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가방 속 삼단우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구나!”

학교를 마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만나 함께 집으로 향하곤 했다. 집으로 간다고 해봐야 방향은 우리집 쪽이고, 모리사와 선배는 집에 가는 길에 잠시 나를 데려다주는 것에 가깝다.

예전에도 곧잘 함께 하교하곤 했지만 우리의 관계가 변한 뒤로는 거르지 않는 일과가 되었다. 모리사와 선배가 부장이나 유닛 리더로서의 스케줄이 있을 때는 내가 기다렸고 아주 가끔은 선배가 나를 기다리기도 했다. 실제 그를 기다리는 시간에 비하면 우리가 함께하는 하굣길은 너무 짧았다. 그런데도 그 시간이 좋아 매번 기다렸다. 그가 나를 기다렸던 것 역시 같은 마음이었을 것을, 항상 그런 말로 아닌 척을 한다. 나는 넌더리를 내며 투덜대었다.

“당신은 맨날 같은 소리만 하네요.”

물론 그것도 나를 기다리게 하는 모리사와 선배에 대한 넌더리는 못 되었다.

“매번 기다리게 하니 말이지.”

모리사와 선배가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단순한 인과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자각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로는 그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매일매일 줄어드는 것마저도 아쉬워졌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빨리 제 마음을 깨닫고 그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그 정도를 위안으로 삼았다.

“어?”

모리사와 선배와 함께 교문을 지나오는데 문득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얼 확인하듯 하늘을 향하는 모리사와 선배의 손바닥에 의문을 느끼는 것과 거의 동시에 내 뺨에도 물방울이 떨어졌다. 소매를 당겨 물기를 훔치고 나 역시 하늘을 올려다보자 한두 방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그 순간부터 거의 퍼붓다시피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우오옷!”

“흐잇!”

갑작스러운 폭우가 아스팔트 바닥에 내리쳤다. 시끄럽다못해 시원하게까지 느껴지는 물소리에 우리의 목소리가 가려졌다. 그 정도로 큰 비였으니 나와 선배가 쫄딱 젖어버리는 것도 찰나였다. 나는 우산을 꺼내기 위해 가방 위로 손을 올렸지만.

“타카미네!”

그 순간, 그렇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와 함께 팔목이 붙들렸다. 강하게 잡아끄는 통에 가방을 쥐었던 손을 놓쳤다. 끌려가는 내내 금방 넘어질 것처럼 다리가 휘청였다. 온몸을 적시고 차갑게 스며드는 빗물과 대비되어 그러잖아도 뜨거울 그의 손아귀가 더욱 뜨겁게 느껴졌다. 맞닿은 살갗이 금방이라도 녹아버릴 것만 같다고, 말도 안 되는 불안감마저 느꼈지만 그를 뿌리칠 수는 없었다.

모리사와 선배가 나를 이끌고 향한 곳은 여느 가게 앞에 펼쳐진 차양 아래였다. 그제야 모리사와 선배는 나의 팔목을 놓아주었다. 뜨거운 손아귀가 떨어져나가고 나니 어쩐지 열없게 느껴져 손바닥을 펴 젖은 교복에 문지르기나 하고 말았다.

그동안 모리사와 선배는 저의 젖어든 어깨를 털어냈다. 하지만 이미 옷에 스민 물기는 어떻게 떨어내지지 않았다. 모리사와 선배가 드물게 지친 기색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물기를 머금어 축 늘어진 머리카락이 그를 평소보다 차분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그런 것이나 생각하고 있는 자신이 조금 우스꽝스럽게 느껴져, 무얼 털어내기라도 하듯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눈을 굴려 모리사와 선배의 시선이 향한 가게의 차양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허공을 가르고 쏟아지는 빗물을 바라보며 가방 안에 작게 접혀있을 우산을 떠올렸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 번 가방을 여는 것보다 먼저 모리사와 선배를 향해 물었다.

“우산, 없어요?”

그 말에 모리사와 선배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는 나의 물음을 곱씹듯 잠깐 침묵했다가, 눈을 굴리며 대답했다.

“으, 음. 평소에는 챙겨다니는 편이다만.”

“오히려 그게 더 의왼데여.”

보기보다 철저한 사람이니 별로 의외일 것도 없었지만 대충 그렇게 말했다. 모리사와 선배는 답지 않게 머뭇거리며 말했다.

“타카미네는 그런 걸 잘 챙길 것 같은데. 나와 달리 꼼꼼하니까.”

맞는 말이다. 그의 말에 가방 속의 삼단우산을 떠올렸지만 듣지 못한 양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몸을 내밀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칠 기미가 안 보이는데요.”

하늘은 묘하게 환하고 쏟아지는 빗방울만이 세찼다. 금세 그칠 소나기일 법 한데도 나는 굳이 그렇게 말했다. 모리사와 선배가 젖은 머리를 쓸어넘겼다. 희미한 물방울이 허공에 흩어졌다.

“으음.”

교복 재킷의 앞섶을 열어놓은 탓에 하얀 셔츠가 축축하게 젖어 살갗이 비친다. 저도 모르게 투명해진 옷자락 위로 시선이 멈추고 말아서, 겨우 눈을 떨어내어 차양 밖에 두었다.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다.

가방 안에는 작게 접은 우산이 들어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 넣어두었을 뿐인 우산은 귀여운 마스코트가 그려져있는 조그만 우산이다. 바람이라도 불었다간 뒤집히고 말 연약한 살에 남자 둘이서 몸을 욱여넣으면 맞닿은 반대편의 어깨가 삐죽 튀어나올 만큼 작은 천으로 만들어진.

물론 이런 상황에서 무얼 가릴 처지는 못 된다. 그러니까, 그저 가방 안에 있는 우산을 꺼내면 되는 일인데도 그 자리에서만 한참을 고민했다. 우산을 꺼내고 모리사와 선배를 나의 작은 그늘 아래에 들이는 상상을 한다.

마치 어떤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비 오는 날의 로맨스를 꿈꾼다. 함께 비를 맞고 같은 그늘에서 비를 피하고 당신과 작은 우산을 나눠쓰고 축축하게 젖은 어깨가 서로 맞부딪치는. 그런 달콤한 상상이나 하는 것이다.

“저기요, 선배.”

나의 부름에 모리사와 선배가 그제야 나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우리집, 들렀다 갈래요?”

나는 결국 우산을 꺼내지 않기로 한다. 그건 이를테면, 멍청한 모략이었다. 모리사와 선배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그러잖아도 커다란 눈동자가 더욱 커다래졌다. 이상한 소리는 한 적 없다. 한 적 없는데, 그 순진한 표정에는 어쩐지 내가 무얼 실수하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지고 마는 것이다. 나는 변명을 서둘렀다.

“아니, 그게. 집에는 우산 있을 테니까 빌려줄게요. 옷도, 말릴 수 있으면 말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무심결에 그의 쇄골 근처를 바라보았다. 젖은 셔츠가 달라붙어 그의 살색으로 도드라져 있다. 모리사와 선배는 내 시선을 좇듯 흘끗 턱을 당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 꾸민 구석 없는 반응이, 나의 시선을 질책하는 것만 같아 얼굴이 뜨거워진다.

“아, 아니. 그렇잖아여.”

잘 갈무리되지 못한 변명들이 끊임없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모리사와 선배를 납득시키지 못하면 단번에 어색해질 공기를 알았다. 오히려 그러니까 멈출 수가 없었다.

“집까지 가는 내내 비 맞으면서 갈 수는 없잖아여. 그랬다간 당신 또 감기 걸릴 것 같구, 그러면……. 으…….”

그러고도 나는 말주변조차 없었다. 나의 변명이 그마저도 멈추면 모리사와 선배는 눈동자를 어색하게 굴리며 대답했다.

“아, 음, 그래.”

그의 통통한 뺨이 물이라도 든 것처럼 발갛게 달아있다. 물기를 머금은 공기는 어색하게 가라앉았지만 모리사와 선배도 납득을 하지 못한 눈치는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던 어색한 공기와는 조금 느낌이 달라서, 나 역시도 뺨이 뜨거워졌다.

우리를 둘러싼 따뜻한 긴장감이 차가운 빗물에 젖어 녹진해졌을 즈음에야 나와 선배는 상가에 도착했다.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대충 벗어 정수리를 가렸던 재킷이며 가방이 폭삭 젖어 있었다.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고 멈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물에 젖은 솜이 된 가디건이 묵직했다. 나는 가디건의 끄트머리를 쥐어 물을 짜내고는 단추를 끌렀다.

“드, 들어가서! 들어가서 벗어라!”

무엇에 그렇게 당황한 건지 모리사와 선배가 그렇게 외치며 나의 등을 떠밀었다. 나는 쥐었던 단추를 내려놓고 가게 앞에 걸린 노렌을 대충 치우며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에는 부모님이 있었고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된 모리사와 선배를 보자마자 호들갑을 떨어대었다. 아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모리사와 선배를 욕실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선배는 내게 우산만 빌려서 바로 집으로 갈 생각이었을까. 내가 건넨 여분의 옷을 끌어안은 채 욕실로 들어가는 선배는 유난히 어쩔 줄 몰라했다. 선배를 밀어넣은 나는 대충 머리를 털고 몸의 물기만 닦아낸 뒤 옷만 갈아입었다. 나는 선배에 비하면 아주 건강한 편이었다.

문득 어린아이의 것처럼 따뜻한 살갗을 떠올렸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서늘한 계절의 비를 잔뜩 맞았으니 더욱 열이 올랐을 것이다. 어쩐지 머리로 피가 몰리는 것 같아 애써 별일로 생각하지 않는 척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

가만히 있으니 생각이 헤매는 것이다. 나는 허물처럼 벗어둔 교복을 집어들고 자리를 떴다. 욕실 앞에서 모리사와 선배를 불러 세탁을 하겠다고 전했다. 모리사와 선배는 나를 만류했지만 나는 대충 대답하고 바구니에 곱게 개어져있는 그의 젖은 옷을 내 것과 한데 뭉뚱그려 집어들었다.

그야, 목욕까지 해서 뽀송뽀송하게 만들어놓은 것을 다시 빗물에 적실 이유는 없다. 건조까지 돌려놓고 나면 비도 그치겠지. 창 밖의 하늘은 여전히 환하다. 어차피 금방 그칠 비였다.

세탁기에 교복을 전부 밀어넣고 돌아온 나는 푹 젖어있는 가방의 물기를 닦았다. 내 가방은 방수가 되는 종류였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가방의 물기를 훔친 나는 자연스럽게 모리사와 선배의 가방을 집어들었다.

가방 안쪽으로 흘러든 물기를 보며 그의 가방을 연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변명하자면 결코 가방 안을 엿볼 생각은 아니었다. 그 성실한 사람이 늦은 밤의 자습을 위해 들고 나왔을 교과서의 첫 장이 젖어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던 것 뿐이다.

그 가방 안에서 제일 먼저 내 시선을 잡아 끈 것은 젖은 책이나 필통 따위는 아니었다. 그건 그 사람의 것다운 가방이었다. 말한다면, 시시때때로 필요한 물건들이 단정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가방이었다.

그래. 시시때때로 필요한 물건들이, 그 가방 안에 있었다. 이를테면 가방 속에 작게 접힌 삼단우산 같은 것 말이다.

“타, 카미네…….”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당연하지만 지금 이 집에 있는 타카미네만 세 명이다. 그러니 여기에서 나를 그렇게 부를 인물은 모리사와 선배 뿐이었다. 당혹감에 찬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방금 욕실에서 나온 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더운 물의 온기 탓이라기에는 너무 선명하게 붉었다. 이유는, 모를 리가 없다. 나는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차양 아래서 가방 속의 우산을 꺼내는 것을 고민하는 당신을 상상한다. 제가 쉬이 감기에 걸리는 체질임을 모르지 않을 그가, 내가 우산을 가져오지 않을 것을 상정하지 않고 그저 꺼내기만 하면 되는 우산을 가방 속에 넣어둔 채로.

머뭇대던 목소리와 시선을 피하듯 어색하게 구르던 눈동자를 떠올린다. 어쩌면 당신도 비 오는 날의 로맨스를 꿈꿨을까. 함께 비를 맞고 같은 그늘에서 비를 피하고 나와 작은 우산을 나눠쓰고 축축하게 젖은 어깨가 서로 맞부딪치는. 그런 달콤한 상상을 했을까. 목을 간지럽히는 웃음이 기어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찰나에 입을 숨겼다. 모리사와 선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봐, 봐버렸구나……!”

아. 하마터면 간지러운 분위기로 착각할 뻔 했다. 모리사와 선배가 허우적거리며 다가왔다. 아주 당황한 모양이었다. 가방을 빼앗아 제 품에 숨기는 손이 어쩐지 엉성했다. 이제와서 숨겨봐야 별 의미 없다는 것을 아는 탓이겠지 싶었다. 그러고도 모리사와 선배는 젖은 가방을 꼭 끌어안고 무어라고 중얼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상 카나타에게 전수받은 ‘그 기술’을 사용하는 수밖에는…….”

게다가 귀에 박히는 말들은 지나치게 불온하다. 나는 기겁하며 받아쳤다.

“신카이 선배여? 왜 힘줘서 말하는 건데요?! 뭔진 몰라도 무서운데여!”

“잠깐 아프기는 하겠지만 참아다오!”

모리사와 선배는 그렇게 외치고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사랑하는 연인을 비유하기 위해 적당한 말은 아니지만 그건 마치 좀비가 먹잇감에게 달려들기 직전의 모습만 같았다. 손날을 세운 걸로 봐서는 그걸로 나를 치려는 모양이지 싶었다. 설마 전수받았다는 기술이 그거냐. 나는 등을 바싹 뒤로 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아니아니! 당신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이런 건 모리사와 선배의 캐릭터가 아니다! 정말 제대로 전수받았는지 들어올린 팔꿈치가 날카로운 직각이다. 몸이 쉽게 약해진다고는 해도 그의 체력과는 별개다. 농구공을 높이 던지고 매일매일 격렬한 춤을 연습하며 몸을 움직이는 사람이다. 거기다 짬짬이 스턴트까지 하고 있다. 저런 팔에 맞았다간 기억이 아니라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다.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데.

“……선배 지금, 부끄러워하는 거예요?”

나는 그런 소리나 하고 말았다. 나도 목숨이 소중한 줄은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을 가릴 줄 아는 영리한 인간은 아니었다.

하필이면 발갛게 달아오른 뺨과 살짝 물기마저 밴 눈동자가 단단하게 세운 손날 다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애틋할 정도로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연애에 익숙하지 않고 로맨스가 어색한 남자다. 그런 남자가 고작 우산을 숨기는 일로 어떤 달콤한 상상을 했을까. 별것 아닌 거짓말을 고하는 동안 그의 등줄기를 긴장시켰을 따뜻한 고양감을 상상한다.

이 폭우가 내리는 와중에도 마른 채 가만히 가방 안에 있었던 우산의 이유야 뻔하다. 나와 같았겠지. 내가 고민한 것을 선배도 똑같이 고민했겠지. 내 가방 안에도 그의 것처럼 마른 우산이 한 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알았다.

“윽…….”

모리사와 선배는 희미하게 신음하고 눈을 굴리며 시선을 피했다. 진심으로 나를 죽일 생각이었던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선배.”

그가 걸친 나의 티셔츠 아랫단을 조심스럽게 끌어당기며 나는 다시 한 번 모리사와 선배를 불렀다. 허공을 헤매던 시선이 내게 멎는다. 시선이 마주치고 나면, 모리사와 선배를 향해 상체를 내밀었다. 올려다보는 시선은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자연스러운 아양이 된다. 그는 가방을 좀 더 세게 끌어안기는 했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키스하고 싶어요, 지금 당장.”

“……으음.”

모리사와 선배는 애매하게 대답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전히 긍정을 하기에는 아직 부끄러움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대답을 얻은 나는 그를 붙든 손에 힘을 주었다. 약한 인력에도 모리사와 선배는 무너지듯 내 맞은편에 앉았다. 축축한 가방은 여전히 그의 품에 있었다. 그걸 굳이 치우는 대신 그 너머까지 몸을 기울였다.

따뜻한 열과 촉촉한 습기를 머금은 살갗에서는 금방이라도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올 것 같다. 가장 부드러운 부분을 한 입 삼키는 것처럼 모리사와 선배의 입술 위로 입술을 겹쳤다. 처음에는 가볍게 살갗만 맞대었다. 수분을 잔뜩 머금은 따뜻한 살갗이 어쩐지 살에 엉기는듯 해서 그저 닿았을 뿐인 입술을 떨어내는 데에도 자연히 숨이 떨렸다.

어정쩡한 입맞춤이 아쉬워 한 번 더 입을 맞추고 어색하게 입술을 핥고 빨아들였다. 그러면 모리사와 선배가 자연스럽게 입을 벌렸다. 동굴처럼 패인 입 안의 공기는 습하고 뜨거웠다. 입 안의 얇은 점막을 혀 끝으로 부드럽게 건드리자 모리사와 선배가 어깨를 떨었다. 겁을 먹은 것 같지는 않았고, 그냥 웃는 것 같았다. 아마 간지러웠던 것이겠지.

그 순간부터 우리는 장난을 치는 것처럼 서로의 몸을 만졌다. 도톰한 귓가를 더듬어 주무르자 가방을 대충 밀어낸 모리사와 선배가 나의 허리를 붙들었다. 그건 나를 만류하는 것 같기도 했고 내게 매달리는 것 같기도 했다. 허리춤에서 꾸물거리는 손가락이 간지러워, 귀를 만지던 손을 내려 반팔 티셔츠의 소매 아래로 뻗은 날렵하고 탄탄한 팔을 붙들었다. 그의 살갗이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막 따뜻한 물 밖으로 나온 모리사와 선배의 몸은 따끈따끈하게 열이 올라있었고 나의 몸은 아직 차가웠다.

그 온도차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일까. 모리사와 선배가 흠칫 어깨를 움츠리며 탄성이라도 내지르듯 입을 벌렸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목을 울리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목소리가 큰 사람이.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득거리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침대로 갈래요?”

그 말에 모리사와 선배가 머뭇거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눈동자가 나의 시선을 피해서 구른다. 아마 아래층의 가게에 계실 부모님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고민스러운 얼굴은 이미 이 다음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 테다. 그렇게 고민하는 시점에서 결론은 나와있다. 나는 발갛게 달아오른 귓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우산 말이에요.”

“으응?”

“나도, 사실은 우산 있었어요.”

나보다 부끄러워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나니 어쩐지 부끄러운 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내 고백에 그걸 머릿속으로 곱씹기라도 하듯 잠시 아무 반응도 없었던 모리사와 선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얼굴을 확인했다. 나야 뭐, 히죽대며 웃고 있었겠지. 그러면 모리사와 선배도 허탈해하는 것처럼 웃었다.

“아, 하하…….”

이어지는 것은 치사한 모략을 꾸민 연인을 향한 냉랭한 비난이었다.

“그래도 나는, 타카미네의 집에 폐를 끼칠 생각은 없었다만.”

하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모리사와 선배는 좀 더 내 품에 엉겨붙었다. 따뜻하게 열이 오른 목덜미에 더욱 뜨거운 그의 이마가 닿았다. 나는 여전히 물기가 남아있는 모리사와 선배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문득 창문을 바라보았다. 비는 어느새 그친 모양이었다. 하지만 세탁기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아직,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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