 조급했을 뿐, 무섭지는 않았다. 무서워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그저 선배의 생각을 했다. 수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저를 걱정해도 부족한 시간에 나를 걱정한다. 나는 정말로 괜찮았다. 내가 잠들어있는 동안 모리사와 선배가 어떤 나를 보았고 어떤 나와 함께 지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걱정이 심했다. 유령이었던 나는 그렇게 믿음이 안 가는 한심한 멍청이였던 것일까. 내가 모르는 기억 속의 한심한 나의 모습이 아주 상상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어서 끝에는 외려 허탈해졌다.

모리사와 선배로부터는 끝내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떠나왔으니 한 마디 라인이라도 올 줄 알았는데 역시 화가 난 걸까. 휴대폰을 찾아 쥘 요량으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나는 선배의 연락을 확인하는 대신 서늘하게 식은 밤하늘이나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집에 도착한 다음에는 교복도 갈아입지 않고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익숙하지 않은 번호를 눌렀다. 그대로,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다 이내는 멎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으, 음. 타카미네인가.”

겸연쩍은 태도는 별 수 없다. 그렇게 날이 선 반응을 해놓고, 휴대폰을 선배의 방에 두고 오다니. 나는 고개를 숙였다가, 입만 벙긋대었다. 선배에게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을 테니, 그건 자연히 무거운 침묵이 되었을 것이다. 수화기 너머의 선배를 상상했다.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면 별 수 없이 각오를 앞당기게 된다. 나는 입을 열었다.

“그, 선배.”

사과를 할 셈이었다. 할 셈이었는데.

“미안하다!”

선배가 먼저 내 말을 끊고 그렇게 사과해왔다. 목 아래에 끓는 한숨을 애써 삼키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네가 날 신경쓰도록 만들어버렸구나.”

어차피 모리사와 치아키는 이런 사람이다. 사과가 쏙 들어갔다.

“……거기서 신경이 쓰이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라구여.”

“하하, 그런가.”

선배는 묘하게 메마른 목소리로 웃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얼굴을 볼 수 없기에 그의 표정 또한 알 수 없다. 이 사람이 어떤 심정으로 나를 대하고 있는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선배 역시 같은 심정일까. 전파보다 약한, 나의 서툰 감정은 선배에게는 역시 전해질 수 없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어째 참을 수가 없게 되어, 무심코 언성을 높였다.

“당신은 날 도와줬잖아. 그런데 왜 나는 안 되는 거예여? 내가 당신에게 신경쓰게 해주세요. 도울 수 있게 허락해줘요. 나도, 선배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핑계로 전부 털어내고 말았다. 정말 구차하기 이를 데가 없어 뒤늦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는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다시피 쪼그려앉은 채 선배의 대답을 기다렸다. 선배가 나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 선배를 볼 수 없다는 점은 조금 불안하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선배의 호흡조차 들리지 않는다. 나는 최대한 조용히 숨을 삼켰다. 모리사와 선배는, 그보다 조금 늦게 대답을 돌려줬다.

“……고맙다.”

그 별 의미도 없을 감사인사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었는지, 아마 모리사와 선배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온 몸이 근질거리는 것만 같아, 나는 열없이 손바닥을 펼쳐 얼굴을 문질렀다. 모리사와 선배가 태도를 바꾸어 밝게 외쳤다.

“그럼, 휴대폰은 내일 돌려주겠다!”

“네.”

짧게 대답했다가, 무어라고 한 마디라도 더 더하고 싶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말주변도 없고, 남을 위로하는 것도 제대로 할 줄 몰랐다. 그러니 이어지는 것은 별 수 없이 어색한 작별인사 뿐이다.

“푹 쉬어여. 무슨 일 있음 연락하구요.”

“음! 정말 고마운 제안이지만 오늘은 별 수 없이 두고봐야겠구나!”

그 말에 비로소 나는 선배가 들고 있을 것이 나의 휴대폰이라는 것을 상기했다.

다음날 아침, 선배는 이르게 우리집에 들러 내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아침연습이 예정되어 있는 날의 등교시간이었다. 엄마는 아주 자연스럽게 선배를 집에 들였고, 다행이 나는 등교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모리사와 선배는 내가 일어나있을 것을 상정하지 않았던 것인지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했다. 나는 무던하게 그에게 인사했고 모리사와 선배도 예의바른 사람 답게 마주 인사를 했다. 일찍 일어났구나. 재미있게도 선배는 그게 의외인 것처럼 말했다.

휴대폰을 건네주고도 모리사와 선배는 무언가 할 말이 남은 것처럼 머뭇대었다. 무언가를 망설이고 억누르는 것 따위 모리사와 치아키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언젠가는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잘 모르겠다. 모리사와 선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면 모리사와 선배도 이내는 각오를 굳힌 듯 입을 열었다.

“그, 타카미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다만.”

하지만 그렇게 각오를 굳히고도 부족했던 모양이다. 거기까지 말한 뒤 크게 숨을 들이마신 모리사와 선배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타카미네의 소지품을 하나 갖고 싶은데.”

그건 확실히,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였다.

“네?”

그랬기에 나 역시 멍청하게 되묻고 말았다. 그게 그 이상한 이야기에 내가 당황한 탓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모리사와 선배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아, 으, 역시 이상하게 들리겠지? 미안하다!”

그렇게 말한 모리사와 선배는 무얼 떨쳐내기라도 하는 양 고개를 거세게 저었다. 하지만 모리사와 치아키의 부탁이다. 실제 그리 이상한 문제도 아니겠지. 나는 손을 뻗어 모리사와 선배의 어깨를 붙들고 그의 눈을 마주했다. 눈을 마주했다고는 해도 내가 그의 눈을 바라보았을 뿐이고, 모리사와 선배의 시선은 여전히 바닥을 향해있다. 어째 근질근질한 기분이 되어, 나는 조심스럽게 선배에게 물었다.

“……이유, 설명해줘야죠.”

선배가 말해준 것은 어제의 이야기였다. 내가 집으로 간 뒤, 평소처럼 괴롭힘을 당하겠거니 각오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순간에는 조금 짜증이 났다. 그런 건 각오가 아니라 포기다. 나 같은 건 포기도 못하고 붙들고 있었던 주제에 저 자신은 그리도 쉽게 포기한다. 내가 욱해서 화를 내려는 순간에 모리사와 선배가 그런 나를 만류하듯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 그런데! 나오지 않았다! 악몽도 꾸지 않았고! 덕분에 완전히 푹 쉬었다!”

그 순간 화가 싹 가셨다. 상황파악이 안 된 내가 멍하니 모리사와 선배의 다음 말을 기다리면 모리사와 선배는 꾸물대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생각해본 결과, 네 덕분이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모리사와 선배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에 들린 휴대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도 그 시선을 따라 내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당연하지만 간단하게 믿어버릴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내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자만에 가까운 생각을 했다. 나는 얼떨떨하게 되물었다.

“내 소지품이 남아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거죠.”

“그, 그래.”

모리사와 선배가 대답했다.

“그래서 내 소지품이 갖고 싶다고 한 거고.”

“맞다…….”

생각해보면 아주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괴담이나 공포영화에서도 으레 보았던 것 같다. 원념이 서려있는 거울이라든지, 악령이 깃든 인형이라든지. 이건 원념과는 조금 질이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애초에 나는 악령도 원념도 아니고. 뭐, 아마 비슷한 원리겠지. 무엇을 주면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 선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역시 이상한 이야기지? 미안하다!”

그새 내 눈치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모리사와 선배의 성급한 태도에 어쩔 줄 몰라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에요. 좀 기다려보라구요. 뭘 주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면 모리사와 선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환하게 웃었다. 하여튼 표정 변화가 큰 사람이었다.

“역시 타카미네는 상냥하구나!”

하지만 뒤따라 그런 소리를 하기에 괜히 질린 표정이나 지어보였다. 하지만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모리사와 선배는 눈치없이 웃을 뿐이다. 나는 결국 화제를 다시 되돌려놓을 셈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떤 거면 돼요?”

“뭐든지 상관없다! 타카미네가 오래 가지고 있었던 물건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으응, 그러면…….”

나는 가방을 매만졌다. 오래 가지고 있었으면서 없어도 되는 물건은 보통 드물다. 사소한 용도의 물건이라고 해도 없으면 아쉬운 경우도 많고. 하여튼 전부 용도가 있으니 들고 다니게 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선배에게 건네줄 수 있는, 달리 용도가 정해져 있지 않은 소지품이 있다는 거다.

“여기요.”

내가 내민 물건을 받아든 모리사와 선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리사와 선배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건.”

무얼 그렇게 어쩔 줄 몰라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선배에게 건넨 것은 가방에 달고 있던 베리해피쨩이었다. 휴대폰에 달고 있는 심해어는 신카이 선배에게 받은 물건이고 직접 만든 모양이니 그렇게 넙죽 넘겨줄 수는 없지만 베리해피쨩의 키링은 여전히 쉽게 구할 수 있고 내 손에 없어도 지금 당장은 크게 문제는 되지 않는다. 모리사와 선배가 다시 한 번 내게 말했다.

“물론 상황이 나아지면 돌려주겠지만, 그래도.”

“괜찮아여. 한정판도 아니구, 이왕이면 새걸로 사주고 싶지만 그걸로는 안 되는 거죠?”

“그, 그래.”

모리사와 선배는 얼떨떨하게 대답하고는 베리해피쨩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이 쪽이 좀 더…….”

본래 성량에 비해 너무 작게 말한 탓에 그 목소리에 익숙해진 나는 그 다음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나는 고개를 갸울이며 물었다.

“네?”

“하, 하하!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고맙구나!”

모리사와 선배는 상황을 모면하듯 웃으며 베리해피쨩의 키링을 꽉 쥐었다. 저 사람의 손에 있는 한, 베리해피쨩이 금방 망가져버릴 것 같다……. 걱정이 들기 시작한 나는 그걸 빼앗아 모리사와 선배의 가방에 매달아주었다. 모리사와 선배는 나의 행동을 조금 어색해했지만 달아놓고 보니 괜히 마음에 찼다. 마침 모리사와 선배를 닮은 표정의 베리해피쨩이었다. 당연하지만 순전히 우연으로, 지금까지 닮았다고는 생각한 적도 없었다.

나는 베리해피쨩을 가방에 매단 선배와 함께 등교하기로 했다. 아침연습을 상정한 등교시간이었으니 내게는 조금 일렀다. 모리사와 선배는 그런 나를 말렸지만, 딱히 선배가 날 데리러 온 탓에 가려는 건 아니었고 슬슬 연습에 참여할 셈이었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어라~? 치쨩 부장 귀여운 거 달고 다니네?”

“으음?!”

아케호시 선배의 말에 가방을 멘 모리사와 선배가 돌아보았다. 그 순간 앙증맞은 키링이 가방의 뒤축에서 흔들린다. 그 무게는 본디 없었던 것이었으니 아마도 위화감이 있었을 것이다. 키링의 존재를 깨달은 모리사와 선배가 희미하게 신음했다.

“……아.”

“의외! 이런 귀여운 건 타카밍이 좋아할 것 같은데.”

아케호시 선배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달리 동의를 구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아케호시 선배의 데굴데굴 구르는 커다란 눈동자를 따라 모리사와 선배를 바라보았다. 그건 질문이 아니었고 딱히 모리사와 선배를 놀릴 셈인 것도 아니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화였단 말이다.

“……이건.”

내가 준 베리해피쨩의 키링이다. 그러니까, 평소라면 타카미네의 선물이니 뭐니 너스레를 떨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모리사와 선배가 지금은 망가진 로봇처럼 삐걱대고 있다. 나와 아케호시 선배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다시 한 번 서로를 마주보았다. 아케호시 선배의 얼굴에 자리한 의문은 나도 이해가 갔다. 모리사와 선배가 입술을 벙긋대며 겨우 목을 울렸다. 우리의 시선이 거의 동시에 모리사와 선배를 향했다.

“그, 그러니까…….”

하지만 그의 말은 끝맺어지지 못했고 모리사와 선배의 얼굴만이 유성 레드의 이름에 걸맞게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거기에 무어라고 말을 얹는 것이 오히려 모리사와 선배의 상태를 악화시킬 것 같아 나는 말없이 선배의 대응을 살폈다. 모리사와 선배는, 그저 고개를 푹 숙였을 뿐이다.

“엣? 에엑?”

모리사와 선배의 답지 않은 반응에 아케호시 선배가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다. 아케호시 선배가 모리사와 선배를 놀리기라도 한 것 같은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아케호시 선배와 시선을 교환했다.

“뭐, 뭐야? 그 반응? 기분 나쁘다구~!”

이유야 알 법 하다. 역시 모리사와 선배에게는 그런 귀여운 키링을 달고 다니는 일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이겠지. 생각해보면 굳이 그렇게 보란듯이 달고 다닐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영혼 단계에서의 문제고. 아마 내가 가방에 달아주었으니 그대로 달고 있었던 것일 테다. 선물한 사람이 일부러 달아준 것인데 그렇게 떼어버리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나라고 해도 그 정도까지 예민하고 섬세한 신경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렇게 부끄러워 하면서 달고 다니는 걸 보면 평소에 내 가방에 달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달아준 것이 미안할 정도다. 상황이 유야무야 해결된 뒤, 나는 모리사와 선배와 함께 부실을 나서며 물었다.

“그거, 굳이 안 달고 다녀도 되는 거 아녜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모리사와 선배가 흠칫 어깨를 움츠리며 대답했다.

“아니, 아니다! 죽어도 달고 다닐 거다!”

“흐잇……! 주, 죽는 건 좀…….”

하지만 저렇게까지 강하게 말할 정도라면, 그 효과를 기대해도 괜찮을 것 같다. 나는 고개를 갸웃이며 물었다.

“베리해피쨩, 조금은 효과가 있었나요?”

“조금 정도가 아니라 확실했다!”

아, 그 정도다. 내 표정이 살짝 풀린 건지 나를 마주보고 있던 모리사와 선배가 활짝 웃었다. 그건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건강한 모습의 선배여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물론 나는, 내가 안심했다는 것을 티내고 싶지 않았기에 되레 떨떠름한 행세를 하며 대답했다.

“그치만 좀 허술한 것 같기도 하네요. 물건으로 대체가 된다고 생각하면.”

“앗, 으음! 그런가!”

그 말을 끝으로 멋대로 고민에 빠진다. 모리사와 선배는 이내 경쾌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잘된 일이지! 타카미네를 부적으로 데리고 있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왜 안 되나요?”

내가 되물었다. 모리사와 선배는 얼떨떨한 얼굴로 턱을 만지작거리며 조금 느리게 대답했다.

“……그야. 타카미네에게 폐를 끼치게 되니까?”

“별로 폐일 것도 없는데요. 평소에 귀찮게 하는 것에 비하면.”

“그, 그런가?”

모리사와 선배는 내게 설득당하기라도 한 양 어색하게 되물었다. 조금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그러니까, 모리사와 선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 그걸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있을 리가 없다.

“우리 좀 더, 함께 있을까요?”

그렇기에 그 제안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타카미네.”

모리사와 선배가 만류하듯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나는 그 만류를 거절하듯 고개를 저었다. 선배가 걱정하는 수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 모리사와 선배가 내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들에도 대충 생각이 미쳤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같은 결론을 맞을 것이고 우리는 언제나 같은 결론을 맞이할 것이다. 모리사와 선배만이 그걸 무서워한다. 나를 달래고 서툴게 걱정한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나는 선배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소맷부리가 아니었다.

그 탓이다. 선배는 흠칫 몸을 물렀다. 하지만 그러고도 나를 뿌리치지는 않았다. 그 사실에 약간의 안도를 얻은 나는 조심스럽게 목을 울렸다.

“내가 좀 더, 선배와 함께 있고 싶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필사의 제안은 거절당했다.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아 끌고 갈 생각은 없었으니 별 수 없이 우리는 그 자리에서 헤어졌다. 물론, 그 이전에 싫다고 할 것을 짐작한 적이 없었으니 달리 말릴 방법도 없었다.

당연히 휘말리듯 허락할 줄 알았던 선배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가, 이내 고개를 떨어트렸다. 다시 한 번 시선이 마주친 순간에는 무슨 각오라도 다진 양 입술을 꾹 깨물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는 천천히 목을 울렸다. 돌아온 것은 거절의 말이었다.

내게서부터 도망치듯 뛰어가는 선배의 가방에 달린 베리해피쨩이 마구 흔들렸다. 분명 금방 떨어져버릴 거다. 흔들리는 베리해피쨩을 바라보기만 하던 나는 무심코 선배를 붙들 양으로 뻗었던 손을 떨어트렸다.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이미 사라져버린 선배의 뒷모습과 베리해피쨩을 생각했고 한참 후에야 내 걸음은 우리집이 있는 상가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다음에는 곧장 침대에 드러누웠다.

“하아.”

서늘한 침구에 비비적거리며 몸을 추스렸다. 그 얼굴.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떠올린다. 흔들리는 시선은 나와 마주하지도 못했다. 모리사와 선배는 몇 번이나 그런 얼굴을 했다. 그 얼굴로 하는 말이라면, 듣지 못했던 다음의 말도 대충 상상이 갔다. 그야 모를 리가 없다. 그 얼굴은.

“날 좋아하고 있는 거면서.”

그건 분명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투덜거리고 나면 한숨에 목이 막힌다. 지친 숨을 뱉어낸 나는 몸을 뒤척여 아예 돌아누웠다. 침대 머리맡에 놓인 베리해피쨩이 문득 눈에 들어와 손을 뻗었다. 인형 특유의 부드러운 표면이 손바닥을 가득 채웠다. 인형을 들어, 품에 끌어안았다.

아니.

그 순간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강한 어조와 단호한 목소리로 나를 뿌리쳤다.

타카미네에게 이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다.

내게 붙잡힌 손을, 내가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떨어내었다. 내 손이 맥 없이 그의 손을 놓치면 모리사와 선배는 말을 이었다. 나의 연약하고 섬세한 멘탈을 걱정한 것인지 바로 직전의 것보다는 물러진 태도였다.

미안하다.

애써 만들어냈을 것이 분명한 웃는 얼굴로 모리사와 치아키는 목을 울렸다. 밝은 목소리였다.

나는 결국 네가 날 신경쓰도록 만들고 말았구나.

모리사와 치아키의 마음이 가늠이 되지 않는다. 당신은 나를 도와줬잖아. 왜 나는 안 되는 거야. 몇 번이나 같은 물음이 반복된다.

당신은 나를 도와주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나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를 도와줬던 건가요. 그럴 리가 없다. 그 사람의 마음이 향하는 곳을 생각한다. 나에게 의지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를 찾는다. 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일어나는 히어로를 꿈꿀 것이다.

문득 나는 선배의 가방 모퉁이에서 마구 흔들리던 베리해피쨩을 떠올렸다. 나는 멍하니 목을 울렸다.

“베리해피쨩, 얼른 떨어져버리면 좋겠다.”

그러면 선배를 지켜주는 것은 없어질 것이고 선배는 별 수 없이 나를 다시 찾아 올 것이다. 이상한 걸 신경쓰는 사람이니까, 어쩌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나를 찾아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모리사와 선배가 베리해피쨩을 잃어버리는 순간 내게는 다시 그를 붙잡을 수 있는 빌미가 생긴다. 겁에 질린 선배의 손을 꼭 붙잡고, 멈춰세워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면 한숨만이 목 아래에 들끓었다. 그걸 토해내는 것처럼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못됐다, 나.”

그로부터 이어지는 말은 언제나와 같다.

“우울해…….”

아니, 언제나와 같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평소의 말버릇을 말하려던 입술을 꾹 깨물어 애써 말을 삼켰다. 그 순간까지도 모리사와 치아키를 생각했다.

그 사람은 언제나 그랬다. 무얼 숨기는 데에는 한없이 서툴었다. 우는 얼굴을 들켰고 금세 지치는 약한 체력을 들켰고 유령이며 괴물을 무서워한다는 것도 들켰으며 어울리지 않게 편식하는 음식마저 들켰다. 이번에도 나를 향한 마음을 들켰고 이제는 내게서 도망치려는 상황까지 들켜버렸다. 이쯤되면 그가 진심으로 비밀로 하고 있는 게 맞기는 한 것인지 의심마저 들 정도다.

내가 신경쓰는 것이 싫댔다. 내게 폐를 끼치는 것도 싫단다. 나는 마음도 쓰지 말고 걱정도 하지 말라는 거다. 상황을 잘 모르는 선배의 반 친구나 보건실의 선생님도 걱정할 만큼 선배의 이상은 명확했다. 그런데 내게, 선배의 문제를 제일 잘 알고 있는 내게 눈을 감고 모르는 척을 하라고. 불가능한 일이다. 내버려뒀다간 내 잠자리가 뒤숭숭해진다. 실제로 요즘 밤마다 잠을 설치고 있고.

모리사와 선배는 내 마음 따위는 몰랐다. 그뿐일까. 나와 마주치기만 하면 거의 조건반사에 가깝게 뒤로 돌아 도망쳐버리는 통에 모리사와 치아키의 얼굴이 그의 가방 언저리에 달린 베리해피쨩의 얼굴로 떠오르기 직전이었다.

우리는 유닛도 같았고 부활동도 같았다. 그러니까, 아마도 잡으려면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가 나만 보면 바로 도망가버리는 것이 괜히 서운해서 외려 붙잡는 것을 망설였다. 나 혼자 선배를 좋아하고 있는 것만 같아 같잖은 패배감마저 들었다. 그리고 이내는 흔들리는 베리해피쨩이나 노려보며 내심 저게 떨어지지 않는 것을 분하게 여기기나 하는 것이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덜렁대는 구석이 있는 사람이다. 베리해피쨩과 고리를 이은 얇은 체인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베리해피쨩은 끈질겼다. 내 원념이 깃들었다고 했잖아. 그럼 확 떨어져버리라고. 기어코 나는 저주에 가까운 사념을 흘려보내기에 이르렀고.

얼마 뒤 정말로 눈엣가시가 사라졌다. 그러니까, 그의 가방 언저리에 매달린 채 언제나 위태롭게 흔들리던 베리해피쨩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다. 한동안 모리사와 선배가 데리러 오지 않아 서운한 마음에 빠져버렸던 아침 연습에 거의 변덕에 가깝게 참여했다. 그리고 나보다 조금 늦게, 부실의 문을 열고 들어선 선배가 나를 보고는 여느 때보다 더 질겁하며 도망치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가방 언저리가 허전했다.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를 붙잡지 못했다.

다만 그 이유는 평소와 달랐다. 내가 준 베리해피쨩을 죽어도 달고 다니겠다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사람이 그렇게 쉽게 잘라내다니. 그러니까, 그마저도 조금 서운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혼자서 시무룩해지려던 찰나에 내가 몇 번이나 베리해피쨩을 상대로 해왔던 생각들을 떠올렸다.

“엣, 에엑. 설마, 설마……. 내가 저주해서?”

물론, 그걸 저주라고 해도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게 내 탓이라면 큰일이었다. 베리해피쨩은 나를 대신해 선배를 지켜주는 부적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선배를 지켜주는 것이 없다는 뜻이 된다. 동시에 그의 마음이 걱정되었다. 베리해피쨩이 떨어져버린 일로 나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베리해피쨩을 떨어지도록 만든 것이 내 저주 탓이라면.

그 순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미친 것처럼 느껴졌다. 이쯤되면 초현실에 이성이 녹아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는 내가 이상하기도 했고 어처구니가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완전히 각인의 언더테이커의 재림이다. 중2병이 재발했대도 이상하지 않단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아주 만약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사건을 겪게 될 지도 모르는 모리사와 선배가 걱정되었다. 그 뿐이었다. 나는 막 벗었던 마이를 다시 걸쳤다. 더 이상, 나의 서운한 마음이나 멍청한 패배감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모리사와 선배를 붙잡아야 했다.

이미 늦었는지도 몰랐다. 몇 번이나 나는 모리사와 선배를 놓아주었고 모리사와 선배는 베리해피쨩이 떨어져버릴 정도로 뛰어가버렸으니까. 이번에도 나는 모리사와 선배를. 나는 부실 문을 벌컥 열었다.

“모리사와, 선배…….”

모리사와 선배는 그 너머의 벽에 등을 기댄 채 서있었다. 고개를 떨어트린 채 안도한 것처럼 한숨을 내쉰 모리사와 선배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문을 열고 나온 나를 확인했다. 그렇게 나를 향하는 시선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선배의 커다란 눈이 더욱 커다래졌다. 나는 언제나 선배를 놓아주었으니까, 선배는 아마 이번에도 그러리라고 생각한 것이겠지.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챘으니 이 사람, 분명 도망칠 거다. 그렇게 예감하면 나도 망설이지 않고 손을 뻗었다. 모리사와 선배의 손이 가방끈을 움켜쥐었고, 나는 그 손목을 움켜쥐어 잡아당겼다.

“읏…….”

그리고 그 악력에 선배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게 세게 잡을 생각은 없었는데, 선배가 아파하는 것에 놀라 흠칫 손을 떼었다. 그야 아프게 쥔 게 아니더라도 팔을 붙들어 쥐는 것은 예의가 아니고. 나는 선배를 아프게 하기 위해 붙잡은 게 아니었다. 그저 그의 상황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선배를 제대로 멈춰 세우기만 할 수 있다면 그를 붙잡을 필요는 없었다. 나는 선배에게 사과할 셈으로 입을 열었다.

“죄, 죄송, 흐익……!”

하지만 나는 사과의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이유는 내 손바닥에 있었다. 모리사와 선배의 팔을 잡은 손바닥에 피가 묻어나 있었다. 손금 사이에 깊게 밴 핏물에 그만, 눈 앞이 어지러워졌다. 모리사와 선배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렸다.

“타, 타카미네!”

우리는 보건실로 향했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모리사와 선배의 다친 팔 때문만은 아니고, 반쯤은 나를 위해서였다. 피를 보고 비틀거리는 나를 모리사와 선배가 지탱해주려 하기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제가 다친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나부터 챙긴다. 그런 사람이니까 유령이었던 나에 대해서도 그렇게 마음을 썼던 것이겠지. 제 몸은 챙기지도 않은 채로 말이다. 

보건실에는 사가미 선생님이 없었다. 2학년의 담임을 맡고 있기도 한 탓에 자주 자리를 비우는 편이기는 했다. 내가 그의 치료를 도우려 했지만 나보다는 그가 훨씬 더 보건실에 익숙한 것 같았다.

모리사와 선배는 나를 만류해 침대에 앉혔다. 그 순간에는 정말 혼미할 지경이기는 했지만 누워서 쉴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거부하기도 애매해 선배가 밀면 미는 대로 앉고 나면 모리사와 선배는 자연스럽게 트레이를 살폈다. 의료기구가 서로 부딪치며 맑은 소음을 내었다.

선배는 핀셋으로 솜을 집어들었다. 소독약이 든 약병을 열면, 소독약 냄새가 내게까지 훅 끼쳤다. 모리사와 선배는 솜을 적시고 팔뚝에 길게 난 상처를 문질렀다. 따가울 것이 분명한데도, 모리사와 선배는 어깨를 살짝 떨었을 뿐 묵묵하게 상처를 소독했다. 후배인 나의 앞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후배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째 가슴께가 울렁거렸다. 여전히 핏물이 송글송글 맺히는 기다란 상처를 노려보며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거, 유령이 한 짓이에요?”

“아, 아니다. 유령과는 아무 일도 없었다.”

“베리해피쨩도 없어졌는데?”

“베리해피쨩이 없어진 건 방금 전이다……!”

그 말에 순간 숨이 막혔다. 역시, 선배가 신경쓰지 못해 잃어버린 게 아니다. 없어진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선배가 고의적으로 없애버렸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내가 표정을 굳히면 모리사와 선배는 눈만 굴렸다. 변명도 돌아오지 않는다.

“이쪽으로 와요.”

내가 한숨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면 거즈와 테이프를 챙겨든 모리사와 선배가 조금 머뭇대는 기색으로 내 옆에 앉았다. 그야, 자기 팔에 테이프를 감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테다. 선배도 그걸 아는 거다. 뭣보다 자주 다쳐본 사람이니까. 그게 씁쓸하게 느껴져 자연스럽게 내게 내밀어진 팔을 쥐는 손이 저도 모르게 상냥해졌다.

“그럼 베리해피쨩은 지금 어디에 있는데요?”

선배가 조금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게, 베리해피쨩은 터져버렸다.”

떨어진 것도 아니고 터졌다니. 상황 파악이 되기는커녕 방해되는 보고에 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표정에 모리사와 선배는 내가 화라도 낼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지. 모리사와 선배가 팔을 빼기라도 할 것처럼 움찔거리기에 그 팔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무심코 목을 울리면 화난 목소리가 관성에 가깝게 나왔다.

“……당신 내 쿠션을 터트린걸로는 모자라서.”

모리사와 선배의 예감은 그리 틀린 것은 아니었다. 내 말에 모리사와 선배가 서둘러 대답했다.

“미, 미안하다! 꼭 돌려주고 싶었다만, 설마 트럭에 밟힐 거라고는!”

“트럭이요?”

“고양이는 구했다만, 베리해피쨩은……!”

“네? 고양이?”

“크으으, 타카미네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다니, 히어로 실격이다!”

“아니……. 아니. 잠깐만, 잠깐만요. 차근차근 이야기해봐요. 머리가 따라가지 못한다구요!”

등굣길에 모리사와 선배는 도로에 선 채 우왕좌왕하는 새끼고양이를 보았다고 했다. 마침 신호가 바뀌었기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 선배는 그 조그맣고 순진한 동물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놓기로 했단다. 그야 그 마음은 이해가 간다. 겨우 팔뚝 길이 정도의 솜뭉치는 귀엽기 마련이고.

마침 차가 오는 기색도 없어 서둘러 고양이를 픽업했고, 인도 위로 올라오는 것과 동시에 무언가 떨어트린 느낌이 났다고 했다. 아마 그게 베리해피쨩이었던 것이겠지. 모리사와 선배는 감이 좋은 사람이다. 조금 얼빠진 구석도 있지만 제 실수를 메울 만큼의 감각은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선배가 도로를 돌아본 순간 커다란 트럭이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갔단다. 트럭이 지나간 뒤 도로에 남은 베리해피쨩은 이미 명을 다했다던가. 그리고 비즈인형이었던 베리해피쨩의 잔해를 본 모리사와 선배는 나를 떠올리며 비명을 지르고 말았고, 그러잖아도 우렁찬 목소리로 비명까지 질러버렸으니 그에 놀란 고양이가 발톱을 세우는 바람에 그만. 뭐, 그랬다는 이야기다.

팔의 상처는 심각하지만 트럭에 치이는 것에 비하면. 아니, 이건 그런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경상이다. 이쯤 되면 베리해피쨩이 액막이를 해준 게 아닌가. 안심해야 할 일에 어째 도리어 한숨이 나왔다. 

“하아.”

“우웃…….”

깊은 한숨에 모리사와 선배가 죄라도 지은 양 움찔거렸다. 당연하지만 그건 안도의 한숨에 가깝기는 했다. 아마도 모리사와 선배가 걱정하고 있을 질책도 물론 섞여있기는 했다. 그야 그랬다. 선배가 무사히 이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그를 질책할 수도 없었겠지. 안도와 질책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었으니 이어지는 것은 별 수 없는 책망이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면, 이럴 일 없었잖아.”

나는 거즈 위로 테이프를 감는 데에 집중했다. 내게 제 팔을 맡긴 채로 모리사와 선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긴장한 팔목만이 내 손아귀에 있었다. 단단하고 마른 팔이었다. 거즈 아래의 상처를 다시 한 번 떠올린다. 트럭에 치이는 것에 비하면, 같은 소리를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제법 큰 상처였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거즈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테이프를 감았다.

다친 사람이다. 참고 참으려 했지만 분한 마음을 토로하고 싶어 결국에는 입을 열었다. 나는 그렇게 참고 견디는 데에는 아무래도 재능이 없었다.

“분명 내 베리해피쨩도 무사했을 거고.”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 모리사와 선배는 기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음, 그건 정말 미안하게 되었구나…….”

속이 썩어들어갈 것만 같았다. 썩어버린 마음은 가스처럼 팽창하여 금방이라도 목구멍을 타고 역류할 것만 같다. 선배 탓에 터져버린 베리해피쨩 같은 건 실제 아무 문제도 아니다. 모리사와 선배의 가방에 더 이상 매달려있지 않는 것은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선배가 다치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런 소리나 하며 선배를 다시 한 번 상처 입혔다. 테이프의 끝을 말끔하게 마무리짓고 선배의 팔을 놓아주며 이를 악물고 속삭였다.

“선배는 뭘 걱정하고 있는 거예요?”

“그건…….”

선배의 손이 조심스럽게 테이핑 된 상처 위를 감싸쥐었다. 모리사와 선배의 시선은 제 팔 위를 향해있다. 모리사와 선배가 가만히 속삭였다.

“타카미네가 베리해피쨩처럼 터져버릴까봐?”

“……당신, 아무렇지 않게 끔찍한 소리를 하네요.”

내 말에 모리사와 선배가 즉답했다.

“내게는 그만큼 끔찍한 일이었다.”

그건 농담이라기에는 너무 진지한 목소리였다. 모리사와 선배가 무얼 결심한 것처럼 고개를 들었다. 곧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타카미네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고 있는 거지?”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모리사와 선배를 걱정했다. 그의 몸과 그의 마음을 걱정했다. 그의 몸이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의 마음이 상하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리사와 선배는 손을 들어 나의 뺨을 감싸쥐었다. 다친 팔이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비밀로 해서는 안 되겠지.”

모리사와 선배는 잠시 숨을 삼켰다. 그 뒤로 이어지는 말은 나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나는 타카미네 미도리를 좋아한다.”

“알고 있어요.”

나는 최대한 뻔뻔하게 대답하며 그의 손을 붙잡아 내렸다. 나의 대답에 모리사와 선배는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네가 아니야.”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혀를 차며 그의 말을 무시하면 모리사와 선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잘 들어라.”

“당신이야말로 두 눈 뜨고 똑바로 날 봐.”

나는 그의 말을 끊어내었다. 이어질 말 따위는 들을 필요도 없었다. 모리사와 치아키가 무엇을 꺼리고 있는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유령인 나와 지금의 나를 나누어 생각한다. 내게 그 때의 기억이 없다는 고작 그 정도의 이유로.

“그건 내가 맞아.”

물론 모리사와 치아키의 말도 맞았다. 나에게는 그 때의 기억이 없다. 그 때의 내가 어떤 마음으로 모리사와 치아키와 함께했는지 그런 건 모른다. 그건 죄책감이었을 수도 있고 걱정이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아주 우울했을 것이고 가끔은 기뻤을지도 모른다. 그저 그 정도의 것이다. 기억에도 없는 나의 심정 따위 잘은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나라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는 않았다.

“당신은 그게 타카미네 미도리였기 때문에 함께해준 거야.”

나도 알고 있었다. 모리사와 치아키가 얼마나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모두가 다 알았다. 당신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타카미네 미도리를 위해 애쓰고 또 마음대로 되지 않아 아파했는지, 제가 알고 있는 모리사와 치아키의 파편을 내게 알려줬다. 그 마음의 파편들이 너무나 따뜻해서, 그래서.

“당신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좋아하는 거라고.”

그래서 나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어째서 당신을 구할 셈으로 나를 포기했는지, 알 수 있었단 말이다.

“지금의 내가 죽더라도, 당신은 또 다시 나를 도와줄 거잖아.”

그러니 당신의 그 마음이 얼마나 멍청한 염려였는지, 모리사와 치아키는 알아야 했다.

모리사와 선배는 입을 살짝 벌렸다가, 이내 앙다물었다. 꾹 깨문 앞니 사이에 짓눌린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나를 노려보듯 바라보던 모리사와 선배가 무얼 결심한 것처럼 입을 열었다.

“내가 도와줬다니. 네게 그런 기억이 있을 리가 없는데.”

“모리사와 선배.”

나는 그를 멈출 셈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모리사와 선배는 듣지 않았다. 선배는 오히려 고개를 젓고 말을 이었다.

“아니, 이건 네 기억의 문제가 아니다. 아마 그런 기억은 그 때의 네게도 없을 거다. 난 전부 실패했으니까. 나는 타카미네를 돕지 못했고 구하지도 못했다.”

아마도 몇 번이고 그런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밤마다 침대에 누워 같은 걱정을 반복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게 불안에 떨고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붙잡고 있었을 뿐이지.”

모리사와 치아키는 들으란 듯이 혀를 찼다. 내가 알고 있는 모리사와 치아키가 아닌 것처럼 모리사와 치아키가 말했다.

“내가 놓아줬기에 비로소 네가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라면? 도리어 내가 널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것이었다면?”

그건 무엇도 나를 향한 질문이 아니었다. 전부 모리사와 치아키의 후회였고 걱정이었다. 봇물이 터진 것처럼 쏟아져나오는 그의 불안에 숨이 막혔다. 이 사람을 좀 더 빨리 붙잡았어야 했다. 이 사람이 혼자 골몰하게 두어서는 안 되었다.

“타카미네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상냥할 수 있는 거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널 붙잡아뒀고, 나는 너로 하여금 희생을 선택하게 하는 상황까지 만들고 말았다.”

모리사와 선배는 그 때의 저를 비난하는 것처럼 차게 웃었다. 입맛이 쓰다. 무엇 하나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당신이 제 잘못이 아닌 걸로 책임을 느끼지 않길 바란다. 당신은 그저 상냥했을 뿐이고 다정했을 뿐이다.

나는 분명 그런 당신에게 위로받았을 것이다. 동시에 그런 당신을 안타깝게 여겼을 것이다. 분명히 나를 향하고 있는 선의에 나의 것이면서도 나의 것이 아닌 기억과 감정을 막연하게 상상한다. 그러면 목구멍 바로 안쪽까지 차오르는 수많은 감정은 이내 한 마디의 말로 갈무리된다.

“나요, 역시 모리사와 선배가 좋아요.”

하지만 갈무리된 말은 거의 비약에 가까운 말이었다. 모리사와 선배도 당혹스러웠겠지. 모리사와 선배는 그러잖아도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도 한참을, 그는 할 말을 잃은 것처럼 입만 벙긋대었다.

“당신이 나를 지켜내지 못한 걸 슬퍼하고 후회해주는 것조차 기쁘고, 그 죄책감에 감사해요. 하지만 나는 희생되지 않았고 지금 당신의 앞에 있잖아. 무엇도 당신의 책임이 아니라고요.”

“그런 게 아니다. 난 그저, 실패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뿐이다.”

“도망치고 싶으니까 당신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건가요? 지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설득하려고 하는 건 알고 있는 거예여? 그거 전혀 당신답지 않다고.”

“타카미네…….”

“웃기지 말아요. 난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 즈음에서 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수많은 마음을 꾹 눌러담아 목소리를 내었다.

“당신을.”

그 말에 모리사와 선배는 제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떨어트렸다. 흐트러진 앞머리 탓에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짜내듯이 흘러넘치는 목소리에는 그의 감정들이 온전히 배어있었다.

“너는, 정말. 언제나……. 언제나, 그렇게…….”

그건 무얼 참아내고 있을 것이 분명한, 억누른 목소리였다. 나는 모리사와 선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도, 나도 타카미네가 좋다!”

모리사와 선배는 그렇게 말하며 홱 고개를 들었다. 어찌나 다급하게 고개를 들었는지 그러잖아도 흐트러진 머리가 한 차례 흔들렸다. 그 기분 좋은 고백에 대답할 새도 주지 않은 채 모리사와 선배는 말을 이었다.

“지금의 타카미네가 날 소중히 대해주는 게 좋았고, 함께 있는 시간이 기뻤다. 그래서, 맞잡은 적 없는 손마저도 기어코 맞잡고 싶어져서, 그렇게 욕심이 생겨서…….”

모리사와 선배는 고개를 젓고 말을 이었다.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너를 죽어가게 한 건 나라고 생각했으니까. 악몽은 언제나 내게 그렇게 속삭였으니까.”

모리사와 선배는 이미 지쳐있었다. 잠들 수 없던 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피로해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악몽일 뿐이다. 모리사와 선배라고 모르지는 않았겠지. 내가 계속해서 영혼 상태로 떠돌게 된 이유도 결국에는 내 몸으로 돌아오게 된 인과도 실제로는 전혀 명확하지 않다. 그저 나는 제대로 깨어났고 모리사와 선배와 마주했다. 그런데도 모리사와 선배는 차마 저를 용서할 수 없었겠지. 

“하지만. 타카미네가 이번에도 포기할 생각이 없는 거라면, 나도 포기하지 않겠다. 그러니까 타카미네.”

모리사와 선배의 진지한 얼굴이 나를 향했다. 그 얼굴을 마주한 순간 나는 이어질 말을 기대해버리고 말았고.

“나와 함께 있어다오.”

그 열렬한 사랑고백에는 별 수 없이 웃음이 새어나왔다.

“좋아요. 함께 있어요.”

흔쾌히 대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걸리는 부분이 있다. 나는 턱을 어루만지며 선배에게 물었다.

“그치만 선배의 지금 반응을 보면, 잘은 몰라도 나 유령인 나랑 똑같은 소릴 해버린 거죠?”

“으, 음?”

모리사와 선배가 의문스러운 신음을 했다. 그야, 모리사와 선배도 몰랐을 거다. 내가 내게 없는 나의 기억을 질투하고 있었을 줄은. 나는 어리광이라도 부리듯 투덜대었다.

“그런 건 싫다구여. 나, 유령인 내가 하지 못한 일을 하고 싶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선배의 뺨을 감싸쥐어, 나를 마주보게 했다. 모리사와 선배의 눈가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양 붉었다.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지금 당장, 선배와 입을 맞추고 싶어요.”

모리사와 선배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입술을 우물대었다. 부끄러운 모양이지 싶어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괜찮나요?”

“응…….”

모리사와 선배는 작게 수긍했다. 답지 않게 수줍은 꼴에 비실비실 웃음이 새었다. 나는 선배에게 파고들듯 몸을 숙여 밀어올리는 것처럼 입술을 맞대었다. 따뜻한 숨결이 입술을 적시고 얇은 살갗에 스며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바로 그 순간에, 우습게도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감격의 눈물이라기에도 어처구니가 없었으니 처음에는 영문을 몰랐다. 내가 왜 울고 있는 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울기 시작하니 호흡이 달렸다. 겨우 살며시 닿았을 뿐인 입술을 떼어내고도 눈물과 함께 차오르는 숨이 벅차 어깨가 떨렸다.

“타, 타카미네?!”

그제야 나의 우는 얼굴을 마주한 모리사와 선배가 화들짝 놀라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이내 어색하게 묻는 것이다.

“그, 그렇, 게…… 별로였나……?”

그것도 그런 멍청한 소리로 말이다.

“읏, 으으……. 조용히 해요.”

잊고 있었던 감정의 파편들이 밀려와 나의 심장에 박히는 것만 같았다. 무척이나 아팠고, 그만큼 기뻤다. 그것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들이었고 잊고 있었던 것이 오히려 납득이 가지 않게 되었다.

“한 번만 더요.”

“으, 음. 그래.”

이번에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나는 무작정 그의 입술에 몇 번이고 입을 맞추었다. 뚝뚝 흘러넘치는 눈물을 그저 흘려보낸 다음에는 웃음이 나왔다. 참을 수 없이 기뻤다. 나는 겨우 모리사와 선배의 입술을 떨어내고 그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모리사와 선배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을 뿐인데도 북받쳐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해 웃고 말았다.

“우리, 처음이 아니죠?”

“음? 어…….”

이상한 물음에는 모리사와 선배도 눈을 굴리다, 무얼 깨달은 듯 희미하게 목을 울렸다.

“설마.”

“응, 기억났어요.”

“하, 하지만 그때는…… 실제로 닿았던 것도 아니고, 타카미네에게는 몸도 없었으니.”

모리사와 선배는 허둥대며 변명처럼 말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아마도 선배는 모르는 척을 하고 싶었던 것일 테지. 어쩌면 전혀 선배답지 않은 행동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선배의 의도대로 어물쩡 넘어가줄 생각은 없었다. 그러기에 그것은 너무도 달콤한 기억이었다.

“선배였네요.”

그랬기에 나는 그런 말로 선배의 변명을 끊어내었고 그대로 팔을 뻗어 모리사와 선배를 와락 끌어안았다. 약간의 저항이 있었지만 선배는 나를 거절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내게 몸을 맡겼다. 그의 마른 어깻죽지에 고개를 묻으며 천천히 목을 울렸다.

“나를 깨워준 건.”

“뭐, 뭐어.”

내가 말하는 순간을 알아챈 것처럼 모리사와 선배는 겸연쩍게 대답했다. 계속해서 웃음이 나왔다. 입술이 맞닿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이 몸은 그 순간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선배와 헤어진 나는 나의 몸을 찾아갔다. 그야 별 수 없었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달리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대로 나의 몸과 나의 영혼의 유통기한이 끝나기를 기다리려 했다. 멈춰버린 공간에서 나의 시간이 멎기를 기다릴 셈이었다. 나의 몸이 죽음에 이르는 순간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게 나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날, 모리사와 선배 또한 나를 찾아왔다. 아마도 사가미 선생님이 말했던 날도 그 날이었겠지. 그 순간, 서로 다른 시점이 겹쳐진다. 희미하게 남은 입술의 온기와 흐릿한 시야에서 울고 있던 선배를 이제야 안다. 선배는 어떤 마음으로 내게 입을 맞추었을까. 그건 어떤 의미를 가진 입맞춤이었을까. 작별의 인사였을까. 위로와 감사였을까. 어쩌면 사과의 의미였을지도 모르겠다. 뭐, 지금에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기는 했다.

“선배가 나를, 이 자리로 되돌려놓은 거예요.”

겨우 꺼낸 목소리에는 별 수 없는 웃음기가 섞였다. 그런 건 중요하지가 않았다. 어찌되었든 나는 결국 모리사와 선배의 입맞춤으로 깨어났고 이제는 모리사와 선배의 입맞춤으로 기억을 찾았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타카미네 미도리는 전부 모리사와 치아키에 기인하는 존재다.

“후후, 꼭 동화 같네여.”

선배에게 미안한 동시에 고마웠다. 나를 향한 그 마음이 안타까워도 결국엔 그렇게 마음을 써주었다는 것 마저도 기뻤다. 문득 모리사와 선배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분명히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거리에서 나와 살을 맞대고 있는 모리사와 치아키를 제대로,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모리사와 선배의 어깨를 꾹 쥐어 떨어내고 그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러면 발갛게 달아오른 선배의 얼굴이 보였다. 몇 번이나 맞닿은 입술이 붉었고 뺨이 붉었다. 젖어들기 시작한 눈가가 붉었고 일렁이는 눈도 그새 붉어져 있었다. 선배는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주륵주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내 손으로 문질러 닦아내었다. 그러면 물기는 금방 잊혀지고 부드러운 뺨의 온기만 손 끝에 남았다. 이건 행복에 으레 따르는 눈물이었다.

그렇다면 괜찮았다. 나는 이번에도 웃었다. 그러면 나를 마주한 모리사와 선배 역시 엉망진창으로 젖어든 얼굴로 환하게 웃는 것이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따뜻한 살갗을 가진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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