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워커 굽 아래에 짓이겨지는 반쯤 태운 담배

담배는 싫다. 혼자 피우는 것은 신경 쓸 범위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 담배 냄새를 풍기는 건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단 말이다. 길에서 피우는 것은 용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화를 내고 욕할 수 있는 성미는 아니었으니 흘겨보기나 했고, 전철 옆자리에 담배에 찌든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앉으면 싫은 티를 내며 자리를 옮기곤 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전부 한 구역에 몰아넣고 그 곳에서만 피우게 한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불가능에 가까운 망상이나 하고 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담배를 피우는 인간은 너무나 많고, 어떻게도 갈무리가 되지 않는다. 오늘도 이렇게 어디서 풍기는 것인지도 모를 담배 냄새가 나지 않는가.

나는 신경질적으로 손부채를 팔랑이며 걸음을 재촉했다. 불쾌한 냄새였다. 분명 상가의 건물과 건물 사이에 숨어서 피우고 있는 것이겠지. 길을 가면서 피우는 것보다야 나은 상황이었지만 냄새가 풍기는 걸 참아주기는 힘들었다. 무어라고 한 마디 할 만큼의 담력은 없었지만 한 번 흘겨보고 얼굴이나 기억해둘 심산으로 골목을 흘겼다.

어두운 골목 사이로 보이는 형체가 어째 익숙했다. 처음에는 잘 매치가 되지 않았고 그 다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깊은 골목에서, 벽에 등을 기댄 채 담배를 태우고 있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건 모리사와 치아키였다.

피로한 얼굴과 뿌연 담배 연기에 눈 앞이 흐려졌다. 연기 너머에 있는 것은 본 적 없는 모리사와 치아키의 얼굴이었고 바람에 실려 코 끝에 스치는 것은 맡은 적 없는 모리사와 치아키의 냄새였다. 자주 쓰는 비누의 냄새를 생각한다. 언제나 밝고 건강하던 표정과 앳된 얼굴을 떠올린다. 그의 건전한 성미를 생각하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저건 확실히 모리사와 치아키였다. 발갛게 불씨가 살아있는 담배는 그 앳된 얼굴과는 아무래도 부조화가 생겨나는 소품이었다.

부조화? 그 단어에 의문을 느낀 것은 모리사와 치아키의 얼굴이 담배연기로 흐려진 순간이었다. 부조화라는 말이 도리어 어색하게 느껴졌다. 언제나 호쾌하게 웃고 있었던가. 언제나 데굴데굴 굴러가듯 변하며 감정을 표출하는 표정조차 없고 보면 그 얼굴은 의외로 단정했다. 힘을 주지 않은 눈매는 나른하고, 언제나 정면을 향하는 곧은 시선은 허공에 자연스럽게 떨어져있다. 모리사와 치아키의 그런 얼굴은 본 적이 없었다. 머리가 아찔했다. 전부 담배 연기 탓이다. 

담배가 타들어가는 냄새가 쓰다못해 달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입 안 가득 침이 고인 다음이었다. 더 가까이서 그 향기를 느끼고 싶다. 그 근원이 궁금하다. 입에 담고 맛을 알고 싶었고 목구멍이 먹먹하게 타들어가도록 삼키고 싶었다. 몽글몽글한 연기의 덩어리가 지나며 시커멓게 변색되는 호흡기를 상상한다. 피학에 가까운 쾌감을 상상하면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가득 고인 타액마저 섭식을 상상한 양 그새 달았다.

나는 힘주어 입술을 깨물었다. 선배에게, 다가서야 했다. 매캐한 연기에 눈물이 날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걸음을 내딛으면 나의 기척에 모리사와 선배가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모리사와 치아키는 담배를 바닥에 냅다 버리고 워커 굽으로 짓이겼다. 절반은 더 남은 담뱃대였다. 그러고도 워커의 두꺼운 굽은 바닥으로부터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눈이 마주치고도 한참만에 내가 먼저 목을 울렸다.

“모리사와 선배.”

“아, 하하! 타카미네가 아닌가! 이런 곳에서 다 만나는구나!”

너스레라도 떨며 없는 일로 만들 셈이었을까.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모리사와 선배도 알고 있었을 테다. 나는 모리사와 선배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섰다. 담배 냄새는 전혀 가시지 않았다.

진하고 생생한 냄새에 수많은 싫은 경우를 상상했다.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찌든 듯한 담배 냄새와 나를 앞서 걸어가는 사람의 손에 들린 채 향이라도 된 양 피어오르던 연기 따위, 전부 역겹다. 불쾌하고 찝찝하다.

그 다음에는 모리사와 치아키의 발 아래에 짓이겨진 채일 담배 꽁초를 떠올린다. 모리사와 치아키의 얼굴을 상상한다. 담배 연기에 뿌옇게 감추어지기 직전의 얼굴에서 나는, 나는 어떻게 했던가. 침을 삼켰다. 이번에는 침이 말랐다. 나는 바삭거리는 혀를 움직여 목소리를 내었다.

“담배 피우는 거,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해줄 테니까…….”

모리사와 선배는 궁지에 몰려 겨우 살 길을 찾은 초식동물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겨우 말을 이었다.

“……나도 한 개비 줘요.”

“……타카미네.”

나를 어르듯 부르는 목소리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의 열쇠가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는지, 모를 리가 없는 사람이. 나는 그를 위협하듯 목을 울렸다.

“고등학생이 담배는 안 되죠. 그렇죠, 모리사와 선배.”

“으윽…….”

나와의 실랑이 끝에 선배는 머뭇거리는 손 끝으로 내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네었다. 받아드는 나마저도 조마조마한 손짓이었다. 내게 담배를 건넨 모리사와 선배는 그보다는 익숙하게 라이터를 켰다. 일렁이는 불꽃이 눈에 어른거렸다.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딴에는 자연스럽게 필터를 입에 물었다.

모리사와 선배의 라이터가 담배 끝을 태웠다. 하지만 불은 쉽게 옮겨붙지를 않았다. 멍청한 꼴에 모리사와 선배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금방 와닿지 않아 흘끗 그의 얼굴을 살피면, 그건 또 씁쓸한 미소라서 아마도 담배 한 번 피워본 적 없는 나를 어린애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겠거니 싶었다.

“필터를 빨아들이면 붙을 거다.”

모리사와 선배의 조언에 따라 조심스럽게 담뱃대를 빨았다. 그러면 그저 까맣게 타들어가기만 하던 담배의 끄트머리가 발갛게 달아오른다. 슬슬 불이 붙은 건가 싶어 빨아들이기를 멈추면 모리사와 선배도 라이터의 불을 껐다. 그래도 붉은 불씨는 사그러들지 않는다. 나는 담배를 입술에서 떼어 제대로 불이 붙어 타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한 번 입술 위에 올렸다. 필터가 가지고 있는 종이의 재질은, 물기가 스민 입술 위에 얹기에는 어색하다.

나는 어색하게 담배를 문 채 한 개비를 더 꺼내드는 선배를 살폈다.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는 일련의 행위가 물흐르듯이 자연스럽다. 나는 멍하니 선배의 손 끝을 살폈다. 모리사와 선배는 불이 꺼진 라이터를 가볍게 주머니에 넣고 담배를 깊이 빨아들였다. 하얀 담뱃대가 그새 재가 되어 부스러진다. 모리사와 선배는 자연스러운 손짓으로 담배를 입술에서 거뒀다. 붉은 입술 사이로 토해내는 연기가 짙었다.

모리사와 선배를 흉내내 나 역시 한 모금의 연기를 빨아들인다. 매캐한 연기가 입 안을 가득 채운 다음에는 천천히 토해낸다. 잿빛으로 타버린 공기가 공중에 퍼졌다. 입 안이 썼다. 나는 흩어지는 연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엇 하나 익숙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은 어떤 감정에서 비롯되는 흡연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수많은 이유를 세며 나는 선배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힘든 일 있어요?”

“음? 아니. 그런 건 아니다.”

모리사와 선배는 고민도 없이 그렇게 확답했지만 그랬기에 더욱, 이 사람이 언제나 그런 물음에 대한 답을 정해두었다는 것을 알았다. 선배가 말할 생각이 없다면 굳이 캐물을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담배를 마저 태웠다. 타들어가는 연기를 차마 폐까지 들이고 싶지 않아 입 안에서만 굴렸다.

“자, 타카미네도.”

모리사와 선배는 그렇게 말하며 탈취제의 분사구를 내게 향했다. 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 바로 탈취제가 분사된다. 무취의 액체가 나를 거의 절일 기세로 뿌려졌다. 탈취제는 휴대가 가능한 크기의 작은 통이었는데, 이 정도라면 반 이상은 내게 부었을 것 같다.

“이렇게 많이 뿌리지 않아도…….”

“타카미네가 나 때문에 불량아로 여겨지는 건 원치 않는다.”

“……흐응.”

무엇도 당신 탓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런 맥없는 호응만 하고 관두었다. 모리사와 선배의 마무리 작업은 탈취제 정도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근처 상가의 화장실로 들어갔다. 모리사와 선배가 나를 이끈 탓이었다. 손을 씻으리라는 생각은 내심 하고 있었지만, 모리사와 선배가 가방을 뒤져 꺼내든 것은 가글이었다.

그 아래에 양치세트도 슬쩍 보였으니 아마 이건 나름의 약식이겠거니 싶었다. 아마 평소라면 이렇게 화장실에 들러 양치까지 하고 가는 것일 테지. 선배는 나에게도 가글을 권했고 나는 자연히 받아들었다.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잠시 입을 헹궜다. 연기의 맛은 그새 가시고 상쾌한 감각만 입에 남는다.

모리사와 선배는 그새 손 세정제를 꺼내고 있었다. 이건 완전히 결벽증 수준이다. 그것도 강박에 가까운. 이번에도 내게 권하기에 손을 내밀어 받았다. 거품이 부드러웠다.

손까지 마저 씻고 나면 내게는 영 익숙하지 않았기에 더욱 짙게 남은 것만 같았던 담배 냄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새 익숙해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세차장에 맨 몸으로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 아마 익숙해진 탓은 아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손의 물기를 닦아내며 선배를 바라보았다.

모리사와 선배는 담뱃갑을 화장실의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었다. 방금 전 내게 담배를 내어주던 순간에 봤던 담뱃갑 안의 담배들을 떠올렸다. 기가 막힌다. 그를 향해 내는 목소리에는 별 수 없는 넌더리가 섞였다.

“이렇게까지 할 거면 왜 피워여?”

최대한 어처구니가 없는 척 행세하자 선배가 쓰게 웃었다. 마땅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모리사와 선배는 여전히 바른 사람이다. 무엇 하나 어그러지지 않은 모든 행동은 일탈과는 거리가 멀다.

바로 직전까지도 풍겼던 담배 냄새만 제외하면 말이다. 방금 전의 기억은 잃어버린 것처럼, 이 화장실에 들어오기 전의 상황은 전혀 모르는 남자처럼, 그의 몸에서는 상쾌한 민트향과 방금 손을 씻어낸 비누의 달착지근한 향기만 풍긴다. 그런 모리사와 치아키가 영악하다거나 교활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영리하고 철저한 사람은 으레 그런 꼬리표를 달게 된다.

뭐, 나라고 해서 이 시간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담배 냄새를 풍기는 선배는, 이상할 정도로 매력적이었고 그래서 더욱 비밀로 하고 싶어졌다. 멍청한 르포 기자처럼 신비를 헤집어 엉망으로 만들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러니까, 이 시간 덕분에 이런 선배를 아는 것이 나만으로 남게 된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거다. 처음 맛본 담배의 맛을 깔끔하게 지워버린 상쾌한 민트향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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